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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터니'로 이사 오면서 내내 추위에 고생을 해왔던 기로에겐,
물을 길어다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은 고생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마치 기로가 이사오면 그런 일이 있어야 했던 것처럼, 곧 마을에 수도를 개통해준다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 나돌고 있긴 했다.
그렇지만 기로는 난방과 인터넷 문제로 애를 태우느라 수도 문제는 사실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며칠 내에 수도 개통식이 있을 거라며,
"아이고, 이제 살았네!" 하는 말까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로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이곳에서의 생활이 조금씩 개선되어가는 느낌은 물론, 또 긍정적인 일들이 하나 둘 생기는 것 같아... 갑자기 그 의미와 가치가 커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사실 서울에 살다 갑자기 이런 시골로 내려와 수도의 중요성을 잘 몰랐던 기로야, '수도 개통'이란 말이 별로 깊게 와 닿지 않았던 건 분명했다.
그런데 '키큰 아저씨'도 그렇고 또 오며가며 두어 번 들렀던 마을 끝 집의 '반장'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이제 수도가 나오게 되니, 우리 마을도 사람 사는 곳 같게 될 거 같네요." 하고,
언뜻 듣기엔 자랑 같기도 하고 또 새로 이사 온 기로에게 그 소식을 안내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조차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던 기로는,
'그게 뭐 대수라고? 시골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했을 뿐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수도 개통은 기로에게는 아니, 그 누구보다도 기로 자신에겐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은 추워서 엄두를 낼 수 없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샤워를 해야만 할 것이고 또 빨래도 하려면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데... 그런 모든 일이 수도와 관계가 되기 때문에, 수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인지하면서야,
'여태까지 지하수로만 생활을 해온 마을 주민들에게는, 수도 시설이 개통된다는 사실이 숙원사업이었을 거로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던 것인데,
어디 그 뿐인가?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마을 잔치'를 벌인다는데, ‘산신제(山神祭)’라고도 했다.
아무리 '둔터니'가 호수를 끼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는 산골이었기 때문에 '산의 신'을 모시는 일일 수도 있었고,
기로의 입장에서는 구경도 보통 구경거리가 아닐 것이기에, 마음이 들떠가고도 있었다.
*
오늘 ‘산신제’를 지낸 뒤 수도 개통식을 한다고 했는데,
'오늘부턴 정말 수돗물이 나올까? 근데, 오늘은 날이 맑으려나?'
아침부터 기온이 다소 서늘하기도 해서, 나는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소 걱정스럽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은 안개가 다소 짙게 끼어 있어서 뭐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침 안개라서 날씨가 좋아질 가능성도 크다는 걸 조심스럽게 가늠해 보았는데......
어젯밤은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은 여섯 시에 일어났다.
우선 컴퓨터로 홈페이지에 업로드를 시키는데,
새로운 하드에 '한글' 프로그램이 깔리지 않아서, 내가 작업해 놓은 것을 불러들이지 못했다.
제자가 보내준 압축파일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어서 '한글'을 설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일의 '첨부파일'로 보내도 컴퓨터 자체에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아, 안 뜨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노트북에서 한글로 작업한 문서를 플로피 디스켓 A에 HTML 문서로 저장한 뒤, '드림위버'에서 불러들이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아주 손쉽게 내 의도대로 돼 주었다.
그 걸 몰라가지고 얼마나 내가 시간을 허비했던가.
그게 억울하면서도 아까웠다.
그렇지만, 그런 응용력을 끄집어낸 것만 해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 컴퓨터에 대한 이해도가 짧은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나마 응용을 해서 아쉬운 대로 업로드를 시킬 수 있었던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곱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이미 비는 멈춰있는데 호수엔 엷은 안개가 껴 있었다.
어제처럼 짙은 안개가 아니어서 건너편 둔덕의 풍경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호수에 반사된 풍경 자체는 퍽 아름다웠다.
호수는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뭔가 늘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어제 새 형상 두 마리를 끼어 넣은 솟대도 통나무집 벽에 의지한 채 그대로 서 있다.
그런데,
'저 옆가지 두 개 중의 하나에 조그만 새 한 마리를 더 붙이면 어떤 조형미를 이룰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아직은 기온이 서늘하다.
그래서 방 문을 닫았다.
3 . 15
#산신제(山神祭)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산신제(山神祭)’야?'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마을에 이사 와서도, 이렇게 인터넷에 홈페이지까지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도, 또 공교롭게도 내가 이사 온지 보름여가 지나면서...
이 둔터니 마을에, 그 동안 숙원사업이었던 ‘수도 개통식’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산신제'와 함께 한다니,
언뜻 생각해 보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말도 안 되는 구닥다리 이벤트임에는 분명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내가 그렇게 들뜰 수밖에 없었던 건, 그러면서도 우습기까지 했던 건,
'여태까지는 뭐 하다, 이제야... 그런 일을 벌이느냐?' 였습니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런 중요한 마을 일을... 공교롭게도 내가 이곳에 이사 온 뒤, 겨우 자리가 잡혀가려는 상황에 딱 맞춰 하는 것인지, 너무 의아하고도 재미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 마을에 이사온 것 역시 때를 아주 잘 맞췄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그만큼 이번 행사가 흥미로웠고 또 기대에 찼던 일이었다는 것인데요,
마을 사람들이 오전부터 '夢想?' 앞길로 왔다갔다 부산을 떨기에,
물론 나도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써 마을 행사에 당연히 참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구요.
어쨌거나 이런 건, 난생 처음으로 접해보는 시골스럽고도 흥미로운 광경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은 물론, 저에게 막 개통이 된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너무 재미날 소재 거리였기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렇게 저도 현장에 갔더니,
반장 어머니와 부인이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애를 쓴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마을 행사다 보니, 반장네 집에서 그런 일을 맡았던 것 같고,
물론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거들었다고는 해도, 반장 집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를 했던 것일 텐데,
만 원짜리 지폐가 제법 물린 입의(나도 만 원을 물렸답니다.) 돼지 머리에, 팥 시루떡에,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 등... 상 다리가 부러지도록 다양한 음식을 준비해 싫은 기색 없이 상을 차리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워 보이드라구요.
고사는 오후 한 시경에야 시작되었습니다.
호수 저 쪽에 산다는 이장이 와서 절을 한 뒤, 마을 사람들도 돌아가면서 절을 하던데요,
뭔가 잔뜩 신이 나 있던 친구 범상은,
"기로! 너도 절 해!" 하며, 본인의 흥에 호응해 달라는 눈치던데,
"내가 무슨 절이야?" 하고 나는 손사래를 쳤지요.
범상은 그런 자리에서 자신을 내세우려 했지만,
나는 참석은 하면서도 가급적 내 존재를 드러내놓지 않으려는 자세였던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들고 그 이벤트의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그 행사를 스스로 즐기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우스웠던 건,
범상은 절하는 것도 모자라 마치 본인이 산신령제를 지내는 제주라도 되는 것처럼 큰소리로,
"산 신령님! 우리 마을엔 가뭄없이 물을 펑펑 쏟아지게 해 주십시오!" 하고 넉살을 떨기도 하기에,
'아니, 저 친구가... 도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넉살이 좋았다지?' 하고, 실소를 머금치 못하고 말았답니다.(다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까 봐, 터져나오던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답니다.)
그런 뒤 그리 많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식사를 했답니다.
어차피 막다른 길의 끝집인 반장집이라 길에 차들을 주차시켜놓은 상태로, 산신제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길 한복판에 멍석과 자리를 깔아 놓고 한 야외 식사여서,
나는 마치 소풍이라도 온 기분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요,
그러니까 나에겐 산신제의 의미보다는 마을 축제에 임하는 자세였다는 겁니다.
물론 두어 잔의 막걸리까지 마셔가며 식사를 즐겼는데요,
푸른 색 만원 권을 제법 물고 있었던 돼지 머릿고기가 맛있드라구요.
물론 반장집의 시큼한 묵은 김치도 맛있다 보니, 머릿고기와 어우러져... 막걸리 안주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볼품은 없었지만 제상에 올려졌던 반장네 곶감 역시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제 손이 그 쪽으로 많이 갔는데요,
그건 이 마을의 감이 맛있다는 얘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쪽에선 범상이, 여전히 자신이 마치 이 산신제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마을에 대한 얘기를 아주 진지하게 마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는데요,
전주에 살면서 언젠간 다시 고향에 돌아와 살 거라는 '119 요원 젊은이'와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을 웃기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반장 어머니는 나에게,
"1 년만 살라믄 뭐하러 왔디야? 정들고 떠나버리믄 어떡허라고?" 하시던데,
그건 그 분의 아들인 반장이 범상과 동갑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지라, 나도 자신의 아들과 친구가 돼주라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저는... 정을 안 주고, 몰래 도망갈 거거든요......" 하고 크게 웃으면서,
'야, 시골에 이사 오니 이런 재미도 있구나!' 하면서, 그 행사를 즐겼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통나무집 앞에 쌓여있는 나무를 빨리 마루 밑으로 옮겨 놓아야 했기 때문에,
"죄송합니다만... 저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내일은 우리 집에 축대 공사를 하는데, 그 나무를 치워놓아야 하거든요......" 하면서 일어났는데,
어쨌거나 마을 사람들도 상을 거두면서,
남자들은 어울려서 우루루... 입구의 산장 가든(식당)으로 몰려가면서,
"자네도 함께 가지?" 하기도 했지만,
하필이면 또 그 순간 제 핸드폰이 울려서 받아 보니,
"나, 지금 전주를 통과하고 있다." 는 군산의 형이어서,
그들과 동행을 할 수 없었답니다.
손님이 오는데, 하다 못해 작업방에 군불을 지펴야만 해서였는데요,
그렇게 마을 잔치는 끝이 났답니다.
3 . 15
*
군산의 형 부부가 엊그제 군산으로 가져갔던 내 빨래를 큰 비닐 봉지에 깨끗하게 정리해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약간의 해물 등(쭈꾸미와 조기 등)을 가져와서 직접 손을 보기도 해서,
축제의 날이었던 나는 또 모처럼 군산의 해물 맛도 볼 수 있었는데,
그런데 다행히 오늘 개통된 통나무집 밖의 수도에서 물이 나와 주어, 그 생선 다루는 일부터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우연 치고는 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집에 수돗물이 나오니, 확실히 뭔가가 훨씬 수월해졌음이 절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도 개통이 새삼스럽게 고맙기까지 했던 건 물론,
'어찌 이렇게 타이밍도 딱 맞는다지?' 하는 신기함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에야 친구 범상이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왔다.
그런데 혼자 온 게 아니고, 온 마을의 남자들과 함께였다.
물론 그래봤자, 반장, 키큰 아저씨, 그리고 뒷집의 젊은이와 119 대원이란 친구 등 네 명이 전부였지만.
나는 다행히 군산의 형님 부부가 와 있어서(몽상에), 그들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데, 순간,
'이상하네? 근데, 왜 그 산신제에... 마을의 터줏대감인 그 ‘산장 아저씨’는 안 왔다지?' 하는 뒤늦은 생각이 들었다.
이 둔터니 마을의 아주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던 산신제에, 그것도 이 마을의 중심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당연히 참석했어야 했을 텐데도, 그 때도 없었고, 마을 남자들이 다 산장집으로 몰려갔다 돌아온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들만 통나무집으로 모여 들었지, 당사자는 없었던 것이다.
잘은 몰라도 본인의 집(산장 가든)에서 술대접을 할 때는 물론 참석을 했겠지만(그러게 마을 남자들이 다 취해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그 분의 흔적조차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 양반, 참 이상한 사람이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보니,
어느세 뒷집 젊은이가 맥주 한 박스를 가지고 통나무집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형 부부와 함께 '夢想?'에서 집안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여간해서 통나무집에서의 술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형도 내일 새벽에 군산으로 돌아가야 해서 작업방(군불을 지펴두었던)에서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나는 내 방으로 건너 오면서,
'근데, 저렇게 술을 마시고도... 내일 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런 생각도 들었는데,
자기 전에 밖에 나가 소피를 보는데,
그들은 계속, 마치 마을의 미래를 다 자신들이 쥐고 있는 듯 떠들어대고 있었다.
3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