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7. 만국의원을 열다. (6~10)

[막새바람]

 

6. 「궁을가」는 나를 이름이니.

  다시 뱃길에 올랐다.

  그리고 하루 삼십 리씩 갔다. 경석이 하루 삼십 리 노정을 헤아렸다. 그리고 고부 송월리에 다달았다. 경석은 친구인 공우의 집에 그이를 모셨다.

  공우는 전주 교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이를 가장 많이 따라다닌 공우는 한때 기독교와 동학을 신봉하였고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그이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동학도의 공우는 사십구일 동안의 치성을 올리던 중이었다. 이들에게 그이는 다른 때와 달리 바로 자신과 자신이 할 일을 단호하게 밝혔다.

  “이제 만날 사람을 만났으니, 통전신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나는 서천서역(西天西域)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 천하대순(天下大巡)이다. 동학주에‘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고 일렀으니, 이것은 나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니라. 내가 천지를 배격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인간과 하늘 사이에 벌어진 혼란을 바로 잡으려고 삼계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에 그쳐, 잔피(殘疲)에 빠진 창생을 건지려 하노라.「궁을가」에‘조선강산명산(朝鮮江山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나, 이것 또한 나를 이름이고 나의 일을 가리킨 것이니라. 동학신자 사이에‘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는 바이나. 이는‘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인즉 내가 곧 대선생이로다. 또 옛적부터 계룡산 정씨왕국, 가야산의 조씨왕국, 칠산의 범씨왕국을 일러오나, 이후로는 모든 말이 영자(影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라.”

  일명 용호대사(龍虎大師)로 불리는 정북창(鄭北窓:1506-1549)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로 충청도 온양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많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산속의 절에서 선가(禪家)의 육통법을 시험하려고 삼 일 동안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물을 보니, 산 너머 일백 리 밖의 일까지도 보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천문, 지리, 의약, 복서(점술), 율려, 산수, 중국어 및 기타 외국어 등을 모두 배워서 스스로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비록 천 리 밖의 일을 생각지 않다가도 생각만 하면 곧 알아내었다.「궁을가(弓乙歌)」는 북창이 우리 미래사의 전개 과정을 가사 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한 것을 이름한다.

  훗날 그가 중국에 들어가 봉천전(奉天殿)에서 도사를 만났는데, 도사가 물었다.

   “귀국에도 도사가 있습니까?”

  그가 거짓으로 대답했다.

  “우리나라에는 삼신산이 있어 한낮에도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항상 볼 수 있으니, 무엇이 그리 귀할 게 있겠소?”

  그러자 도사가 크게 놀라 다시 물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소?”

  그러자 그는 즉시『황정경』『참동계』『도덕경』『음부경』등의 도경을 들어, 신선이 되는 길을 밝게 설명하니, 도사는 굽실거리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였다.

  또 그 때 유구(琉逑)에서 온 사신 둘이 있었는데,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역수로 미리 헤아려보니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을 만날 것을 알고, 길을 따라 물어가며 북경에 도착해서 여러 나라 사신이 머물고 있는 관저를 두루 찾아봤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그를 만나게 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절을 하고, 지니고 있던 행낭에서 조그마한 책자를 꺼내는데, 거기에는 모년 모월 모일에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을 만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그에게 보이면서 역학을 배우기를 간청했다.

  “이른바 진인은 선생이 아니시면 누구겠소?”

  북창은 곧 유구어로『주역』을 가르쳤다. 이에 관저 안에 있던 여러 나라의 사신들이 그 얘기를 듣고 다투어 와서 그 장면을 구경하였다. 그는 각각 그 나라 말로 척척 응답아니, 모두 깜짝 놀라며 천인(天人)이라고 칭송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세상에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를 해득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나라의 말은 곧 새나 짐승의 소리와 같습니다. 그 말을 해득하는 것은 간혹 있을 수 있는 일이겠으나, 그 말을 입으로 하는 것은 또한 다르지 않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난 듣고서 해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은 지 오래 되었소.”

  그는 삼교(三敎)를 관통하였으나, 근본을 성학(聖學)에 돌려 유훈(遺訓)도 효제(孝悌)를 남겨 오로지 효제에 힘쓰게 하였고,『소학』『근사록』을 초학자의 지름길로 삼았다. 일찍이 그는 말했다.

  “성학은 인륜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기묘하고 오묘한 곳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불(仙佛)은 오로지 마음을 닦고 본성을 깨달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높이 도달한 곳은 많고 낮고 쉬운 것을 배움은 전혀 없다. 이것은 삼교가 다른 까닭이고, 선불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그는 성질이 육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술은 잘 마셔 두세 말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또 휘파람을 잘 불었다. 일직이 금강산 꼭대기에 올라가 소리를 내니, 그 소리가 바위와 골짜기를 진동시켰다. 산 속의 중들은 놀라 피리 소리로 여겼으나,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분 휘파람이었다. 그가 밝힌「궁을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애고애고 저 백성아, 간단 말이 어인 말고.

고국본토 다 버리고 어느 강산 가려는가.

(…)

가고 가는 저 백성아 일가 친척 어이일꼬.

부모 처자 다 버리고 길지(吉地)찾는 저 백성아.

자고(自古)창생 피난하여 기만 명이 살았던가.

(…)

일편수신(一片修身)아니하고 가고 가면 살아날까.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사명당(四明堂)이 갱생하니 승평 시대(昇平時代)불원이라.

창생도탄 없어진다. 포덕포화(布德布化)하는 때라.

(…)

대성지화(大聖之化)돌아오니 궁을(弓乙)노래 불러 보자.

요.순 때와 같은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

차시성덕(此時聖德) 갱명(更明)이라.

궁을지와(弓乙之化) 현발(現發)하면 요순(堯舜)시절 돌아온다.

궁을궁을(弓乙弓乙) 성도(成道)로다. 춘아춘아 태평춘(太平春)아.

4시안정 태평춘아, 36궁(宮) 도시춘(都是春)에

(…)

녹음 방초(綠陰芳草) 승화시(乘花時)에 아니놀고 무엇하리.

  조정에서 그가 천문, 의약, 율려에 통달했다 하여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 관상감(觀象監), 혜민서(惠民署)의 교수로 임명하였고, 나와서는 포천현감이 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양주 괘라리에 은거하였다는데, 깊숙이 숨어 세상과는 발을 끊고 연단화후법(煉丹火候法)을 수련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만가를 짓고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는 사십사 세였다.

一生讀破萬卷書 (일생독파만권서)

一日飮盡天鍾酒 (일일음진천종주)

萬談伏義以上事 (만담복의이상사)

俗說往來不掛口 (속설왕래불괘구)

顔子三十稱亞聖 (안자삼십칭아성)

先生之壽何其久 (선생지수하기구)

일생 동안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하루에 천 잔 술을 마시었네.

복희씨(伏羲氏) 이전 일을 고고하게 담론하고

속설은 입에도 담지 않았네.

안자(顔子)는 삼십을 살아도 아성(亞聖)이라 불리었는데,

선생의 나이는 어찌 그리 갈더뇨?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할 줄 알았고, 또 대낮에도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사십사 세 죽음에는 다음과 일화가 전해져 온다. 그의 친구 중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서 말했다.

  “내가 사십사 세가 되는 모월 모일 죽는다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는가?”

  그러자 그가 되물었다.

  “그렇게 죽고 싶지 않는가?”

  친구가 대뜸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모월 모일 어느 마을 어느 곳에 가면 수레를 끄는 노인이 한 분 계실 것이네. 자네는 아무 이유도 묻지 말고 그냥 그 노인에게 절을 하게나.”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모월 모일 그 장소에 가니 마침 수레를 끄는 노인이 보이길래 보자마자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인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줄곧 따라다니며 절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을 밖을 벗어나자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그 친구를 가만히 보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마디 하곤 사라졌다.

  “북창이 보내서 왔군.“

  그 후 그 친구는 사십사 세를 넘기고도 건강히 살았지만, 북창은 사십사 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북창이 친구와 수명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7. 공우와 함께

  다음 날 아침에 그이가 솔안을 떠나려고 할때 공우를 돌아보자, 공우는 처음 그이를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그이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그 날 정읍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렀다. 그이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일렀다.

  “내가 있는 곳을 천지신명에게 알려야 하리라.”

  그리고 글귀를 써서 서쪽 벽에 붙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 비가 쏟아졌다. 그러자 그이가 ‘참, 빠르기도 하다’하면서 붙였던 글귀를 떼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비가 멎었다. 그이가 경석에게 글을 주었다.

束手之地 葛公謨計 不能善事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

瓦解之餘 韓信兵仙 亦無奈何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

손을 묶인 지경에는 제갈공명의 계책으로도 능히 일을 이루지 못한다.

무너지고 난 연후 병법의 신선인 한신도 어찌할 수 없다.

  이후에 안내성,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 박장근 다섯 사람이 그이를 따랐다. 이들은 본래 동학도들로서 일진회에 가입한 회원들이었다.

  그이는 대흥리 경석의 집에 거의 두 달 동안 머물렀다.

  그이가 그속에 머물던 어느 날 공우에게 일렀다.

  “네가 나를 따르기 달포 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거의 죽인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을 잘 생각하고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쾌한 후에는 가해자를 찾아 죽이려고 하나, 네가 상해를 받은 척이 그에게 붙어서 갚은 것이 되니, 그만하기에 다행이다. 너의 마음을 잘 풀어서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아픈 곳이 나으리라.”

  공우는 깜짝 놀랐다.

  그는 천원(川原)에서 예수교인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서 가슴뼈를 다치고 한참 동안 혼절하였다가 겨우 일어나서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은 뒤에 겨우 다니게 된적이 있었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서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하리만큼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천원 예수교회의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 전도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이가 공우에게 말했다.

  “너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서 열두 고을의 목사를 움직이게 하였노라.”

  그제야 공우는 가해자를 미워하였던 마음을 풀고, 상대방을 만나면 꼭 잘 대접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종도들이 금사(琴師)를 불러서 가야금을 타게 하고 유쾌히 놀았다. 그이는 일찍부터 놀이를 금해 왔다. 그이는 종도들에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하였다. 종도들이 허공을 쳐다보니, 거기에 5,6명이 벌려 앉아서 가야금을 타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행하는 일은 바로 하늘에 미치는 법이다.

  어느 날, 그이의 지시에 따라 경석이 춤추고 공우가 북을 쳤다.

  공우가 술이 과하여 주실(酒失)이 심했다. 그래서 그이가 그의 주량을 보기 위해 술을 연거푸 따라 주니, 공우가 받아 마시고 취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그이가‘한 잔 술밖에 못 된다’고 꾸짖었다. 그 후부터 공우는 술을 피했고, 한두 잔만 마셔도 취하게 되었다.

  더운 날 그이가 경석, 내성, 공우와 함께 앞내에 나가서 목욕을 하였다. 그이는 경석에게 흰 소금 한 줌을 가져다 물위에 뿌리게 하였다. 그리고 물 속으로 들어가 경석의 다리를 잡고서 외쳤다.

  “고기잡이를 할 터이다. 큰 이무기를 잡았다.”

  경석이 놀라서 말했다.

  “저의 다리입니다.”

  그러자 슬쩍 경석의 다리를 놓았다.

  “그렇게 되었나.”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세 종도를 둘러 앉히고, 내성에게 말했다.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한 내성은 종도들 중에 어린 시절을 가장 험난하게 보낸 사람이다.

  “농사에 힘쓰고, 밖으로는 봉공(奉公)에, 안으로는 선령제사(先靈祭祀)와 제가양육(齊家養育)의 일에 힘써서 수신(修身)하라.”

  그리고 공우와 일문일답 하였다.

  “공우야, 죽을 사람을 가려내 보라!”

  공우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도인(道人)으로서 표리가 같지 않은 자는 먼저 죽어야 옳습니다.”

  그러자 그이가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물었다.

  “살 사람이란 누구이겠느냐?”

  이 물음에 공우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들판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과 산중에서 화전을 일구는 사람과 남에게 맞고도 대항하지 못하는 사람이 살아야겠습니다.”

  그이는 흡족했다.

  공우는 다시 그이에게 말했다.

  “동학주에 강(降)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마는 저는 그 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이가 빙긋 웃었다.

  “그것은 모두 제우강(최제우의 降)이고 천강(天降)이 아니다. 천강을 받는 사람은 병자를 한 번만 만져도 낫고, 건너보기만 하여도 낫느니라.”

8. 회문산의 오선위기.

  순창은 일진회와 일병들에 대한 항쟁을 벌인 의병의 싸움터로 이름이 났고, 회문산(回文山)의 정기로도 이름이 있는 곳이며, 그 산에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 있었다. 즉 다섯 선인(仙人)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고, 네 신선은 바둑판을 놓고, 패를 지어 서로 따먹으려고만 하고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회문산은 전북 임실과 순창 경계에 있는 산이다. 회문봉을 위시하여, 남쪽의 장군봉, 서쪽의 투구봉, 동쪽의 깃대봉 등 수많은 연봉과 골짜기들이 첩첩으로 둘러 싸고,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두 팔로 감싸듯 휘감고 장천선을 따라 흘러가고 있어, 지형적으로 피난하기와 방어하기에 천혜의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러한 지형적인 요건으로 인하여, 동학혁명과 한말의 일제침략에 항거하던 면암 최익현, 동헌 임병찬, 양윤숙 의병대장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여수, 순천 반란군의 잔당이 찾아들어 총성을 울리기도 했으며, 6.25가 발발하면서는 빨치산들의 활동의 근거지가 되어, 지역주민들과 수난을 함께 겪어온 산이기도 하다.

  회문산은 모악산과 더불어 그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성산이다. 그이는 이곳 회문산에서 지구촌 세계질서의 큰 기틀을 짰다. 특이한 것은 회문산 기슭의 우림면 안정리에 산내(山內)부락, 중림(中林)부락, 안심(安心)부락, 미륵부락이 있고, 그 미륵부락 안에 안심부락이 딸려 있다.

  그이는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으로 들어가 천하 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렸다. 오선위기란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을 말한다. 모악산이 어머니 산이라면 회문산은 아버지 산으로 그이는 대세를 가름하는 중요한 공사들을 이곳에서 보았다.

  그 결정을 내리려고 그이가 몇몇 종도들을 데리고 순창 농암의 박장근의 집에 머물렀다.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풀어 쓰리라. 전명숙과 최익현은 이 기운을 쓰려고 했었으나, 그 기운을 쓸 자격자가 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이는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 써서 문 위에 걸어 놓은 다음에, 짚을 한 아름 묶어 인경을 만들어서 방 가운데에 달아 매고 백지로 바른 다음에 48방위에 글자를 쓰고, 그 글자 사이에 다른 글자를 써넣고 그 위에 백지를 오려서 비늘을 달아 붙였다. 그러자 그것은 꼭 철갑옷과 같았다. 그 날 밤 초경에 장근이 마련한 식혜를 큰 그릇에 담아서, 인경 밑에 다시 놓았다. 이 식혜는 최수운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도들과 일문일답을 하였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문집에 있는 글귀를 알고 있느냐?”

  몇 종도들이 그이의 지시대로 그 글귀를 백지에 쓰니, 그것이 곧 주문이 되었다. 그 글귀의 주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걸군굿 초란이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

  그이가 이 주문에 곡조를 붙여서 읽으면 종도들이 따라 외웠다. 그 곡조와 외우는 것이 우스꽝스러웠으나, 그이의 엄명으로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이는 한참 곡조를 붙여 읽는 것을 받아 외우게 하다가 멈추었다.

  그이는 선천에 누적된 조선 백성의 괴로움을 일대공사로써 모두 없애 조선의 산하운수를 돌리고, 조선을 상등국으로 만들었다.

  먼저 서양 신명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문명을 가져오고, 청주(淸州)의 만동묘(萬東廟)에 중국의 황극신(皇極神)을 불러들여서 조선을 천자국으로 만들어 놓으니, 조선은 문명국이 되고 최상의 윤리의 나라가 되어 세계의 상등국이 되었다. 그리고 상등국이 된 조선에 상등국만을 골라 찾아다니는 손님 대신명이 찾아 왔다. 그로 인해서 조선은 내내 동방의 빛만을 받게 되었다. 즉 아침의 동쪽 햇빛이나, 저녁의 석양빛도 동쪽을 비친다. 이 햇빛을 받아 조선은 영원무궁토록 존속하게 되었다.

  또 조선은 그이가 공사를 본 성천 강선루(降仙樓) 고물에 식량의 녹줄이 만 이천 개나 붙어 있고, 금강산 만 이천 봉에 붙었던 겁살(劫煞)을 벗김으로서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되었다.

  이제는 결실기가 되었기 때문에 조선은 여태까지 베풀었던 공의 보답을 받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조선의 생민들이 남보다 신명들을 잘 대접하고 공경하여 왔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조선에 모여들어 제각기의 선물을 선사하니, 이제부터는 조선 사람은 신명들의 겁재(劫災)를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조선 생민들의 공경으로써 원을 푼 혈식천추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 신명들이 조선의 배질을 하니, 그 가는 앞길에 풍랑이 범치 못하게 되었다. 거기에 조선 사람들이 오랫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대가를 중국으로부터 받게 되어, 중국의 보은신이 조선을 찾아 왔으며 만리창(萬里廠)의 비결과 심법의 묘술을 알려 주었다.

  또 하나의 축복은 천하대병을 치유할 수 있는 의통을 조선 생민에게 준 것이다. 의통은 단지 인맥을 짚고 의술을 베풀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지맥과 천맥을 진단할 종합적인 능력을 일컫는 것이다. 그 진단에 의해서 치유할 방술이 즉 심법에 의한 묘술이다.

  “나는 마음을 닦는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주리니, 상재는 7일이요, 중재는 14일이요, 하재는 21일이면 각기 성도하리니, 상등은 만사를 임의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하므로 모든 일을 행하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이 심법의 도통은 자기 수양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 보내리라’는 그이의 말처럼 그이가 수여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수여되었기에 조선 사람은 한 나라의 보국안민만이 아니라, 광제창생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천이조화여오도이제서인지악(天以造化與吾道以制西人之惡)’이 또한 가능하다.

9. 전봉준을 해원하다.

  경석이 와서 하소연하였다.

  “길이 질어서 걷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자 그이가 양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서, 물에 담갔다가 손으로 쥐어 짠 후에 화로에 불살랐다.

勅令治道神將 (칙령치도신장)

御在淳昌籠巖 (어재순창농암)

移於于井邑大興 (이어우정읍대흥)

  그리고 경석을 대동하여 정읍으로 떠났다.

  길이 질지 않아 대흥리에 편히 도착하였다. 한편 구리골에 있는 종도들은 경석이 그이를 따르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광찬이 그런 불만을 형렬에게 털어 놓았다.

  “그 자는 본래 동학도당이고, 일진회에 참가하여 불의를 행한 자이다. 그런데 도문에 들게 하시고 또 거기에다 경석의 집에 머물고 우리를 버리시고 있다. 우리는 힘써 도를 닦고 있었는데,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

  형렬은 광찬을 토닥였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순창에서 공사를 끝낸 다음날 용암리를 떠나 피노리에 사는 이남기의 집에 이르렀다. 여기는 동학란을 일으킨 전봉준이 관군에게 잡힌 곳이다. 그래서 그이는 전봉준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공사를 행하였다.

  그이는 화춘에게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고 술 한 동이를 마련하게 하고 뒷산의 소나무 숲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와 남쪽 양달에 있는 황토를 파오개 하였다. 그리고 백지 넉 장을 청, 홍, 황의 세 색깔로 물들여서 모두 이어서 베어 온 소나무의 한 윗가지에 달게 하고 백지 석 장에 각각 시천주를 썼다.

  그 종이 석 장에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이어서 또 소나무 가지에 달고, 그 나무를 집 앞에 세우니 마치 깃대와 같았다.

  그리고 그이가 일렀다.

  “이 곳에서 전명숙이 잡혔다. 그는 사명기가 없어서 포한(抱恨)하였으니 이제 그 기를 세워주고 해원케 하노라.”

  그이는 다시 사명기 한 폭을 지어 높은 소나무 가지에 달았다가 떼어 불사르고 전봉준을 해원케 하였다. 이 공사는 사명기가 없어서 전봉준이 생포되었기에 그 사명기를 세워 주는 일이었다. 그 공사를 끝내고, 남기에게 돈 서른 석 냥을 물품을 두는 곳에 간직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시 남기가 간직했던 돈을 공신이 지니게 하고, 피노리를 떠나 태인으로 향하였다.

  형렬이 하운동에서 왔다. 그는 곧바로 광찬과 구리골 종도들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그런 자를 어찌 문하에 두십니까?”

  그이는 엄중하게 말했다.

  “용이 물을 구할 때에 비록 가시밭길이라도 피하지 않는다.”

  형렬은 그이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광찬에게‘고인절교 불출오성(古人絶交 不出惡聲)’이라 이르고 금후부터 불평을 말끔히 풀라고 달랬다. 옛 사람은 절교할 때 비난하는 소리(말)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이는 다시 형렬에게 일렀다.

不受偏愛偏惡曰仁(불수편애편오왈인)

不受全是全非曰義(불수전시전비왈의)

不受專强專便曰禮(불수전강전편왈예)

不受恣聰恣明曰智(불수자청자명왈지)

不受濫物濫欲曰信(불수남물남욕왈신)

치우친 사랑과 미워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내외에 인정받는 인(仁)이라 한다.

완전한 옳음과 그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내외에 인정받는 의(義)라 한다.

오로지 억지로 함과 편리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내외에 인정받는 예(禮)라 한다.

잘난 체하는 총명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내외에 인정받는 지(智)라 한다.

넘치는 물질과 욕심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내외에 인정받는 신(信)이라 한다.

10. 수부를 세우라.

  어느 날 그이가 태인 살포정에서 원일과 공우 등 몇몇 종도들과 함께 쉬고 있었다.

  이 때에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얼마쯤 지나서 그이가 번개 치는 쪽을 향하여 무어라고 꾸짖자 비가 그쳤다. 공우는 번개를 꾸짖어서 비를 물리치는 것에 겁을 집어 먹으면서도 그이를 따를 것을 다짐했다. 남의 심경을 통찰하고 조화를 마음대로 부리는 그이를 보고 하느님의 강림(降臨)으로 굳게 신봉하였다.

  그러던 차에 그이가 공우에게 말했다.

  “너는 오랫동안 식고(食告)를 잘하여 왔고 만날 사람을 만났으니 식고를 나에게로 돌리라.”

  공우는 너무나도 기뻤다.

  “그렇게 행하겠습니다.”

  공우는 본래 동학도였기 때문에‘대신사응감(大神師應感)’이라는 식고를 드리지 않고 언제나‘하느님 뵈어지이다’라는 발원으로 식고하여 왔었다.

  그 후에 경석이 태인으로 와서 그이를 만났다. 그이는 경석을 데리고 행단(杏亶)에 갔다. 그리고 경석에게 다음과 같은 글귀를 잘 외워두라고 일렀다. 훗날 경석이 그이의 뜻을 크게 펼쳐 보일 것을 내다보았기 때문이었다.

夫主將之法 務攬英雄之心 (부주장지법 무람영웅지심)

賞祿有功 通志於衆 (상록유공 통지어중)

故與衆同好靡不成 (고여중동호미불성)

與衆同惡靡不傾 (여중동악미불경)

治國安家 得人也 (치국안가 득인야)

亡國敗家 失人也 (망국패가 실인야)

含氣之類 咸願得其志 (함기지류 함원득기지)

대저 큰 일꾼의 일하는 법은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힘쓰고

공 있는 자는 상과 녹을 주고 뭇 사람과 한마음으로 뜻을 통하는 데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러 사람과 서로 좋아하여 인화가 잘되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고

서로 싫어하면 기울어지지 않는 일이 없나니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집안이 편안함은 사람을 얻는 데 있고

나라가 망하고 집안을 망침은 사람을 잃는 데 있느니라.

모든 생명이 그러한 뜻을 얻고 싶어하느니라.

그이는 다시 옆에 따라온 형렬에게도 일렀다.

夫用兵之要 (부용병지요)

在崇禮而重祿 (재숭례이중록)

禮崇則義士至 (예숭즉의사지)

祿重則志士輕死 (록중즉지사경사)

무릇 일꾼을 쓰는 법은

예의를 잘 지키고 녹을 후하게 주는 데 있나니

예로 깍듯이 잘 대하면 의로운 일꾼이 들어오고

녹줄을 붙여 주면 뜻 있는 일꾼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느니라.

  공우가 식고를 물린 후부터 그이가 순유할 때에는 거의 공우가 시종하였다. 공우는 그이가 행차하기 앞서 먼저 신발과 행장을 단속하여 놓고 지시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이는 언제나 미리 갈 곳을 알리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이가 태인에서 떠나려 하였다. 공우가 역시 따라나섰다. 그이는 길을 걸으면서 공우에게 천문지리(天文地理)를 외우라고 하였다. 공우는 그대로 외우면서 걸어가는데 그이가 갑자기 다시 생각해서 외우라고 하였다. 그때서야 공우는 풍운조화(風雲造化)로 잘못 외우고 있음을 깨닫고 고쳐 외우면서 갔다. 날이 저물어서 도착한 곳이 정읍이었다. 이날 밤에 일기가 한결같지 않았다.

  10월.

  어느 날 경석에게 그이가 돈 삼십 냥을 마련케 하였다.

  “이것은 너를 위하여 하는 일이다.”

  그리고 율곡이 퇴계를 찾았을 때 지은 시를 읽어주었다.

溪分洙泗派 峰秀武夷山 (계분수사파 봉수무이산)

活計經千卷 行裝屋數間 (활계경천권 행장옥수간)

襟懷開霽月 談笑止狂瀾 (금회개제월 담소지광란)

小子求聞道 非偸半日閑 (소자구문도 비투반일한)

시냇물은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나뉘어 흐르고, 봉우리는 무이산이 빼어났네.

살아갈 계책은 천 권의 경전이요, 행장을 꾸리니 두어 칸 집뿐이네.

마음속은 비 갠 후 달이 열리듯 거리낌이 없고, 웃으며 이야기 하니 어지러움이 멈추네.

저는 도를 듣기를 구하며, 반나절의 한가함도 가벼이 하지 않지요.

   율곡은 언제나 밝은 태도로 시람을 접하고 누구와도 밀담을 나누거나 쓸데없이 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말을 하여도 잘 들어 주었으므로, 어떠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고, 그 또한 누구와도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현실개혁에 있어서도 율곡은 늘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가정의 문제는 교우인 성혼의 경제적인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그가 죽었을 때는 집안에 저축해 놓은 것이 없으므로 시신에 입힐 수의조차 없어 친구의 것을 빌려와야 할 정도였으며, 유족들이 살 수 있는 집 한 칸도 없어서 친구들과 제자들이 돈을 모아 겨우 살만한 집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이는 또 이 해 겨울에 그에게 잘 기억해 두라고 이르면서 시를 주었다.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처세유위귀 강강시화기)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발언상욕눌 임사당여치)

急地尙思緩 安時不忘危 (급지상사완 안시불망위)

一生從此計 眞皆好男兒 (일생종차계 진개호남아)

처세에 귀한 것은 부드러움이요, 강하고 굳건한 것은 재난(禍)의 기초가 된다.

말을 할 때는 늘 더듬듯이 하라. 일을 당하여 당연히 어리석은 듯 하라.

위급한 곳에서는 오히려 천천히 생각하고, 편할 때에는 위태한 것을 잊지 마라.

한 평생을 이 계책에 따른다면, 진정한 호남아(好男兒)이니라.

  11월 초사흘 날.

  그이는 경석에게 말했다.

  “나의 일에 수부(首婦)가 있어야 하니, 네가 일을 하려면 수부를 들여 세우라.”

  수부는 어머니들의 우두머리, 즉 모든 창생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경석은 좋아서 얼른 자기의 이종 누이가 되는 고부인(高夫人)을 천거하였다.

  그이는 고부인을 수부로 세웠다.

  섣달에 들어서 그이는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고 전북 일곱 고을에서 흉년을 없애는 공사와 음양 도수를 보고 후천 5만년 공사 등을 종도들과 함께 행하였다. 공사를 끝내고 종도들을 짝지어 포덕하도록 곳곳에 보냈다.

五呪 (오주)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신천지가가장세 일월일월만사지)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원위대강)

明德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명덕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원위대강)

三界解魔大帝神位 願趁天尊關聖帝君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관성제군)

  그이가 무당도수라 하며 고부인에게 춤을 추게 하고 친히 장고를 치며 일렀다.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당 저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

  또 종도들에게 일렀다.

  “세상 사람들이 절후문(節侯文)이 좋은 글인 줄을 모르고 있느니라. 시속 말에 절후(節侯)를‘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 몰각한 것을‘철부지’라 하여, 어린 소년이라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철을 안다’하고 나이 많은 노인일지라도 몰지각하면‘철부지한 어린아이와 같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