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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7]
말 씀 말라기 3장 1-6절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심령은 공허하고 혼돈하며 깊은 흑암과 같습니다.
그 마음은 세상만물이 창조 되기 전 땅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지 못한 심령은 언제나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심령이 이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으로 흑암을 물리친 성도들은 공허하고 어두운 심령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야 할 것입니다.
진리의 길로 가면 늘 대낮처럼 자기가 가는 길을 보고 가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사람들은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원하던 꿈을 이루고, 많은 재물을 소유해도 공허한 마음이 흑암으로 덮인 낭떠러지처럼 깊기 때문에 만족이 없습니다.
끝이 보일 듯 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흑암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망으로 떨어지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제일 먼저 빛을 주셨습니다.
그 빛은 세상을 비추는 해와 달이 아닙니다.
그 빛은 사망으로 떨어지는 죄 된 인간을 구원하는 빛이었습니다.
사망에 갇힌 영혼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어야만 그 사망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에 영광의 빛을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사망의 어두움에 다니지 않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성자하나님께서 죄인의 몸으로 세상에 직접 오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막고 있는 죄의 담을 자신만이 허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시기 전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대로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흠이 없는 짐승을 제물로 가지고 와서 짐승의 머리에 직접 안수하여 죄를 전가하였고, 짐승은 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만약 속죄제물을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므로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렸으므로 인간의 죄로 수많은 짐승들이 죽어갔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드려야 하는 거룩한 제사를 제사장이나 백성들 모두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공의로운 제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하시지 않는 자비를 베풀자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모두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제사장과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떡을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고,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그들을 더 이상 용서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이 타락하자 더 이상 그들에게 제사를 맡길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평강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직접 죄인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자기의 몸을 단번에 화목제물로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 없이 인간이 아무리 착하게 살고, 믿음 없이 하나님께 정성을 드려도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고,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초림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 오셔서 대속의 역사를 이루신 후 사람들은 이제 제사장을 찾아가 짐승을 드리고 속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히브리서 5장 8-10절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시고, 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아론의 자손들이 맡았던 대제사장보다 더 우월하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아론의 자손들은 태어나면 율법대로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정해진 수명 때문에 한 사람이 영원토록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하여 대제사장이 바뀌었으므로 충성된 대제사장도 있고, 타락한 대제사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말씀하신 독생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들로써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지만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셨고, 십자가를 지신 후에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긴 능력으로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인간들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시므로 성도들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온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이 감당하는 대제사장과 제사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4장 18-20절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하셨을 때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났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셔서 그들의 재산이 많아지자 둘이 한 곳에 머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아브람은 롯에게 원하는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양보하였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동산과 같이 풍요로워 보여서 그곳을 택하였고 기쁜 마음으로 아브람과 헤어져 소돔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선택권을 먼저 준 것은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자신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고, 축복하는 자를 축복 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롯이 어디를 선택하든 자기가 택하는 곳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축복의 땅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욕심을 버렸던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이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믿는 말씀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대로 살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산다면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롯이 소돔성에서 살게 된 후 소돔과 고모라왕은 십이년 동안 주인처럼 섬기던 그돌라오멜을 배반하고 전쟁이 일으켰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거하는 백성들과 많은 재물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롯의 가족까지 모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롯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집에서 훈련시킨 용사 삼백십팔명을 데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조카 롯과 포로들 그리고 빼앗겼던 재물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믿음의 형제를 기꺼이 도운 것입니다.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축복하기 위해 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는 대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의의왕이면서 살렘왕 즉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아비도 어미도 없고 족보도 시작한 날도 없으며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계신 분이었습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오셔서 하나님께 아브람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자기를 축복하시는 멜기세덱제사장에게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아브람이 대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는 것은 분명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당시는 모세가 율법을 받기 전이기 때문에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믿음으로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을 드린 것입니다.
율법은 모든 지파들이 십분의 일을 취하여 레위지파에게 의무적으로 주어야 했지만 지금 아브람이 십일조를 하는 이 시점은 이삭은 물론 야곱과 레위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으므로 멜기세덱을 알아본 아브람의 신앙은 이미 영생을 바라보는 신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렘왕이시고, 하나님의 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것으로 보아 멜기세덱이 아브람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 정한대로 레위지파로 태어나서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고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계시면서 영원히 변치 않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얻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살렘왕 멜기세덱인 것입니다.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뜻은 의의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와 사망을 자신의 육신에 정하시고 십자가에서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것과 죄의 삯을 지불해 주신 것을 믿는 자들은 모두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칭함을 받았다는 것은 판사로부터 “당신은 무죄입니다”라는 판결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인간이 원죄에서 벗어나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은 성도들의 몫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 제사장이라는 것은 확실히 아셨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이미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일어날 일들을 계시하실 때 사람들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계시안에는 이미 아담과 하와,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과 사람을 꾀어낸 사단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씨안에 과실나무와 열매가 모두 들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안에는 처음과 나중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에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뱀이 하와를 꾀여 선악과를 먹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뱀을 향하여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은 원수가 될 것이고, 여자의 후손 즉 예수님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미리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 예언이 십자가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미리 예언하실 수 있었던 것은 성자하나님께서 이미 멜기세덱제사장으로, 의의왕으로, 살렘왕으로, 선지자로, 구세주로, 심판주로, 초림주와 재림주로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은 복의 근원이 될 아브람을 만나러 왔을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습니다.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오신 것을 보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성찬식을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죄인들을 위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어린양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떡으로 축복하시며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셨고, 잔을 가지고 사례하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대속을 기념하며 성찬을 먹고 마실 때마다 성도에게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이제 하나님께서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제사장들에게 영혼을 맡기실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하셨습니다.
뱀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을 이루실 때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사자는 세례요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라기선지자를 끝으로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이런 암흑시대에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사람들에게 회개하기를 촉구했고, 구세주가 오실 것이므로 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막중한 사명을 띠고 세례요한은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마가는 말라기 3장 1절 말씀과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인용하여 세례요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온 유대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오실 것이므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기를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자기는 지금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지만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전능하신 분이라고 전하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초림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다는 것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은 것이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곳간에 들어가지 못한 쭉정이처럼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18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초림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그 자체가 믿음이 없는 세상과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너무 더럽고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빛으로 나오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조롱했던 자기의 삶이 드러날까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빛으로 나오든 아니면 어둠에 그대로 머물러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고, 심판은 시작된 것입니다.
2절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예수님앞에서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자신이 착하게 살았다고 주장해도 또 그의 말처럼 착하게 살았을지라도 인간은 처음부터 모두 더러운 죄의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잿물과 같은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모두 정금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잿물에 담겼던 옷처럼 깨끗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온 제자들을 보더라도 그들은 세상에 속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안에서 하늘의 시민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을 연단하시는 것처럼 고난과 연단을 통해 여러분에게 정금과 같은 믿음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의 생명과 바꾼 것이므로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금과 은처럼 연단하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회복시켜서 그들에게 공의로운 제물을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를 원하는 공의로운 제물은 바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삶을 살아낸 성도들이 드리는 헌신입니다.
세상의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드리는 것처럼 귀한 믿음을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열납 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기만 한다면 그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삶이 바로 공의로운 제물이며, 신실한 성도들이 드리는 봉헌물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믿음과 경건한 삶으로 빛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멜기세덱 대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은 언제나 정금과 같은 믿음을 드려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으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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