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작가가 미국적 삶을 다룬 작품에 주어지는 퓰리처상 수상작입니다.책의 주인공이 올리브 키터리지입니다.당시 퓰리처상 심사위원들은 올리브를 일러 퉁명스럽고 허점이 많으면서도 매혹적인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책을 번역한 권상미는 올리브를‘상냥하거나 공손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성격의 키 큰 수학 선생님’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작품 안에서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토퍼는”전 엄마의 그 극도로 변덕스러운 기분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소리쳤습니다.또 남편 헨리는“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사는 동안,당신은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는 거 같아.무슨 일에도.”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과연 올리브는 어떤 미국여자일까요? ‘일상의 빛과 그늘을 다채롭게 연주하다,’라는 제목으로 책맛보기를 시작합니다.
이 책의 배경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작은 해안 마을입니다.올리브가32년간 수학 선생을 했던 학교가 있고,올리브의 남편 헨리가 친절하게 운영했던 약국이 있고,그들 부부가 간혹 들렀던 웨어하우스 바&그릴이 있고,아침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던킨 도너츠가 있고,일요일 브런치의 명소 마리나의 카페가 있고,그 외 철물점,영화관,음악당,요양원,병원 등이 있습니다.옥잠화가 핀 풀밭도 있고 나리꽃과 해당화를 꺾을 수 있는 가파른 벼랑도 있습니다.
책은1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입니다.그 안에는 어린이부터 노인들의 다양한 일상이 펼쳐집니다.대충 읽으려고 덤벼들었더니 그 일상을 독해해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대충 읽기로는 줄거리와 인물을 도저히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저자가 내키는대로 시공간을 넘나드는데다가 주민들을 엇갈리도록 불쑥불쑥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입니다.저자가 장면을 전환하고 교차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만큼 독해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속시원하게 이야기를 직진시키지 않았습니다.용의주도하게 인물과 인생을 창조해 냈습니다.저자의 그 노고에 보답하고자 정독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자,심심할 혹은 시시할 겨를이 없었습니다.등장인물 모두의 일상이 가볍지 않았습니다.저자는 한 인터뷰에서“일상적인 매일의 삶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그리고 존중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이 느끼길 바란다라고 했다고 하니,저자는 일상의 비리와 가치를 소설 속에 함께 녹여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전하는 일상은 너무 리얼해서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 상황맥락을 회피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맞다면,이 책은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이 맞았습니다.어른의 현명함을 얻고 성숙한 노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꿋꿋하게 버티며 힘듦과 직면했습니다.
13편의 단편 중에서 피아노 연주자는 그나마 감당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그 작품에는 웨어하우스 바&그릴에서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치는 오십 줄에 접어든 여자 앤지가 등장합니다.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술과 음악과 그녀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곡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런 그녀는 저로 하여금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라이브 음악이 있는 곳을 검색해 보도록 만들었습니다.일상에서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을 포함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그녀를 표현한 문장을 옮겨봅니다.
“키터리지 부부가 함께 웨어하우스에 올 때는 대개 이른 시간이었는데,언제나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넸다.헨리는 늘 활짝 웃어보였고,올리브는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키터리지 부부가 돌아갈 때면 헨리가 제일 좋아하는 곳을 연주했다.그녀가 늘 헨리의 애창곡을 연주했던 것은 헨리를 볼 때면 늘 따스한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대공포증을 다스리기 위해 수년 전부터 집에서 보드카를 들이킨 후 웨어하우스를 향해 걸어갔다.걷다보면 머리가 맑아져서 의자에 앉을 무렵이면 연주를 할 자신이 생겼다.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람들이 정말로 귀를 기울이는 처음 몇 소절이었다.피아노 선율로 실내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그런 책임감 때문에 두려웠다.
쉬지 않고 세 시간을 내리 연주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연주를 멈췄을 때 실내에 침묵이 내려앉는 걸 피하기 위해 그녀가 연주하려고 앉았을 때 사람들이 다시 빙그레 웃는 모습을 대면하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그녀는 남들의 주의를 끄는 걸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그녀가 좋아하는 건 피아노를 치는 일뿐이었다.첫 곡의 두 소절을 연주하고 나면 그녀는 언제나 행복해졌다.그녀에게 그것은 음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과 같았다.
사람들은 잘 믿지 않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피아노 교습을 받은 적이 없었다.그녀는 네 살 때 교회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처음 피아노를 쳤다.이후 그녀는 손이 배가 고플 때마다 교회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그녀가 열다섯 살 때 시카고에서 온 한 남자가 장학금과 기숙사가 제공되는 음악학교를 권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재는 엄마 없인 못 살아요”라며 거절했다“
그녀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건만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미래도 가로막고 사랑도 가로챘습니다.어머니의 비양심적인 일상이 딸의 인생을 뒤틀리게 하고 수모로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약자인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강자 부모의 위력을 새삼 인식했습니다.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의 마비된 팔뚝을 꼬집으며 멍을 만드는 그녀의 일상에서 비극,비애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출간했을 때는50대 초반이었습니다.그런데도 노년의 풍경을 섬세하고 차분하게 그려냈습니다.노년의 비루한 일상을 꿰뚫는 저자의 눈은 냉철했습니다.피도 눈물도 없이,한 치의 너그러움도 없이 고스란히 들여다보도록 독자를 유도했습니다.노년의 일상 한가운데로 가차 없이 이끌고 들어가는 저자를 따라가노라면 마음이 쩌릿할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 책은 결혼시기에 이른 젊은 사람의 일상도 미화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결혼과 육아를 간접 체험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부모의 갱년기나 은퇴 적응시기는 대략적으로 자식의 결혼,이혼,재혼이나 손주들의 육아시기와 겹치게 됩니다.몸은 이미 쇠약해졌는데 정신적으로 소화시켜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다가오니 노인들에게는 버거울 것같기도 했습니다.
헨리가 그랬습니다.하나뿐인 아들의 이혼 소식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마트에 가려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땅으로 푹 고꾸라지고 맙니다.그 순간부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결국 뇌졸중으로 요양원으로 향합니다.이러한 예측불허의 일상은 누구에게라도 다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13편의 곳곳에다 담았습니다.갑작스럽게 바뀐 일상에 올리브는 화를 낼 겨를도,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올리브는 단지 뇌졸중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며 순종하고 겪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요양원에 있는 남편 방문을 자신의 일상에 포함시킬 따름이었습니다.그렇지만 그 자연의 순리란 것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지독한 고독에 사무치는 올리브의 내면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더러운 진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이야기를 털어놓을 헨리가 없으니 오늘 아침 그를 다시한번 뇌졸중으로 잃은 것 같았다”
올리브의 아들은 아버지가 각각 다른 두 자식을 둔 여자와 재혼을 했습니다.그 아내가 임신을 하자 올리브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합니다.그때 올리브의 나이72세였습니다.아들네를 도우기 위해 매일 찾던 요양원의 남편도,정원의 물주기도 내려놓고 비행기를 처음 탑니다.아들네 집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면 올리브는 요양원 남편에게 전화를 합니다.알아듣지도 못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은 절정에 이른 올리브의 쓸쓸함에 공감하게 합니다.
“올리브는 각기 다른 남자의 자식인 두 아이들에게 자신이 할머니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울고 싶었다.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고 싶었다.올리브는 일어나 앉아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렸다.남편을 바꿔달라고 말한 올리브는 침묵만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 소리나 내봐,헨리”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작은 끙 소리를 들은 것처럼 생각될 때까지 좀더 기다렸다.헨리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며 혼자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럼”올리브가 마침내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부간의 미묘한 관계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헨리 어머니와 올리브의 관계,올리브와 며느리의 관계는 영원한 불협화음을 연상시켰습니다.핏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 한 고부간의 하모니는 요원해 보였습니다.집착은 언제나 불행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다 큰 자식들이 부모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자식들이 부모 탓할 것을 찾아내서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것도 자식들의 자립과 성장에 마땅한 수순이었습니다.우리 모두는 누구나 미숙한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올리브 역시 결국 그것을 깨닫는데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올리브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크리스토퍼는 처음엔 명령조의 성질이 못된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번에는 맹하고 착한 여자와 결혼했다.뭐.올리브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아들의 인생이니”올리브는 손주를 임신한 며느리가 담배를 피고 맥주를 마셔도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며느리가 그것을 명상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담배 연기가 올리브 앞에서 흔들릴 때 원치 않는 폭행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또 뱃속에서 호흡기가 발육되고 있을 손주의 위험을 떠올리면 절대 괜찮지 않았지만,상관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미국 남녀의 세태는 곧 우리나라의 그것이기도 했습니다.부부가 모두 맞벌이를 해야 하는 사회에서 직장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직장이라는 한 공간에서 자주 부대끼다가 저절로 생겨나는 남녀 간의 사랑은 보편적 일상이었습니다.남편 헨리도 약국에서,아내 올리브도 학교에서 은밀한 사랑을 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헨리와 올리브는 가정을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심리학에서 시키는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표출할 수도 있겠다,싶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한 사람들의 치료 모임에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저희를 치료한 의사는 정말 대단한 남자예요.저희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모르실 거예요.그 분이 뉴욕으로 이사해서 저희도 같이 이사왔어요”그 말에 올리브는“정신과 의사 때문에 이리 이사왔단 말이냐?이거 무슨 사이비 종교냐?”라며 놀랍니다.정신과 의사에게 휘둘리며 사는 아들네 부부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방에 돌아온 올리브는 또 요양원의 남편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합니다.
올리브는 아들이 엄마를 탓하며 내뱉은 모든 불만은 아들의 말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말이라는 걸 알아챕니다.어쩌면 정신과 의사를 신뢰하는 아들은 합리적이고 자의식 강한 올리브를 닮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아들이 어릴 때 헨리가“아내가 남편 따라 교회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했을 때,올리브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고집을 부렸으니까요.저자는 이렇게 종교가 낙후되어 가는 그 자리를 과학을 빙자한 심리학이 채우고 있는 미국의 세태를 꼬집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