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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洋館)
강 신 재
파르르 척 파르르 척척…… 하고 왕벌이 날개를 떠는 듯한 소리가 미미하게 귓전을 울리자 유진(有眞)은 곧 잠이 깼다. 밤새 껏 잠들지 않고 어둠 속에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나 새벽녘에 떨어져 들어간 수면이라 해서 곤하고 깊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베개 위에서 눈을 반쯤 뜨고 잿빛으로 밝기 시작한 문살¹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두 눈을 감았으나 한 번 더 잠들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파르르 척 파르르 척척…… 하는 소리는 좀더 대담하게 커졌고 이 시간이면 늘 들리는 비행기의 선회음(旋回音)이 신음하듯이 지붕 위를 넘어갔다.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날이 샌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유진은 상을 찌푸렸다. 아침이 오는 것이 그네는 언제나 끔찍하였다. 백일하게 모든 것이 ―삼라만상이 ―그 있는 대로의 윤곽을 드러 낸다는 사실은 거의 가공(可恐) 할 일이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그러한 수단은, 성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밥 한술 달라고 외치는 아이의 길게 잡아 빼는 외침이 비명처럼 또 노랫소리처럼 멀리 대문 밖을 지나갔다. 유진은 일어나 앉았다.
유선(有善)이 엊저녁 입은 채로 잔 노란 스웨터의 옆모양을 보이고 앉아 눈이 삐죽해서 카드를 뒤집고 있다. 까치 둥우리처럼 얽힌 머리칼과 한편 무릎을 세우고 쭈굴친 자세 위를 쌩한 웃풍이 감돌고 있다.
털실이 거기만 닳아서 얇아진 팔꿈치가 갑자기 급히 움직이며 이불 위에서 트럼프를 뒤섞었다.
"또 안 떨어졌다…….”
쇄쇄거리는 입속말로 무엇에 씌인 사람처럼 혼자 중얼대더니 파르르 착착 하고 카드를 쳤다.
“어떠냐 운수가.”
유진은 무미건조한 눈초리를 다른 데로 돌리며 아무렇게나 한 마디 던졌다. 그래도 말이 되어 나오고 보니까 그네의 표정이나 기분하고는 달리 얼마간의 감정이 담겨진 듯 울리는 것이 묘하였다.
“좋지 않우. 그렇지만 이번 건 어제 운수였으니까. 맞았나 안 맞았나 보려고 떼어본 거지. 어제는 참 좋지가 못했다우. 이번 거가 진짜 오늘 건데…….”
열심히 이편을 쳐다보며 대답하였으나 유진이 들은 척도 않고 있으므로 다시 카드 위로 고개를 떨구었다. 매일을 그것과 결부시킨다. 오늘은 다 떨어졌는데 그러고 보면 운수도 괜찮았다 할 수 있다고 하고, 오늘은 지독히 운이 사나웠는데 점에도 과연 나타났다고 하고, 점이 맞는다는 일 자체에 무슨 위안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머저리……’
유진은 그렇게 느낀다. 하나 유선의 생각에는 점에 그토록 명시되는 것은 그날 일어날 일이 미리 숙명적으로 정해져 있은 탓이므로, 모든 일은 마땅히 일어나야 할 대로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안심스러운 일이랴.
유선의 점은 아직 끝장이 나지 않았으나
“밥을 지어야지.”
좀 날카롭게 들리는 명령조로 유진은 말하였다. 일어나서 왔다갔다 하며 밥을 끓여 마주 앉아 먹고 또 치우고 하는 일이 그네에게는 거의 추한 일로 느껴지고 있었으므로―그 자연 (自然)의 강요를 마치 모욕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이에 관련된 말 따위는 언제나 피하고 싶은 것이다. 유선이 어차피 그것을 지을 바에야 말을 시키지 말고 혼자 척척 해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이유보다도 눈을 뜨자마자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싫어서 쫏으려고 그러는 건지도 몰랐다.
유진의 말이 떨어지자 유선은 이내 엉거주춤 허리를 들었다. 벌어진 문장² 사이로 두껍게 얼어붙은 창유리가 보인다. 바람도 일기 시작했는지 이층의 덧문이 덜컹거렸다.
유선이 긴 복도를 걸어 부엌으로 사라졌다. 유진은 한동안 우두커니 더 앉아 있다가 영 건성인 느린 동작으로 일어나 이불을 개어 얹었다. 조금도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으나 유선의 노동 위에 덧얹혀서 살 이론은 서지 않으므로 마지못해 꾸무럭꾸무럭 일을 하는 것이었다.
진초록빛 바탕에 꼬리를 편 공작을 수놓은 번쩍이는 이불은 그들의 모친이 큰딸과 사위를 위하여 마련한 것이었다. 유선이 덮고 자는 금색 중국 비단 역시 그녀가 유선의 혼례식을 축하하여 손수 꾸민 것이었다. 이런 것들을 마련하느라고, 또 내객이 많은 큰살림을 맡아 하느라고 바쁘게 돌아가던 모친의 단정하고 자그마한 모습을 유진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모친은 유진이 형제에다 마음을 쏟으며 살았었다. 형제가 병에 걸리거나 외부로부터 조그만 해라도 입을라치면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네는 행복하게 살았고 행복하게 죽어갔다. 유진은 그네로부터 해 받은 일들을 잊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이런 형태의 삶을 조금도 모르는 채 죽었다는 의미에서 그네는 순전한 타인보다 더욱 타인인 것이었다. 유진이 그네를 상기하는 것은 그네가 자기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보는 때에 한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낳질 말았더면 하고 상상하는 때뿐이었다. 수 놓여진 공작의 꼬리는 그다지 번쩍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와삭거리는 중국 비단도 그처럼 두꺼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모친이 그들을 기르면서 느낀 행복감
같은 것도 사실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는 게 아니었다.
유선이 시퍼렇게 얼어서 덜덜 떨면서 방에 들어왔다. 온 집 안에 음식 내가 흘러들지 말라고 그랬는지 뚝 떨어진 북쪽에 가서 붙어 있는 부엌은 덩그러니 넓기만 한 데다가 불기라고 풍로 하나밖에는 없으므로 유선은 부엌에서 오는 때면 노상 얼어가지고 어깻죽지 속에 목을 파묻고 두 손을 맞잡으며 들어서는 것이었다. 헌 양복바지의 밑을 걷어 올리고, 양말은 뒤꿈치가 나간 남자 것을 포개어 신고 있다. 그네의 죽은 남편의 물건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신던 것을 헌 고리³에서라도 꺼내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 이층의 저 문짝이 암만해두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어떻게 허우?”
그 얼굴은 유진이 보아도 가엾어지리만큼 근심스러운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까 점점 더 긴장한 표정이 되어갔다.
바람은 제법 거세게 불어대었다. 이층의 덧문은 호되게 벽을 치며 깨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구름 조각들이 흩날리는지, 반짝 해가 들었다가는 또 곧 캄캄해지며 그럴 때마다 포도주색 빌로드 문장은 변색을 하였다.
“저 소릴 좀 들어보우.”
유진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지만 덧문이 떨어져 내려, 언젠가처럼 다른 창유리가 깨어지거나 하는 날이면 유선이 한없이 들끓을 것이므로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고 복도에 놓인 고무신을 신는다. 라디오와 문갑, 책상 같은 것이 놓이고, 경대, 작은 옷서랍까지 들여놓여서, 어쨌든 거처의 태세를 갖춘 그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장소는 밖에서와 한가지로 흙신으로 딛는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래도 식모가 두엇 남아 있는 새는 날이면 날마다 털고 닦는 것이 그들의 일이니까 그렇게 할 것도 없었지만, 작년에 유선이 돌아오고 하인들도 사라진 그 뒤로는 자연히 그렇게 되어버렸다.
부엌까지의, 구부러지며 나간 긴 복도에는 냉기와 함께 코가 싸한 먼짓내가 들이차 있다. 모란꽃이 깔린 두꺼운 양탄자는 더럽혀져 이제는 거의 완전히 잿빛이었다. 스팀은 은칠이 벗겨져서 시무죽죽하였다. 그 위에 올라서서 숨을 죽이고 있다가 방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왁 하고 놀래주는 것이 어린 날의 유진의 장난거리였다. 거무죽죽하게 벗겨져서 한구석에 서 있는 스팀을 바라보면 그녀는 가끔 지난날들을, 소녀 시절의 자기의 감정 세계 같은 것을 머릿속에 되살려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운 안개에 싸인 물체처럼 무언가 희망과 약속, 진실에의 신뢰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 같았고, 꿈의 배태(胚胎)를 위한 온상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 막상 그것의 실체를 잡아보려고 하면 안개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은 그저 하나의 분위기, 독서나 부모와의 생활에서 오는 환경이 빚어내는 하나의 효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친이 생전에 쓰던 방, 객실, 하인들의 방 등의 앞을 지나걸어나갔다. 이런 방 중의 하나가 지금 있는 곳보다 아마 좀더 아늑할지도 몰랐으나 옮기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유선은 그사이 방에서 몸이나 녹이지 않고 줄레줄레 뒤를 따라왔다. 둥그스름한 볼이 멍든 복승아처럼 붉고 푸르다. 유진은 까실하니 하얗기만 하였다.
부엌 옆에 있는 식당은 밝고 넓다. 겹유리의 널찍한 창 너머로 후원의 나무들이 내다보였다. 앙상한 가지와 가지 사이에 빨간 열매를 단 넝쿨이 엉켜 있다. 돌보지 않아서 얼어 망가진 종려나무의 큰 분 곁을 지나 유진은 그릇장의 서랍을 잡아당겼다.
“망치가 어딜 갔어.”
먼지가 묻은 손을 스커트에 문질렀다. 바람이 불어쳐서 창유리가 요란스레 흔들거렸다. 장속의 사기그릇들은 먼지를 덮은 채 말을 안 하기로 결심한 사람 같은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망치는 언니 저기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본 것 같어, 물통 속에서…… ”
유선이 추워서 거의 울상이 되며 욕실 쪽을 가리켰다.
유진은 걸어가 발끝으로 문을 밀었다. 뿌연 창유리가 몇 장이나 깨어져서 바람이 쏴아 하고 끼쳐졌다. 허연 사기의 탐 안에 막대기며 까치발⁴ 같은 것과 섞여 못통이 버려져 있었다. 망치는 따로 떨어져 샤워 밑에 궁굴고 있었다.
“……”
유진은 망치가 거기 궁굴고 있는 것을 보자 입술을 삐뜰이고 조금 웃었다.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수리공(修理工)이 처음 왔던 날 일을 상기한 것이다. 수리공은 탑 속에 책을 잊어버리고 갔다. 삼백 환짜리 문고본의 하이데거가 거기서 바람에 페이지를 넘기며 있었다.
“이런 걸 읽어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름도 안 물었다. 그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저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수리공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 남자는 이 집에 와서 유진의 위에 사건을 일으키고 간 유일의 인물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유진에게는 아무 일도 새로운 쇼크일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그 장의의 신산함도, 고독의 무서움도 그네를 움직일 힘이 없었다. 유선이 돌아와서 궁상스럽고 비참한 색채가 서로 반영하는 것을 의식해야 했으나 그것도 별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은 수리공의 일도 별일이 아닌 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굽혀 타일 위에서 망치를 집어 올렸다.
형제는 앞뒤로 서서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그곳도 역시 춥고 어두웠으나 그것은 채광이 나쁜 탓은 아니었다. 두꺼운 문장이 창문마다 가려져서, 그것은 일 년이 넘도록 열려진 일도 먼지를 털린 일도 없는 것이다. 이거 아버지가 ‘케이프타운’ 에서 사 오셨지 그렇지 언니? 하고 유선이 한쪽 벽에 걸린 그림접시를 가리키며 말꼬리를 끌었으나 유진은 대답을 안 하고 곧장 난간 곁을 걸어갔다. 유진이 대답을 안 하여도 유선은 저 그림은 희랍 거다. 아버지는 여행을 참 좋아하셨다 하고 혼자 지껄거렸다. 부친이 쓰던 큰 서재 옆을 지날 적에 그녀는 살며시 손잡이를 돌리고 방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그리고 그 옆의 자기의 소유물들이 정리되어 있는 방문을 열고 보았을 때에는 얼마간의 만족과 기쁨으로조차 보여지는 빛이 그 눈 속을 스쳐 갔다.
유진은 똑바로 고개를 들고 광 앞으로 다가서 안에 들어갔다. 급경사 진 지붕의 일부가 그대로 천장인 그 광은 댓 칸 넓이가 족하였으나, 유진이 끌고 온 짐들을 어떤 것은 가마니를 끄르지도 않고 처재어놓았으므로, 발 들여놓을 자리도 만만찮았다. 유진은 이리저리 돌아 창가에 다가가서 못질을 하였다. 유선은 자기도 곁에 와서 으르르 떨며 보고 있다. 유진이 손을 대면 이런 것이나 간단한 기계의 고장 같은 것은 대번에 훌륭히 고쳐지곤 하였다. 그 부분이 재차 고장 나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치를 생각해서 단단히 끝을 맺어놓기 때문이다. 유선이 하면 요란하기만 하고 결과는 손을 대기 전보다 더욱 나빠지기 일쑤였다.
문이 바로 되자 유진은 곧 아래로 내려와버렸으나 유선은 자기의 세간살이를 보러 추운 방에 들어가서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텔레비전이며 라디오며 전축 등속이, 그네가 남편과 함께 살던 방에서와 비슷한 모양새로 놓여 있었다. 마른걸레로 그네는 그 소중한 물건들의 먼지를 훔쳐냈다. 따뜻할 때에는 노상 그곳에 틀어박혀 살았지만 추워진 후에는 종종 이렇게 소제를 하는 것이었다. 청자의 단지며 자개함에까지 말짱 마른걸레질을 하고 나서 그네는 늘 하듯 긴 의자에 가 걸터앉았다. 몸을 움직이며 일한고 있을 때면 그냥저냥 지나치는 것이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자기 자신을 바라다볼라치면 유선의 마음도 형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네의 남편은 신경질이고 결핵 환자이어서, 유선을 남달리 사랑하였다고도 볼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가 별안간 죽어서 없어지고 마니까 유선은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돼버린 것이다. 사랑이 전부라느니 허무하다느니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 것도 아니지만, 말하자면 자기의 감정이나 사고의 방향을 어드메로 가지고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것이었다. 재미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별할 기준이 맘속에서
없어져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네는 잠자코, 넋이 빠진 눈을 하며 긴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언제나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의 가슴 밑바닥에 조그만 밀물같이 슬픔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애달픔이었다. 유선이 이처럼 ‘삶’ 의 바깥에서 발을 멈추고 그 알지 못할 것 ―삶―을 물끄러미, 섬찍 한 듯이, 들여다보기 이전의 날들, 인식함이 없이 그저 ‘살아온’ 날들에 대한 미련이 슬픔을 밀고 오는 것이었다. 그네는 남편의 걸음걸이며, 말투며, 신경질을 부리던 때의 표정까지, 기억 속에 되살려내었다. 그리고 가슴이 저릿하여지며 뜨뜻한 눈물을 흘렸다. 그네는 흠뻑 울었다. 울고 있는 동안은 그 어디를 보아야 할지 모르는 불안 상태는 중단되는 것이었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유선은 급히 몸을 일으키고 층계를 내려갔다. 장기를 두러 갈 시간이었다.
장기를 그녀는 기원에 가서 둔다. 바둑을 가르치는 기원의 한편에서 장기도 두는 곳을 한 군데 알고 있었다. 황노인이라는 영감이 선생이었다. 배운다고 하지만 유선의 장기는 조금도 느는 게 아니었다. 날짜로 보면 일 년 반이나 전에 시작을 하였지만 당초에 몇 가지 수를 외운 밖에는 이제나 그제나 그저 그 턱으로 겨우 두세 수 앞을 내다볼 수 있을 뿐이었다. 황노인 쪽에서도 더 가르칠 염도 않고 그저 마주 앉아 있기만 하였다. 물론 재미나는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래도 유선은 부지런히 다녔다. 요즘은 일주일 세 번의 그 시간을 거의 빼는 일이 없었다.
남편이 앓고 있던 무렵 심심하니까 장기판 앞에 아내를 앉히곤 하였었다. 그쪽도 형편없는 픗장기⁵였다. 그러나 그나마 가르쳐도 척척 따라오질 못한다고 더럭더럭 화만 내게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유선은 무릎을 꿇고 앉아 열심히 그 역할을 감당해내려고 하였으나 긴장하면 할수록 실수를 하였다. 마침내 그네는 자기들의 생활을 위하는 열성 에서 기원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남편이 지금은 죽어서 없으니까 유선이 그곳에 가야 할 이유라곤 없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여자가 아무렇게나 양복때기를 걸쳐 입고 거기에를 드나드는 광경은 보기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였다.
유선은 그래도 거기를 간다.
그곳에 가면 예전에 있던 물건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고 사람들도 변함없이 살고들 있었다. 자기도 역시 아직 살고 있다는 느낌이 어렴픗이나마 들곤 하므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과 마저 모조리 떨어져버린다면 불안을 이길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세계는 눈에 보이는 외형에서나마 제발 변함이 없어야 하였다. 가끔은 입 밖에 내어서 지나간 일들을 말하는 것도 발밑에 그래도 땅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겠기 까닭이었다.
유진은 무의미한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일’은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망상(妄想)’ 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제는 되살아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머플러로 머리를 동이고 외투를 입고 나서 유선은 가름한 작은 상자를 옷서 랍에서 꺼냈다.
“이걸 팔어 올까 언니?”
뚜껑을 열고 금숟갈이 두엇 든 것을 보인다.
“숟가락은 이게 마지막이야.”
유진은 그렇게 하라고 대답하고 쓰리⁶ 맞지 말라고 덧붙였다. 유선은 끄덕이고 하이힐을 꺼내 신고 걸어나갔다.
바람이 이제는 자는 것 같았다. 오후가 되며 기온도 많이 오른 모양이었다. 마른 잔디에 햇볕이 담뿍 괴어 참새들이 내려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유진은 마당을 슬슬 걸어보았다. 대문을 잠그라고, 유선이 나간 뒤에 한참은 누웠다가 나갔더니 방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진 것이다. 방에 있을 때엔 나오기가 싫었다. 단 한 마리 남아 있는 ‘도베르만’ 이 어슬렁거리며 뒤따라 다녔다. 회색의 몹시 덩치가 큰 놈이었으나 요새로 윤기가 없고 푸시시하였다. 유진을 오랜만에 본다고 생각하였는지 몸을 비벼대며 쳐다본다. 유진은 쓰다듬어주지도 않았다. 담 밑까지 비스듬히 올라간 작은 동산의 마른 풀 위에 앉아 유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거무죽죽한 벽돌의 묵직한 조화를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과시하려는 듯한 위엄을 갖춘 그 건물에는 그러나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몰골 없는 두 여자가 기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뚫어진 양말을 신고 흙 묻은 고무신으로 대리석 바닥이고 양탄자 위고 밟고 다닌다.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숯불을 피워서, 쌀과 된장을 끓여 먹는다.
그들이 물질을 받아들일 기능을 상실한 때문인 것이다.
유진은 눈을 들고 부친의 서재께를 바라보았다. 침침한 헝겊 조각에 가려 지금은 열리는 일도 없는 그 창문 안은 전에는 훈훈하고 조용하고 그리고 무언가 신비스럽기까지 한 장소였었다. 그 신비스러움은 삼면의 벽을 거의 메운 장서들의 금빛 글자― 인도주의적인 이상주의적인 또는 낭만적인 세계의 두뇌의 산물들에 의하여 뿜어내지는 광채 때문에 그랬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혹은 그곳에 생활하며 끝까지 인생을 신뢰한 부친의 탓이었을지도 몰랐다. 유진에게 책을 읽히고 그리고 인간의 성실함이란 것을 믿도록 만든 것은 여하간 그 사람이었다.
반발과 어느 만큼의 증오를 눈에 담고 유진은 그곳을 응시하였다. 자기에게 그 같은 ‘교육’을 안 하였던들 확실히 하나의 왜곡(歪曲)이 틀림 없는―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그런 신앙을 부어 넣어주지 않았던들, 자기를 자연아(自然兄) 그대로 내버려두었던들, 어쩌면 이런 세계에서라도 살아나갈 힘이 남겨졌을지 모를 일 아닌가. 가엾은 유선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만 가르친 것은 부친의 ‘죄’ 가 아니었을까? 착한 인간이 되기보다, 남을 믿기보다, 스스로의 감성(感性)을 조절하는 기술이 먼저 필요하였었다. 혹은 그보다도 사람은 악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가르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메마른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진의 남편이 유진을 기만한 그 방법은 너무나 탁월한 것이었 다. 그는 또 하나의 결혼 생활을 유진과의 그것을 시작한 지 조금 후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어린아이도 자라나고 있었다. 아기를 가지지 못한 유진이 그것을 미안해할 때 남편은 성실한 태도로 무어라고 말하였을까? 아내를 열애(熱愛)한―분명히 그렇게 보인―그의 태도는 대체 어떤 감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을까? 유진은 그와 헤어졌으나 그 일은 언제까지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어찌할 수도 없을 만큼 상처를 입고 있었다. 부친의 교육은 그 아픔을 되도록 깊이 되도록 날카롭게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만 기여한 것 같았다. 그의 선의(善意)는 오륙 년이라는 허위의 세월의 길이에 공헌을 한 셈이었다. 두려움 없는 철저한 거짓을 그 딸은 믿을 수 없도록 길러져 있었다.
유진은 경사진 풀밭을 미끄러져 내려 후원 쪽으로 걸어갔다. 연분홍빛을 한 인조 대리석의 테이블이 두셋 있고 바비큐며 숲 새에서 내민 수도꼭지 같은 것이 있었다. 실개울은 돌다리 밑에서 하얗게 얼어 있었다. 그러자 또다시 수리공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난여름 이 개울이 졸졸 흐르고 있었을 때 맨발을 잠그고 앉아 있던 일이 생각났다. 옆에서 수리공은 두 손으로 머리를 괴고 누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기분 좋았었다. 개울물의 감촉이 상쾌하였었다.
그를 처음 오게 한 것은 유선이었다.
유선이 수도를 고친다고 다른 늙은 인부를 데려왔었다. 여러 군데를 파헤쳤으나 잘못된 곳을 알 수 없어서 조카를 불러온다면서 인부는 돌아갔다. 우물은 더럽히고 말라서 소용에 닿지 않고, 옆집이나 어디로 물 얻으러 가기는 죽기만 하다면서 유선은 열심히 그들을 기다렸다.
다 저녁때가 되어서 젊은 수리공이 왔다. 그리고 욕실과 그 부근의 파이프를 잠깐 만지더니 부엌의 수도 하나는 곧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유진은 내다보지도 않았으므로 얼굴도 모르고 말았으나 다음 날 혼자 있을 때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젊은 수리공은 또 이 집의 벨을 눌렀다. 책을 잊고 갔다는 것이었다. 유진은 성가신 것을 참고 욕실께로 데려다 주었다. 수리공은 책을 호주머니에 밀어 넣더니 다른 포켓에서 드라이버와 펜치 같은 것을 끄집 어내었다.
“어제 잠깐 보았는데 이 전깃줄들은 위험합니다. 아주 낡아빠졌어요. 자 보세요.”
천장의 널판자가 뻐그러진 새로 늘어진 전선을 어떻게 건드리니까 빠작빠작하며 불꽃이 일었다.
“이거 정말 위험한 거예요.”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커다란 소리로 되풀이하였다. 목소리가 하도 커서 유진은 조금 웃었다. 선 채로 잠이라도 자는 줄 알았는가.
“보아드리지요. 그런데 이 노후선들, 벽 속에 든 걸 지금 전부 어쩔 수도 없고…… 어떠세요. 요즘 사용하시지 않는 부분은 우선 더러 끊어두시면. 쓰시는 데만은 안전히 해드리죠.”
“학생이세요?”
줄을 끊었다 이었다 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그런 소리를 했다.
“말하자면 그런 거죠.”
유진은 지루하여져서 현관께로 나와 긴 걸상에 누웠다.
장밋빛으로 하늘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들쩍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집 안에 유선이도 없고 개마저 개장에 갇히어서 얼씬거리지 않는 이런 때에 유진은 그런대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었다. 하늘 아래다 상처를 드러내놓고 바람을 쐬는 기분이었다. 집 한편에서 수리공이 일하고 있었으므로 여느 때 같지는 않았으나 그것도 차차 심상하여졌다.
시간이 흘렀다.
유진은 선잠이 들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맞은편 월계 숲은 한결 어두웠고, 흐르는 꽃향기가 짙어진 것도 날이 저문 탓이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자기를 내려다보고 선 수리공을 유진은 보았다. 그는 젊은 얼굴을, 젊은 육체를, 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달짝지근한 꽃향기와 실바람이, 엷은 실크의 구식 원피스를 입고 누운 자기의 자태가, 수리공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유진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유진의 몸을 안으려고 했을 때 그녀는 손과 발을 움직거려 반항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그 당돌한 진행 때문에였다. 그리고 유쾌하지도 않았다. 그네는 기운이 모자람을 알자 더 반항하지도 않고 말았다.
참 이상한 분이라고, 잠시 후에 그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는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잠잠하기만 한 유진을 물끄레 바라보며 말하였다.
“나 같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겁니까? 왜 화를 안 내세요?”
그편이 들이대고 따지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을 쳐다보세요. 그리고 무어라고 말을 하세요. 욕이라도…….”
그때의 그는 혼란과 수치와 성실에 찬 눈을 하고 있었다. 유진은 코웃음을 쳤다. 성실한 눈빛은 남편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랴.
그 남자는 풀이 죽어 돌아갔으나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여러가지 말을 하였으나 유진은 듣고만 있었다. 그네는 자기의 맘속에 순간적인 기쁨 같은 것 부드러운 감정의 움직임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는 건장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의 폭력을 유진은 허용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를 알 필요는 도무지 없었다. 청년은 육체 이외의 곳에서 열락을 가져보려는 노력을 드디어 포기하는 것 같아 보였다. 돈이니 하는 그런 것은 가지지 않았지만 자기도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그런 주장을 그는 하고 싶었던 모양 같았다.
“청평에 갑니다. 댐 공사장에 일하러 가는 거예요. 돈을 벌어야 내년에 학교를 마칠 수 있으니까요. 겨울까지 있겠습니다. 제 일을 기억해주시겠어요?”
말하고픈 일이 산더미 같은데 못 해서 울화가 치민다는 얼굴로 그는 그렇게 말하였다.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순서가 틀렸었다고 느끼고 있는 모양 같았다.
“잊어버리지야 않겠지요!”
유진이 그저 막연한 얼굴을 하였다.
“제 일을 생각해보아 주세요. 겨울에 올 테니까요. 참 별난 사람이다……”
그는 약간 노기를 띠며 말하였다.
한 토막의 시간이 흘렀다.
유진은 바비큐의 옆을 흐르는 실개울에서 발을 뻬며
“안 오는 게 좋아요.”
“왜, 어째서 그래요?”
겨울이 되었어도 유진은 그의 일을 생각해내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물거품 같은 쾌락…… 그것은 참 이상할 정도로 뒤에 아무것도 남기질 않았다……
그녀는 옆에 와서 얼굴을 내미는 개를 팔꿈치로 밀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마른 풀을 털어 내리며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선이 병이 났다. 걷다가 발을 삐었다면서 하이힐 꼭지를 손에 쥐고 절름거리며 어느 날 저녁 돌아왔으나 밤중에 갑자기 열이 오른 것은 발목 때문은 아닐 것 같았다. 무릎이 쑤신다고 하였다. 그것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유선은 몸을 꼬부리고 새하얗게 질리면서 아프다고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유진은 의사를 부르러 갔다. 가까운 곳에는 병원이 없으므로 비탈길을 한참 걸어 큰길가의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의사와 함께 돌아와 보니까 유선은 숨을 좀 돌리고 아랫목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어쩌다 격통⁷이 멎는 것 같더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였다.
의사는 진찰을 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부었다. 유선은 겁먹은 눈을 하며 성급한 말씨로 대답하였다. 엉 뚱한 소리를 지껄이든가 필요치 않은 말을 주워댈 때면 의사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간을 찌푸렸다. 유진의 가슴이 저렸다. 그러나 그 저린 마음은 유선에게 직접 쏠리지는 않고 웬일인지 중공⁸에서 맴을 돌았다. 맴을 도는 연민의 정을 유진은 바라보았다. 그네의 동생은 마치 자기도 모르는 새 큰 죄를 범하고 만 사람처럼 구차스러운 얼굴을 그 낯모르는 사람 앞에 하고 있었다. 병은 조금도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는 데도.
유선의 병은 관절염이라고 하였다. 상당히 악성의 질환인 듯하였다. 수시로 아파했다. 소리를 내어 울면서 아파했다.
“입원을 시키는 편이 나을까요?”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전기 치료도 할 수 있고요.”
“전기 치료를 하면 아픈 게 덜합니까? 완쾌됩니까?”
의사의 대답은 신통치가 않았다.
“우선 며칠간 새로 나온 약을 시험해봅시다……”
밤중에 유선이 울면 유진은 석고같이 굳은 얼굴을 하였다. 그녀는 동생에게 아무 일도 해줄 수가 없다. 방석으로 괸 무릎에 찬 물수건을 올려놓아주어도 고통은 조금도 줄어지지 않았다. 등을 쓸어준다. 허리가 끊어질 듯하다니까 두 손으로 받쳐주어본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유진은 진정제를 의사가 말한 양보다 많이 주는 외에는 아무 도움도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날 아침 유진은 마치 혼수상태에 빠졌던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유선에게 자기가 사용하던 강한 수면제의 치사량을 주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웠기 때문이다. 유선이 그 고통을 참아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유선이 그 병을 고치고 되살아나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행복이라는 걸 대체 생각할 수 있을까?
벨소리가 길 게 울렸다.
수리공이 온 것이었다. 그는 영국 군인이 입는, 턱 밑까지 오는 카키빛 털옷을 입고 반코트의 깃을 세워 흰 입김을 토하며 유진의 눈 속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동생이 앓고 있다고, 유진은 조막다시만치 작아 뵈는 하얀 얼굴로 말하였다. 돌아가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캐어 물으면서 집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위험한 전깃줄을 고쳐준다고 자진해서 온 때와 같은 모양으로.
유선은 그가 어떻게 왔는지도 잘 모르면서 웃음을 띠고 끄덕여 보였다. 바깥이 퍽 추울 게라는 소리까지 하였다. 그러고는 괴로워서 다시 상을 찌푸렸다. 수리공은 고장난 기계를 검사하듯 유선의 모양을 이리저리 살피고서
“다른 의사를 데려와보겠습니다. 아주 잘한다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
혼자 단정을 내리면서 방을 나갔다.
“돈은 내가 가지구 있으니까…… 여기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진은 대문을 잠그려고 따라갔다.
더 좀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불도 더 많이 때고―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자기가 그런 걸 못 하겠거든 식모라두 어디서 구해다가 이따위 집은 내버리구 차라리 셋방엘 나가서라도 생활이라는 걸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소리를 하기 위해서 그는 복도 한가운데에 가 섰다. 화를 낸 것 같은 세찬 말씨였다. 그리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갔다.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문득 유진은 유선이 자기와는 좀 달리 그런 결 썩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병만 낫는다면. 그리고 소달구지에 고삐를 쥐는 사람이 필요하듯이 누군가가 그네의 고삐를 '잡기만 한다면. 회초리를 울려 신호를 할라치면 그네는 내닫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아무라도 좋은 누군가가……
그네에게 수면제의 치사량은 주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보관해두어야 했다.
녹슬고 무거운 청동 대문이 바로 앞에 있었다. 청년은 몸을 돌려 마주 서며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젊은 남자는 무엇에 대체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인가? 유진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끄러미 그 입모습을 쳐다보았다.
-끝-
2016년 6월 1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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