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에필로그>
나는 지난 1976년 초 한탄바이러스와의 첫 대면 이후 지금까지 이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한탄바이러스 발견을 계기로 막힌 봇물이 터지듯 전 세계 여기저기서 비슷한 바이러스들이 많이 발견되어 한타바이러스 (Hantavirus) 라는 새로운 바이러스 속 (屬)이 생겼고, 여기에 포함되는 바이러스들이 이미 20여 종류가 넘어선 지금도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그 수는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위의 글은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명륜동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사의 허름한 연구실 한 모퉁이에서 일궈낸 한탄바이러스 발견 당시의 감회와 그 당시 전후 상황을 회상하며 처음 글로 옮겨본 것이다.
지금까지는 맘속으로만 간직했던 일들을 한타바이러스 발견 50주년을 계기로 몇 자 글줄로 남겨도 좋겠다는 생각에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두서없이 기술해 보았다. 막상 ‘그 날’의 전후 정황을 써내려 가노라니 그 시절의 여러 정경들이 새삼 떠올라 사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감회가 새롭다.
나는 늘상 바이러스학에 입문하여 복이 참 많다고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산다. 남들은 하나도 어려운 새로운 바이러스를 둘씩이나 (하나는 미국 유학시절 발견한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인 Prospect Hill virus) 처음 대면하는 커다란 행운을 누렸으니 말이다. 당시 학문적, 경험적으로 일천했던 내가 그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른 목표를 설정해 주시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으며 또한 어려운 고비마다 길을 터 주신 이호왕 교수님의 큰 은공 덕분이었다. 내게 무슨 특출한 손재주나 번뜩이는 천재성이 있어 그리된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이 회고담은 한 저명한 바이러스 학자로서 이호왕 교수님의 한탄바이러스 발견에 얽힌 일대기 중 내가 관련된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그러나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보면 옳을 것이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아주 작은 부분으로서 다만 내가 한 것이 있다면 설정된 정도를 따라 잔꾀 부리지 않고 묵묵히 성심을 다해 나아간 것 밖에 없다. 이는 미국에서 Prospect Hill virus의 발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게 얼마간의 공로가 있다면 내 주위에서 나를 도와준 모든 분들께 돌리고 싶다. 특히 면역형광항체법을 공부할 수 있게 도와 주셨던 최철순 교수님 그리고 어렵사리 들쥐를 채집하여 귀중한 연구재료를 공급해준 김수암 선생을 위시한 채집원들의 숨은 공로도 이 자리를 빌어 치하하고 싶다. 더불어서 과학자의 올바른 자세를 심어 주신 이영록 은사님과 내가 애초 그 곳 역사의 현장에 다가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신 김우갑, 이연태 교수님께도 늘 감사의 염(念)을 잊지 않고 있다.
아주 최근 들어 김우갑 교수님을 모신 사석에서 지금으로부터 꼭 삼십년 전 그 날 나를 의대 미생물학교실에 추천하셨던 해묵은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는데, 말씀인 즉 김 교수님이 그 때 이연태 교수님의 부탁을 받고 적임자를 꼽아보니 내가 그 중 매사에 적극적이고 패기가 있어 의대 같은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능히 제 몫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영록 교수님과 의논을 거쳐 나를 찾으신 것이라 하셨다.
삼십년 전 수색중대 소대장 출신의 스카이다이버이자 태권도 유단자인 내가 김 교수님 눈에는 미더운 친구로 보이셨던 게다. 이 같았던 김 교수님의 안목과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얘기한다면 자화자찬(自畵自讚) 격이 되는 것인가! 그러고 보면 이 세 분 교수님 또한 한탄바이러스와의 인연이 전혀 없다할 수 없지 않은가! 세상사 인연이란 이처럼 오묘하고도 심오한 것인가 보다.
끝으로 이 회고문 중에 혹시라도 내 잘못된 기억으로 본의 아니게 잘못 기술된 부분이 있다면 이후라도 꼭 바로 잡고자 한다.[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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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우 Lee, Pyung Woo, Hantaan virus, Hantavirus. [검색어]
한탄바이러스 유행성출혈열(들쥐병)/이평우교수
이평우 선생님의 추천사와 사진을 올린다.
[기고] '한국의 파스퇴르' 故 이호왕 교수, 과기계 '황금별'로 영원히 빛나길
[한국 과학기술의 결정적 순간들] 1976년 이호왕,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의 발견
Lee HW, Lee PW , Manual of Hemorrhagic Fever with Renal Syndrome - DTIC
첫댓글 심교수님 이평우교수님의 여구기록을 처음부터 에펠로그까지 보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이평우 교수님, 마침내 올려주신 연구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가슴 깊이 뜨거운 감동과 전율을 느낍니다.교수님의 위대한 연구 첫걸음부터 지금까지 지켜보며 댓글을 남겨온 한 사람으로서, 척박했던 시절에 인류를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헌신하셨던 그 숭고한 여정의 마무리를 보게 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선생님의 업적으로 봇물터지듯이 수수꺼끼가 풀려서 한타바이러스속이 태어났어요 20여종이나 된다구요 ?! .세계 의학사에 길이 남을 한타바이러스 발견과 백신 개발이라는 기적 뒤에는,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진의 피땀 어린 열정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인류의 건강을 지켜내신 교수님의 위대한 발자취에 마음 깊이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이 역사적인 기록을 에필로그를 통해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교수님, 정말 고생 많으셨고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