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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장별 요약 강해
요나 1장 /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한 요나
구약의 대다수의 선지자들이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예언했다면, 요나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들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본서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식 서술을 통해 이스라엘의 왜곡된 선민의식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선지자적 사명을 무시하고 이방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를 들어서 기어이 이방 전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요나를 보면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습니다.
▶ 요나의 도망 - 여호와께서 요나에게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대상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의 수도 니느웨가 죄악이 관영한 곳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선지자라는 생각이 가득한 요나는 이방인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어 하나님의 명령과는 반대 방향인 서쪽 다시스로 향한 것입니다.
▶ 제비 뽑힌 요나 -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대풍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대풍은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사공들은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고 이방인들은 폭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제비뽑기였습니다. 제비의 결과는 요나에게 떨어졌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사정을 다 고합니다. 요나의 고백을 들은 이방인들은 오히려 요나보다 더 놀라며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나가 하나님과의 낯을 피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요나의 행적을 이용하셔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자신의 계획을 그대로 이루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요나와 물고기 -요나가 선택한 길은 자신이 물에 빠져 죽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요나의 회개와 순종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요나는 끝까지 반항을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그를 바다에 던지는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이방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면서 자신들의 무죄함을 하나님께 애써 간구합니다.
드디어 폭풍이 그치자 이방인들의 모습은 변했습니다.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술을 드리고 서원하는 예배자의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반항하였지만 하나님은 물고기를 이용하셔서 요나를 인도하십니다. 요나는 삼일 삼야를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됩니다.
▶ 결론 - 인간 요나의 생각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 가운데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어긋났지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는 반항의 발걸음마저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면서 이방인의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하는 요나에게 이방인들을 들어서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선민이라는 안락한 자리에 머물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시는 하나님의 도전입니다.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들에게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해서도 안 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성도는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도 믿지 않는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자로 생각하며 그들에게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나 2장 / 요나의 기도
본장은 물고기 뱃속에서의 요나의 기도 내용을 주로 담고 있습니다. 특히 본장은 요나의 개인적 경험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본장은 요나의 고난과 구원받음에 대해(1-4절), 그리고 그 구원에 대한 감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5-10절).
▶ 절망의 외침 -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향하던 요나의 모습과 물고기 뱃속의 요나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스로 향하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물고기 뱃속의 요나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지나 온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완악함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으셨으며 자신을 그 구덩이에서 건져 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와 순종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한층 성장한 요나는 자기의 불손함과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적절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 구원자 하나님 - 하나님은 요나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도하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그 물고기 뱃속에서 그로 하여금 회개케 하십니다.
요나는 자기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절망의 상태에 놓인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요나의 기도에는 웅덩이, 헤어 나을 수 없는 절망, 처절한 울부짖음이 등장합니다.
진정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는 자가 은혜로운 하나님의 구원에 더욱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가장 절망을 느끼는 순간에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기도 - 요나는 자신이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사실을 시인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고집한 것이 우상을 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자기의 뜻을 고집한다는 것은 헛되고 거짓된 것이며, 이는 우상 숭배와 그 근본에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입니다.
구원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드리는 감사의 찬양이 아니라 지금 어려움 중에 있으나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나는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겠다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서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이 말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깊은 감사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나가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 결론 - 요나의 헤어나 올 수 없는 절망 가운데서 외치는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절망의 순간에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을 확신한 요나에게서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믿고 그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의 어려움과 암담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좋은 것을 받은 후에 감사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하는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것이기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요나서 3장 / 요나의 선포와 니느웨 백성의 회개
요나가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두번째로 임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는 요나의 생각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회개와 순종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 요나의 선포 - 요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죽음을 선택했던 요나에게 이제 생명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요나는 두 번째 임한 여호와의 말씀에는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사건을 겪은 후에 요나의 태도는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한 그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는 방법은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니느웨에 도착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의 선지자로서의 사역이 3일을 이어지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없는 요나는 자기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을 힘써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하룻길을 행하며 니느웨의 멸망을 외쳤습니다.
▶ 니느웨의 회개 - 니느웨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심판과 저주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당장 멸망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요나가 선포한 말씀 가운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말씀은 이들에게 멸망의 말씀이기 이전에 돌이킬 수 있는 기회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는 등 회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들의 회개는 왕이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들의 회개를 명령하는 데서 그 극치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참 신으로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방향은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용서 - 하나님의 마음은 자기의 백성들이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고 패역한 마음을 제거하여서 항상 자신과 함께 있는 영원한 생명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반역과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 이제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의 품안에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들을 품에 안으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들의 진정한 회개를 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기로 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은 어떠한 백성과 민족이라도 악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면 그들에게 내리시기로 한 재앙을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오해는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 결론 -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니느웨에는 모든 백성들이 회개를 하는 상황이 벌어 졌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았으며,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면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거하며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나서 4장 /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요나의 말씀 선포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방인의 도성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고 재앙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반응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적대국인 앗수르의 발전은 이스라엘에게 위험이 된다는 생각이 요나를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큰 도성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오히려 불평하고 분을 내는 것은 편협한 인간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 요나의 불평 -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기로 했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큰 도성인 니느웨는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회개와 순종의 길에 접어들어서 하나님의 큰 재앙을 벗어 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니느웨의 구원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은 요나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고생으로 이루어진 일이어서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할 그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분을 내었습니다. 자기의 민족이 당할지도 모르는 어려움이 걱정이 되어서 니느웨가 구원받았다는 것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요나와 박 넝쿨 - 요나는 자신이 선포한 대로 니느웨의 결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에서 나가서 초막을 짓고 기다립니다. 혹시 잘못된 일이 있다면 니느웨는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이방의 구원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것을 기뻐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준비하셔서 요나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박 넝쿨을 아끼고 그 말라 죽음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요나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완악함이 여러 모양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수십만의 생명이 멸망할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이익 여부에 따라서 박 넝쿨이 수십만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마음 - 인간 영혼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다같이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의 동일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인식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멸망과 저주의 말씀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또 하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에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경고를 들은 자들이 그 죄악의 자리에서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결론 - 요나의 분노는 그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생각은 너무나 좁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편협 되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죄악 된 모습을 발견하시면서도 그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재앙을 선포하시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는 언제나 용서하시는 것을 보아 절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작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기에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나아가서는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자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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