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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AME TO SEEK AND SAVE THE LOST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Luke
누가복음
Key Verse:
요절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what was lost.”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Twenty-six years ago, a strange man from
26년전, 낮선 한국사람 한분이 저희 집에 왔습니다.
He wanted to bring me to a Sunday worship service, but I didn’t want to go.
그분은 저를 주일예배에 데려가고자 하였지만, 저는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So I hid in my basement.
그래서 저는 집 지하에 숨었습니다
After waiting for ten minutes, he gave up and left.
한 10여분 기다리던 그는 곧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But Jesus was there too. Jesus kept standing at the door, waiting and knocking.
하지만 예수님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문앞에 서서 저를 기다리고 또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The next Sunday, that man came back, and I came up from the basement.
그 다음 주일, 그 분은 저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저는 지하에서 올라왔습니다.
I opened the door, went to worship service, and heard a message about God’s love.
저는 문을 열고 주일예배에 나갔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Now I stand before all of you to speak about God’s love.
지금은 제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What if I had stayed in the basement?
만일 제가 계속 지하에 숨어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If I had refused Christ’s invitation, where would I be today?
만일 제가 그리스도의 초청을 거절하였다면, 지금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Perhaps I would still be a college professor.
아마 저는 여전히 교수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Perhaps I would be living in a better house than the one I live in today.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좀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Perhaps I would be driving a nicer car than the one I drive today.
어쩌면 지금 제가 몰고 있는 차보다 좀 더 좋은 차를 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I might have become a decent man with a decent life and a decent wife.
고상한 삶을 살고 고상한 아내를 가진 고상한 남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됩니다.
But there is something I would lack.
그러나 한가지가 빠져 있을 것입니다.
I would not have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바로 예수님과 저와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을 것입니다.
I would not know God’s personal love for me.
예수님의 저에 대한 사랑도 알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And I would not be participating in this glorious work of sharing God’s love with students throughout the world.
그리고 전세계 학생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이 영광스러운 역사에 동참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Today’s Bible passage is not only about Zacchaeus.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단지 삭게오에 관한 것만은 아닙니다.
It’s about me and you.
이는 저와 여러분에 관한 것입니다.
It’s about Jesus who is seeking every person who bears the image of God.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든 사람을 찾고 계시는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what was lost.”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Part 1: “He wanted to see who Jesus was” (1-4).
Part 1: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기 원하였습니다” (1-4).
Jesus was not going to stay in
예수님은 여리고에서 오래 머물 예정이 아니셨습니다 (1)
He was just passing through on his way up to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를 위해 자신을 드리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에 이곳을 지나고 계셨습니다.
But first there was someone he needed to see.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만나보아야 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Look at verse 2: “A man was there by the name of Zacchaeus; he was a chief tax collector and was wealthy.”
2절을 보십시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Taxes are a fact of life.
세금은 누구든지 내야 합니다.
But woe to the person who must collect them!
그러나 세금을 걷는 사람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Jewish people had to pay head tax, poll tax, income tax, customs tax, bridge tax, road tax and axle tax.
유대인들은 인두세, 수입세, 관세, 교량세, 도로세 그리고 차량세를 내야 했습니다.
Tax collectors could approach them at any time, write up a tax bill and demand to be paid instantly.
세리들은 아무 때나 접근하여 세금 고지서를 발행하고 즉각적으로 내도록 요구하였습니다.
Some of the money went to the tax collector.
세금의 일부는 자신들의 몫이었습니다.
Some went to the Roman army.
일부는 로마군에게 돌아가고
Some supported the outrageous lifestyle of Caesar.
다른 일부는 로마황제의 향락적인 생활을 위해 쓰였습니다.
And some went to the welfare state, which offered free bread and circuses to residents of
또 다른 일부는 로마시민들에게 제공되는 무료 빵, 써커스와 같은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When people saw their hard earned money being squandered, they vented their frustration by hating the tax collector.
유대인들이 자신의 피땀흘려 번 돈이 이렇게 낭비되는 것을 볼때, 그들은 세리들을 미워함으로 자신들의 좌절을 분출했습니다.
Tax collectors became the untouchables, in the same category as public sinners and prostitutes (Mt
세리들은 죄인들이나 창기들과 같은 상대치 못할 자들이 되었습니다(마
Zacchaeus was a chief tax collector.
삭게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He had talent for taking people’s money.
그는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재능을 지녔습니다
Was collecting taxes his “dream job”?
그러면 세금을 걷는 것이 그가 “정말 바라는 직업”이었을까요?
I doubt it. Perhaps he majored in classic literature.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고전 문학을 전공했을 것입니다.
But how many jobs are there in classic literature?
하지만 고전문학을 전공한 후 어떤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He needed to pay off his student loans.
그는 학자금 융자를 갚아야 했습니다.
So he applied for work at the Roman tax office.
그래서 그는 로마 세무서에서 일하고자 지원했습니다.
When people asked him, “What do you do for a living?” he said, “I’m a federal revenue subcontractor.”
사람들이 “직업이 무엇이죠?” 라고 물을 때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저는 연방 정부 수익 하청업자입니다”
His job paid a good salary and benefits.
그의 직업은 그에게 좋은 수입과 유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But Zacchaeus had to work long hours.
하지만 삭개오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습니다.
He rarely saw his wife and children.
아내와 자식들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And he had to squeeze money from suffering people.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쥐어짜내야 했습니다.
If they could not pay, he would garnish their wages and foreclose on their homes.
그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면, 그들의 급여를 압류하고 그들의 집을 차압하였습니다.
He said, “I’m just doing my job.”
그는 “난 단지 내 직무를 다할 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Little by little, he lost his compassion.
조금씩 조금씩 그는 동정심을 잃어갔습니다.
Little by little, he gave up his humanity.
조금씩 조금씩, 인간성마져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Slowly and surely, Zacchaeus became a person he never wanted to be.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삭개오는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Zacchaeus sacrificed his dreams, his conscience and his reputation to make money.
삭개오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꿈과 양심, 그리고 명예를 희생하였습니다.
But today he was interested in something else.
그런 그가 오늘은 돈 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Look at verse 3: “He wanted to see who Jesus was, but being a short man he could not, because of the crowd.”
3절을 보십시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Who was Jesus?
예수님이 누구신가?
That is the burning question of all time.
이것은 항상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Some said he is a prophet (Mk
어떤 이는 그를 선지자라고 했습니다(마11:28).
Some called him Christ (Jn
어떤이는 그를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요
Some said, “He is a good m an.”
또 어떤이는 “그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Others said, “No, he deceives the people” (Jn
또 다른 어떤이는 말했습니다. “아니야, 그는 사람을 잘 속이는 자야”(요7:12).
Jesus was said to heal the sick.
한편, 어떤이는 그를 치유자라고 했습니다.
And some called him “a friend of tax collectors and sinners” (Lk
또 어떤이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했습니다(눅
To Zacchaeus, that last rumor was most intriguing.
삭개오에게는 그 마지막 소문이 가장 솔깃하였습니다.
Zacchaeus was desperately lonely.
삭개오는 참으로 외로웠습니다.
No one wanted to be his friend.
아무도 그의 친구가 되려하지 않았습니다.
Who was this Jesus who became a friend of sinners and tax collectors?
죄인들과 세리의 친구라는 이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신가?
This was a man he just had to see.
삭게오는 그 예수님을 꼭 보아야 했습니다.
So he closed up the tax office and went to see Jesus.
그래서 그는 세무서를 닫고 예수님을 보러 갔습니다.
But there was a problem.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Zacchaeus was “vertically challenged.”
삭개오는 “높이의 장벽”에 부딫혔습니다.
He couldn’t see anything because everyone else was taller.
모든 사람들이 자기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In a better world, followers of Jesus would have made way.
이상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그에게 길을 내어 주어야 했습니다.
They would have found a lost sheep like Zacchaeus and brought him to Jesus.
그들은 삭개오와 같이 잃어버린 양을 발견하였다면 마땅히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But in the real world, people were preoccupied with their own problems and inadvertently kept others from seeing Jesus.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사로잡혀 고의가 아니게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This is still happening today.
오늘날도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In this postmodern generation, young people are hungry for spiritual truth.
이 포스트모던 세대에도 젊은 이들은 영적 진리를 갈망합니다.
But they are turned off by organized religion.
그러나 그들은 종교에 식상하여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They don’t like “this church” or “that ministry.”
그들은 “이 교회” 또는 “저런 사역”을 싫어합니다.
They want to see who Jesus is.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보기 원합니다.
But the followers of Jesus sometimes prevent them from approaching by their peculiar habits and culture.
그러나 때때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자신들의 독특한 관습과 문화로 인해 그들이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Instead of showing Jesus to the world, Christians selfishly reveal themselves and keep Jesus hidden.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기 보다 자신들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가리우는 이기적인 신자들도 있습니다.
For Zacchaeus, however, the biggest obstacles were on the inside.
그러나 삭개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Part of him desperately wanted to see Jesus, but little voices in his head told him to stay away.
그는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절실히 보기 원하였지만, 그의 머리에는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라는 조그만 속삭임들이 있었습니다.
The voice of pride: “You don’t need help. You’re not a loser.”
자존심의 음성이 속삭였습니다. “너는 도움이 필요 없어. 너는 패배자가 아니야.”
The voice of shame: “Jesus doesn’t want you. Nobody wants you.” 수치심의 음성도 속삭습니니다.“예수님은 너를 원하지 않아. 누구도 너를 원하지 않아.”
The voice of sinful desire: “Jesus will take away your fun.”
죄의 소욕의 음성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너의 인생의 재미를 앗아갈 거야.”
And worst of all, procrastination: “Go and see Jesus tomorrow.”
무엇보다 다음으로 미루는 음성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 예수님은 내일 보지 뭐.”
That is the worst voice of all.
이것이 가장 최악의 음성입니다.
Tomorrow doesn’t exist.
내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It will never be tomorrow.
내일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That’s why the Bible says,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2Co
때문에 성경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2Co
Despite all the obstacles, Zacchaeus he was not deterred.
이러한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는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Verse 4 says: “So he ran ahead and climbed a sycamore-fig tree to see him, since Jesus was coming that way.”
4절은 말합니다.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In the 1980’s, there was a popular TV show called MacGyver.
1980년대에 맥가이버라는 인기 TV쇼가 있었습니다.
MacGyver was a government agent.
맥가이버는 정부 관리였습니다.
His only tools were a Swiss army knife and a roll of duct tape.
그에게 도구라고는 스위스제 군용칼과 공업용 테이프가 전부였습니다.
In every episode, MacGyver defeated the bad guys and saved the world using his knife and duct tape.
모든 이야기에서 맥가이버는 그 칼과 공업용 테이프로 악당들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원하였습니다.
If Zacchaeus had duct tape, he could have put up a barricade—“Police Line: Do Not Cross”—to divide the crowd so he could see Jesus.
만약 삭개오에게 공업용 테이프가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경찰 임무수행 – 진입금지” 라는 바리케이트를 쳐서 군중들을 둘로 나누고 예수님께 나아갈 길을 열었을 것입니다.
Zacchaeus had no duct tape.
하지만 삭개오에게는 공업용 테이프가 없었습니다.
But he had a quick mind, a pair of running shoes, and the ability to climb a tree.
그러나 그에게는 회전이 빠른 머리와 재빠른 발, 그리고 나무를 오를 수 있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Zacchaeus put all these things to use.
삭게오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For what purpose?
그럼 삭게오는 왜 나무에 오르고 있는 것입니까?
He wanted to see who Jesus was.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What a marvelous goal!
와! 이 얼마나 놀라운 목적입니까!
What wonderful motivation!
또 얼마나 아름다운 동기입니까!
Jesus Christ is glorious.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If someone catches a glimpse of who Jesus is, his life will be changed forever.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의 삶은 영원히 바뀔것입니다.
Many of us think we already know who Jesus is.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은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십니다.
But when we see the real Jesus, we are surprised.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실제로 본다면, 우리는 놀랄 것입니다.
He is greater, more interesting, more beautiful than we ever imagined.
그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위대하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Yet Jesus is difficult to see.
그러나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The best way to see him is by deeply studying his word.
우리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최상의 길은 그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But that’s easier said than done.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쉽지 않습니다.
We are hindered by activities of life.
생활의 이런 저런 활동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We are hindered by people who block the way.
또 사람들이 그 길을 막아 방해합니다.
We are hindered by little voices inside us: “You can study the Bible tomorrow.”
“성경은 내일 공부해도 돼” 와 같은 우리 내면의 작은 소리들이 그 길을 방해합니다.
But Christ reveals himself to those who seek him.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만나 주십니다.
Deuteronomy
Lord, help us to see Jesus!
주여, 저희들이 예수님을 보게 도와 주십시오!
Part 2: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5-8).
Part 2: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5-8).
While Zacchaeus was desperately looking for Jesus, Jesus was desperately looking for him.
삭개오가 간절히 예수님을 찾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도 삭개오를 간절히 찾고 계셨습니다.
Look at verse 5: “When Jesus reached the spot, he looked up and said to him,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Jesus called him by his name.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Jesus already knew him.
예수님은 이미 그를 아셨습니다.
Jesus said in John
요한복음 10장 1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Jesus wanted to invite Zacchaeus to his house.
예수님은 삭개오를 그의 집으로 초청하기 원하셨습니다.
Jesus has a wonderful house.
예수님은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It belongs to his Father.
그 집은 아버지께 속해 있습니다.
It has many rooms (Jn
그 집에는 거할 곳이 아주 많습니다(요
But the Father’s house wasn’t ready.
그러나 그 아버지 집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Jesus had to die, rise, go back to heaven and prepare it first.
예수님은 먼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셔서 그 집을 준비하셔야 했습니다.
Since Jesus wasn’t ready to bring Zacchaeus to his house, he decided to go to Zacchaeus’ house: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아버지 집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대신 삭개오의 집에 유하기로 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Jesus wasn’t angling for a free room and meals.
이는 예수님께서 무료 숙식을 제공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He was asking Zacchaeus to be his friend.
이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친구가 될 것은 요청하는 것입니다.
He was inviting Zacchaeus to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him.
이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자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Christians often talk about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크리스찬들은 종종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에 대해 말합니다.
But what does it really mean?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It does not mean to agree with some principles or creeds.
그것은 원칙과 신념을 같이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It is not belonging to a church organization.
그것은 어떤 교회 조직에 속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And it is not inventing your own personal religion.
또 이것은 우리 나름대로의 종교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is to allow the living Spirit of Christ to come into your life.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이란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영이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시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Jesus said in Revelation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is to have eternal life.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은 영원한 삶을 갖게 합니다.
Jesus said in John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is to know that God loves you, that he really loves you—not just because he loves everybody in the world, but because you are a unique individual made in his image.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성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Suppose I said to my wife, “You are a beautiful woman, just as every woman in the world is beautiful.
제가 만약 제 아내에게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여인들이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I love you very much, just as I love everyone in the world.”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듯이 당신을 너무 사랑하오”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How would she feel?
제 아내가 어떻게 느낄까요?
I need to tell her, “To me, you are the most beautiful woman in the world. I love you. Period.”
대신 저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상.”
We cannot know the value of our lives unless we experience God’s personal love for us.
우리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얼마 가치가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Out of all the thousands of people in
여리고의 수천명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은 멈추셔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Zacchaeus could hardly believe his ears.
삭개오는 그의 귀를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Did Jesus say my name? Is he really talking to me?”
“예수님이 지금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정말 이분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건가?”
The invitation struck him like a bolt of lightning.
그 초청은 그를 번개와 같이 내리쳤습니다.
The invitation grabbed him with irresistable force, like a powerful magnet pulling him toward Jesus.
그 초청은 마치 강력한 자석이 그를 예수님께로 잡아당기는 것 같이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Jesus wanted to come to his house.
예수님은 그의 집에 머물기 원하셨습니다.
Not later. Immediately!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말입니다!
Then Zacchaeus experienced a wave of panic.
이것은 삭개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He wasn’t ready for Jesus to come immediately.
그는 예수님이 바로 당장 오시는 것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He needed time to pick up his dirty socks.
그는 집안의 더러운 양말들을 치울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He needed some time to get rid of some bad stuff that he didn’t want Jesus to see.
예수님께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물건들을 처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He needed time to fix up his life.
그는 자신의 삶을 개선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But Jesus wanted to come immediately.
하지만 에수님은 지금 당장 오시기 원하셨습니다.
What did Zacchaeus do?
삭개오는 어떻게 했습니다.
Look at verse 6: “So he came down at once and welcomed him gladly.”
6절을 보십시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When Zacchaeus heard Jesus call him by name, he realized that Jesus already knew him.
예수님께서의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자, 삭개오는 에수님께서 이미 자신을 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He realized that Jesus already loved him.
그는 예수님이 이미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Jesus had already seen the bad stuff in his house.
예수님은 이미 그의 집에 있는 나쁜 것들을 다 보셨습니다.
Yet Jesus still wanted to come.
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그의 집에 오기를 원하셨습니다.
In the future, Jesus would change him.
조만간 예수님은 그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But being changed was not a precondition for Jesus to come to his house.
그러므로 변화되는 것이 예수님이 들어오시기 위해 필요한 전제 사항은 아닙니다.
Jesus accepted Zacchaeus as he was.
예수님은 삭개오를 있는 그대로 영접하셨습니다.
Jesus accepted Zacchaeus by grace alone.
예수님은 삭개오를 오직 은혜로 영접하셨습니다.
And Zacchaeus received Jesus by faith alone.
그리고 삭개오는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Zacchaeus’ welcoming of Jesus shows that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is a two-way street.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통해,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갖는 것은 양방통행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We must accept and receive his love.
우리는 그의 사랑을 영접하고 받아들여야합니다.
If my wife says, “I love you,” and I say nothing, that’s not a relationship.
만약 제 아내가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는데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As Jesus loves us, we must love him.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How do we love him?
우리가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We love him through our acts of devotion and worship.
우리는 헌신의 삶과 경배를 통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We love him by obeying his commands.
우리는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Jesus said in John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We love for him by becoming his disciples.
또 그분의 제자가 됨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He said in John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We love him by remaining in him and bearing good fruit.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열매를 맺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He said in John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When people saw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Zacchaeus, they were dismayed.
예수님과 삭개오의 관계성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Look at verse 7: “All the people saw this and began to mutter, ‘He has gone to be the guest of a “sinner.”’”
7절을 보십시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They did not understand Jesus at all.
그들은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But their words are very true.
하지만 그들의 말은 참으로 옳았습니다.
Jesus is the holy Son of God.
에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He dwells in heaven with the angels.
그분은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 거하십니다.
Yet he left his throne and came to this world to be the guest of sinner.
그러나 그분은 죄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This is the mystery we call “incarnation.”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Why would he do this?
왜 이렇게 하신것입니까?
Because God so loved the world (Jn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
Jesus wants to be the guest of sinners.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Jesus is calling each of us by name.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He is inviting himself to be with us, right here, right now.
예수님은 바로 이곳,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자기에게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Luke does not describe the beautiful time of fellowship that Jesus spent with Zacchaeus that day.
누가는 그날 예수님이 삭개오와 함께 보낸 아름다운 교제에 대해 묘사하지 않습니다.
But Luke does describe the effect.
그러나 누가는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묘사합니다.
Look at verse 8: “But Zacchaeus stood up and said to the Lord,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8절을 보십시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How did that happen?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Zacchaeus was talented at taking; he didn’t know how to give.
삭개오는 빼앗는데 재능은 있었지만, 베푸는 것은 알지 못하던 자였습니다.
But when Jesus came into his house, he volunteered to give away half of his paycheck, half of his house, half of his backyard, half of his DVD’s.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집에 오셨을때, 그는 자발적으로 그의 급료의 절반, 집의 절반, 뒤 뜰의 절반, 그의 DVD절반을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And he decided to pay back everyone he cheated.
또 자신이 토색한 모든 것들을 보상하고자 결단했습니다.
In the law of Moses, a cheater was required to pay back the full amount plus 20% (Nu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토색한 자는 원금에 20%를 더하여 갚게 되어 있습니다(민
But Zacchaeus was so moved by the love of Jesus that he decided to pay back the full amount plus 300%.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의 사랑에 너무 감동을 받아 원금에 300%를 더하여 갚겠다고 결심했습니다.
No one told Zacchaeus to change his life.
어느 누구도 삭개오에게 인생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So why did he do it?
그러면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Because Jesus came into his heart.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What a wonderful change in my life has been wrought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No force on earth can change a taker into a giver.
” 이 세상의 어떤 힘도 이렇게 빼앗는 자를 베푸는 자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No idea or law can make a selfish person sacrificial.
그 어떤 사상이나 법도 이기적인 자를 희생적인 자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But Jesus does this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When Zacchaeus welcomed Jesus into his life, he began to see things through the eyes of Jesus.
삭개오가 예수님을 그의 삶 가운데 영접하였을 때, 그는 예수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He realized it wasn’t right to indulge himself while so many of his brothers and sisters were struggling.
그는 수 많은 형제 자매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자신은 안락한 삶에 빠져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The changes he made were not motivated by upper middle-class guilt.
그의 변화는 중상위 계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He made them for the thrill of pleasing his Lord Jesus: “Look, Lord! See what I’m doing!”
그 변화는 우리 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The spirit of giving was present in the first-century Church (Ac
베푸는 정신은 초대 교회에도 있었습니다(행
It was also found in the early UBF student movement.
이는 또한 초대 UBF학생 복음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Students in post-war
한국전쟁후 학생들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Yet UBF members found something to give.
하지만 UBF 멤버들은 어찌하든지 주고자 하였습니다.
One Bible teacher invited a student to his room.
한 성경선생은 한 학생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He brought out his most prized possession: a pear.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배 하나를 꺼내왔습니다.
With a knife, he carefully peeled and sliced it.
칼로 그 배를 정성스럽게 깎았습니다.
He gave the whole pear to his Bible student, while he ate the peel and the core.
그리고 그 배 전부를 그 학생에게 주었고 자신은 껍질과 가운데 씨앗부분만 먹었습니다.
That student was deeply moved.
그 학생은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That student graduated from medical school, came to
그 학생은 훗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선교사로 왔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미국 학생들을 희생적으로 섬겼습니다.
Giving help to people in need is a blessing when we do it to please Jesus: “Look, Lord!”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축복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At the same time, Christian giving is not really about money, because money is not what people really need.
준다는 것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Last summer, my daughter went on a short-term mission trip to
지난 여름, 제 딸은 멕시코 치아파스로 단기 선교여행을 갔습니다.
The people of
치아파스 사람들은 가난했습니다.
But in the pictures she brought back, all the children’s faces were beaming.
하지만 딸이 가져온 사진 속의 모든 어린아이들의 얼굴은 빛이 났습니다.
They have a joy that rich North Americans cannot understand.
그들에게는 부유한 북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In the university town where I live, most teenagers come from dual-income families.
제가 살고 있는 대학가의 청소년들은 모두 부유한 집안 출신입니다.
Their cell phones are better than mine.
그들의 휴대폰은 제 것보다 좋습니다.
Their cars are better than mine.
차도 제것보다 좋습니다.
At Starbucks, they buy $5 drinks while I can only afford a small brewed coffee.
저는 값싼 원두커피를 마시는데 그들은 스타벅스에서 5불짜리 커피를 마십니다.
But their faces are not bright like those of children in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치아파스의 어린 아이들과 같이 밝지가 않습니다.
There is a spiritual dimension to human life that goes beyond material possessions.
인간의 삶에는 영적인 차원이 물질적 소유보다 중요합니다.
In our consumer culture, there is an acute spiritual poverty gnawing away at people’s souls.
오늘날의 물질적 소비 문화 속에는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심각한 영적 빈곤의 문제가 있습니다.
What do they need?
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They don’t need more money.
그들에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What they need is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입니다.
They need to experience God’s personal love for them.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예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Part 3: “Today salvation has come to this house” (9-10).
Part 3: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9-10).
Look at verse 9: “Jesus said to him, ‘Today salvation has come to this house, because this man, too, is a son of Abraham.’”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The word “salvation” has deep significance.
“구원”이라는 단어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We all need to be saved from sin.
우리 모두 죄에서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We need to be saved from death and judgment.
우리는 죽음과 심판에서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We need to be saved from despair, from selfishness and from loneliness.
우리는 절망과 이기심 그리고 외로움에서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Jesus saves us from all of these things.
예수님은 우리를 이 모든 것들에서 구원하십니다.
When Jesus said, “Today salvation had come to this house,” he was talking about himself.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Salvation comes to people through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사람들에게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In verse 9, Jesus called Zacchaeus “a son of Abraham.”
9절에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This too has deep significance.
이 또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Abraham is the father of all God’s people.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조상입니다.
When Jesus included Zacchaeus as a son of Abraham, people were shocked, because Abraham was a great man, while Zacchaeus was a terrible man.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에 포함시켰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위대한 사람이었고, 삭개오는 형편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Those people did not know the Bible.
그 사람들은 성경을 알지 못했습니다.
If they had deeply studied Genesis, they would have learned that God did not call Abraham because he was great.
만약 그들이 창세기를 깊이 공부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위대해서 부르신 것이 아닌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God made Abraham great after he accepted God’s promises by faith.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영접했을 때 그를 위대하게 만드셨습니다.
In Romans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 16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By calling Zacchaeus a son of Abraham, Jesus was honoring his faith.
예수님은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심으로 그의 믿음을 존중하셨습니다.
Abraham showed his faith by leaving his home when God called him (Ge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집을 떠남으로 믿음을 나타내었고 (창
Zacchaeus showed his faith by coming down from the tree when Jesus called him, and by picking up his checkbook and writing a check for half his personal wealth.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급히 나무에서 내려옴으로 믿음을 나타내었고, 또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Twenty-six years ago, I showed my faith when I came up from the basement to attend Sunday worship service.
26년전, 저는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지하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저의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Then I became a son of Abraham.
그러자 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When Zacchaeus learned that he too was a son of Abraham, his face beamed with joy and pride.
삭개오가 자신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았을 때, 그의 얼굴은 기쁨과 긍지로 빛이 났습니다.
When we see people like Zacchaeus, we may think that they just want money.
우리가 삭개오와 같은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은 단지 돈을 원한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But money is not what they want.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What they want is to know God’s love.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What they want is to be sons and daughters of Abraham.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딸들이 되는 것입니다.
Read verse 10: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what was lost.”
10절을 보십시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Have you ever seen a child get lost in a crowded place?
당신은 번잡한 장소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No one is more frightened than a child who gets separated from mom and dad.
엄마와 아빠와 떨어진 아이의 놀란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And no one is more anguished than parents who realize that their precious child is gone.
또 그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정신적 고통 또한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When man kept God’s commandment, he lived together with God in paradise.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But when he violated God’s law in Genesis chapter 3, he walked away from God and got lost.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을 때, 하나님을 떠나갔고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God went out to look for him: “Adam, where are you? Come home!”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집으로 돌아오라!”
But sin filled man with fear and compelled him to stay away (Ge
하지만 죄는 인간의 마음에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창
After many generations of separation from God, the noble man that God created was barely recognizable.
오랜 세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살게 되자, 그들에게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고상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Every incl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all the time (Ge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창6:5).
The real tragedy in the life of Zacchaeus was not that he was cast out by society.
삭개오의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그가 사회에서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The tragedy of his life was that he got separated from his heavenly Father, and the glorious image of God in him was almost gone.
그의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그가 하늘의 아버지에게서 분리되고, 또 그 안에 있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거의 잃어버린 데 있었습니다.
What did God do about the problem of lost people?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what was lost.”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During his three-year earthly ministry, Jesus personally looked for lost people one by one.
예수님의 3년의 지상사역동안 잃어버린 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찾으셨습니다.
After his death and resurrection, Jesus continues to look for lost people by the work of his Holy Spirit and through the efforts of his Body, the church.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와 그의 몸된 교회의 수고를 통해서 잃어버리 자들을 계속 찾고 계십니다.
There are about 6.7 billion people in the world today.
현재 이 지구상에는 약 67억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I do not know their names.
저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But Jesus knows their names.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을 아십니다.
Jesus is looking for them one by one.
예수님은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고 계십니다.
Jesus cares for all people.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돌보고 계십니다.
But his heart especially burns for the ones who are lost.
그런데 특히 에수님은 잃어버린자들을 향해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The love of God is deeply misunderstood.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We usually think that God loves good people and hates bad people.
우리는 보통 하나님은 착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나쁜 사람들은 미워하신다고 생각합니다.
That idea is wrong.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Jesus did not love Z acchaeus because he changed.
예수님이 삭개오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Zacchaeus changed because Jesus loved him.
삭개오는 예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변화되었습니다.
The love of Jesus has transforming power because it is undeserved.
예수님의 사랑에 변화의 능력이 있는 것은 그 사랑은 자격없는 죄인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Sinners can be trained to change their behavior.
죄인들은 그들의 행동을 고치도록 훈련받을 수 있습니다.
But they themselves are changed when they accept love that is undeserved.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자격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할 때에 일어납니다.
I have seen this happen in my personal life.
저는 이 사실을 저의 인생에서 경험하였습니다.
I can easily love my children when they are good.
저의 자녀들이 착하게 행동할 때 제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But if I love them when they are naughty, then they really learn and grow.
그러나 아이들이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할 때라도 제가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면 그들은 진정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I easily care for my wife when we agree.
제 아내와 서로 의견이 잘 맞을 때 아내를 섬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But if I care for her when we disagree, then she really knows that I love her.
그런데 우리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라도 제가 아내를 잘 섬기면 그 때 아내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When good people shunned Zacchaeus, he only got worse.
선한 사람들이 삭개오를 회피했을 때, 삭개오는 점점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But when Jesus befriended him and loved him unconditionally, he received God’s grace and became a new man.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와 친구가 되시고 무조건적으로 그를 사랑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영접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God’s love is revealed when it is undeserved.
하나님의 사랑은 자격없는 자들에게 주어질 때 잘 드러납니다.
Romans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Often we are overwhelmed by guilt and failures.
자주 우리는 죄의식과 실패로 인해 어쩔 줄을 모릅니다.
We feel that our sins have separated us from God.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를 멀어지게 한 것을 느낍니다.
That is the best time to welcome Jesus and experience his undeserved love.
바로 이때가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의 자격없는 자에게 주시는 사랑을 경험할 가장 좋은 때 입니다.
Sometimes people do things that we find horrendous.
우리는 가끔 사람들이 아주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That’s the best time to show them the undeserved love of Jesus.
이 때가 자격없는 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Read verse 10 again: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what was lost.”
10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Zacchaeus did not see Jesus perform any miracle.
삭개오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Jesus’ love for him was the miracle.
그러나 그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그 기적이었습니다.
May God help each of us to experience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May God help us to seek lost people one by one and bring them to Jesus so that they may experience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rist.
하나님께서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을 한사람 한사람 찾아 예수님께 인도함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