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서강해(2) 애통해야 합니다 (미 1:8-16)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애통해 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미가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임할 심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심판의 광경을 본 미가의 반응에 대해 오늘 본문 8-9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자기 민족이 얼마나 죄악 된지를 깨달았고 그 즉시, 그 죄와 슬픔에 대한 자기의 느낌을 행동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처럼 미가는 선지자로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백성들의 죄악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선지자라는 이유로 백성들을 판단하기 보다는 백성들의 죄악을 바라보면서 정말 마음 아파했으며, 그들을 위해 애통해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부정한 모습을 보거나 죄악된 모습을 보게 되면 정죄하기에 바쁜 경우를 봅니다. 그래서 자신은 마치 의로운 사람인양 자랑하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가 선지자는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이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예언하면서 자신의 죄악된 백성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주님은 그 여인의 아픔을 감싸주려 하셨습니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여인을 정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을 바라보시면서 정말 마음으로 애통해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너희들이 이 여인의 아픔을 아느냐, 너희들도 이 여인과 같은 죄인이다. 너희들은 이 여인을 보면서 자신을 보면서 애통해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왔지만 결국 자신의 죄악된 모습만을 발견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여인을 정죄하기 위해 모였지만 오히려 자신의 죄악된 모습만을 발견한체 모두들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행동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결케 해야만 합니다. 즉 애통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미가는 백성들과 자신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애통해 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살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을 따르지 못하고 타락해 버린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고 욕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미가는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죄악에 빠진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가는 당시 만연한 죄악상을 바라보면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심장의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 당시 자신도 그 사회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무죄가 아니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자기 시대의 죄악에 본인도 어떤 방식으로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슬픔과 근심에 잠겨 애곡하고 신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회의 죄악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 사회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미가는 너희들도 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결코 그런 죄악들로부터 자유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죄악들에 대해 우리는 남의 일처럼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나의 일이며, 나의 아픔으로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미가는 백성들의 죄악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그 죄악들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가의 모습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은 경건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죄악에 대해 판단하고 욕할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의 볼 수 있어야 하며,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죄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민족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악들에게 대해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죄악이 만연하면 할수록 더 큰 책임감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할 것이며, 그들에게 진리를 선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미가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결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말은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의 말은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말이 선포 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선포 할 때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시되 죽기까지 낮추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낮아지심을 통해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늘 자신을 돌아보아 겸손의 모양을 갖추고 겸손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이 땅에 대한 사명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들마저 무너진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 경건치 못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필요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영향력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무엇이든지 즉시 나서서 앞장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보시면서 애통해 하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것을 뒤집었던 것을 봅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경건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지고 있고, 하나님의 성전이 병들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했습니다. 아무도 나서서 그들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이권이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경건치 못한 죄악된 모습을 단호하게 제거하셨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한 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에 대해 서는 단호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모습을 먼저 겸손의 모습으로 바꾼 뒤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결코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 짓는 일에 앞장 설 것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고 죄악된 사회를 변화 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미가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임할 임박한 심판을 보고 난후 자신을 겸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가가 본 환상과 미기가 선포한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건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확신 속에 미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순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길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교만과 겸비사이의 선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방종 하는 삶을 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있음에도 귀로만 듣고 마음으로 듣지 못함을 통해 자신을 방종 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수치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교만을 깨트리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자는 교만하여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복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주님은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높아지기를 원하거든 낮아지라고, 그러나 높아지기를 힘쓰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사회를 바라보면서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애통해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사명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부터 죄악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울며 가슴을 찢는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족들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애통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