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장 8-13절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어제 살펴본 감독의 자격에 이어서, 사도 바울은 집사의 자격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집사’로 해석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는 ‘봉사’로 해석되는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는 동사 ‘디아코네오(διακονέω)'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디아코네오’는 ‘식탁에서 대기하다, 식탁에서 봉사하다’에서 유래하여 ‘봉사하다, 시중들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당시 사회에서 노예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심한 열병으로 앓아 눕자, 예수님께서 그녀를 치유해주셨습니다. 이후의 일을 마가복음 1:31은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로 묘사했습니다. ‘수종드니라’로 해석된 헬라어가 바로 ‘디아코네오’ 동사의 미완료 과거형입니다. 열병으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가 치유된 시몬의 장모는 감사한 마음으로 마치 종이 식탁에서 상전을 섬기듯, 예수님과 그 일행을 대접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봉사는 이같이 자신의 병을 치유해주신 예수님을 향한 감사와 고마움에 기꺼이 섬기는 모습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처음으로 집사 직분제를 도입하는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초기에는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이 말씀 사역과 함께 구제 사역까지 담당했는데, 교인의 수가 증가하면서 구제 사역으로 인해 말씀 사역에 지장을 받게 되고, 헬라파 교인들과 히브리파 교인들 사이에 매일의 구제(봉사) 문제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에 열두 사도는 구제 사역을 담당해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행6:3)을 7명을 선발하여 집사, 디아코니아의 직분을 맡겼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에서 집사는 교인들을 섬기는 일을 담당했는데, 섬기는 일에는 구제 사역은 물론 복음 전도 사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말씀을 전하다가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등에서 전도하며 병도 고치고, 이방 전도에 공헌했으며, 세례도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에서 디아코니아의 직무를 담당하는 집사는 교회가 세상과 사회로 나가는 창구 역활을 담당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대 교회에서 도입한 직분제는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계급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장로, 권사 호칭제를 택하고, 30세 이상의 세례 교인을 집사로 호칭하는 이유도 계급화, 서열화, 권력화된 잘못된 관습을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초대 교회가 택한 집사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는 앞서 언급한 ‘감독들과 같이’라는 의미입니다. 감독과 집사는 상호 보충적입니다. 감독의 자격에 언급된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2)은 당연히 집사도 담당해야 합니다.
집사의 자격으로 언급한 첫 번째 조건은 ‘정중’입니다. ‘정중하다’로 해석된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존경할 만한’입니다. 즉 이웃들로부터 존경 받을만한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존경 받는 인격이 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몬의 장모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꺼이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절제해야 합니다. 운전을 하면서 절제하지 못하면 난폭운전을 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줍니다. 운전을 하면 남녀불분하고 헐크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못난 나를 비우고 말씀으로 채울 때 자기 자신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일구이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의 눈과 귀는 두 개인데 입이 하나인 까닭은 많이 보고 많이 듣되,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 입으로 두 말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입이 하나이면 두 말을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거짓된 사람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정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내로남불’ 역시 일구이언입니다. 선현들도 '일구이언 이부지자( 一口二言 二父之子)'라는 경구로 말 바꾸는 행위를 경계했습니다. 교회에서의 말과 행동이 사회에서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과연 존경받을 수 있겠습니까? 집사는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집사는 술에 인박이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절대화 할 수 없습니다. 술, 마실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서구와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다릅니다. 물론 이 역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술 문화는 한 마디로 ‘부어라 마셔라’입니다. 절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절제된 음주를 합니다. 맥주 한 잔을 놓고도 한두 시간씩 대화합니다. 일반인들도 술에 대해 절제할 수 없다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본인과 이웃을 위해서 좋습니다. 하물며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집사로서 술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가 되고 맙니다.
네 번째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집사의 사역 중 하나는 구제 사역이었습니다. 즉 집사들은 교인들에게서 기증받은 것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만약 물질을 취급하는 집사들이 청지기적 사명이 부족하면 물질로 인해 시험받게 됩니다. 간혹 ‘신앙인은 주식을 하면 안되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합법적인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을 산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투자가 투기가 변질된다면 이는 돈을 사랑함에서 오는 왜곡된 행동입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라’는 의미는 신앙인으로서 불법과 부정, 부패와 탈세, 노동 착취, 사기와 거짓말을 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서 정당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이 재물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입니다. 만약 특정한 이익을 목적으로 봉사를 한다면 이 역시 더러운 이를 탐하는 행위입니다.
다섯 번째로 집사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갖아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양심은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2절 표현으로 하면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한다’고 합니다. 깨끗한 양심은 1장 5절과 19절의 ‘선한 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함을 받은 거듭난 양심입니다. 믿음의 비밀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공개된 비밀이지만 특별한 사람만 그 뜻을 아는 신비한 비밀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비밀’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즉 똑같은 복음을 전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복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계시된 신비로운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Calvin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좇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지식을 소유한 자'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보혈로 거듭난 양심을 가지고 구원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만이 집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즉 그 사람이 진실성과 구원에 관한 확고한 믿음의 도리를 가졌는지를 시험해보고 결정적인 흠이 없는지를 살펴보라는 의미입니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청문회를 볼 때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처음 공약했던 요건에 부합되는 사람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후보자의 자질보다 능력을 봐달라고 합니다. 물론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자신의 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있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결정적인 흠이 있음에도 능력이 있다고 해서 지도자로 선출한다면 자칫하면 교회 공동체의 복음 전파 사역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부 대형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교회 대물림과 세습 아닙니까!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본문에서 여자로 해석된 헬라어는 ‘여자’외에도 ‘아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에 집사의 아내라고 보는 의견도 있고, 여자 집사를 의미한다고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집사의 아내 또는 여자 집사에 대해서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어제 살펴보았듯이 당시 문란했던 성 문화와 세속적인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세상과 구별된 신앙적으로 바른 여성상을 제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 집사들도 감독과 마찬가지로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12).
이와 같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직분을 잘 감당하면 어떤 보상이 이루어질까요?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제일 먼저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됩니다. 이는 지위가 높아지거나 계급이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한 책임을 감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이 맡기고 간 달란트를 잘 활용한 종들에게 주인이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입니다. 더 중한 책임을 감당할수록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13b, 새번역)
제가 목회자로 소명을 받게 된 것도 초신자에 불과한 제가 성경 공부를 인도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모르니 공부해야 했고, 성경을 읽어야만 했는데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제 신앙은 조금씩 성장하게 되었고, 공부하면 할수록 말씀에 대한 갈증이 커갔고, 결국 저의 진로를 신학으로 바꾸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매년 구역장과 봉사팀장을 임명하는데, 고사하는 분들이 의외로 꽤 됩니다. 구역장을 하면 물론 성경공부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구역장 자신의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주님 안에서 좀 더 커다란 확신을 얻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자신의 병을 치유해주신 예수님을 향한 감사와 고마움에 기꺼이 주님과 제자들을 섬긴 시몬 베드로의 장모와 같이 죽음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 감사하며, 기꺼이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디아코노스로 살아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집사의 자격에 대해 살펴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지만, 다시 한 번 십자가 대속의 보혈에 우리의 허물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땅 속에 파묻어 놓는 어리석은 종이 되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감사함으로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디아코노스로 살아가는 일상을 통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비밀이 편만하게 펼쳐지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침묵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디아코노스’의 근본적인 의미는?
2. 집사의 자격 중에서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3.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시겠습니까?
4. 믿음에 더 큰 확신을 얻게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창호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