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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12)
자랑이요 기쁨이 되는 교회
본문 : 살전 2:19-20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에 대한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저 많은 교회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주님이 자랑할 만한,
주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실만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랑이 되고,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
저는 그 모델을 오늘 본문(19절-20절)....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찾았습니다.
19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절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바울 사도는 ....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주님께 보이면서
자랑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면류관’은 통치자가 능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썼던 왕관이라기보다는......
경기의 최후 승리자에게 수여했던
월계수관을 의미합니다.
※ 참고 : 성경에는 그 날에 보상으로
주어질 다섯 가지 면류관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 순교자를 위한 생명의 면류관
계2:10b(서머나교회를 위한 말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2. 충성된 목자를 위한 영광의 면류관
<벧전5:2-4>
2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절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3. 삶의 경주에서 승리한 자를 위한
썩지 않는 면류관
<고전9:24-25>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4. 그 분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들을 위한
의의 면류관
<딤후4:7-8>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5. 오늘 본문의 자랑의 면류관(살전2:19-20)
비교> 금 면류관 ; 계4:4(하늘의 보좌)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전도해서 세운
교회 중 가장 짧은 기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 에베소에서는 약 3년 동안 머물면서
말씀을 가르치며 교회를 세웠고....
- 고린도교회는 1년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 반면에 데살로니가에는 약 3주간 머물렀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터라 마치 부모가 몸이 약한 자녀에게
걱정과 관심을 더 쏟는 것과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과 걱정은 남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당시 모든 교회들의 본이 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일로 바울은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씨를 뿌렸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오늘날 목회도 마찬가지).
바울은 그들이 너무 대견하여
그들에게 기쁨(감사)의 편지를 쓴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오늘 본문 2:19-20절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과 2장의 결론입니다.
자랑과 기쁨이 되는 구체적인 내용은
1-2장에 나와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넘치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을
밑변으로 하고 ......사랑과 소망을 두 빗변으로.......
한 삼각형 성도들이었습니다
(고전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 큰 것은 사랑이라.”).
세상의 여러 구조물들 가운데에서
삼각형이 제일 튼튼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믿음, 사랑, 소망을 말할 때
하나씩을 더 붙이고 있는데
믿음에는 역사를 덧붙여서 믿음의 역사....,
사랑에는 수고를 덧붙여서 사랑의 수고,.....
소망에는 인내를 덧붙여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 하나씩이 덧붙어서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역사, 여기에서 역사는
History가 아니고 행위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 따로, 행위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드러나야 하고,
행위는 반드시 믿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롬14:23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2:13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말씀 받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영어 성경에는 “받다”라는 동사가
다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 received(받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 accepted(받아들이다).
“받다”와 “받아들이다”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전자는 귀를 가리키고,
후자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마치 베뢰아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예,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베뢰아 사람과 같이 중심(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차이는
말씀을 대하는 차이에서 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자세로(마음으로) 듣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에,
다른 지역에서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나사렛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막6:3)하며
사람의 말로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군인인 백부장 고넬료의 모습을
생각해봅시다.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청하고 베드로가 그의 집에 들어갈 때.....
그는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사랑의 수고,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야합니다.
여기의 '사랑의 수고' 라는 말에서
'수고' 는 '코포스'입니다.
'채찍으로 때리다'를 의미하는 동사인
'코프트' 에서 유래했습니다.
따라서 수고는 단순히 일을 위한 수고가 아니라
고통을 동반하는 수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수고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수고하며 희생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예수님)께서 사랑의 수고(희생)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요3:16),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수고(희생)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벧전2:21에 보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주님의 본을 따라
사랑의 수고(희생)을 기꺼이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바울 일행)와 주를 본받는
자들이 되어(1:6) 피차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교회에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성도가 정말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수고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수고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을 담고,
눈물로 기도하면서 수고하는 자들이 있을 때
교회는 살아납니다.
교회 직분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당하셔야 합니다.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은
표시가 납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다 알게 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랑으로 수고하기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매주 주방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청소, 차량운행, 찬양팀, 반주,
교회학교 교사 등 그 수고를 어찌 말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또 교회 외부적으로도 힘에 넘치는
선교를 하고 있고, 전도하는 것,
나눔행사한것도
모두 주님의 사랑을 본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라기는 우리교회가 서로 사랑함으로
더욱 ‘사랑의 띠’로 하나 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소망 중에 인내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도 무엇이든 소망하는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내 없이는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맺어서 수확을 하기까지
가뭄과 비바람을 이겨야 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인내하고, 또 다시 7년을
인내해야 했습니다).
영적인 것은 더욱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내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를 경험하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예배처를 제공하고 바울과 실라의 거처를
제공했던 야손의 집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갓 태어난 데살로니가 교회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난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따돌림을 당하고 손해 보네!”하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초신자들 가운데 교회에 나왔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실망해서 되돌아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있다가도 없어지고 보이다가 사라지는
세상의 소망이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변하는 소망도 아닙니다.
보이는 것 같으나 실상은
없는 소망이 아닙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변하지 아니하는 실존,
곧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둔
사람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인내하게 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인내했습니다.
인내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열매를 맛보지 못합니다.
청지기는 참을 줄 알아야 하되
반드시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한두 번 참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참아야 합니다.
우리 금산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맺는 말씀 -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이것이 소문이 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1: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참고 8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 사랑, 소망에 대한
소문 그 당시 그리스 반도 전역에
(마게도냐, 아가야) 퍼졌습니다.
다른 교회 성도들이 어려움 때문에
믿음을 버리려고 하다가도 ...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본받읍시다!' 하면서
믿음을 지키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뒤를 따를 만한 모델(본)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20세기 초 일본의 나가노 목사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전해지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교회를 개척한 후
평생 한 명의 청년만 양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이 나가노 목사 영향으로
신학을 하게 된 그 청년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인데....
그는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빈민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변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먹을 게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변이 굳어 항문으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이럴 때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손을 직접 항문에 넣고 변을
빼 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그들의 항문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서
빨아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기자가
도요히꼬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도요히코 목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폐병으로 토해낸 핏덩이를
맨 손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저는 우리 금산교회가
이 시대 이 지역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우리 교회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넘치는 교회가 되고,.....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어
‘주님 강림하실 때에.....
기쁨과 자랑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