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억하기 조차 싫은 대구지하철 참사. 사람들에게는 서서히 잊혀져 가는 이 ‘사건’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있다. 이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또 있다. 지하철 기관사들이다. ‘가해자’가 된 대구지하철의 기관사들만이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의 지하철 기관사들은 여전히 당시의 끔찍한 사건을 뇌리 속에 떠올리면서 열차의 운전실에 오르고 있다.
왜 이들은 운전실에 오르며 불안에 떨고 있을까. 기관사들은 “1인승무제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규모 승객 수송 수단인 지하철이 단 한 명이 운전, 통제한다는 사실은 대구지하철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혔음에도, 서울의 1~4호선을 제외한 서울(5~8호선), 대구, 부산, 인천의 전 노선은 여전히 ‘1인승무제’를 고수하고 있다.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와 달리 도시철도공사(5~8호선), 분당선, 인천, 대구, 광주, 부산지하철이 적용하고 있는 1인승무제는 맨 뒤 운전실에 ‘차장’이 없는 제도다. 오직 ‘기관사’ 한 명이 운전을 하고, 3000여명에 가까운 출퇴근길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각종 우발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모든 국민을 슬픔과 충격에 몰아넣었던 대형참사를 겪고도 ‘1인승무제’가 철회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자치단체들이 내세우는 것은 ‘경영효율성’이다.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2인 승무를 하게 될 경우 800억원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게 공사측의 설명이다. 공사측은 “모든 전동차가 자동화돼 있어 1인승무제는 전혀 우려할 내용이 없다”고 못박는다. 그러나 기관사들은 “전동차 운전실에 올라 보라”고 말한다. 어둡고 긴 터널을 혼자서 운행하면서 승객의 안전도 돌보아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부담이 어떤 가를…
지난해 서울도시철도의 두 기관사가 죽었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한 사람은 지하철 터널을 헤매다 열차에 치어 숨졌고, 다른 한 사람은 고향 앞바다에서 자살했다. 기관사들은 두 사람의 최후가 1인승무제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입사 당시엔 멀쩡했던 사람들이 왜 정신질환에 걸려 있는 지는 지하철에 타보면 안다”고. | 어마머마한 대형참사의 원인이 1인승무제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기관사들. 여전히 1인승무를 고집하는 대한민국 지하철의 안전성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도시철도공사노조의 협조를 얻어 전동차 운전실에 오를 수 있었다. 지난해 연말 12월 26일 저녁 퇴근길 무렵, 8년차 베테랑급 이연수 기관사(33)와 함께 ‘1인승무’를 체험키 위해 운전실에 올랐다.
“이번 코스는 답십리에서 방화를 찍고, 다시 답십리까지 돌아오는 약 2시간 코스입니다” 이연수 기관사와 경험한 운전실에서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비좁은 운전실에서 출렁이는 달걀 노른자처럼 느껴졌던 불편함, 확 트인 유리창 너머로 끊임 없이 이어지는 마치 블랙홀 같은 어둠의 터널…. 당초 2~3일 간 연속체험을 기획했지만, 갑작스레 피치 못할 사정이 불거지면서 당초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2시간의 승무, 수박 겉핥기가 될 지 모른다는 진한 아쉬움 탓에 더욱 더 눈을 부릅떠야 했다. 그리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Scene #1
“운전에 임해 조금 시간이 지나면 눈물이 자꾸 나죠. 어두운 터널 안에서 계속 불나방처럼 덤벼드는 불빛 때문이 눈이 쉬이 피곤해지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역간 구간에서 눈을 감고 있을 수는 없겠죠? 터널 내 사고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라고 이 기관사는 말한다.
적어도 운전실에 들어와서 교대하는 순간까지 몸을 비롯, 마음의 눈까지 바짝 뜨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교대
한 손엔 빼곡히 운행 시각이 적혀있는 ‘다이아’(Diagram-열차 운행계획을 정리한 테이블)를, 다른 손엔 가방을…. 간혹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전동차 진행방향 맨 앞에 이런 모습의 사람이 보인다면 그는 분명 승무원인 기관사일 것이다. 전동차가 멈춰서고 비좁은 쪽문을 열고 운전실로 들어간다면 더욱 틀림 없다.
그들은 교대할 전동차가 승강장에 진입하기 대략 10분 전쯤부터 그 곳에서 기다린다. 그 전동차를 타지 못하는 ‘결승’(缺乘)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이는 대형사고다. 전 근무자가 기약 없이 자신의 근무를 대신해 계속 운전하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우 한 사람이 무려 7시간 가까이 운전할 수도 있다.
몇 번의 결승사고는 동료들 사이에 안좋은 평판이 생겨 조심해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결승사고 경험이 있을 거에요. 아무래도 사람이 시계처럼 정확하기는 힘들죠”라며 이 기관사 역시 자신도 사고를 내기도, 당해보기도 했다고 전한다.
일단 교대 후 다음 교대까지 계속 운전실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기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갑작스런 생리현상이다.
“언젠가는 신문지를 이용해 운전실 안에서 용변을 처리했죠. 간혹 동료들 중에는 역내 정차시, 승객이 타고 내리는 순간 동안 잠시 선로에서 소변을 해결하기도 해요” 덕분에 '술 자리가 있어도 다음날 근무를 생각하면 꺼리게 된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상황모니터’, 맨 위에는 현재 시각과 날짜가 계속 갱신되며 나온다. 그 밑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현재 열차의 운행 시각 정보가 줄줄이 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다이아’와 비교해 보면서 매 정차 역 마다 시각을 점검하고, 필요에 따라 운행시간과 간격을 조절해야 한다.
기관사로서 운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머리 속에는 자명종, 심장 안에는 시계추를 품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쉼 없는 심장박동처럼 시계추는 끊임 없이 돌아가야 하고, 근무 교대와 우발사고 등 결정적인 순간들에 강렬한 자명종을 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명종'이 기능을 못하면 결과는 자칫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교대 시각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시계를 보고, 운행 중에는 운행 간격을 위해 시간을 점검하며, 우발사고에도 10분 이상 지연되면 문책이 있기 때문에 시계를 이마에 붙여도 모자란 게 현실이죠”
말하지 못하는 고통
혼잣말을 하지 않는 이상, 운전실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화는 ‘사령과 통화하는 것’이다. 종합사령실의 운전사령도 결코 여유가 없다. 운행중인 각 전동차의 기관사와 전부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한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사고 등 일이 있을 때, 불시점검 등을 제외하면 특별한 통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운전사령과 단 한 번의 통화도 없을 때가 많다.
기자가 체험한 2시간 여 동안에도 딱 한 번 사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령과 통화하는 것이 간혹 크나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FTX'라는 훈련이 바로 그것. 기관사는 돌발적으로 발행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 그 조치들을 줄줄이 외워서 대답해야 한다. 인사고과에도 반영됐었기에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자동모드도 실수한다?
운행 중 이 기관사의 오른손은 마치 마우스를 쥔 컴퓨터 사용자처럼 늘 운전대에 위치해 있었다. ‘자동운전’ 모드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게 이 기관사의 설명이다.
자동운전을 할 경우, 기관사가 물리적으로 직접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운전실에 오른 뒤 운전석에 앉고, 버튼을 누르면 출발한다. 자동으로 전동차는 다시 멈춰서고, 또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기관사는 반사경을 통해 승강장을 확인하고, 질서 유지 후 수동으로 문을 닫는다. 그 뒤 다시 출발 버튼을 누른다. 이게 끝이다.
하지만 ‘자동화’에 대한 맹신은 당혹스럽게 순간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정차할 역에 서지 않고 승강장을 지나치는 ‘오버런’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연수 기관사도 이미 몇 번 겪은 일이다. 그때 마다 다행히 대형사고는 면했지만 아찔할 뿐이다.
“네 개 동그란 게이지 중 상위 왼쪽이 브레이크 게이지죠. 즉, 승강장에 진입하기 전, 게이지를 주시하다가 진입하는 동안 게이지 내 바늘이 안 움직이면 자동모드 오류라고 판단, 즉각 운전대를 잡은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요.” 조금이라도 운전대를 움직이는 순간 자동모드는 깨지고 2번째로 강한 강도의 급제동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눈 깜작할 사이에 차량 2~3칸이 승강장을 지나치기도 한다”는 게 자동모드다. 더구나 출퇴근 상황이나 혼잡한 역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뒷감당을 하기가 곤란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Scene #2
‘빵빵, 깜빡깜빡’, 기관사는 왼발 두 번, 오른발 두 번 뭔가를 밟았다. 운전석 바로 앞에는 페달이 두 개가 있었고, 왼쪽이 경적, 오른쪽이 헤드라이트라는 것. 웬만큼 사람이 모여있는 역이면 경적과 헤드라이트는 습관적으로 행한다. 승강장 진, 출입은 그만큼 기관사에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특히 지난해는 전년에 비해 50%이상 지하철 선로에 뛰어든 사람들이 증가했다. 무작정 뛰어드는 자살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선로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들만 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 놀라기” 십상이다.
“곡선 승강장은 더 당혹스럽다. 선로에서 30 cm 정도 거리면 직선 승강장에 비해 훨씬 위험하게, 가깝게 선로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이러니는 승객과 기관사의 안전을 위해 울리는 경적소리가 노동부 기준인 사업장 내 80dB을 넘는 85dB정도라는 것. 게다가 굉음에 가까운 제동소음이 더해져 기관사들의 청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기관사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큰 편이죠. 운전 경력이 쌓일수록 그냥 그렇게 돼요” 취재 중 한 차례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이 기관사가 갑자기 심하게 경적을 울려대는 것이었다. 19시 55분경, 영등포시장역에 진입하기 바로 직전 한 청년이 반대편 선로로 내려와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 이 역은 마침 지난달 한 건의 사망사고가 있었던 곳이어서 더 가슴을 쓸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경우가 한 번도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리는 이 기관사. 사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쪽은 기자였다. “자살하려 선로에 뛰어내리던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에는 정신적 충격이 정말 오래간다”며 자신은 아직 그런 상황까진 없었다는 설명도 담담하게 해줬다.
잘 안 보이는 CCTV
‘출입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수동으로 닫는 것이 현재 운행 원칙’이라고 이 기관사는 말한다. 출입문 개폐 모드는 세가지로 자동-자동, 자동-수동, 수동-수동이 있다.
일단 승강장에 도착해 자동으로 문이 열리면 그 때부터 ‘승객과 전쟁’에 돌입한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분들이 꽤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시간대가 그나마 분산되는 퇴근 시간은 좀 덜한 반면, 출근 시간에는 기관사들도 정말 고역이라고. ‘꼭 타고야 말겠다’고 밀려드는 출근 인파에 비해 탈 수 있는 공간은 한정돼 있고, ‘러시 아워’에 더 좁아진 운행간격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정신 없는 건 오로지 기관사 뿐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과 달리 차장도 없이, 홀로 CCTV를 보며 그 혼잡한 상황을 다 알고 통제한다는 것은 힘들다. 평소 “출근시간대 안전요원으로 지원 나온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이 오히려 CCTV나 시야를 가릴 때도 있다”고도 한다.
현재 도시철도공사 역내 CCTV는 2개에서 4개 사이다. 직선 승강장에는 주로 2개, 곡선이 심한 승강장이면 4개, 그 중간 정도의 곳에는 3개가 설치돼 있다.
“가끔 CCTV 화질에 문제가 있거나, CCTV 카메라 각도가 틀어져 있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땐 더욱 당황스럽죠”. 물론, 그와 같은 상황은 종합사령실에 곧 보고하고 이후 조치가 되긴 한다.
“5호선 내 칼라 CCTV는 종로3가역과 군자역에만 설치가 돼 있죠. 아무래도 흑백CCTV로 보면 잘 구분이 안 되거든요.”라며 이 기관사는 안타까워했다.
출발을 위해
기관사의 손이 올려진 곳은 차내방송 버튼이다. ‘지금 열차가 출발할 예정이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한걸음 물러서 주시길 바랍니다’ 등 익숙한 내용을 송출하는 버튼인 것.
고분고분 안내방송에 따르지 않는 것이 우리네 문화 아닌가. 자동 안내방송으로 해결이 힘들 땐 급기야 기관사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십상이다. 이제야 그 육성음의 실체를 알게되니, 공연히 옆에 있는 기관사에게 미안해 진다.
“열차가 혼잡하오니, 다음 열차를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또는 “열차 출입문 닫습니다” 등.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이 기관사는 자주 창문을 열어 놓았다. “운전실에 다른 환풍 시설이 없죠. 가끔 이렇게 열어주지 않으면 환기가 안 돼서 덥기도 하고, 목이 더 칼칼한 것 같기도 해서요”
에필로그
짧지만 길었던 2시간 여 동안의 낯선 여행이 끝났다. 지하철 승객이 아닌 기관사와 동승했던 운전실에서의 추억은 낯설었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영등포시장역에서 있었던 ‘사건’때문에 철렁했던 가슴은 지금도 작은 후유증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탈 때면 당시 긴박했던 현장 모습과 이 기관사의 당황스러하던 표정이 환영으로 되살아 난다.
지하철은 항공교통처럼 위험요소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승객수는 거의 10배에 가깝다. 기장 격인 기관사 개인에게 주어진 잡무와 책임도 많다. 그럼에도 지하철의 기장은 단 한 명이다.
경영효율성, 외면하기 힘든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이 무엇인가. 승객을 제 시간 안에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 아닌가. 최소한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전동차 뒤에서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눈’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까.
승객이 문틈에 끼었는지 미처 확인하지도 못한 채 출발할 수밖에 없고, 사고라도 터지면 사고 장소까지 최장 160여 미터를 뛰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어두운 터널 속을 오가야 하는 '외로운 기관사'를 경영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야 하는 현실은 과연 옳은 것인가.
“고위층들은 웬만해선 지하철을 안 탄다고 하더군요. 지하 터널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꼼짝할 수가 없다나요?” 기관사들의 말이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는 2시간의 승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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