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권의 독서 /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지음
글/김덕길
나는 책을 가능하면 빌려서 읽는다.
한번 읽은 책은 대부분 다시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훈 작가의 책은 사서 읽는다. 신문기자생활의 경험과 글쓰기로 다져진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아서 감히 버릴 수 없다. 누가 소설을 필사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소설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를 추천하겠다.
산행도 그렇다. 올라갔던 코스를 다시 내려오는 것도 싫고 한번 갔던 산도 가능하면 다시 가지 않는다. 올라야할 산이 많고 가야할 등산코스가 많아서다.
여행도 그렇다. 같은 여행지는 가능하면 다시 가지 않는다. 세상은 바다처럼 넓고 시간은 금쪽처럼 귀하기에…….
해외여행도 그렇다. ‘살아생전 또, 언제 이 나라에 오겠는가?’ 라는 생각에 가능하면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보니 내 생각이 꼭 정답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지나고 보니 같은 코스를 오르던 산도 철마다 달랐다. 연초록 이파리 움트던 새봄의 산은 새봄 아니면 볼 수 없고 붉게 물들어 내 부끄러움조차 닮던 단풍잎은 가을 아니면 볼 수 없다. 한번 올랐던 코스도 같은 코스를 내려올 때 느낌은 또, 다르다.
어느 날 조용히 독서하는 밴드에 책이 올라왔다. 올라온 몇 권의 책을 메모해 도서관에 찾아보았는데 대부분 누군가 빌려간 상태다. 미리 예약하기도 있는데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해서 포기한다. 나는 대부분 도서관의 서재를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을 펼쳐보고 이거다 싶으면 빌려오는 편이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첫 인상이라는 것이 있듯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무심히 바라보면 “나 좀 빌려가 줘!” 라고 말하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일단 내용을 본 후, 쉬이 읽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빌린다. 책을 읽고 후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책 ‘힘빼기의 기술’은 일부러 검색했고 찾았고 마침 도서관에 있기에 빌렸다. 밴드 덕분에 알게 된 책이라 더 반갑다.
독후감을 쓴다고 하면서 나는 대부분 나의 이야기를 쓴다.
카피라이터인 김하나 작가는 고양이를 키우며 산다. 국어교사였던 아버지와 역사교사였던 어머니는 같은 학교에서 눈이 맞아 결혼을 했단다. 아버지 덕분에 글쓰기에 더 매진할 수 있었기에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어머니의 방임주의 덕분에 남미를 혼자 반년씩 여행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글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젊은 날의 우여곡절을 가감 없이 썼고 힘을 빼서 썼고 가슴이 짠하게 썼다. 길가에서 다리를 절며 피 흘리는 고양이를 보고 눈물범벅이 된 채 차를 몰아 동물병원에 갔지만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마는 고양이 앞에서 그녀는 목 놓아 운다.
참, 가녀린 여성인데 그녀의 남미 여행기를 보면 의외로 강단이 있는 여성이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홀로 지내며 겪는 절절한 에피소드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공감했다.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그 느낌을 서술했을 때 나는 내가 가본 빅토리아폭포의 장관을 상상했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느끼는 점은 각각 다르다. 책 역시 그렇다.
그녀는 여행지 이면의 아픔까지 들여다본다. 우유니 사막의 트레킹을 갔을 때 운전해주던 가이드가 있었는데 3일 동안 요리해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운전을 해주고, 날마다 새벽 3시면 일어나 준비를 한단다. 하루도 쉴 날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니 얼마나 피곤할까? 김하나 작가는 두 아이의 아빠라는 청년 가이드의 삶까지 어루만질 줄 아는 여성이다. 파타고니 트레킹의 처절한 고행기도 감동이었고 사하라 사막의 별헤는 밤이 너무 아름다워 다섯 시간 동안 가슴 벅찼는데, 아침에 환해서 보니 지저분하고 돌이 많은 사막의 입구였을 뿐이라는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써놓은 육아일기는 나도 감동이다.
이 책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역시 책은 편히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고 자신이 살아온 삶이 진하게 녹아있는 책이 더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