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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평
막막한 통각의 언어
이 대 영
모서리의 탄생/신주희/자음과 모음/2018
Ⅰ
존재가 극한상황에 직면해 이를 극복하거나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서사들은 독자들에게 이미 익숙해 있다. 1950년대 전후에 경험했던 기존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존재 상실의 위기감은 ‘실존’이라는 용어에 방점을 찍게 했다. 실존에 대한 문제는 실존의 본질이라는 정의에서부터 원인과 실존회복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문학적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산업사회의 전개와 더불어 시민의식의 성숙은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탐색과 이를 사회적 가치로 정착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에 문학도 산업사회의 전개와 더불어 진행된 인간의 가족, 정치, 사회, 기계로부터 오는 소외현상을 주제화하여 사회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을 시도해왔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존재가 경험하는 소외의 양상은 심화되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를 구현하는 작가들의 방법과 내용도 좀 더 세분화 되고 다양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작가 신주희의 소설을 읽다보면 존재가 느끼는 실존상실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모서리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또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관찰력으로 이어가는 작중인물의 심리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극한상황에 직면한 인물에 어느새 동일화 되고 있는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2012년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점심의 연애」가 당선되어 등단한 작가 신주희는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에서 10편의 소설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 「당신은 말한다」, 「네 개의 이름」, 「점심의 연애」, 「사막의 뼈」, 「미싱 도로시」, 「극」, 「홀로, 코스트코」, 「브라질리언 왁싱」, 「소녀의 난」, 「인어」 등이 그것이다.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가시적인 입체, 무언가에 떠밀린, 혹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듯한 형상에 대한 통찰은 작가의 섬세한 감각을 보여준다.
“내 소설 속에서 상처는 극복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체념하고 탐구하는 대상에 가깝다”고 이야기한 작가의 말을 디딤돌로 놓고 보면, 그의 작품은 체념의 원인과 그 늪에 빠진 존재의 심리 탐구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도 작가가 오래도록 아픈 통증으로 남을 것이라는 담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조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Ⅱ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은 삶의 온전성을 상실한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그 온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출구마저 봉쇄되어 있기에 작중인물이나 독자 또한 먹먹한 감정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이다.
소설 「당신은 말한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는 여자는 조선족 육아도우미를 믿지 못하여 사무실에서 CCTV를 통해 그녀를 감시한다. 도우미에 대한 불신과 불안의식은 점점 증폭되어 장기밀매, 인체밀수조직 등과 같은 중국 베이비시티 괴담을 상상하고 아기의 안전에 대한 위기감으로 그녀를 사무실에서 집으로 뛰쳐나가게 한다.
소설 「네 개의 이름」에서 작중인물 림미정은 새터민으로 개사육장에서 일하면서 탈북 중 북송되어 수감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맡았던 냄새를 맡는다. 그녀는 사육장에서 개와의 동질감을 느껴 그곳에서 개를 데리고 나와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그녀는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법원에 개명신청서를 제출하지만 임미정과 림미정은 한국어 표기상 같은 이름이기에 개명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기각통지서를 받는다. 사람들은 그녀가 공원에서 사라지자 개잡는 여자, 특수부대 출신, 빨갱이 등 사실과는 거리가 먼 대화들로 그녀의 정체를 확산해 나간다. 사람들은 그 여자만이 간직하고 있는 임미정과 림미정 사이에 놓여 있는 고통의 시간과 잔인한 시간들을 알지 못하고 단지 그녀의 마지막 이름만을 기억할 뿐이다.
소설 「인어」에서 채권추심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은 오랜 시간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하고 집과 회사를 오가는 회생불능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추심률 99%로 채무상환 업무에 관한 해결사 또는 전설로 통하지만 낙오되는 회사 동료들을 보며 업무에 대한 부담과 긴장으로 밤잠을 설치는 시간이 잦아진다. 런닝머시인 대리점을 하다 빚을 진 채무자를 찾아 포장마차에서 만났지만 “내일이 없다”는 그의 넋두리에 속수무책의 상황도 일어난다. 그가 귀가했을 때 한 사내가 일가족과 함께 수면제를 먹고 저수지로 돌진하여 일가족이 사망, 혹은 중태인 것을 TV를 통해 보게 되고, 자책감으로 한강에 나와 위태로운 걸음을 옮긴다.
소설 「브라질리언 왁싱」에서는 왁싱 디자이너로 일하는 정나나를 통한 직업으로부터의 소외의식을, 소설「소녀의 난」과「미싱 도로시」에서는 가족 또는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의식과 극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Ⅲ
작가 신주희는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을 통해 현대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소외의식과 극한의식을 보여준다. 그는 모서리 너머를 바라볼 수 없는 현대인의 극도의 불안 심리와 그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불온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먹먹한 감정으로 통각의 아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피상적 시각을 보여주려 한다.
소설「당신은 말한다」에서 조선족 육아 도우미에 대한 의뢰인의 불신, 소설「네 개의 이름」에서 새터민에 대한 주변인들의 의심과 불온한 상상력의 확장은 그에 삶에 대한 몰이해에서 야기되는 현상이다. 소설「점심의 연애」에서 주부가 일상생활에서 균열된 틈을 외도를 통해 상쇄하려는 심리와 행동을, 소설「극」에서 수학여행 중 배가 침몰하여 죽은 딸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딸의 뼛조각을 필름통에 담아 북극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주변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또는 우리들을 극한상황에 이르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작가는 소설「극」에서 북극으로 떠나는 것을 만류하는 목사에게 지옥은 불구덩이와 살벌한 고문 도구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지쳐서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곳이 진짜 지옥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서술한다. 절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깨달음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극한상황을 맞이하게 한다.
소설 「브라질리언 왁싱」에서 디자이너는 “그 무엇도 미래와 연결되지 않는 일상에 몸서리”를 치며, 소설「인어」에서 채무자는 “내일이 없다”는 넋두리를 한 후 저수지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소설「소녀의 난」에서 딸이 있는 연상의 남자 윤의 아이를 임신한 소녀는 “어떤 방법으로 삶을 견뎌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 「미싱 도로시」에서 아들은 어머니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주부는 자기만의 영역에 갇혀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가출을 단행한다. 소설「점심의 연애」에서 남녀 인물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소설「사막의 뼈」에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청년과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피폐한 아버지의 극한 감정은 폭력을 일상화 한다.
신주희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 주변에 항존 하며, 그들의 유예되고 있는 분노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지 모른다. 신주희의 소설 속 모서리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과 삶의 불온성은 사회 현상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불온성의 원인과 인물을 탐구할 뿐, 이를 치유하는 방법은 사회적 과제로 남겨둔다.
이제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모서리 너머에서 숨죽이고 움츠리고 있는 주변인을 살피고, 그들과의 상생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이대영
시간을 걷는 소년/이순원/다림/2019
Ⅰ
소설의 제목부터가 추상적이다. ‘시간을 걷는 소년은 누구이며, 어떠한 시간일까?’가 이 소설을 해석하는 중심 문장이 된다. 그러나 이순원 작가의 문학적 경향으로 미루어보건대 독자들의 기대지평은 그리 어긋나지 않는다. 아마도 유년의 체험, 고향, 길, 성장통, 인간애라는 기대지평에 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이순원은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소설 <낮달>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그동안 장편소설 《수색, 그 물빛 무늬》, 《순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우리들의 석기시대》,《에덴에 그를 보낸다》, 《미혼에게 바친다》, 《독약 같은 사랑》, 《그대 정동진에 가면》, 《19세》, 《나무》,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등과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를 통해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문학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인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등으로 대표되는 현실 비판적 경향으로부터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19세>, <아들과 함께 걷는 길>과 같은 구체적 삶의 체험을 통한 가족애와 서정의 무늬를 바탕으로 한 내밀한 심리세계에 이르기까지 주제는 다양하다. 성장소설의 서사를 지니고 있는《시간을 걷는 소년》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Ⅱ
소설 《시간을 걷는 소년》은 허약한 몸으로 태어나 그의 명(命)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을 인물로 하고 있다.
소년이 태어났을 때 아이의 몸이 허약해, 할머니는 그에게 일반인이 잘 부르지 않는 ‘자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명부(冥府)에서 잘못 보낸 아이라고 다시 데리러 왔다가도 그를 쉽게 찾지 못해 그냥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소년이 막 돌을 지났을 때, 보름 가까이 심하게 앓자 할머니는 삼박골에 사는 영숙이 어머니를 명어머니로 지목해준다. 마웃통에 빠져 죽은 두 살짜리 아들이 있는 영숙 어머니를 양어머니로 삼아야 명부의 손들도 염치가 있어 똑같은 패를 들이대지 못할 것이라는 할머니의 믿음 때문이었다.
소년은 긴 동짓날 밤에, 저승의 귀와 눈들이 데려갈 목숨들을 조사하러 다닌다는 명부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할머님의 권유로 명어머니댁에 가서 잠을 자기도 한다. 작가는 밤길을 걸어가는 명어머니와, 그의 딸 영숙, 그리고 소년의 대화를 통해 이들 간의 끈끈한 정을 보여준다.
“잘 걸어오나?”
“예…….”
“걱정마라. 겁먹지도 말고. 앞으로도 이 어미가 다 지킬 거니.”
“예…….”
그 말을 받아 뒤에 선 영숙이가 말했다.
“자무 오빠야.”
“…….”
“오빠 앞에 그런 거 있으면 내가 앞에서 다 막아서 내 거 할 거다.”(p.31.)
허약한 소년을 위로하고, 그를 지켜주려는 명어머니와 영숙의 마음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독자들은 패러디소설「말을 찾아서」에서 소년과 양아버지의 대화에서 경험했던 진한 인간애도 느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들어 왔던 이승과 저승, 명부의 세계 등은 소년으로 하여금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을 걷게 한다.
“영숙아, 나는 열한 살밖에 되지 않은 내가, 열한 살이 뭐야, 열 살도 되기 전부터 저승의 손님이니 하늘의 눈이니 하늘의 귀니 하늘의 손이니 하는 말을 어른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알고 있는 것도 참 싫고 무서워. 아침에 학교 갈 때도 자꾸 내가 모르는 누구와 함께 걸어가는 것 같아서 힐끔힐끔 옆을 보고, 또 고개를 돌려 뒤를 보게 돼.”(p.30.)
소년은 열 살 때 마당가에서 누군가 “자무야”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문제는 자신을 부르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역마살에 집을 떠난 아비의 부재는 그에게 어떤 버팀목도 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소년이 열두 살 되던 해, 할머니는 애동지에 아이들을 위해 팥죽 대신 만든 팥떡을 먹고 체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에 소년은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자책하게 된다. 소년은 아버지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할머니의 혼을 부를 때, 할머니를 따라 저 쪽으로 몰려가는 시간과 아버지를 따라 지붕 아래로 끌려 내려오는 시간을 인식하게 된다. 즉, 삶과 죽음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소년이 열두 살이었을 때, 삼박골의 영어머니 딸 영숙이가 유월 장마철에 강에 나갔다가 죽음을 당한다. 이로 인해 소년은 하늘에서 하는 명부 일을 영숙이 대신 가로막아 자신의 명과 바꿨다는 죄책감에 또 한 번 괴로워한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할머니 무덤에 가서 할머니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 성숙하게 된다.
작가는 “지나가는 바람 속에, 햇빛 속에 혼자 눈물을 글썽이는 법을 그해 봄과 여름에 소년은 배웠다.”고 서술한다.
소년은 열세 살에 시내 중학교에 입학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는 은덕사의 스님을 따라 절에 들어가 넉 달 동안 생활하게 된다. 소년은 그곳에서 스님이 올리는 천도제를 통해 나무에 대한 사랑을, 아이의 아버지가 도살장에 가서 경문을 외고 고기를 받아 오는 것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었음을 배우게 된다. 소년은 산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나무들의 영혼과 나무들의 세상을 보고, 그는 두운령과 은월산의 나무소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흘러 작가는 그 소년이 스님과, 할머니와 영숙이, 그리고 어머니, 영어머니가 함께 위로하고 지켜주었던 한 그루의 어린 나무였다고 서술한다.
Ⅲ
이순원의 소설은 ‘길의 문학’이다. 떠남과 돌아옴의 서사를 잇는 공간에 주로 산길이 자리하고 있다. 그 길은 넓거나 순탄한 길이 아니다. 돌에 넘어지고 나무뿌리에 차이는 길이지만 돌아 올 때는 화해의 길이 되기도 하고 지난날의 고단함을 아우를 수 있는 위무의 길이 되기도 한다.
소설 《시간을 걷는 소년》의 서사 공간은 크게 집과 절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소년이 집을 떠나 은덕사에 머무는 동안 스님을 통해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랑을 먹고 사는 어린 나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제서야 소년은 마음속에 짐으로 담아 두었던 할머니도 명누이도 모두 보내주게 된다.
이 소설은 한 소년이 경험하는 이승과 저승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영숙과 사촌동생을 통해 자각하는 이성에 대한 자각, 어린 나무를 돌보려는 주변인들의 희생과 배려 등을 담고 있다. 또한, 동짓날 풍습, 영줄 잇기, 장례절차 등 전통적 관습도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년과 주변인과의 대화나 길 위에서 나누는 명어머니, 영숙과의 대화에서 가슴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된다.
‘길 위에서 간결한 대화를 통해 이처럼 뭉클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