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존성을 주요 생존법으로 삼았던 사람이 열심히 산다는 뜻은 늘 의존할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의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양도한 후, 더 잘 의존하기 위해 그에게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힘을 키울 기회를 잃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어간다. 동시에 헌신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보상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키우게 된다. 그런 이들은 의존성의 생존법을 알아차리고 개선할 때까지 열심히 살지 말아야 한다.
#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는 것은 생의 목표가 잘못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불행한 것은 외부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삶의 목표는 아무리 성취해도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넘어서지 못한 의존성의 문제와 관련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이들이 사회적 관계에서도 친밀감이나 사랑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마지막 이유는 생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현실의 날카로운 모서리와 직면해야 한다. 모서리에 부딪쳐 이마가 깨어지고, 벽에 부딪쳐 찰과상을 입으면서 현실의 삶을 배워나간다. 넘어지고 부서질 때마다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저앉아 힘들다고 탄식할 게 아니라.
# 젊음은 본래 혼돈과 미숙함의 시기여서 가만히 있어도 삶이 어렵다. 불안감이 많은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믿고 지지해줄 줄 모른다. 객관적으로 사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인간에게는 무의식이 있고, 그것이 모든 병통의 원인이며, 무의식을 의식 속으로 통합시켜야 심리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제안한 이후, 현대 심리학자들은 무의식 대신 ‘내면 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 “내면 아이는 어떻게 만나나요?” 그런 이들을 위해 내가 찾아낸 대답은 “격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이 내면 아이이다.”라는 것이다.
# 아무것도 아닌 일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그러한 문제로 상처받은 아이가 내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취약한 사람은 초기 대상관계에서 아이를 존중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양육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누구나 트라우마의 시기에 고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족의 사건 사고 같은 것. 혹은 아이의 욕구에 지속적으로 어긋나는 양육 방식도 아이를 얼어붙게 만든다.
# 내면 아이 문제를 이해해나갈 때 마지막에 하는 질문은 “내면 아이는 자랄 수 있나요?”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성인 자아와 내면 아이를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 위에 언급된 모든 통찰은 그녀가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 과정을 거치며 3, 4년에 걸쳐 찾아낸 것들이다. 잘못된 관계 맺기 방식을 한 가지씩 알아차릴 때마다 그녀는 절망을 이겨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낡은 습관을 버리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 타인과 관계 맺는 가장 유익하고 온건한 방식이 있다면 ‘공감’과 ‘모든 타인으로부터 배우기’뿐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립되고, 지혜로우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갔다.
# 실은 모든 사람이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느라 타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끼는 마음은 “땅바닥이 벌떡 일어나 이마를 때렸다.”고 말하는 만취자의 언어처럼 농담이거나 망상이다.
# 무엇보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적이었던 원시 시대부터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폭력의 경험과 위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회 공동체를 만들었고 인간은 서로 협력하게 되었다.
# 의심하는 마음과 신뢰하는 마음 중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은 의심, 불신 쪽이다.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은 자율성, 친밀감, 창의성 등의 정신 기능과 함께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 가져야 하는 역량이다.
# 나르시시스트들이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채 내면에 숨겨두고 있는 감정은 수치심과 시기심이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마음 밑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은 시기심이다. 타인을 폄하하면서까지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우월감은 사실은 수치심이거나 열등감이다.
# 정신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론이 적용된다. 인간의 정신도 고통이나 시련을 통해서 성장한다. 힘들고 아파서 꼭 죽을 것 같은 지점을 넘어서야만 정서의 폐활량도 커지고 마음의 근력도 는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대체로 고통의 경험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듯 보이는 때가 있다.
# 상사가 잘못을 지적하거나 야단치면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는 젊은이들도 있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오류를 개선하면서 능력을 향상시킨다. 상사의 말에서 지혜를 얻는 게 아니라 박해감을 느끼다니, 그들은 얼마나 고통에 대한 내성이 없는 걸까 싶다.
# 심리 치료의 핵심에도 고통을 감당하는 일이 있다. 우리가 마음이 아픈 이유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상실을 경험한 후 그에 따른 고통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외면해둔 그 고통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다.
# 똑같은 공식이 지금 이곳의 삶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오직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며, 시련과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성장한다. 고통은 인간을 더 빨리 의식적으로 만든다.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격을 확장시키고, 그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내면 공간을 키운다.
# 부모에게서 마음을 달래는 경험을 제공받지 못한 아이는 부모가 했던 것처럼 모든 불편한 감정을 바깥으로 쏟아내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했다.
# 또 어떤 이는 내면의 고통스러운 부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감정들을 표현한다. 그들은 자기가 연출하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타인들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부탁하는 것 같아 보인다.
# 내면에 심리적 공간, 의식의 공간이 있어야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두고 소화시킬 수 있다. 갈등을 폭발시키지 않고 해결책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고, 그곳에 고요히 머물며 피로해진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다.
# 우리에게 심리적 자기 경계가 취약한 이유는 유년기에 견고한 자기 개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자녀를 침범하는 부모, 아이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의 심리적 경계를 거듭 무너뜨린다.
# 그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족이 평화롭기를 소망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모든 타인의 감정이 곧바로 심장으로 스며드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적 자극뿐 아니라 평가, 판단, 심지어 글이나 농담에도 격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많은 부분이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아가 그 근거 없는 감정이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임을. 실체 없는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마침내 파도처럼 스러진다는 사실을. 그러면 삶의 에너지가 절약되어 보다 창의적인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을.
# 그녀 아버지의 슬픔이 그녀에게 대물림된 것이고........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감정의 전달 방식은 ‘동일시’이다. 부모가 세상 그 자체인 시기에 아이들은 부모 행동을 고스란히 흡수하듯 배운다.
# “내가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인식조차 깨지 못한 문화인데.
# 실패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는 것, 이제는 타인의 인정을 구할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 역설적이게도,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최종 우승자는 대체로 경쟁하지 않는 사람,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타인과의 갈등에 휩싸이지 않은 채 고요한 내면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를 퍼 올리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 자기 존중감은 이상화시키고 미화한 자기 이미지를 벗어낼 때 만들어 가질 수 있다. 자기가 부끄러운 일, 잘못된 일을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며,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워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다.
# 핵가족 사회의 양육 환경이 개인을 정서적으로 예민하게 만들어 친밀한 관계를 어렵게 한다는 견해가 있다(앤서니 기든스). 귀한 자식으로 키워져 나르시시스트가 된 개인들이 결혼 제도 안에 포함된 헌신과 배려 행위에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크리스토퍼 래쉬).
# 내면에 주체성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공허감이다. 무엇을 해도 만족되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럴수록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입장을 바꾸고,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키고, 조직에 소속되기 위해 개성을 마모시킨다.
# 인간의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 세 차원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몸을 건강하게 해도 마음속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으며, 아무리 심리 치료를 해도 강박적인 욕동 폭박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프로이트는 내담자의 강박적, 폭력적 충동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중년기 이후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융도 말했다. ”종교가 제 역할을 수행했다면 정신분석학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 구성원들에게 종교를 가질 것을 원한다. 아무리 자기를 성찰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는 안 되는 영적 건강 영역이 있다고 설명한다.
# 가끔 삶의 성패는 타인의 이야기를 얼마나 깊이, 잘 듣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자기만의 원칙과 신념에 사로잡혀 타인의 이야기와 경험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태도만 버릴 수 있어도, 타인이 건네는 지혜나 통찰을 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놀랍게 달라진다.
# 자기 정체성은 1959년에 에릭 에릭슨이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프로이트 시대의 인간은 억압된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현대인에게 욕망은 거의 무한대로 충족된다. 대신 현대인들은 생존에 관한 결핍된 느낌으로 힘들어한다.
# 열심히 일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일을 끝내도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없다. 항상 내면이 텅 빈 느낌이며 사랑과 분노, 조증과 울증이 급격히 반복되는 정서적 롤러코스터에 시달린다. 자기만의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상징계란 의식 속에 형성되는 요소로서,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상징체계를 이해하고, 사회에 편성되어 있는 관습과 제도를 수용하고,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말한다. 상징계는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지배하는 가정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면서 만들어진다.
#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먼저 세상에 대한 그 환상을 버려야 한다.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수용하고, 그곳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힘을 얻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두 가지 태도가 돌아온다. 아프게 그 말을 수용하거나, 비겁한 타협의 언어로 치부하거나.
* 김형경 선생님의 심리 에세이 중에서 마지막 저작에 속하는 책이라 그런지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올립니다.
김신웅 마음성장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