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미터 날개 펼쳐 90일간 하늘에 떠 있는다..태양광비행기의 변신
곽노필 입력 2021. 08. 19. 10:16 수정 2021. 08. 19. 10:36
2016년 세계 일주 성공했던 '솔라임펄스2'
날개에 태양광 패널 1만7248개 깔고 무착륙 비행
무인 항공기로 개조 중..공격용 '군용 드론' 우려도
세계 일주 비행 중인 솔라임펄스2. 솔라임펄스 제공
사상 처음으로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세계 일주 비행에 성공했던 태양광비행기 솔라임펄스2가 ‘90일 무착륙 연속비행’ 항공기로 재탄생한다.
이 비행기는 스위스의 과학 모험가 집안 출신 베르트랑 피카르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완벽한 청정 에너지 비행기를 목표로 10여년에 걸쳐 개발한 비행기다. 솔라임펄스2는 가벼운 탄소섬유를 소재로 만들어 소형 오토바이 출력(15마력)만으로도 비행할 수 있다. 보잉747 동체 길이와 비슷한 72미터 길이의 날개 윗면이 1만7248개의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으며, 배터리가 비행기 무게의 4분의 1에 이른다.
피카르는 청정 에너지 캠페인의 하나로 이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까지 했다. 피카르는 다른 1명의 조종사와 함께 1인승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를 번갈아 조종하면서 세계 17개 도시를 중간 기착지로 1년4개월(2015년 3월~2016년 7월)에 걸쳐 4만3000km 세계 일주 비행을 완성했다. 그러나 재정 문제 등의 벽을 넘지 못하고 2019년 미국과 스페인 합작 무인항공기 개발기업인 스카이드웰러 에어로(Skydweller Aero)에 회사의 모든 자산과 특허를 매각했다.
스카이드웰러는 현재 솔라임펄스2에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추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악천후가 계속 이어질 경우를 대비해 비상용 수소연료전지도 장착할 예정이다.
업그레이드되는 솔라임펄스2 후속 비행기는 무인기다. 스카이드웰러 대표 로버트 밀러는 “솔라임펄스는 인간 조종사가 탑승했기 때문에 5일 단위로 끊어서 날아야 했다”며 “조종석을 없애고 무인기로 전환하면 비행시간을 훨씬 더 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한 장비도 최대 400kg까지 탑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 솔라임펄스 제공저궤도 위성통신보다 저렴한 5g 통신 서비스도 가능
업그레이드 작업은 미 해군의 지원 아래 진행되고 있다. 미 해군은 개발비로 5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하고 최근 스카이드웰러와 계약을 체결했다. 미 해군은 이 항공기가 완성되면 레이더, 카메라 장비 등을 탑재해 함선 감시나 호위용으로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솔라임펄스2의 순항 고도는 8700미터였지만, 스카이드웰러는 이보다 좀 더 높은 9100~1만3700미터에서 비행할 예정이다. 최대 비행 속도는 시속 185km. 스카이드웰러는 올해 안에 자동 이착륙과 시험비행을 한 뒤, 2단계로 장시간 체공 시험을 거쳐 ‘90일 연속 비행’에 도전한다.
스카이드웰러는 최초의 고객은 미 해군이지만, 초장기 비행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기반으로 저비용의 통신중계기 역할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밀러 대표는 “저궤도 위성 통신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5G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통신 부문이 가장 큰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뉴사이언티스트>에 말했다.
2016년 7월 세계 일주를 마치고 아부다비공항에 착륙한 베르트랑 피카르(오른쪽). 솔라임펄스 제공군용으로 쓰이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해명
그러나 일부에서는 청정에너지와 휴머니즘 기치를 내세운 피카르의 태양광비행기가 군용 항공기로 쓰이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스카이드웰러에는 이탈리아 방위산업체 레오나르도가 주요 주주로 참여해 있다.
이에 대해 피카르는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각 계약서에 솔라임펄스가 공격용 군용 드론으로 개조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다. 피카르는 현재 자신이 설립한 솔라임펄스재단을 통해 친환경 탈탄소화와 청정에너지 기술 개발 및 보급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 모험가 피카르 집안 3대. 왼쪽부터 1대 오귀스트, 2대 자크, 3대 베르트랑이다. 솔라임펄스, 위키피디아
그는 스위스가 자랑하는 과학 모험가 피카르 가문의 3대손이다. 만화 ‘땡땡이의 모험’ 모델이기도 한 할아버지 오귀스트 피카르는 1931년 세계 최초로 고도 16km 성층권을 비행했으며, 아버지 자크 피카르는 1960년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괌 동쪽 마리아나해구의 1만911미터 바닥을 세계 처음으로 탐험했다. 오귀스트가 성층권 여행을 위해 발명한 여압실은 유인 우주 탐험의 토대를 다졌다. 여압실은 고고도에서도 정상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상의 기압에 가깝게 공기 압력을 높인 공간을 말한다.
오귀스트의 쌍둥이 형제 장 피카르도 비행풍선 모험가로 그의 아내와 함께 플라스틱 비행풍선을 발명했다. 장의 아들 돈 피카르는 1963년 처음으로 열기구로 영국해협을 건넜다. 베르트랑 자신은 1999년 세계 처음으로 열기구를 타고 무착륙 세계 일주 비행을 하는 데 성공했다. 베르트랑은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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