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4.
◇◇ 의원 대기실 풍경
건강이 최고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나이가 들면 몸 아픈 게 제일 서럽다. 허리가 결린다며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가 안쓰럽다. 대수롭지 않게 허리 한 번 구부렸는데 그때부터 허리통증이 시작된 터다. 이미 한차례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나 차도가 없다. 주말 동안 불편함을 참다가 아침부터 서둘러 물리치료를 받으러 읍내로 나왔다.
통증을 치료하는 의원이다. 수납 창구 앞에 대기용 의자가 21개나 된다. 모두 전면에 텔레비전을 두고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그 외에 텔레비전과 관계없이 벽면에 붙은 의자가 9개나 더 있다. 도대체 환자가 얼마나 많기에 대기용 의자가 이리도 많단 말인가. 13명의 환자가 대기 중이다. 동네 할머니들이 모두 마실 나온 듯하다. 아내는 예상보다 빨리 진료실에 갔다가 곧장 물리치료실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거의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할머니 다섯이 수다를 떤다. 다들 많이 아픈 모양이다. 그러니 치료받으러 왔을 테지. 허리가 아파 밤새 잠을 설치다 보니 두통이 생겼다는 할머니의 말은 곧장 잘려버린다. 말투가 억센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삐쭉거린다. 허리가 구부러져 왜소한 할머니는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고 맞은편 할머니는 너무 아파 밥맛까지 없다며 죽을상으로 하소연을 주절댄다. 누가 누가 더 아픈지 자랑하는 자리인가 보다. 말본새와 표정이 하나같이 우스꽝스럽다. 족히 칠팔십은 되어 보이니 다들 아픈 게 당연해 보인다. 그녀들의 노곤한 삶이 느껴져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야기 소재가 바뀌었다. 갑자기 딸 자랑으로 이어진다. 할머니의 딸년들은 모두 효녀인 모양이다. 딸이 매달 돈을 보내오니 치료받을 수 있다는 할머니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주말에 막내딸이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어 놓고 갔다는 할머니도 표정이 묘하다. 네 사람의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가 퍼먹는 요구르트를 끄집어낸다. 툭툭 꺾어 자르더니 한 개씩 먹으라며 나눠준다. “자네들 사주라고 큰아들이 설에 와서 돈 주고 갔어”라며 말을 돌려 버린다. 아마도 딸이 없는 모양이다.
물리치료가 끝난 모양이다. 할머니 한 분이 아픈 허리를 반쯤 펴고 팔을 좌우로 흔들며 뭉그적댄다. 겨우 수납 창구 앞까지 걸어왔다. 할머니는 바지를 무릎아래까지 내리더니 속바지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끄집어내 치료비를 낸다. 요즘은 시골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예전에는 가끔 재래 시장통에서 보였던 풍경이다. 오래전에 아미타 부처님의 서방정토로 가신 내 할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할머니 여섯이 동시에 빠져나간다. 추측하건대 모두 한동네에서 병원 나들이를 온 것으로 보인다.
정오가 다 되어 간다. 이제 딱 한 명의 할머니만 대기실에 앉아 있다. 진료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빨간 모자를 눌러쓴 덩치가 조그마한 할머니는 족히 반 시간 이상을 말 한마디 없이 고요하게 앉아 있다. 졸고 있는 듯하다. 아들 같아 보이는 건장한 사내가 들어와서 할머니를 등에 업고 나간다.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봤다. 할머니가 사내의 등에 뺨을 붙이는 것을. 아들 같은 게 아니라 아들임이 틀림없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의 모습에 괜스레 눈물이 난다.
아내가 보인다. 물리치료를 받았으나 여전히 불편한 모습이다. 통증은 진행 중인가 보다. “아프냐?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첫댓글 ㅋㅋㅋ 아내에겐 돌리는 관심에 진심이 없다
생생한 드라마 한편 보고 왔네
신여사는 예상되는 행동들이고, 할매와 할배들의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들은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참 재미지다 마지막 아내에게 갑잡스레 너스레을 떨며 마무리하는게 ㅋㅋ
생존을 위한 파닥거림으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일까?
오해는 무슨 생존이구만 딱 그거네 맞네
헐~~~ 동생이 생존으로 느끼면 미세스신은 복종이라 믿을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