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③
*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 (가)는 조선민족혁명당 산하의 군대이고, 동・북만주 진출을 꾀하는 중국 관내의 무장조직이고, (나)는 임시의정원과 중・일전쟁의 상황임을 통해, 각각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임을 알 수 있다.
(가) 조선의용대: 1935년 7월, 중국 관내에서 민족유일당으로 형성된 조선 민족 혁명당은 1937년 중·일 전쟁이 시작되자 공산주의 정당과 연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고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우한에서 조선 의용대를 창설하였다(1938.10).
조선 의용대는 의열단 출신의 김원봉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국민당 군대와 함께 선전 활동, 일본군 포로 심문 등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중국 국민당의 과도한 통제와 소극적 항일 투쟁에 반발해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여 조선 독립 동맹 및 조선의용군을 결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1942.7).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군(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며 함께 태항산, 호가장 전투 등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조선 의용대의 대원이 화북 지역으로 이동한 후 김원봉과 남은 세력들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1942.5).
(나) 한국광복군: 1937년에 일제가 중·일 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위협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각처에 흩어져 있던 무장 투쟁 세력을 모아 충칭에서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다(1940.9, 총사령 지청천, 참모장 이범석).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1941.12)를 한 후 화북으로 이동하지 않은 김원봉과 조선 의용대 본대 병력도 한국 광복군에 합류하여 군사력이 한층 강화되었다(1942.5).
한국 광복군은 연합군과 공동으로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 참전하였다(1943). 또, 미국과 미국전략정보국(OSS)과 협조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정진군, 1945.3), 일제의 다소 이른 패망으로 실현하지 못하였다.
㉠ 1930년대 초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혁명군은 양세봉의 지휘 아래 중국 의용군(요녕민중자위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 1930년대 초 북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군은 지청천의 지휘 아래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사도하자,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1932~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