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한 시도 편할 날 없이 대 가족 속에서 외출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며
바쁘게 살고 있는 내가 딱해 보였던지 교우 프란체스카가
"형님은 언제쯤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보시려나요?"하고 물어왔다.
"70부터는 그렇게 살 거에요. 취미 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요..."
그 때 내가 50대 후반이었으니 내 딴엔 넉넉히 잡아 말한 셈이었다.
70이면 아이들도 다 독립해 있을 거고, 어머님도 100세를 넘기셨으니 이미 세상에 안 계실 것이고,
성당에서도 그 나이의 나보고 봉사하라고 말할 사람 없을 것이고,
나만 건강히 살아 있다면 누가 보아도 부질없는 바램은 아니었다.
그렇게 장담한지 세월은 10 여 년이 흘렀고 내 나이 70의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웬걸, 토평으로 이사오니 성당 반장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장 씨 댁에서 내게 맡겨진 일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님은 이런 나에게 늘 말씀하신다.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야서 55,8)
지난 주에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성서 말씀도 힘이 되지 않았다.
주님, 어련하시겠습니까? 당신의 길이 저의 길과 다르다는 것 저도 안다구요.
그러나 쉬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 어깨에 올려 놓아주신 짐 이젠 내려놓겠습니다.
어머님 찾아 뵙는 일도, 형제에 대한 걱정도 다 잊고 저 자신만 생각하겠습니다.
저의 일탈(逸脫)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이렇게 주님께 반항하며 지내고 있던 차에 구반장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처음엔 체력에 자신 없어 가지 않겠다 하였다가 마음을 바꿔 함께 하게 되었다.
나이도 잊고, 어머니도 잊고, 시동생도 잊고, 나자신 만을 위해 하루를 살자 하고
떠난 동해안 나들이는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밤 10시에 돌아왔다.
하루 일정이 다양하게 잡혀 크루즈선을 타고 배위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쇼 관람도 하였고, 오죽헌도 들리고,
동해 바다의 일출 장소로 유명한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도 하였다.
식당에서는 싱싱한 회를 실컷 먹었고, 버스 안에서는 푸짐하게 제공되는 간식을 먹는 즐거움과
구반장들이 뽐내는 노래 솜씨에 한껏 흥이 오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니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 했지만 나의 머리 속을 텅 비운채
14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구역반장들이 본당에서 수고한다고
바쁘게 살고 있는 내가 딱해 보였던지 교우 프란체스카가
"형님은 언제쯤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보시려나요?"하고 물어왔다.
"70부터는 그렇게 살 거에요. 취미 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요..."
그 때 내가 50대 후반이었으니 내 딴엔 넉넉히 잡아 말한 셈이었다.
70이면 아이들도 다 독립해 있을 거고, 어머님도 100세를 넘기셨으니 이미 세상에 안 계실 것이고,
성당에서도 그 나이의 나보고 봉사하라고 말할 사람 없을 것이고,
나만 건강히 살아 있다면 누가 보아도 부질없는 바램은 아니었다.
그렇게 장담한지 세월은 10 여 년이 흘렀고 내 나이 70의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웬걸, 토평으로 이사오니 성당 반장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장 씨 댁에서 내게 맡겨진 일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님은 이런 나에게 늘 말씀하신다.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야서 55,8)
지난 주에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성서 말씀도 힘이 되지 않았다.
주님, 어련하시겠습니까? 당신의 길이 저의 길과 다르다는 것 저도 안다구요.
그러나 쉬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 어깨에 올려 놓아주신 짐 이젠 내려놓겠습니다.
어머님 찾아 뵙는 일도, 형제에 대한 걱정도 다 잊고 저 자신만 생각하겠습니다.
저의 일탈(逸脫)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이렇게 주님께 반항하며 지내고 있던 차에 구반장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처음엔 체력에 자신 없어 가지 않겠다 하였다가 마음을 바꿔 함께 하게 되었다.
나이도 잊고, 어머니도 잊고, 시동생도 잊고, 나자신 만을 위해 하루를 살자 하고
떠난 동해안 나들이는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밤 10시에 돌아왔다.
하루 일정이 다양하게 잡혀 크루즈선을 타고 배위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쇼 관람도 하였고, 오죽헌도 들리고,
동해 바다의 일출 장소로 유명한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도 하였다.
식당에서는 싱싱한 회를 실컷 먹었고, 버스 안에서는 푸짐하게 제공되는 간식을 먹는 즐거움과
구반장들이 뽐내는 노래 솜씨에 한껏 흥이 오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니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 했지만 나의 머리 속을 텅 비운채
14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구역반장들이 본당에서 수고한다고
신부님 수녀님 사목위원들이 마련해준 나들이가
나에게는 소진되어 가고 있던 나의 영육에게 내 스스로가 준 선물이었다.갑판 위에서... 우리 본당 신부님의 멋진 포즈
나이를 잊는다고 세월의 흔적이 없어지리... 사진은 거짓말은 하지 못하는도다.
왼쪽부터 총구역장 유스티나, 서기 비비안나. 암빠루 수녀님(스페인 분), 젬마 수녀님, 아가다
왼쪽부터 총구역장 유스티나, 서기 비비안나. 암빠루 수녀님(스페인 분), 젬마 수녀님, 아가다
크루즈 1층에서 우크라이나 무희들이 캉캉을 추고 있다. 공연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어지러운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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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입구. 1964년도 대학 졸업여행으로 와 보았을 때와는 상전벽해의 변화이다.
수녀님과 5구역 식구들. 좌로 부터 그라시아, 젬마 수녀님, 아가다, 로사, 스텔라
촛대 바위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 43명 중에 내가 최고령이다.
2013.05.08 12:13 (업로드 2013.05.08 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