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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의 홈스쿨링 10여년을 돌아보기
▶ 돌아보기 전에
초록 홈스쿨링! 블로그로 맺어진 인연으로부터 받은 청탁 글 주제다. 원래 글재주가 없어 블로깅도 부부가 함께, 그것도 사글세(?) 형식으로 한다^^ 당근 만땅 부담감에 짓눌릴 것이 뻔하니 거절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에 재능과 열정을 기부하시는 분의 권능에 짓눌려 가볍게 제안한 청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겠노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의 삶 자체가 초록이 아닌가! 도시를 벗어나 산골에 찾아들어간 이유가 아이 교육 때문이고, 그 블로그 안주인 아이디는 초록손이니까^^ 해서 부담을 끌어안고 자연 속에서 지속가능한 교육을 찾아 맨땅 헤딩 식으로 겪어왔던 지난 과정을 되돌아볼 계기로 삼았다. 돌이켜보면 무모한 일도 있었고 자랑스러운 일도, 창피한 일도 있었지만 뭔 대수랴? 차근차근 풀어가 보겠다^^ 부담을 주신 문상원님은 초록동화를 쓰고 계시던데 이 글은 초록수필이 될라나?^^;
다들 초록엔 친근하시겠지만 홈스쿨링은 낯설 듯도 싶다. 특히 학교에 애정을 가진 분들은 약간 불편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뭐 어쩌겠는가. 일부러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풍부한 교육적 경험이 담긴 호수에 콩돌 하나가 주는 잔 파장 정도로 보시면 될 듯 싶다.
▶ 아이 교육환경을 찾아서
우리 가족의 자연 속 홈스쿨링은 2002년 큰애 10살, 작은애 8살 때 도시를 떠나 강원도 산골로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집은 분당 언저리에 있었지만 교육적 열의가 훨씬 작은(!) 성남 구도시에 살았다. 그렇지만 성남 구도시 또한 교육한국의 땅인지라 남과 다른 교육이 어려웠다. 아파트 내 부모들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이유가 용감해서인지 무식해서인지 확인하려 들고, 한심해하면서 왜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를 가르치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뜬금없는 한 마디. 우리나라 평생교육의 최고 목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야 한다!(응?) 암튼, 동화(同化)되거나 이사해야 했다. 우리는 이사를 택했다.
여자가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한 지 2년, 남자가 샐러리맨이기를 포기한 지 5개월이 지난 즈음
익숙한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함께 낯선 산골마을로 들어왔다.
놀이터에 가도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우리 아이들의 친구를 찾아주고 싶어서
제동장치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 같은 도시가 무서워서
쓸 데가 많아 보다 많이 벌어야 하는 것이 싫어서
도시에서 머리 쓰는 것보다는 자연 속에서 몸 놀리는 게 좋아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 곳 방태산과 점봉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산골에 이사해서 만든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걸어둔 글이다. 지금 봐도 우리의 입장을 참 잘 표현한 것 같다^^ 물론 산골에 왔어도 같이 놀 친구는 없었고, 경제성 떨어지는 몸놀리기를 무한히 늘여갈 수 없었다는 등 생각했던 바와 다른 점은 많았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바람직한 교육은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도시에 있게 되면 아이들에게 자본주의의 소비유혹 한복판에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무한경쟁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에서는 자본주의의 소비유혹과 무한경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했고 삶과 통합된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물론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 때 잘 판단했다고 스스로를 쓰담쓰담하고 있다^^ 그로부터 10년을 훌쩍 넘은 시점에서 본 영화 ‘설국열차’에서 한사코 앞칸으로만 가려고 할 일이 아니라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주장은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입장이겠지만 한국교육에 대해서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 대학엔 꼭 가야 하나?
우리가 산골로 내려올 때 많은 이들이 우리의 행동에 놀랐던 걸 기억한다. 그들도 도시를 떠나고 싶어하긴 했으나 경제와 교육 때문에 도시를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비슷한 처지였지만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자본주의적 인간의 속성인 ‘구별짓기(남과 달라야), 따라하기(쳐지진 말아야), 의존하기(전문가에 맡겨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노동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둘째, 아이들을 굳이 대학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비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가지 이유 모두 이후에 입장을 바꿔야 했지만^^;
내려오자마자 홈스쿨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전학한 학교는 전교생이 열 댓명 정도의 산골분교였고 아이들이 학교다니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텔레비젼도 없고 컴퓨터는 통제된 상태이고, 산골분교에서는 공부에 짓눌리지 않고 산과 들 그리고 개울에서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들이 많아 교육적 압박감을 느낄 새가 없었을 것이다.
홈스쿨링은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시작했는데 우리의 교육 모토는 단순했다. ‘대학은 갈 필요가 없지만 배움은 필요해!’ 우리의 교육 방법도 간단했다. ‘책 읽고 토론하고 독서일기 쓰기. 밭일과 가사 함께 하고 생활일기 쓰기. 자막없이 영어 영상물 시청하기’
왜 독서인가? 책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으니 골고루 읽으면 될 것이고 말하기, 쓰기를 통해 생각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나면 웬만한 학교공부는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 왜 영어인가? 세상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아이들이 커서 외국어가 안돼서 스스로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서의 공부가 재미있는 것이지, 더 정확하게 이해시켜야 하고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문법, 단어, 시험 등을 통한 공부는 자발성이 생기지 않아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왜 밭일과 생활을 교육에 넣었는가? 우리는 신체를 사용하는 일체의 비자극적(소비유혹에서 독립적인) 행동을 몸공부라고 표현하는데 노작(勞作)교육과 거의 같다. 단지 대안학교와는 구별짓기하고 싶었다^^;; 특히 우리는 몸공부에 꽤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영육쌍전(靈肉雙全)이라고 정신과 육체는 함께 온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지식의 활용을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 하는데 신체단련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삶이 없는 지식의 추구, 즉 ‘모든 걸 다 해줄테니 넌 공부만 해’ 하는 것은 나중에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고 하는 비뚤어진 자식사랑이라고 본다.
▶ ‘학교너머’ 캠프를 가다
우리의 홈스쿨링은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온 식구가 함께하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졌다. 얼마간 새로운 방식에 대한 기대와 흥미 때문에 오손도손 지나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한 대로(!) 늘어짐과 외로움이 홈스쿨링의 핵심 난제로 찾아왔다. 부모가 채워주기엔 한계가 있어 난감한 일이긴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전국 홈스쿨러 네트워크인 학교너머가 늘어짐과 외로움을 없애주는 역할과 함께 늘어짐과 외로움을 더 느끼게 하는 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학교너머’에 대한 설명이 약간 필요할 듯 싶다. 우리가 홈스쿨링 시작 직전 즈음에 두세 명의 홈스쿨러의 제안이 발단이 되어 전국 홈스쿨러 대상으로 “우리는 학교에 안가요” 캠프가 제천 간디학교의 장소 및 행사 지원으로 열린 적이 있었다. 이후 이 캠프는 제천 간디학교의 주관으로 ‘학교너머’라는 이름으로 매달 모여 다양한 체험캠프로 정례화되었고 전국의 홈스쿨러들이 호응했다. 이후 3년 가까이 자전거로 제주도 반바퀴 돌기, 무인도에서 살아보기, 시골쥐 서울 싸돌아 다니기 등의 체험캠프와 연극, 춤, 영화제작 등의 감성캠프를 통해 홈스쿨링의 제약을 넘어 폭넓게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집단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 성격을 유지하기 어렵듯이 학교너머도 점차 변해갔다. 에효~-_-; 매달 모이면서 프로그램보다 익숙해진 또래모임에 집중하고, 공부를 중시하는 유형의 홈스쿨러부터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탈학교아이에까지 참가 대상을 넓히면서 자극과 소비유혹의 탐닉에 포획된 또래문화가 형성되어갔다. 참고로 학교 밖 아이들의 정체성 구분이 필요할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배움을 주로 찾는가(홈스쿨러) 아니면 자극과 일탈을 주로 찾는가(탈학교아이) 하는 점을 기준으로 한다.
학교너머 캠프가 매달 참가하는 아이들의 또래모임이 되어가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모임의 성격이 변해가기 시작한 이후 다시 우리의 고민은 깊어졌다. 캠프 참가기간은 길어야 사오일이지만 캠프 참가 후유증이 한달 내내 가곤 했다. 아이들은 이 때부터 집에 있을 때는 홈스쿨링 프로그램에 흥미를 잃고 심심해 했다. 강렬한 소비유혹과 자극 앞에서는 어떤 환경에 있든 교육적 자극은 관심을 끌 수 없었다. 학교너머로 인해 사회성과 역동성을 키울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학교너머가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 홈스쿨링 목표를 대학에 두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학교너머 캠프에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큰애는 캠프가 점점 이상해진다면서 기꺼이 받아들였고 작은애는 받아들이질 못하고 힘들어했지만 무시했다. 홈스쿨링 시작한 지 꼭 3년 만이다. 학교 나이로 큰애가 중3, 작은애가 중1을 끝마칠 즈음의 일이다.
읽는 흐름을 방해할 듯 싶지만 꼭 넣고 싶어서 잠깐....^^ 작은애의 입장을 고려해서 학교너머 불참 결정 시점 전후 상당 기간 동안 수시로 교환 홈스테이를 했다. 함께하고 싶은 아이를 초대해서 한동안 함께 공부하고 놀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그 집 초대를 받아 며칠씩 있다오곤 했다. 문화가 다른 가정에서 식구처럼 며칠을 생활하고 오면 가족 간의 소통방식, 의사결정 과정, 개개인의 힘든 점 들을 겪게 되는데 가족 간의 소통에 큰 힘이 된 것으로 기억한다.
홈스쿨링 3년 동안 집에서 프로그램에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일테면 3개월 동안 영어만 하기. 풀꽃대학 영어학과 학생이라는 역할을 주고 영어책 번역하기, 영어로 일기쓰기 등. 단기간의 주어진 명확하고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인지 잘 따라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 영어가 문화로 녹아들어간 것 같다. 어떤 때는 3개월 동안 책만 읽기도 했고, 3개월 동안 놀기도 했던가? 흙집을 지을 때는 집짓는 일만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엔 수시로 늘어지곤 했다. 명확한 장기 목표나 별다른 동기부여 요인 없기 때문에 홈스쿨링은 수시로 벽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너머와의 인연을 끊은 시점에서 장기 목표를 대학에 두기로 했다. 공부로 외로움을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큰애는 곧바로 호응했고 작은애는 마지못해 끌려왔다. 일단 많은 홈스쿨러가 그러하듯이 방송통신대를 염두에 두다가 놀러온 지인의 정보를 듣고 대학으로 방향을 돌려볼까 했다. 문제는 검정고시 외의 학과공부에 담을 쌓고 지냈는데 기초학력이 되느냐였다. 고등학생이 본다는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겨우 찾아(그 때는 대입 과정에 깜깜했으니까^^;) 풀려봤다. 국어, 영어 모두 3등급 수준!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학교에서 죽자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도대체 뭐한거야? 하는 생각도 들고.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독서와 영어를 통한 통합식(의미 이해하기 중심) 공부 효과라고 믿는다. 문법, 단어, 문제풀이 방식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지식을 외워야 하기 때문에 수고는 많아도 효과는 뒤질 수 밖에 없을테니까. 아뭏든 그 이후 공부 시간을 하루 네 시간, 여섯 시간 늘려갔다. 큰애는 수능보는 해엔 열 대여섯 시간까지 늘려서 공부했다.
작은애도 같은 방식으로 교과목 공부를 시켰는데 무지하게 공부를 싫어라 했다. 승부욕이 있는 아이라 혹시 학교가 맞지 않을까 싶어 홈스쿨링을 접고 비평준화 지역인 춘천의 상위권 고등학교에 지원케도 했다. 입학성적은 전체 10위권. 공부를 싫어하는 것에 비하면 그 성적도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 놀랐지만 이 또한 교과목 공부 시작하기 전까지의 독서와 영어의 통합식 교육 효과라고 믿는다(무한반복해서 죄송^^;) 한 달 뒤에 그만두겠다고 해서 학교 나들이라는 해프닝이 돼버렸지만^^;; 공부가 아닌 길을 함께 찾아보자고도 했는데 싫댄다. 공부해서 대학가고 싶다고는 하면서 공부하기를 피하는 이상한 형국이 한동안 계속됐다. 결국 공부 숨바꼭질하던 어느 순간 아이가 대학가기 싫다고 분명하게 표현했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결국 큰 아이는 수능시험에서 국영수 합해서 단 1문제 틀리고 사탐 4과목에서 1233등급을 얻어 원하는 대학엘 갔고, 작은애는 본인이 원한 대로 18세 때 서울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상을 체험하고 있다. 지난 홈스쿨링 과정을 통해 환경, 교육방법 등 여러가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같은 여건에서 너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걸 보면서 아이 개개인의 다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대량교육은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또한 공부같지 않아 보이는 통합식 교육이 공부같아 보이는 분절식 교육보다 아이를 괴롭히지 않고도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또?)
뜬금없는(?) 얘기 한마당! 우리의 입장이 ‘대학 갈 필요 없다’에서 ‘대학에 가자’는 입장으로 바뀌었는데 학비 부담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큰애는 4년전액 장학생이라서, 작은애는 대학에 가래도 싫다 해서다. 당초 산골에 들어올 때 의도했던 것과는 교육 뿐만 아니라 경제 면에서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도시에서 사업에 실패한 것 만큼이나 힘들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물론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삶은 우발성으로 이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대학, 직장, 결혼, 집, 친구.... 뭐 하나 우발적이지 않은 것이 있던가? 삭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그래서 대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지금을 사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20대에 30대를 대비하고, 30대엔 40대를 대비하고, 40대엔 50대를 대비한다. 늘 미래를 대비한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십니까? 지금 누굴 가르치겠다고 뎀비는 것 절대 아니다^^; 내 유형이 지독하게(?) 책임감 있고 성실한, 50대라서 그렇다! 두어 번 삶의 변곡점을 우발적으로 틀어보긴 했지만^^
미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 통치성’은 건강.안전.복지를 보장받으려는 개인.집단의 자유로운 행동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엔 획일화된 ‘경제적 인간’을 만들어내는 지식체계가 권력집단과 함께 핵심 구실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새로운 질서, 즉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가 교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경쟁을 중심으로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독트린이 아니라 인구의 수 만큼 존재해야 할 삶의 양식을 ‘경제적 인간’ 딱 하나로 획일화하는 통치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삶의 지향점을 미래의 불확실성에 두면 둘수록 ‘경제적 인간’ 하나로 획일화되어 경쟁에 스스로 매몰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되겠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무한경쟁 한국교육의 근원적 모순이 신자유주의에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서다. 사교육이 두려움에 기대어 크듯이 학교교육이 두려움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스카이’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 크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문제인데, 게다가 그것이 자기 탓이라며 자괴(自愧도 맞고 自壞도 맞다!)까지 하도록 만드니 말이다.
▶ 그룹 홈스쿨링으로 확장하다
그룹 홈스쿨링은 홈스쿨링 목표를 대학으로 설정했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홈스테이 형식으로 며칠씩 있다가곤 하다가 공부가 필요하거나, 소비욕망의 차단이 필요한 홈스쿨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위탁 홈스쿨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몇 명으로 늘어나자 적절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점차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 거니까.
그룹 홈스쿨링에 합류한 아이들은 아이에게서 어느 정도 무력감과 도피 행동을 확인한 맞벌이 부모에 의한 경우가 많다. 또한 아이 부모는 학교의 문제점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아이를 학교에서 나오게 하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가? 아이 부모 태반이 학교 선생님이다^^; 아이러니인가? 아니면 당연한 현상인가?
그룹 홈스쿨링 프로그램은 소비욕망과 자극이 차단된 환경에서 몸공부와 독서, 말하고 쓰기, 각자 공부하고 싶은 학과목을 스스로 정하고 자기가 짠 학습계획대로 공부하기, 여러가지 체험 등이다. 교재 난이도는 나이와 전혀 상관이 없다. 어떤 아이는 과목에 따라서 자기보다 서너 살 어린 아이가 해야 할 단계의 교재를 한다. 기초가 안된 아이에게 자기 나이 수준의 교재를 하라는 건 외계어를 번역시켜 놓고 집중하지 못한다고 구박하는 것과 어찌 다를까? 이해 정도를 인터뷰 방식으로 측정해서 부족하다 싶으면 진도를 멈추고 보완하라고 요구한다. 어떤 아이는 기타배우기를, 어떠 아이는 절반 이상이 독서로, 어떤 아이는 운동을 시간표에 넣기도 한다.
우리는 학교가 교육적으로 생산적일 수 없는 주된 이유가 흥미도 없는 것을 단지 지금의 단계에서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하라던가, 기초 부실로 교재를 이해할 수도 없는데 집중을 요구한다던가, 서로 상관관계도 알 수 없는 여러가지 파편화된 지식들을 외워야 한다고 한다던가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대학을 목표로 하지 않았을 때 삶과 연결되어 있는, 가장 완전한 스토리 중심의 통합적인 교육을 했다고 판단한다. 솔직히 어떤 성과를 구체적으로 기대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단지 소박한 목표가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지금은 개인별로 원하는 목표-십중팔구는 대학이다-에 맞춰 도와준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책임감과 무언의 기대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수시로 느낀다. 이 때문에 전보다 더 아이 개개인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데, 이때 학교를 닮아가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고는 역설적으로 교육적 성과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처음 온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해?’, ‘뭘 느껴?’ 등의 질문을 놀라울 정도로 힘들어한다. 대부분 ‘모르겠어요.’다. 학교에 다니면서 생각하는 연습도, 생각할 힘도,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학교 당국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단지 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다수 아이들의 교육적 성과가 오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학부모가 아니라 ‘시장’이라고 표현한 점이 거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업이, 대학이, 학부모가 요구하는 것이 학교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춰 굴러가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교 교육은 신성한 것이고 공급이 수요를 찾는 자본주의 운영원리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학교신화일 것이다.
▶ 돌아보고 나서
버겁지만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내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느낌이 들지만 어쩌랴. 내 아이가 동물이 되어가는데! 그러기 위해서 교육은 자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혹시 형법에 소비유혹이 아이를 오염시키면 중대범죄라는 조항을 넣을 수 있다면 도시도 괜찮다. 근데.... 전국민의 도시인구 비율이 91% 수준이라는데....쩝!
자연은 인간의 본성을 깨워준다고 믿는다. 녹색을 보면 저절로 평온해지듯이 말이다. 자연에서는 통합적 교육이 더 쉽다고 믿는다.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잠깐잠깐 만나는 게 아니라 주욱 이어서 체험하는 것과 과학 책에서 외떡잎-한잎뾰족싹-수염뿌리-나란이맥-옥수수의 과정을 외워야 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열심히 외워도 되겠지만 수염뿌리나 나란이맥 근처에서 흐름이 끊어져 옥수수와 외떡잎을 연결하지 못할 우려는 상존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자본주의가 부모의 권능을 무력화시키고 아이들을 포획하는 절대신공, 소비유혹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하는 방식의 영어 공부는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사실 흔한 엄마표 영어공부 방식이다. 다른 대부분의 공부 방식과 그 성과가 좋고 나쁠 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뚜렷한 성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집 주변에서 가장 자극적인(!) 것이 위씽, 애니메이션 등이었다. 집에 텔레비젼도 없지만 집 밖에 네온싸인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유혹을 자극하고 전파하는 또래집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한국에서 대안교육의 제일 큰 문제점은 입시관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원래는 문제점이 아닌데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다양성이 아니라 줄세우기다 보니 문제점이 된 것이지만. 입시관문은 홈스쿨링도 피할 수 없다. 학교 안에서는 대다수가 경쟁에 치여 공부에 흥미를 잃고 무력감에 빠져 극도로 수동적이거나 자극을 찾아 도피하다보니 그렇게도 학교, 학부모, 학원이 애를 써도 대입 관문에서 원하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 밖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에 심취해 있다가 어느날 대학교를 향한 길 말고는 어떤 길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입 관문을 기웃거려보나 그제서야 많이 늦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멘붕에 빠진다.
학교에 있어도 문제지만 대안교육 판에 있더라도 문제다. 수시로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묻고 대비를 해야 한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서서히 준비해서 보편적인 통과의례를 거치거나, 극단적인 이야기로 비칠 수 있겠지만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아나키스트가 되거나,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지식기반의 정보화사회에서 자기 방식의 공부를 통해 자기 방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혼자만의 길이라고 외로워하지 않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리지만 않는다면 참 멋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스마트폰, 게임, 성문화, 경쟁, 획일적인 목표, 쓰나미보다 거대한 공부량.... 사람을 쳇바퀴 도는 다람쥐로 만드는 망할 놈의 신자유주의.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어 무뇌아로 만드는 망할 놈의 자본주의. 하지만 어쩌랴.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이유는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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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 또한 학교에 가지않고 여기 결정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생각해? 뭘느껴? 등과같은 물음에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럼 물음에 모르겠다고 대답하는게 없는거 같아요 아줌마 아저씨가 보기엔 아닐수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냐~느껴~^^
어떨 때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어떨 때는 참 쉽게 되기도 해~ 맘 먹기에 따라서 말야~
잘 하고 있는거야^^
아저씨의 홈스쿨링 일기를 보며, 아저씨와 홈스쿨링을 하며 가끔은 저도 커서 저렇게 사회에 탈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워 엄두가 안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상하며 흐뭇하기도 해요 ㅋㅋ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시대에는 무한 경쟁이 아니라 다양성 추구라는 것이 트렌드가 될 것을 기대해봅니다~
무한경쟁에 촛점을 맞추면 온 세상이 정신없이 질주해서 가만있다간 큰일날 것 같고,
다양성에 촛점을 맞추면 온 세상에 매력적인 사람들 뿐이지. 물론 너도 그 중 하나일테고 말야~
어떻게 살래?^^
이 글을 통해서 학교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제가 변헐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하기와 자극적인 것의 차단이라고 생각해요 ㅎㅎ
자기 나이에 맞는 것이 아니라 파인 지식의 홈을 채워주는게 더 공부에 효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좀 나이에 안 맞게 벌어지고 있으니까 얼른 얼른 분발해야 겠네요
요새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귀한 경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홈스쿨시작하면 처음 한 두해는 책과 어학만 하려던 제 생각과 비슷해서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드네요 ㅎㅎ 글을 읽으며 미리 저희의 홈스쿨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급하지 않게 시작하시는 듯 해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사실 급할 게 없는게 맞지요~
학교에서는 저절로 서둘게 되는데 막상 아이 성장에 보탬되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진짜 길고 깊은 역사가 있었네요....저도 그 중간에 있어다는 것도 신기하기도하고...
아직 좀 남아있지만 여기있던 날들을 돌아보면 그룹 홈스쿨링을 했다는게 참 뿌듯해요.학교에 있었으면 어떻게 됬을까 생각해보면 지금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너도 풀꽃의 현재의 역사야. 시간이 흐르면 어떤 입장으로든지 되새겨봐야 할.
어떤 입장으로 보게 될 지 나도 궁금해진다. 나도 늘 같은 입장이 아니거든....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지금은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나이라 어쩔 수 없는거지만.. 저도 경쟁에서 벗어나있는, 여기서 경험하게된 즐거운 공부를 나중에 또 계속 하고싶어요.
밖을 향하면 경쟁이 보이고, 안을 향하면 자기가 보이지.
경쟁에 치우치면 쉬이 피곤해지는데, 나를 키워가는 과정에 집중하면. 고거고거 생각보다 쏠쏠한 재미가 있단다~^^
10년 동안의 홈스쿨링 노하우가 묻어나오는 글입니다.
철학을 전공하셨나요? 왠지 글에서 홈스쿨링에 대한 철학적 메세지가 물씬 풍겨나시네요..
ㅎㅎ 전혀 아닙니다~^^
철학 맛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