

지금으로부터 620년전 11만 8천여 명의 숨결을 들으며 한양을 둘러 싸고 있는 도성 18.627km를 걸을려고 합니다
서울 한양도성은
애초에는 서울성곽으로 부리어 지다가 2011년 7월 28일부터 명칭이 변경되었다 합니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지를 정하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 하면서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9월 한양을 방위하고자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旺) 목멱(木覓) 낙산(駱山)을 연결하는 18.627km의 성곽을 쌓게되지요
성곽에는 동쪽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 서쪽 돈의문(敦義門 : 서대문), 남쪽 숭례문(崇禮門 : 남대문),
북쪽 숙청문(肅淸門 : 북대문)으로 사대문(四大門)과
북동쪽 홍화문(弘化門), 남동쪽 광희문(光熙門), 북서쪽 창의문(彰義門), 남서쪽 소덕문(昭德門)으로 사소문(四小門)이 있으며
이 가운데 흥인지문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숙정문)은 암문(暗門)으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으며
남대문은 1396년, 동대문 옹성은 1399년 완성되었습니다

4대문의 숙정문은 1976년도에 복원 완료 되었으며
4소문인 광희문 1975년도에
혜화문은 1994년도에 복원 완료 되였습니다
(광희문은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곳에 고쳐 지었습니다)
한양의 4대문(四大門)과 4소문(四小門)

흥인지문의 옹성이란 성문을 엄호하기 위해 성문 바깥쪽에 반원형으로 쌓은 성이랍니다

A ▷ B ▷ C ▷ D ▷ A
이렇게 한바퀴 도는 한양도성 성곽길 18.627km 입니다

한양도성 18.627km 성곽 따라 걷기 12부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 흥인지문 ▶ 한양도성박물관까지 구간 입니다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는 오늘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부터 시작하여
흥인지문을 지나 낙산까지 걷게되는 성곽길 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10월 15일 개장된 경성운동장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였지요
1983년 잠실종합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서울운동장은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되고
2007년 12월 폐장된 후 지금은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1925년 10월 개장된 동대문종합운동장은 80년이란 세월동안 종합스포츠 메카로 역활을 하다가
2003년 3월 육상경기장이 폐쇄되어 임시주차장 및 풍물시장으로 사용되었고, 2007년 12월 야구장부터 철거를 시작하여
2008년 5월 14일 종합운동장 철거가 완료되면서 폐장된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에는
2009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개장하였고, 2014년 3월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개관하였습니다
DDP란
Dongdaemun Design Plaza(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약자로, 복합문화공간이란 뜻이지요



1925년 10월 15일 경성운동장으로 개장된 종합운동장과 야구장은 2007년 12월 18일부터 철거를 시작으로 폐장되었습니다.
축구장 일부 부지에는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이 2009년 10월 27일 개장하였으며
야구장과 축구장 입부 부지에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2014년 3월 개장하였다 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어울림광장 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앞마당 격인 어울림광장의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 따위를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잔존물의 자취.) 전시장 입니다


옛 유구의 발견된 조선 전기의 건축물의 내용




어울림광장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지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물은
옛 동대문 운동장 터에 세워진 복합문화공간 건물 입니다


동대문운동장의 성화대를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태조, 세종, 숙종 때 쌓은 성벽 축성기법을 설명하는 안내문 입니다

태조 시기의 성은 자연석을 거칠게 갈아서 사용했으며, 아래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로 축성하였으며
세종 시기에 지어진 성은 좀더 직각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숙종 또는 순조 시기에는 직사각형으로 돌을 잘라서 축성하였습니다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는 곳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 건축물 3.7m 아래에는 남산에서 흐르는 물을
청계천으로 보내기 위한 이간수문이 뭍혀 있는 것을 복원하였습니다


청계천 오간수문 바로 남쪽에 한양도성의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 입니다. 이 물길은 도성 밖에서 청계천 본류와 합류 합니다
이간수문이란
2개의 홍예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오간수문의 형태를 축소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성운동장을 공사하면서 지하 3.7m 아래에 묻혀있던 것을 2008년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짓기 위한 발굴 조사 중에 멸실된 것으로 추정되었던 이간수문과 일대 성곽이 드러났습니다
2009년 10월에 이간수문과 치성 1개를 포함하여 발굴된 142m를 복원하고
멸실된 123m는 돌을 쌓아 성곽임을 드러내 공개하고 있습니다

1396년 축성된 이간수문이 1925년 5월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운동장을 만들면서 성벽과 이간수문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2007년 12월 동대문 야구장부터 철거되면서 땅속에 뭍혀있던 이간수문과 성곽이 엤모습을 드러내게 되였습니다

이간수문은 남산 기슭에서 청계천 본류로 흐르던 남소문 동천 위에 세워졌던 2칸 구조의 수문으로
1910~1915년 일제가 성곽을 철거할 때 묻혔다가 발굴된 것이라 합니다

한양도성 성곽과 이간수문 그리고 옛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의 조명탑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오간수문은 기단부가 발굴되었으나 복원되지 않았고
축소 모형이 오간수교 옆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옛 동대문운동장(축구장) 3.7m 아래 묻혀 있었던 이간수물은 성곽 밖에서 청계천에서 합류된다 하지요



1388(고려 우왕 14)년 함경도 출신의 무장인 이성계(李成桂)는 왕명으로 중국 명나라(요동정벌)를 치러 가다가 압록강
위화도(압록강 하류에 있는 섬)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開京)으로 돌아온
이성계는 최영의 군대와 일전을 벌인 끝에 최영과 우왕을 폐위해 강화도로 유배시키고
1392년 7월 이성계는 개성의 수창궁에서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에게 선양의 형식으로 왕위를 이어 받아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국호를 '조선'으로 정합니다
1395년(태조 4)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한양의 중앙에 경복궁,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단을 완성한 뒤
다음해인 1396년에는 한양을 둘러싸는 도성을 쌓았습니다. 성곽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네 개의 큰 문을 만들었는데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북쪽의 숙청문(肅淸門)이며
각 대문의 이름은 유교에서 강조하는 다섯 가지 도리 중
유교의 덕목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를 따와 동서남북 4대문에 이름을 담았다 합니다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유교의 기본적인 5가지의 덕목인
어질고(仁) 의롭고(義) 예의바르고(禮) 지혜롭고(智) 믿음직함(信)
仁義禮智信
어질고, 의롭고, 예절있고, 지혜롭고, 믿음있음은 사람이 지닐 5가지 도리라 합니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도리의 덕목인
인(仁)은 :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질다

의(義)는 : 불의를 뿌끄러워하는 마음이 의롭다

예(禮) : 남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예의바르다

지(知) :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 지혜롭다

그리고 사대문의 한가운데에는 종루(보신각(普信閣)을 세워 유교의 마지막 덕목인 신(信)을 상징으로 삼았다 합니다
신(信) : 믿음이 있고 성실한 마음이 믿음직하다

사람은 늘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를 새기도록 한 유교 가르침을
한양도성을 출입할 수 있는 4대문 현판에 이름을 붙여 항상 마음에 새기도록 하였다 합니다

돈의문(강북삼성병원 곁 정동 사거리)은 1915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 하며
흥인지문(동대문)은 보물 1호로 지정되고,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1호이며
사대문을 출입할 때 문 이름을 보거나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늘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를 새기도록 한 것이라 합니다



동대문성곽공원 입니다






성곽곁 건물은 종로구 종로6가 70-6에 위치한
한양도성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


서울시 종로구 종로6가 한양도성박물관 곁에서 바라본, 종로구 숭인동 56-136번지 숭인공원의 동망봉 입니다
동망봉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가
1456년(세조 2)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귀양간 후 사사된 후,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가 청룡사에
머무르며 날마다 동망봉에 올라 단종이 귀양가서 죽은 영월 쪽을 바라보며 62년을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봉우리 입니다.
1771년(영조 47년)에 영조 임금이 정업원구기비(현 : 청룡사)를 세우고, 앞산 봉우리 바위에 동망봉(東望峰) 석자를 친필로
새겼는데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이 되면서 바위가 깨어저나가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1771년 이곳 청룡사 정업원을 찾아 정순왕후의 사연을 듣고는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정업원구기란 뜻은 정업원이 있었던 옛터(舊=옛 구, 基=터 기)라는 것이지요

정업원 옛터에 세워진 비각의 현판 글씨는 영조임금의 친필이라 합니다
전봉후암 어천만년
(前峰後巖 於千萬年 : 앞산 봉우리와 뒷산 바위 천만년은 가리다)

정순왕후가 매일 조석으로 동망봉 이곳에 올라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하는 곳 입니다

종로구 숭인동 숭인공원에 있는 동망봉 입니다


뒤돌아본 한양도성박물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 흥인지문 ▷ 한양도성박물관까지
구간 성곽 걷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