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아름다운 사람들
구약성경 룻기는 족장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판관 시대 과도기이다. 작중 배경은 기근으로 이주와 귀환의 생활고를 겪는 가족이 본인들의 신앙과 의지적 노력,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인정과 신앙으로 극복하는 감동 이야기이다. 성독聲獨하는 내내 참으로 가슴 훈훈했다. 출연진 모두 한결같은 하느님 사람다운 향기를 인류 역사에 길이길이 전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또 한편, ‘나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이 사람들처럼 인정스럽고 따듯한 적이 있었는지, 하느님이 명하신 구원의 삶으로 인도했는지?’ 반성과 재촉으로 다가오며 아래 중요 출연진의 미담을 요약해 보았다.
나오미:유쾌하다 귀엽다>
판관 시대 기근을 피해 유다인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모압으로 이주해 갔다. 두 사람은 마흘론과 킬욘 두 아들을 낳아, 이방인 모압 출신 오르파와 룻과 결혼시켰다. 나오미는 대들보 같은 보호자 남편과 연이어 신주단지 같은 두 아들을 잃었다. (이 부분에서 외아들을 먼저 잃고 자신의 얼굴보다 더 커다란 눈물을 매달고 금방이라도 절명할 듯 숨죽여 울던 내 어머니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한 여자의 일생으로 너무나 참담하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기 비극과 연민에 함몰되지 않는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맞는 고부간 인연을 시작할 때부터 한결같이 며느리보다 딸로서 대한다.
그녀의 인품은 예리하고 부유하며 신앙은 그지없이 부유하다. 그녀는 오직 비참한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운명적 타자를 우선적 배려한다. 젊은 며느리들을 안위를 생각하며 가슴 쓰라려하는 현실적 감수성이 통렬하다. 하여 모국과 친정으로 귀환할 것을 요구하고 축복한다. 오르파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 떠나갔지만, 그럼에도 룻은 간절하게 남길 원하자 이제는 구체적인 현실 타개책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조언한다. 그것은 구원자 보아즈와 결합하여 후손 즉 구원자를 계승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지시한다. 이야기 주인공이지만 실제상황이라면 구원자를 보는 것 같다.
룻(위로하는 벗)>
모압출신 이방인 며느리 롯은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전도 창창한 젊은 과부 며느리 미래를 위해 이별을 권고하자 더 바짝 달라붙는다. 천지간 기댈 몸과 마음 둘 곳 없는 극빈한 처지에서 아들 일곱이 부럽지 않는 하늘 같은 며느리이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문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데,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나오미의 현실적인 구원자는 뒤늦게 태어나는 이상한 혈통의 손자보다 롯이라고 할 수 있다. 롯의 효심은 가히 범세계적 최고의 효부 수상자로 손색이 없다. 특히 마지막 ‘죽음만이.’ 운운하는 것은 ‘남녀상열지사’의 전용 멘트인데 이런 남녀 애정행각을 뛰어넘은 숭고한 인간애지 않는가! 사실 롯의 고백은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보편 구원과 보편 신普遍神을 말하는 신앙 고백문이 아닌가? 롯은 일하면서 얻은 일인분 식사도 혼자 꿀꺽 다 먹어치우지 않는다. 일터에 나오지 못해 제 때 밥을 먹지 못하고 고픈 배를 참고 있을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 은밀히 남겨둔다. 먹거리가 부실하던 시대, 이미 중노동에 충분히 허기졌을 젊은 아낙이 제 먹을 것을 남기고 양보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소설 ‘흑야’에서 엘리위젤은 자신과 아들 부자父子가 같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포로로 살면서 참으로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맛있는 빵이 나왔을 때, 그 전까지 같이 살던 그렇게 고맙고 힘이 되던 아들이 같이 같은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만 아니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의 입에 들어갈 수 있었던 빵이었기 때문이다. 배고픔, 빵, 사람 목숨이 그런 관계이다. 나도 젊은 내 어머니가 새 참으로 받은 빵을 가져와 자식인 나와 동생을 맛나게 먹이던 따듯한 모성애을 잊지 못한다. 기아와 기근의 시대 제 먹이를 나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 이방 여인 롯의 아름답고 숭고한 덕행은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의 한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동네 사람들
“ 저 사람 나오미 아니야?”, 베들레헴 마을 사람들, 나오미는 그들에게 떠나 때도 돌아올 때도 변함없이 나오미이다. 기근을 피해 살아남으려고 고향을 등졌다가, 비참한 신세가 되어 빈손 낙향한 두 과부를 침 뱉거나 왕따시키지 않고 마음을 다해 맞는다.
일꾼 감독:
그는 롯에 대해 본 대로 사실대로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겸손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 밭 주인 보아즈와 일꾼 감독이 이정도 작업해 놓으면 선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호의적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대략 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들은 천성 선하기도 하다.
성문 곁 원로들:
당시 유다인 사회 재판정 성문 곁이었다. 거기 보아즈와 롯의 구원자 관계를 매듭짓기 위한 절차로 원로들과 백성들이 모였다. 그들은 합리적 절차와 엄청난 축복으로 롯과 그의 가문을 축복한다. 롯을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레아와 라헬의 등급으로 격상시키며, 당대 두 유명도시 에프라타와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빌고, 유다지파 페레츠 가문이 되도록 축복하고 있다.
보아즈(힘있는 자)>
보아즈의 이름은 ‘힘 있는 자’라고 한다. 그는 참으로 힘 있는 자이다.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 ...안으로 힘 있는 자는 인사도 축복도 먼저 할 줄 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하지만 다 그렇지 않다. 곳간은 그득하나 인심은 인색한 부자가 있고, 곳간도 인심도 다 넉넉한 부자가 있다. 보아즈는 인간미 지성 특히 하느님 경외심인 신앙심에서 모두 부자이다. 일단,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품꾼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태도를 보라. 겸손하기조차 하다. 낯선 이방인 젊은 과부에 대한 정보를 듣자, 그가 호칭한 것은 “내 딸아(룻2,8)”라고 한다.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이방인 롯을 대한다. 그리고 마음놓고 이삭)양식을 줍도록 배려하며 남녀 일꾼 즉 종들이 텃세를 부리며 괴롭히지 못하도록 주의를 준다. 룻의 효행에 대한 정보를 명확히 알아내고 넉넉히 축복한다. 인정뿐만이 아닌 유대인들의 사회 관습법 ‘시숙의무=레비르 법’ 문화에도 충실하다. 그 이행하는 방법도 더불어 사는 모두에게 큰 부담과 무리를 주지 않고 자연스럽고 고상하게 처리한다. 사실 이방인 롯과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족보와 관습상 자신의 아들이지 실제로는 애써 모은 재산만 축날 뿐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구원자 의무를 준수한다. 그래서 자기자신, 나오미, 롯 모두를 살려낸다. 그리고 인류의 영원한 베스트 셀러 성경, 그리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에게 낳아주는 위대한 유다-페레츠 구세사 족보에 영광스럽게 등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