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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사6:1-8, 롬8:12-17, 요3:1-17
제목 ; 너희는 길을 잃고 장차는 멸망하리라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 운동장 가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고추밭이
하나 있습니다.
해마다 여광연 성도님이 고추밭을 만들어주시고 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수고해주셔서, 지금 고추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고추
나무는 이미 열매를 맺고 있어서, 그리 머지않아 풋고추를 따먹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광연 성도님이 만든 고추밭 옆에는 또 다른 고추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올해에 제가 다시 만든 고추밭입니다. 아마추어
농부인 제가 만든 고추밭이라서 그런지, 그야말로 엉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농사 전문가인 여광연 성도님이 만든 고추밭에는, 밑거름
도 충분히 주고 검은 비닐을 씌운 다음 고추를 심었습니다만, 저는
그런 모든 절차를 다 생략하고 고추를 심었습니다.
이미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두 고추밭의 고추나무가 확연하게 구
분이 되고 있습니다. 여광연 성도님이 심어놓은 고추나무는 색깔도
짙푸르고 아주 튼튼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심은 고추나무는, 그
색깔도 흐릴 뿐만 아니라, 고추나무의 모양이 곧 쓰러질 것처럼 아
주 연약하고 비리비리합니다. 좀 불쌍해 보일 정도입니다.
아직 열매는 맺히지 않아서 비교할 수 없지만, 보나마나 뻔합니
다. 열매 또한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제가 심은 고추나무에서 과연
풋고추를 따먹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혹시 열매가 달린다고 해도,
제대로 온전히 크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중간에 병들어서 떨어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아닌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듯이,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질
소, 염산, 가리라고 하는 세 가지 성분이 골고루 공급이 되어야 합니
다.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충분하지 않을 경우, 식물은 제대
로 성장할 수가 없거니와 열매도 충실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이 제대로 발육하려면, 그리고 다 성장한 다
음에도 계속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
리고 지방과 칼슘 성분 등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밖에도, 비
타민을 비롯한 광물질도 적당량 섭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식물이나 짐승과는 달리, 육체만 지니고 있
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
혼의 건강을 위한 영양분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하
고 건강한 생각을 갖고 살려면,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다양한 교육
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갖가지 지식뿐만 아니
라, 교양을 갖춘 온전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도 배
워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 그 재능에 따른 예체능분야의 교육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육체적인 성장과 건강, 그리고 정신적인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신경도 쓰고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하
지만, 이 두 가지 분야에만 관심을 가질 경우, 우리는 사람구실을 온
전히 할 수 없습니다. 몸도 건강하고 지식도 충분히 쌓았으나, 그 마
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사람다운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추나무가 아주 무성하게 잘 자랐으나, 정작 그 열매인 고추가
제대로 맺히지 않았다면, 그 무성하고 건강한 고추나무가 무슨 소용
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고추나무도 무성하게 잘 자랐고, 열매
도 아주 많이 맺혔는데, 그러나 그 열매가 병들어서 먹을 수 없다면,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사람에게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도 중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
한은 말하기를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몸도 건강하고, 하고
자 하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기를 기도한다(요삼1:2)’고 했던 것입니
다. 그러니까,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영혼의
건강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육체는 마
음의 올바른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영혼의 건강이 중
요합니다. 만일, 육신은 건강한데, 그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연
약하다면, 그런 사람은 그 육신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야 정신과 육신을 잘 통제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죄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
음이 건강하지 못해서 육신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경우, 그런 사
람은 악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염려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육신이 어떠한 것을 요구하더
라도, 그것을 들어줄 의무는 조금도 없다(8:13)’고 했습니다. 하지
만, 마음이 약할 경우에는 육신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난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 나 스
스로는 언제나 올바르게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잘못을 행하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인 것 같다(롬7:21)’고 했습니다.
바울 선생의 이 말은, ‘내 마음만으로는 내 육신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자꾸만 육신에 끌려다니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요구대로 계속 끌려다니게 된
다면, 우리 앞날에는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파멸과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너희가 육신을 그대로 따라
간다면, 너희는 길을 잃게 될 것이고, 장차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롬
8:13)’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누구를 막론하고, 파멸과 죽음을 원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파멸과 죽음의 길
을 가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하면
서, 그냥 되는 대로 살아야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까닭은, 우리 인간에게는 썩어 없어질 육체만 있는 것
이 아니라 영원한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잠깐 살다가 없어지고 말 육체만을 위하여 살 것이 아
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
습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인 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이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사회학회’라고 하는 기관이 있는데, 그 학회에서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전국의 성인남녀 천명을 대상으로 삶에 대한 의식조사
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32.3%가 돈을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고, 그 다음으로 건강과 가족을 선택했습니다. 그
런데, 7년 전에 행했던, 같은 조사에서는 ‘행복의 최우선 조건’으로
건강과 가족을 꼽는 사람이 돈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인 소유가 인간의 행복에 얼마만큼 기여할까요?
서울대심리학과 권석만 교수는 말하기를 “조사결과, 행복이 소득에
비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오히려, 지나친 물질의 추구는 행복지
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습니다. 권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개인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상류층
일수록, 욕망의 과잉 현상에 빠지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 교수는 말하기를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과도한
욕망은 조절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
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우리
는 자꾸만 물질과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은 차츰 잃어버리게 되고, 나중에는 정말 추하
고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활동하던 시기에 ‘니고데모’라는 사
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산헤드린 회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
하면,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학자였고,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산헤드린 회원이었으므로, 사회
적인 신분도 상당히 높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게 살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이면서 율법학자였기 때문에, 종교
적으로도 그 나름대로 아주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질 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당시로서는 아주 고위층에 속하
는 니고데모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가 목수 출신인 예수를 만난다는
것이 좀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처럼 해가 져서 어
두워지는 때를 택하여 주님을 찾아왔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니고데모는 다른 율법학자와는 달리 내심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그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선생님을 보내신 줄 안다(요3:1)”고 고백했던 것입니
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천
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의 뜻을 알 수 있으려면 다시 한 번 새롭게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입
니다. 요컨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적인 생각과 욕망을 극복하
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니고데모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니고데모는 행복한 인생
을 살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다 구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
으나, 그 모든 것이 그 허전한 마음을 메꿀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
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누구든지 하나님
의 아들 예수를 믿고 따르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
시려고,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生命), 이것은 ‘우리가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지 아
니하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갈 때에 누리게 되는 축복’입니다. 그러
니까, 육체의 욕심을 이겨내고, 주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직접 보
여주신 말씀에 따라 인간의 도리를 다하면서 살게 될 때, 하늘에 속
한 신령한 복,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그 육체의 욕심과 교
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는 날 동안에도, 땀을 흘리
며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결국은 허무하게 인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
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서 인생을 새롭게 고쳐 살 수 있는 기회
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
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욕심, 곧 육체의 욕심을 따르
지 아니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
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첫 번째 탄생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
으로 거듭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육신이 어떠한 것을 요구해도, 그것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롬8:13)’고 말입니다. 이처럼, 당당해질 수 있으려면,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다시 말하기를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롬8:14)’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자녀
인 우리는, 육신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 필
요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물과 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처럼 우리의 죄를
씻어내기도 하고, 불처럼 우리가 지난날에 지은 죄를 불태워 없애버
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가 우리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노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할 때, 우리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입
으로는 주님을 찾으면서, 여전히 그 몸은 세상 쪽으로 향할 경우, 성
령은 임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악령이 그에게 임하여 그의 정신
을 혼잡하게 만듭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무엇을 먼저 하
고 나중에 해야 하는지, 분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성령의 지시를 거부하
고 악령을 따를 경우, 우리 인간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육신을 따라가면, 너희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중에는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롬8:13)’고 했습니다.
‘예언자’라는 시집을 쓴 ‘칼릴 지브란’은 말하기를 ‘나는 나날이
거듭 납니다. 내 나이 여든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변화의 모험을 계
속할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행한 일은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아닙
니다. 그것은 과거일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비록 나이가
80이라도, 새롭게 거듭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우리 나이가 80이 되어도, 우리는 계속 육체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거듭나기를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면,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었
으면, 또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었으면, 세상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
습은 어떠한지요? 예수를 믿기 이전과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
고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악한 세력에 속한 사람
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우리 자신
을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세상 사람이라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나에게 뭐라고 말하겠는지, 자기 자신을 관조(觀照)해봐야 합니다.
손기철 장로님이 쓰신 ‘왕의 기도’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분은 기다리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실 뿐입니다. 성령님
께 돌아가십시오. 당신의 육신이 성령님의 소유가 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지정의(知情意), 곧 당신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모
두 성령님께 내어드리십시오. 그래야, 당신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온전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
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결코 사탄의 백
성처럼 살면 안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
씀으로 더욱 건강하게 되어서, 육신의 유혹과 세상적인 욕망을 거뜬
히 이겨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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