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2] 정녕 응하리라 (합 2:1-3)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을 향한 하박국 선지자의 탄식조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우리는 오늘날 하박국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박국과 같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이러한 탄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세상이 이렇게 돌아갑니까?' '어찌하여 이 모든 악을 보시고도 내버려두십니까?' '하나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하박국은 더욱 어이없어서 하나님께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갈대아인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무려면 우리가 저들보다 더 악하겠습니까?'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잠잠할려고 하십니까?' 1:17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육함이 옳으니이까?'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마치 대드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저 하나님도 모르고 자기 힘만 믿고 사는 갈대아인들에게 심판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지고 하박국은 그가 파수하는 곳, 곧 성루로 올라가 섭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뭐라고 말씀 하실는지 들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루는 성의 높은 곳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대답을 기대하며 성루로 올라간 것은 그곳이 하늘보다 가까워서 하나님의 응답을 빨리 받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가끔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분들이 자기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하나님 가까이에 있다고 반 농답으로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늘 위로 올라간다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히말라야 산맥, 수천미터 고지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있어야하는데, 그들은 대부분 엉뚱한 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실상은 하나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성루로 올라간 것을, 반드시 위치적으로 그곳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하여 높은 산으로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박국이 그가 파수하는 곳으로 올라갔다고 하는 것은 그가 실제로 성루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렸든, 또는 자기 골방으로 숨어 들어가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든, 관계없이 이것은 하박국이 얼마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고 갈망학 있었는지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박국이 자기 파수하는 곳으로 올라갔다는 말씀을 보면서, 그의 직업이 파수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만약 실제로 하박국이 파수꾼이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할지를 더 잘 알게 됩니다. 그것은 하박국처럼 높은 망루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두신 그곳이 바로 내가 파수할 곳이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할 곳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 우리는 그곳에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위치와 상황 하나님이 두신 바로 그곳에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본래, 파수꾼은 성벽 위에 있는 높은 망루에 올라가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적이 침입해 오거나, 성이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을 때에 나팔을 불어서 그 위험을 알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의 존패 여부가 파수꾼 한 사람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파수꾼이 잠들어 버리거나, 불어야될 나팔을 불지 않게 되면, 그 성안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적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많은 곳에서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선지자들을 행해서 파수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겔 3:17]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사 62:6]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한 [렘 6:17]에서도 하나님은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사 56:10]에서는 파수꾼들이 그 사명을 다하지 않으므로 망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파수꾼이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 성이 적들에게 사방으로 포위되어 성이 곧 망하게 생겼는데, 파수꾼이 성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들으면 불안해 한다고, 아무 일 없다고 평안하다고만 말한다면, 그는 그 성 사람들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망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파수꾼은 부지런히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을 깨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위험을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하나님이 세운 파수꾼들이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도록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파수꾼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장 듣기싫어하는 말을 해야하는 것이 파수꾼입니다. 누가 전쟁의 소식을 좋아하겠습니까? 누가 자신들이 위험한 지경에 있다는 말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파수꾼은 정직하게 그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저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종들은 듣는 이들의 비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선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영혼들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귀를 즐겁게 하다가는 피차 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탄식하신 하나님의 탄식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 56:10]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특별히 말씀을 맡은 종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강단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역시도 이 시대의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알지 못하는 영혼들, 잠자고 있는 영혼들을 깨우는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나있는 저들이 멸망에 임박해 있음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은 그가 파수하는 곳에 올라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 대답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는 자들의 태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이처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고대하십니까? 기도하고 나서 너무 빨리 그 자리를 떠나버려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려고 와보니 벌써 가고 없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기대하고 계십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를 얼마나 예의주시하고 계십니까?
어쩌면 우리들의 기도가 그저 답답한 마음 한번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 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실는지, 어떻게 응답하실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부모에게 뭔가를 달라고 해 놓고는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한 말은 잘도 까먹으면서도 자기들이 뭔가 부탁해 놓은 것은 절대로 잊어먹지 않습니다. 그 때가 되면 여지없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오기로 한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들어가면 원망이 쏟아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비가 계속해서 오지 않자 참다 못한 성도들은 산 위로 기도를 하러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식구들이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함께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아이가 우산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듯이 물었습니다. 얘! 뭐 때문에 비 한방울 오지 않는 이 뙤약볕에 우산을 들고 가니? 그러나 그 어린아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비 내려주시면 우산 쓰고 내려 올려고요.' 사람들은 비을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지만, 정말로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실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했다고 설마 비가 내리겠느냐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1장6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때로 그 응답하심이 내가 원치 않는 것일 수 있으나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분명 내게 가장 유익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박국의 부르짖음과 그 기다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응답의 실제적인 내용은 5절 이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핵심은 14절 말씀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그 시대의 파수꾼의 사명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들을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는 것입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게 새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살이에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도, 그 말씀은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멸망입니다. 오직 예수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매우 유치한 구호처럼 보이지만, 사실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명백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 형제에게,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에게 희미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을 흐리지 마십시오!!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예수님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예수를 나의 주로 영접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졸지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명백히 새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달려가면서도 읽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더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로 한 것이 벌써 2000년이 지났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 종말이 속히 이를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졸지에 임할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언제 비가 와서 세상이 물로 심판을 당하겠느냐고 비웃던 무리들이 자기들이 망하기 전날까지도 모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식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말씀하신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더디다고 여겨지지만 지체하지 않고 정녕 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가 오늘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마치 하나님 없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이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더디냐고 말합니다. 우리는 때로 이러한 현실 때문에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그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거짓되거나,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녕 응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우리들은 그 묵시의 말씀, 그 경고의 말씀을 명백해 새겨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사람들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그 사명을 다하지 않음으로 그 성이 멸망합니다. 파수꾼이 그 나팔을 불지 않음으로 그 성이 망합니다. 말씀을 맡은 종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또한 여러분이 있는 그 처소에서 그 위치에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