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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5년 만이다. 승범 그때 많이 친해졌다. 나도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몰랐고, 황정민도 류승범을 모르는 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처음 만났다. 수안보에서 배우들이 한 숙소에서 같이 지냈는데 정민이 형이랑 말이 잘 통했다. 둘이 신을 같이 촬영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고. 이후 서로 각자의 작업을 하느라 바빠서 자주 연락 못하다가 이번 작품 하면서 다시 친해졌다. 예전이랑 똑같다.
예상했나? 서로 이만큼 성장하고 이 정도의 위치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 정민 당연히 그런 생각 못했다. 그런 생각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냥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서로 윈-윈 할 수 있을 때 만나는 게 얼마나 좋은가. 서로 인연이니까 만나는 거다.
5년 동안 서로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 출연작과 최근 출연작을 봤을 때 차이가 느껴지나. 정민 모르겠다. 5년 전이든 지금이든 자기 밥그릇이 있다. 그거에 걸맞게 해왔을 뿐이다. 지금에 맞는 밥그릇에 맞게 하는 거고. 내가 예전에 했던 작품들 보면 ‘잘했네 못했네’를 떠나서, 그냥 했나 보다 싶다. 그 당시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승범이도 똑같은 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말 욕인가 칭찬인가. 승범은 어떤가? 승범 형 말이 맞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학습되는 어떤 것들이 있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방법적으로든. 학습되는 것 때문에 남들 모르더라도 조금씩 나 혼자만 발전하는 게 있다. 작품 하면서 몰입하다 보면 또 많이 잊긴 하지만. 정민이 형과 함께 작업하면서 노하우들을 많이 배우게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2~3년 전 같은 경우는 콘티의 중요성을 몰랐다. 콘티에 갇혀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영화란 매체가 이런 것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를 깊게 동감하는 것이다. 예전엔 배우로서 연기와 캐릭터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 인물이 극에서 어떤 장치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촬영장에서 슛 들어가기 전에 대화를 많이 나누더라. 승범 이번 작품은 서로의 이해폭이 많아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사실 감독이든 배우든 어느 순간 자기의 생각들에 빠져서 대화가 힘들 때가 있다. 하긴 해야 하는데 지칠 때가 생긴다. 그런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최호 감독님과 정민이 형, 나의 이해 반경이 비슷해서 금방금방 찾아졌다. 때문에 10개를 생각했으면 10개를 다 얘기할 수 있었던 거다. 정민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하나로 맞춰진 정점이 있었다. 기본적인 큰 뿌리는 있었으니 가지치기가 대수였겠나. 특히 작업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벽이 있으면 그것처럼 답답하고 미치고 환장하는 일이 없으니까.
크랭크 인 전에 많이 만났나 보다. 정민 모이면 뭐하겠나. 술 먹지. 작업할 때도 술 먹는데 결국은 작품 얘기만 한다. 승범 남자들이 모이면 작품 얘기, 여자 얘기밖에 안 한다. 정민 오늘은 작품 얘기 하지 말고 놀자고 작정하고 만나도 결국은 작품 얘기다. 다 더듬이들이 그쪽으로 꽂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승범 감독님이 정민이 형한테 완전히 꼬랑지 내렸다. 감독님도 좀 주당이 아니신데 정민이 형이 한번 확 기를 꺾어놔서 다음부턴 술 마시자고 안 하시더라.
도대체 얼마나 마시기에? 정민 남들 먹는 만큼 밤새 마신다.(웃음)
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번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나? 정민 <와이키키 브라더스> 보면서 같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 내내 가지고 있었다. 승범이 혼자 비디오카메라로 자신을 찍는 신이었다. 오지혜 누나 들어와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좋았다.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승범이가 아닌 그 캐릭터가 된 것 같았다. 자기 일에 집중하면서 그냥 흘리는 그 느낌을 제대로 해냈다. ‘맞아. 연기는 저렇게 해야 하는 건데’라고 생각했다. 승범 동시대의 좋은 배우랑 다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나. <로드무비>부터 <YMCA 야구단> <바람난 가족>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까지 정민이 형 작품을 다 봤다. 배우들이 보통 사석에서 친하지 않더라도 작품 한번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작품을 통해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정민이 형도 친해서가 아니라 매 작품을 보면서 같이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민 상대성인 것 같다. 두 배우가 만들어간다는 건. 둘이 ‘쿵짝’이 제일 잘 맞아야 한다. 탁구를 칠 때 보자. 상대방이 잘 치면 나도 잘 치게 된다. 되게 묘한 건데 못 치는 사람하고 탁구 치면 재미없고, 이상하게 나도 못 치게 된다. 이런 맛을 느끼는 게 너무 재미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느낌들이 재미있었다.
센 영화다. 캐릭터도 세고, 배우도 세다. 묘한 라이벌 의식도 생겼을 법한데? 정민 라이벌로 인지하는 순간부터 작품이 망가진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짐으로 해서 나 스스로가 망가지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배우들이다. 내가 좀 못하더라도 상대방이 잘하면 내가 더 돋보인다는 것을 영악하게 잘 알고 있는 배우들이다.
물론 지금은 ‘영악하게’ 그런 걸 깨달았지만, 한때는 그런 우를 범한 적도 있지 않나. 승범 모르겠다. 내가 마음이 커서 그런지(웃음) 저 사람을 이용해서, 혹은 나만 돋보이려고 노력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정민 영화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모니가 가장 중요하다. 배우들과의 조화, 스태프들, 감독과의 조화. 그 좋은 작품에 내가 배우로서 있어야지, 그런 것 없이 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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