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에서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전시와 설치작 <붉은 방>에 다녀왔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라는 제목으로 올해 83세의 페미니스트 윤석남 화백과 14인의 여성독립운동가가 만났다. 그 자체로도 가슴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야기다.
윤석남 화백의 이력이 드라마틱하다.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감당하다 40세에 그림을 시작, 여성신문 창간에 참여 후 여성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1996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제8회 이중섭미술상을, 2015년에는 제29회 김세중조각상을, 2019년에는 여성주의 문화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몇년 전부터 해외 유수의 기관에서 서둘러 그의 작품을 사들이고 전시회에 초청하면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는 전시회에 맞춰 같은 제목의 책(김이경글, 윤석남그림/ 한겨레출판)이 함께 출간된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윤석남 화백과 소설가 김이경씨가 몇 달간 함께 인물을 선정했다. 기록과 문헌을 바탕으로 14인의 독립투쟁을 소설 형식으로 각색하고 소개하는 글쓰기는 김이경씨가, 김이경씨의 글을 참고해 14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은 윤석남 화백이 맡았다.
비가 쏟아지는 오후였지만, 오랜만에 공휴일인 3.1절의 의미도 새기고 여성독립운동가들도 뵙고 도전받을 겸 학고재를 찾았다. 춥고 비오는 궂은 날씨에도 여성청년들, 모녀, 부부나 지인 등이 초상화 앞에서 담소를 나누며 사진찍는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조선의 페미니스트>(이임하/철수와영희)를 통해 정칠성, 박진홍선생님 두 분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가장 강렬했던 초상화는 김명시선생님이었다. 매의 눈처럼 강렬한 눈빛에 빨려들다 눈물이 고인다. 뭔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뭘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가만히 기다렸다.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세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라는 마음이 전해온다. 울컥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 야무지고 끝을 매섭게 맺는 말씨, 항시 무엇을 주시하는 눈에 온몸이 혁명에 젖었고 혁명 그것인 듯이 대담해 보였다.
"스물 다섯 살에서 서른 두 살까지 나의 젊음이란 완전히 옥중에서 보낸 셈이죠." 적지구(敵地區)에서 싸우던 눈물겨운 이야기, 임신 중에 체포되어 배를 맞아 유산하던 이야기, 밤에 수심도 넓이도 모르는 강물을 허덕이며 건너가던 이야기(...) 싸움이란, 혁명에 앞장서 싸우는 것이란 진실로 저렇게 비참하고도 신명나는 일이라고 고개를 숙이며 일어나서 나왔다.
-《독립신보》 1946년 11월 21일자 김명시선생님 인터뷰 기사-
"선생님, 또 올게요. 그때 다시 말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