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울인들은 개혁 교회의 선조인가?
(1) 항상 존재하는 참 교회
참 교회가 항상 존재하였음을 직접 증명하시려는 듯, 하나님은 유럽 서부지역의 남은 자들로서 ‘보두아’들을 깊은 산악 지대인 피에몽에 모으시고 그들을 보호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서방에 복음을 전달해 주었던 동방 지역에서도, 사도들에 의해 확립된 성경적 교리들과 이를 삶으로 실천하는 “남겨진 자”들이 모든 세대를 거쳐 존재하도록 ‘참 교회’를 형성하셨을 것이다. 유럽 동부 지역에서 참 교회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그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였으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을까?
먼저 브로킷은 “5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보스니아의 개혁 교회가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의 진정한 후계자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준 세 명의 저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잉글랜드의 저명한 고고학 학자인 아서 에번스(1851-1941)이다. 그는 고대 크레타 문명을 발굴하기 위해 35년 동안 크레타 섬에 머물렀고, 생애 후반기에는 역사가로서 보스니아의 도서관들, 그 인근 지역의 수도원을 꼼꼼히 탐사한 후 『보스니아의 역사적 논평』을 저술하였다.
둘째는, 보헤미아 출신으로 역사학자인 지렉이 있다. 그의 저서 『불가리아인의 역사』(1876)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마지막 저자는, 러시아인으로 동방 교회 소속인 힐페르딩인데, 그의 저서 『세르비아인과 불가리아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중요한 자료이다. 5-6세기경의 두 국가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보고밀인들의 신앙과 삶에 대하여 짧지만 핵심을 짚어 묘사하고 있다.
이런 학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브로킷은 동방의 역사 가운데 비잔틴 교회의 타락을 안타까워하면서 교회 개혁의 큰 궤적을 남긴 대표적인 그룹이 ‘바울인들’ 또는 ‘보고밀인들’이라고 주장하였다.
(2) 연구의 당위성과 한계점
이들에 관한 연구가 쉽지 않은 것은 서방의 로마 교회가 늘 그러하였듯, 동방 로마 교회에서도 이 참 교회 성도들을 찾아내어 학살하고 완전히 멸절시키는 것을 그들의 역사적 과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을 찾아 개인과 가족들, 그리고 공동체를 말살하는 것은 물론, 그들에 관한 기록들과 그들의 소유했던 서적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고, 대량 학살과 지속적인 방해 활동에 대한 자신들의 명분과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자료 외에는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참 교회의 역사가 이어지지 못하게 한 로마 교회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참 교회로서의 그들의 진면목을 도무지 알지 못하게 막는 가장 치명적인 난관이 되었다. 사실은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 개신교 교회사 학자들조차도 로마 교회나 비잔틴 교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바울인들을 심각한 이단으로 전제하고 그들의 역사를 판단했다는 점이다. 필립 샤프의 바울인들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리만큼 비판적이다. “로마 교회는 그들을 신 마니교라고 판단하지만, 사실 그들은 마르키온 사상에 더 가까운 이단이다. 이 분파의 설립자는 영지주의 회중 출신으로, 바울인들의 교리는 이원론과 데미우스 로고스주의, 가현설, 사이비 바울주의가 이상한 형태로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인들은 서유럽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확장하다가 13세기에는 전성기를 누렸지만 알비 십자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는 기번이 주장한 바, ‘바울인들은 개혁 교회의 씨앗’이라는 견해와는 차별을 두었다. 필립 샤프와 에드워드 기번은 공통적으로 알비인들을 ‘영지주의 이단인 바울인의 후손’으로 판단하였다. 필립 샤프의 이런 진술은 알비인들과 바울인들을 종교개혁과 전혀 무관한 이단 집단으로 만들어 개신교에서 완전히 제외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고 말았다.
이처럼 교회 역사계에서 대가로 알려진 학자들의 주장들에서조차 이미 역사적 사실처럼 정착되어 있는 기존의 편견을, 바울인들에 관한 1차 자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에서 완전히 바꾸는 일이 쉬울 리 만무하다.
둘째는, 바울인들에 관한 연구를 위한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활동하였던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지역의 1차 역사 자료 확보만큼이나 그들의 고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부딪치게 되는 언어적 한계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9세기 이후에 바울인들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활발히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1차 자료를 직접 해석하고 발표한 2차적 자료들에 근거하여 새로운 사실에 접근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83-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