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 : 21 - 24 어쩔 수 없이
삶을 살다보면 어쩔 수없이 몰려가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어쩔 수없이 몰려가는 상황은 정말 기분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런 상황 그런 일이 도리어 내 삶에 복이 되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삶의 비굴함을 느끼는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유는 자기의 사랑하는 딸이 죽게 생긴 것입니다. 무슨 병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죽게 생긴 딸을 앞에 두고 한가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에 갈등을 계속하다가 결국에는 예수님 앞에 와서 엎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굴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굴욕을 당해야 하는 생각 때문에 그는 많은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갈등은 지금 엎드려 있는 이 순간에도 굴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게 만들었습니다.
엎드려있는 사람의 직책은 회당장입니다. 회당장이면 나이로도 예수님보다 한참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에 회당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출교를 시키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게 나가서 엎드려 절하면 회당장에서 잘릴 수 있는 쫓겨나는 상황입니다.
어떤 면으로는 당시의 상황에서 아이는 다시 낳으면 될 수도 있지만 회당장은 자기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고 평생 쌓아놓은 명예이기도 하고 남은 인생이 거기에 걸려있는 것이기도 한데 과연 그것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딸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자기의 모든 것을 지키고 딸아이 하나를 잃은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쩔 수 없이 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나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예수님께 나가 엎드린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그런 상황에서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다 말하고 살다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정말 우습게 보이고, 어딘지 바보스러운 의지가 약한 사람 같아 보이고, 때로는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 인생의 돈 잃고, 직업 잃고, 건강 잃고, 빚더미에 올라앉아서 이제는 하나님께 예수님께 교회에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상황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그런 의도하지 않은 밀려서 선택할 수밖에 없던 선택이 인생에 얼마나 복이었는지는 그대 당시에는 알 수 없었으나 후에는 그것이 자기의 삶에 얼마나 하나님의 큰 축복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는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복이었습니다. 이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회당자의 관심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딸아이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걸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서 어떤 사람을 물질을 위햇 어떤 사람은 직장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자녀를 위해서 어떤 사람은 사업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가정을 위해서 각각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실 그들의 안중에는 예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고개를 숙였지만 마음 중심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따릉ㄹ 위해서라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들의 목적을 성취하기위해서는 그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딸은 죽어 가는데 예수님이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가고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시간이 촉박하고 시급한데 왜 이런 여자가 거기에 끼어드는 것입니까?
회당장은 12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 때문에 짜증이 납니다. 아니 왜 지금 딸이 죽게 생겼는데 지금 당장 가야하는데 저 여자가 이럴 때 나타나서 시간을 끌고 있는지 정말 그 여자를 확 밀쳐내고 싶습니다. 그 여자는 이미 12해를 앓고 있던 여자고 자기는 지금이 아니면 딸이 죽게 생긴 상황이니 이 여자는 지그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만 자기는 이 기회를 놓치면 딸을 영영 죽고 마는 상황인데 지금까지 12년 동안 끌어왔으면 당장 죽는 문제도 아닌데 정말 미워 죽겠습니다. 시간은 점점 끌어가고 있고 마음이 조급해진 회당장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상황을 만나지는 않았습니까? 기도 응답을 받아야겠는데 기도응답은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신앙의 방해를 받고 내 목적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들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집에서 온 사람들의 말이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미칠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치를 무릅썼던 그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만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가지 말 것을 공연히 딸도 잃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을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딸아이가 죽었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자기 손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니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딸이 살아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당장이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지금의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해결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리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죽은자는 예수님의 말씀한마디로 살아나지만 살아있는 회당장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 만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당장은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에 도달하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의 믿음이 먼저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딸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