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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의 300자 칼럼 (2009년 1월)
□ 1월 1일 :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기도드린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무시무시하도록 나를 압도시키는 일, 매혹하는 일, 한마디로「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모험 끝에는 허망이, 여행 끝에는 피곤만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잘 알면서도.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아마 유일의 선물이 아닐까.”≪전혜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고인 물은 썩지요. 정체는 평온한 것 같으나 삶을 곪깁니다. 태풍이 불어야 바다가 생명력 넘치는 활어를 키우듯 우리네 삶도 그렇게 새해엔 더 활기찼으면 좋겠습니다. 어렵다지만 모두 만들어갑시다.
□ 1월 2일 : 일 년의 계획(計劃)은 정월 초하루에 있다(New year's day is the key of the year)는 말이 있습니다. 캠피스라는 분은 ‘크리스트의 배움’에서 “인간이 계획하고 신이 처리한다.”라고 했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공자(孔子)는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다. 봄에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지 않으면 그 날 할 일을 못한다. 젊은 시절을 일 년으로 치면 봄이고, 하루로 치면 아침이다. 그러나 봄은 꽃이 만발하고, 눈과 귀에 유혹이 많다. 이목의 향락을 쫒아 가느냐, 부지런히 땅을 가느냐는 일생의 운명이 결정된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계획들 많이 세우셨는지요?
□ 1월 3일 : 저에게 있어 평생교육인 책을 읽고 글쓰기는 삶의 무의미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나태와 느슨한 삶은 생을 불행하게 합니다. 적당한 긴장이 얼마나 삶을 탱탱하게 해주는지요. 긴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타성이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이듯 나태는 내 영혼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지요. 올해도 의미 있는 한해를 만들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음 안 됨을 압니다. 시간을 낭비함이 가장 큰 손실이라는 자각만이 삶의 불꽃은 더 뜨겁게 지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도 한권의 책을 펴고 생의 먼지를 털며 풍요롭지 않음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 1월 4일 : 몇 년 전 안면도 고남에 있는 외가에 갔을 때 눈에 번쩍 띄는 액자의 문구가 있었습니다. 적덕유인(積德有隣)이라는 사자성어였지요. 곧 ‘덕을 쌓으면 이웃이 있다.’란 뜻인데 생각할수록 삶의 좌표가 되는 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웃에 덕을 쌓는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문밖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작은 언행이나 실천을 통한 모든 것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덕의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한통의 문자를 날리는 것도 덕을 쌓는 행위의 연장이 아닐까요? 뜬금없이 받은 문자 한통이 천리에 있던 지인을 바로 내 찻잔 옆으로 오게 하니까요.
□ 1월 5일 : 새해는 희망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라고 했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A.포우의 《사람에 대한 시론(試論)》에선 ‘희망은 영구히 사람의 가슴에 들끓는다’란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 한해 내 의식의 곳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면 정말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지인을 만나는 행복은 사람이 살아있는 행복의 첩경임을 늘 깨닫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최대의 희망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나로 인해 작은 희망의 불씨를 이 세상에 피울 수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요. 희망의 불꽃을 태우며!
□ 1월 6일 :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씨앗의 법칙(The Laws of the Seed.)을 생각하지요. “오늘 심고 나중에 수확한다.(You plant today and harvest later.)라는 것인데, You will reap what you sow.(당신이 뿌린 것을 수확하게 된다.)라는 말이지요. 다시 말하면 ‘노력이 우선이고 수확은 다음 일이다.(Effort first, Harvest second.)라는 개념입니다. 먼저 심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겠지요. 문제는 노력도 하지 않고 거두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도둑은 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이 아닌가요. 새해의 며칠이 지났습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 1월 7일 : 한국미(韓國美)의 전형을 이룩하며 광복이후 최고의 유화 화가로 평가되는 박수근(1914-1965)만큼 고통의 사연이 많은 화가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던 박수근의 “빨래터”는 45억 2천만 원이라는 최고가를 기록하며 낙찰됐던 작품인데 위작(僞作) 논란에 휘말린 후 재 감정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남의 작품을 눈으로는 분갈 할 수 없을 만큼 그려낸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실력이 아니고는 엄두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기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남의 작품이나 베끼는 그 사람은 누구이며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생각할수록 그의 영혼이 불쌍하군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습니다.
□ 1월 8일 : 고전(古典)이란 ‘시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미국의 하버드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책의 목록이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 책이 조지 오웰의 《1984》년이군요. 그 외에도《백년의 고독》,《죄와벌》,《호밀밭의 파수꾼》,《더블린 사람들》,《위대한 개츠비》,《카라마조프의 형제들》,《분노의 포도》,《제인 에어》,《 젊은 예술가의 초상》등등으로 우리도 대부분 읽고 있는 낯익은 작품들이네요. 이런 반면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요? 거의 대부분 베스트셀러군요. 실로 한심합니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피라미드’처럼 밑변이 넓어야 한다.‘란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끄럽습니다.
□ 1월 9일 : 질 높은 한국문학의 번역은 가장 시급한 국가적인 과제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10월이면 노벨상을 고대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벨상을 수상할 문인이 없다기보다는 그 상을 받을 만큼의 우리 문학이 과연 해외에 제대로 번역돼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되더군요. 우리의 문학을 해외에 제대로 알린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될 터인데 가장 시급한 것은 현지인의 번역가 양성이 급선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들과의 교류가 그만큼 중요하겠지요. 한국문학번역원장에 평론가 김주연씨가 선출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한국 비평계의 이른바 ‘4K’로 불렸던 이름들이 떠오릅니다. 김현, 김치수, 김병익, 씨였지요.
□ 1월 10일 : 새해를 맞아 집안 대청소를 했습니다. 《채근담》에 이런 구절이 있네요. “가난한 집도 깨끗이 청소하고 가난한 여자라도 깨끗이 머리를 빗으면 비록 경색(景色)이 미려하지 못할지라도 기품이 절로 풍아(風雅)하리로다. 선비가 한 때 궁수(窮愁)와 요락(寥落)을 당한들 어찌 문득 스스로를 버릴까 보냐.”라고 했고, 《J.웨슬리》는 “청결은 진실로 성스러움에 가깝다.”라고 했지요. 또한 《F.베이컨》은 ‘학문의 진보’라는 글에서 “신체의 청결은 신에 대한 당연한 존경심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생각되어 왔다.”라고 했네요. 영육이 날아갈 듯 가뿐합니다. 마음의 때도 이렇게 맑게 씻어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 1월 11일 : 언제부턴가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영어성경(NIV)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3장씩 읽다 보니 9월쯤인가 신약을 한 번 읽을 수 있더군요. 요즘에도 영어공부를 합니다. 한 시간 범위 안에서 문장을 읽는 것인데 하루 중 어느 때보다도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E.H.윌콕스》는 ‘하루의 가장 달콤한 순간은 새벽에 있다.’라 한 말이 실감나요. 시인 예이츠는 「새벽」이란 시에서 ‘나는 저 새벽처럼 무지(無知)하고 싶다’라고 했지만 저는 새벽에 깨어있고 싶습니다.《A.지이드》는「지상의 양식」에서 ‘공기는 싸늘한 애무의 촉감만을 남겨주었다. 삶의 신비가 나뭇잎들 사이로 퍼져오기 시작했다.’ 새벽은 매일 첫 경험처럼 감미롭습니다.
□ 1월 12일 : 멘토-Mentor는 ‘조언자, 스승, 은사’란 뜻이지요. 세상을 살면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의 난해한 문제와 부딪쳤을 때 달려가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지요. 내 곁에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고 자문을 하다 보면 때로 씁쓸해 지기도 하지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멘토는 수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바로 곁에 계시는 분들이지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또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나의 가장 진정한 멘토였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만물이 나에게는 모두 최상 천하 멘토였네요. 알고 지내는 모든 이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은 아침입니다.
□ 1월 13일 : 미네르바(Minerva)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입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사회에 일명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사건으로 떠들썩하네요.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구속까지는 하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어떤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다만 온라인상에서 자기의 견해를 밝혀온 바람처럼 자유로운 논객의 논리에 우리 사회가 그렇게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냉정히 한 국가의 정경(政經)의 초석이 그만큼 돼 있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수많은 경제학자와 대학의 경제학 교수들은 무엇을 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석(礎石)이 튼튼하지 못하면 쓰러지지요.
□ 1월 14일 : 매튜 아널드라는 사람은 최고의 교양을 갖춘 사람의 특성으로 “무한한 관용, 상황에 대한 고려, 행동은 엄격하게 판단하되 사람에게는 관대함을 보이는 태도”를 들었습니다.《임어당은》은「생활의 발견」에서 “교육 또는 교양의 목적은 지식 가운데에 견식을 키우고, 행위 가운데에 훌륭한 덕을 쌓게 하는데 있다. 교양이 있다는 사람이라든가, 또는 이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란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박식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옳게 받아들여 사랑하고 옳게 혐오하는 사람을 뜻함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양은 사회나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지켜야 할 몫이 아닐까요.
□ 1월 15일 : 요절한 시인 기형도는 「엄마 걱정」이라는 시에서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온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해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라고 어머니를 읊었습니다.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가 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치매 증상이 있는 엄마의 실종을 통해 한평생 가족에게 헌신한 어머니상을 그린 작품이지요. 작품속의 어머닌 내 어머니와 겹쳐 울립니다.
□ 1월 16일 : 시인 김남조는 봄눈에서 “겨울은 묵언(黙言)의 절기”라고 했고, T.S.엘리엇은 大聖堂의 殺人에서 “겨울은 바다에서 죽음을 끌고 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박세당은 山林經濟에서 “겨울에는 남쪽 처마 밑에 등을 기대고 볕을 쪼여서도 좋고 따뜻한 방안에서 화로를 끼고 앉아도 좋고 창 너머로 은세계를 이룬 세계를 구경할 수도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라고 겨울을 노래했습니다. 소설가 정비석은 들국화라는 작품에서 “겨울은 사람의 마음을 음침하게 하건만”이라고 표현했지만 인간사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도 맑은 마음으로 세상에 한줌의 향기를 심어봅시다. 활짝 웃으며!!!
□ 1월 17일 : 저는 글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안병욱 교수님이지요. 그분의 책들을 십대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근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철학의 기초를 다진 것도 제가 태어나던 해(1957)에 쓰신 《現代思想》이라는 책이었는데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외 《마음의 창문을 열고》, 《행복의 미학》, 《인생은 예술처럼》, 《아름다운 창조》, 《도산사상》,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삶의 길목에서》, 《이 아름다운 생명을》, 《인생 그 순간에서 영원까지》, 《산다는 것》, 《안병욱 희망론》, 《안병욱 명상록》, 《빛과 생명의 안식처》등의 저서가 있지요. 제8회 柳一韓賞 수상을 축하드리며.
□ 1월 18일 : 삼중당(三中堂) 문고를 기억하십니까? 가난했던 시절 허기진 책읽기의 배고픔을 해갈시켜줬던 가장 값이 쌌던 문고본말입니다. 처음엔 값이 2백 원이었지요. 읽고 싶은 책은 수없이 많은데 수중에 돈이 없던 시절에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출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때 만났던 책 중의 한 권이 바로 전연세대철학과교수인 김형석님이 쓰신 《영원과 사랑의 대화》입니다. 한마디로 뿅 갔었지요. 그 이후에도 꾸준히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홀로 있는 시간을 위하여》,《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인생, 소나무 숲이 있는 고향》,《철학입문》등의 책을 읽으며 빚을 졌었지요. 노석학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 1월 19일 :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침에 시를 한편씩 읽는 맛이 짧짤하지요? 거친 세상의 뉴스로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많지만, 시 한편을 읽으며 시작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맘의 양식이라 여겨집니다. 끊임없는 전쟁의 소식들을 왜 우리가 매일 들어야 하는지요. 그런 소식들을 거의 매일 듣고 읽으며 우리의 마음 밭은 상할 대로 상했고, 이젠 어지간한 소식으로는 놀라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씩 죽어나간다는 소식을 하도 들은 탓이지요. 그동안 손택수 시인이 맡았던 ‘시로 여는 아침’이 오늘부터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을 쓰신 허수경 시인이 맡습니다. 현재 독일에 머물고 있는 시인이 선정한 제1편은???
□ 1월 20일 :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11년 동안에 200권을 발간했다고 합니다. 예전엔 문학전집하면 집안의 장식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도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요. 낱권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오만과 편견』,『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동물농장』,『1984』,『위대한 개츠비』,『고도를 기다리며』,『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리대왕』등이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범우판’과 ‘대산 세계문학총서’ ‘펭귄클래식’그리고 ‘을유세계문학전집’등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고전을 읽어 사유(思惟)의 폭을 한껏 넓히는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 1월 21일 : ‘창조적 해석’의 경지를 보여줬다는 4·19세대 문학평론의 거봉 김현은 지난 90년 6월 27일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른바 문지 4K로 불리는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등의 비평가와 함께 했던 평론가였습니다. ‘공감의 비평’으로 불리는 그의 비평은 소설가 최인훈, 이청준, 시인 황동규, 정현종, 김지하 등 6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정교하게 풀이해냈었지요. 그는 죽음을 눈앞에 눈 시점에서도 「미셸 푸코와 문학비평」을 펴냈고 그로 인해 그의 뛰어난 비평적 감식안이 얼마나 날카로웠던가를 세상에 알렸었지요.『김현문학전집』중에서 몇 권을 읽는 재미가 정말 쏠쏠합니다. 멋졌던 삶!!!
□ 1월 22일 : 습관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어떻게 일생을 살아가는 가는 습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하루 24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가히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다. 자녀에게 최고의 값진 선물은 좋은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란 생각도 드네요. 책 읽는 습관, 신문 읽는 습관, 일찍 일어나는 습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습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습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습관에 의해 길들여진다는 것이지요. 부모가 일 년 열두 달 서점에 한 번 안가는 집의 자녀들은 커서도 책을 사지 않습니다. 부모가 연속극만 보는데 아이가 책을 읽나요?
□ 1월 23일 : 명절이 코앞에 다가오면 언제나 그렇지만 늘 고민을 합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하고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잘 아는 분이지만 실지로 무엇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서운하고. 시대가 변해선지 이젠 만원 한 장 갖고 뭘 사기도 쉽지 않습니다. 낯간지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분수껏 해야지 하는 맘엔 변함이 없네요.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지 합니다. 값이 많이 나가지 않드래도 맘이 담겨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요? 얼마 전 제자로부터 2천 원씩 줬다는 펜을 받았는데 그렇게 좋군요. 쓸 때마다 생각납니다. 선물이란 바로 이거다 싶네요. 근데 그걸 알기가 싶잖으니!!!
□ 1월 24일 : 고향을 찾는 귀성차량이 전국의 도로를 뒤덮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고향이 있단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요. 베토벤은 “고향이여, 아름다운 땅이여, 내가 이 세상의 빛을 처음으로 본 그 나라는 나의 눈앞에 떠올라 항상 아름답고 선명히 보여 온다. 내가 그곳을 떠나온 그 날의 모습 그대로!”라고 썼습니다. “길을 떠났던 나그네가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그리운 성문이 보이고, 강 양쪽 기슭에서는 아낙네들과 애들이 고향의 사투리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죠. 생각할수록 정겹지요. 일찍이 날 키워주던 정든 산하의 모습들이 귀향을 재촉합니다. 어머니의 젖품을 찾는 행복한 맘들이 혈육들 모여 정담만 듬뿍 나누시길.
□ 1월 25일 :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참 많습니다. 명절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 정말 고생들 많이 하셨고 특히 섬이 고향인 사람들은 더 하다는 소식이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이미 고향에 닿았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님의 마음이 전해오는 듯 하네요. 갑자기 쌓인 눈으로 장을 보기도 또 이웃 간 작은 사랑을 나누기도 쉽잖아 다 미루고 있네요. 재회의 기쁨을 한 아름 나누시고 부모님을 모처럼 한번 진하게 껴안아 드리는 명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명절은 못 다한 사랑을 함께 나누라는 하늘의 뜻이라 여겨집니다. 산다는 것의 깊고 깊은 의미를 새기며…….
□ 1월 26일 : 88세가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설날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을 한 끼 같이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위대하리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지난해 9월 어머니께서 대장암 3기말 진단을 받고 수술을 포기한 체 그동안 힘든 투병생활을 해 오셨는데 과연 설날 아침을 함께 먹을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몇 개월을 보냈으니 어쩜 이 느낌은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대목 막바지엔 넘어지기까지 하셔서 이마를 일곱 바늘이나 꿰매는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자손들은 감사하기만 하네요. 어머니를 모시고 설날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고 세상에서 제일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 1월 27일 : 부모님께서 싸주시는 바리바리한 물건들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날이네요. 어렵고 힘든 귀성이지만 고향에 가서 부모형제를 만나고 오는 것은 다음 명절이 올 때까지 나를 이 거친 세파에서 견딜 수 있게 하는 양식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 양식을 먹지 않고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생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늘 들어요. 물질에 노예가 된 듯 아픈 사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분명히 정으로 살고 사랑으로 삽니다.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지요. 혈육의 소중함을 가슴에 심고 돌아오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힘의 원천임을 감사히 깨닫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 혈육을 비롯한 지인들에 진 빚을 갚아야지요.
□ 1월 28일 :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작가인 장폴 사르트르는 인생을 “B(birth·탄생)와 D(death·죽음)사이의 C(choice·선택)라고 했다 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선택은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겠지요. 어찌 보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끊임없이 뭔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C'는 선택의 C일 뿐만 아니라 창조(creation)의 C이기도 해서 그만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T.S.엘리엇》가 말한대로 “모든 사람은 이것이든 저것이든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만 된다.(Every one makes a choice one or another. And then must take the consequences.) 역시 중요한 것은 선택과 책임인 것 같습니다.
□ 1월 29일 : 칼릴 지브란의 시집 『예언자』중에 자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라고요. 읽으면서 참 공감을 했네요. 33년째 영어 과외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숱한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뭣을 억지로 심어주려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은 “배우는 즐거움”(love of learning)을 심어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배우는 맛”을 깨닫게 되면 하지 말라 해도 하게 되지요. 그게 부모역할인 듯합니다.
□ 1월 30일 : 어제는 지난해에 이어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실습을 나온 예비사회복지사 6명과 함께 2시간동안 『장애인 리더와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함께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들을 만나러 가는 마음은 행복해요. 이제 갓 대학을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과연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생각하다보면 작은 두려움도 있지만 삶에서 걸러진 진솔한 얘기들을 풀어놓을 때면 조금은 열심히 달려온 순간들이 소중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러 얘기들을 했지만 과연 어떤 말의 씨앗이 그들의 가슴속에 심어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껏 힘껏 달려온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네요. 1월을 보내며!!!
□ 1월 31일 : 아무도 세월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현대는 젊은 사람들한테도 어렵지만 노인들에게도 어려운 시대합니다. 예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은 “삶의 지혜를 가진 존재”로 인식했지만 언제부턴가 노인은 이제 “무기력하고 사회에 부담이 되는 존재”로 돼버렸지요. 이런 극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노인의 역할(Role)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일생을 제1~4연령기라고 했을 때 서드 에이지(Third age)이후를 무계획 속에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우울한 통계가 아니더라도 이젠 정말 노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대한 뚜렷한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단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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