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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클리셰(cliché[2])는 본래 인쇄 연판(鉛版)을 뜻하는프랑스어다. 많이 쓰이는 단어를 위해 그때그때 조판하는 수고를 덜도록 따로 조판 양식을 지정해 놓은 것이 클리셰로, 한국에서는견통령을 비롯한 인쇄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대(大)·통(統)·령(領)의 3활자를 하나로 묶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컴퓨터로 치고 전송하는 현대에도 이는 계승되어 출판/언론/편집 계통에서는 걸핏하면 오자가 나거나 잘못 쓰기 쉬운 한자어 등을 컴퓨터 상용구로 묶어두고 쓰곤 한다.
위 의미에서 파생하여 미리 만들어 놓은 기성품처럼 '진부한 표현', 혹은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적인경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는틀에 박힌 표현이라는 한국어 관용구와 어원이 비슷하다.[3]영어의스테레오타입(stereotype)도 어원이 같은 뜻이다.[4]따라서 흥미로운 것이, 다시 말해 '클리셰'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역시 어원적 측면에서는프랑스어,한국어,영어모두 '활자'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클리셰의 한 예시가 된다는 것.
t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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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1.
[수사학] (미) 문채(文彩), 수사(修辭)(어구), 비유적으로 쓴 어구.
2.
미사 전례문(典禮文) 속에 장식적으로 삽입한 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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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創 作 論 (9)
◆比 喩 (비유, trope)
1.비유란 무엇인가 -
*비유는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양식)
*관념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비유적 언어)
*이질적인 두 사물의 결합양식(차이성 속의 유사성)-시인은 비교에 의해서 관념들을 진술하고 전달함
비 유---元觀念(원관념)←---→補助觀念(보조관념)
↓(媒介語)↓
-本義, 趣 意,-喩義
-主 想 ,意味材-材料材
-비유되는 이미지-비유하는 이미지
2. 비유의 종류
* 직유(直喩, 明喩): 두 가지 사물이나 의미를 보조형용사의 연결어로 결합하여 표현하는 수사법
- ~와 같이, ~처럼, ~듯이, ~같은, ~만큼, ~인 양, ~마냥...
*은유(隱喩, 暗喩): “A는 B이다”의 형태로 A를 B로 대치시키는 방법. 매개어를 생약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전이(轉移)의 개념으로 파악.(조명적 효과
*의유(擬喩): 의인법, 의성법, 의태법 등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비유법(活喩法)과 유사하게 쓰임
*풍유(諷喩, allegory) : 어떤 사물(소재)을 그것과 유사점을 지닌 다른 사물의 탈을 빌어서 말하는
수사법(allos(다른) + agoria(말하다), 諷 : 빗대어 말할 풍, 諷諫슬며시 돌려서 간함)
*제유(提喩): 유의(喩義)가 나타내는 의미나 사물이 전체의 한 부분인 경우다. 어떤 부분이 그것의
전체를 나타내는 것(“방망이”가 - 무기의 전부를, “빵”이 - 식량의 전부를 나타내 듯)
*환유(換喩) : 유의가 本義를 환기시킬 수 있는 경우(“엽전,고무신”이 한국인을, “바가지”가 헌병을)
3. 비유의 원리
*동일성의 원리(同一性의 原理)
-비유의 근거는 유추(類推)이며, 두 사물의 동일성에 의하여 성립되는 원리.
-비유의 동기는, 인간의 마음이 외부세계와 결합하여 동일화 되고 싶은 욕구가 발생하는데 근거.
-비유의 언어는 연합적 언어이며 서로 같으면서 서로 다른 두 사물의 결합이다.
-비유는 차이성 속의 유사성을 필요충분 조건으로 삼는다.
* 비동일성의 원리(非同一性의 原理) -도피 또는 대결의 원리
-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동일성이 희박할수록 좋은 시가 되며, 힘의 긴장이 고조된다는 원리
(테이트의 이론)--奇想과 絶緣의 시(김춘수의 “나의 하나님”)
- 유사성이 너무 크거나 관습적이면 시적 긴장이 감소한다는 것.(쟁반같이 둥근 달,인생은 일장춘몽)
- 치환은유는 그 어떤 대상을 다른 용모로 뒤집어 씌움으로써 그 대상에 의해 그 원모습을 지워버리고 이러한 은유의 이면에는 현실을 피하려고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은 본능적 욕구에서 촉발된 소망의 산물이라는 것. (오르데카의 은유론)
-현대시의 은유는 “비인간화를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며 인간적 시점과 현실을 배제한 비인간화의
시로 나타나며, 이러한 시는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시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비인간적인 특수한
정조(情操)이며 상상적 질서이다. 현실로부터 도피의 원리는 현실과 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남.
-현대시의 은유는 과거와 달리 “도피 또는 대결”의 원리 속에서 성립된다. -휠라이트는 삶의 원리가
“자아와 타인간”, “자아와 환경간”, “사랑과 적개심”, “본능적 충동과 이성적 판단” “생의 충동과
죽음의 열망“ 사이의 긴장 속에 나타나는 투쟁이라 보고 언어도 살아 있는 언어가 되자면
”긴장적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승훈의 “사진”)
4. 근본비교와 연속성(根本比較와 連續性)
* 근본비교란 한 작품에서 다른 모든 비교들을 성립시키는 토대가 되는 비유.
* 두 사물을 근본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다른 비교들이 파생된다.
* 근본비교의 각 이미지들은 동질적인 것으로 이미지의 연속성을 갖지만,
이미지의 불연속성에 의해 형성되는 문맥의 시도 있다.
(1)-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주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는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김춘수 “나의 하나님” 전문
(2)- 허름한 처마 아래서 밤
열두 시에 나는 죽어,
나는 가을
비에 젖어 펄럭이는 질환(疾患)이 되고
한없이 깊은 층계를
굴러 떨어지는 곤충의 눈에 비친 암흑이 된다
두려운 칼자욱이 된다.--李昇薰 “寫眞” 중에서
(3)-조국은 언제 떠났노,
芭蕉의 꿈은 가련하다.
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네의 넋은 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情熱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네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金東鳴 “ 파초” 전문
**(1)은 원관념의 하나님과 보조관념인 “푸주간에 걸린 살점‘ 놋쇠 항아리” 사이에 대립,
갈등의 이질성을 느낄 수 있듯이 힘의 긴장이 느껴짐.
(2)는 원관념인 화자(나)와 보조관념인 질환, 암흑, 칼자욱 등의 사이에 동일성의 화해가
아니라 대립, 갈등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3)은 파초를 외방여성으로 의인화한 것을 근본비교로 하여
파초의 잎은 치맛자락의 비유로 성립.
클리셰 깨기
시작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는 기믹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를 모티브로 차용한 작가들에 의해 하나의 클리셰가 만들어지고, 마지막으로 법적 확신까지 가세하면 불문율[5]이 된다. 역사 속에서는 로마로 대표되는 유럽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한자문화권 세계의 '황제' 칭호가 이 과정을 밟아 왔다. 진시황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독특한 기믹[6]이었다면 후대 중세 국가에게는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고,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불문율이 된 것과 마찬가지.
영상물에서는 거의 관례처럼 굳은 연출을 가리킨다. 그야말로 왕도적인 연출로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를 내게 해주긴 하지만 그만큼 제작자가 자신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단 말도 되므로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아예 라스트 액션 히어로처럼 대놓고 클리셰만 추구하든가 조금씩 비튼다거나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잘 비틀면 스크림 같은 명작이 나올 수도 있다. 코미디에서는 웃기기 위해 아예 대놓고 활용하기도 한다. 주인공과 히로인을 포함한 주연, 단역들의 대표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따르는 방식 2순위다. 참고로 1순위는 모티브. 당연히 전부는 아니고 몇몇 클리셰를 따르는데, 그렇게 해야 작중 재미가 부여되기 때문.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가 된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잘 먹히니까 클리셰가 되는 거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보여지는 것을 원한다'는 것. 이것을 잘 설명하는 시나리오계의 명언은 '법칙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먼저 법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일부 클리셰들은 현실에서 편견 및 고정관념이다.
나무위키에서는 사실은 지구였다&사실은 지구가 아니었다처럼 고전적인 클리셰를 설명할 때 해당 클리셰의 전형적인 반례를 동시에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문서들이 난립하게 되고, 클리셰라는 지칭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무위키에서 클리셰라고 쓰이는 것들은 'trope'라고 불린다. 이중에서 진부한 것들이 'cliche'다.
외국 사이트 중에 이 분야를 다루는 끝판왕은 TV Tropes이 있다. 단 TV Tropes에서는 단순히 창작 활동의 기교인 Tropes는 클리셰와는 다르며, 그것이 이제 너무 뻔해져서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여야 클리셰라고 한다. 그리고 Trope를 쓰거나 피하는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을 위해서는 이쪽으로
한국에서는 영화 평론가 듀나가 본인 홈페이지에 http://www.djuna.kr/movies/cliches_1.html클리셰 사전을 연재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재미난 클리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 한 번쯤 들러보면 좋다. Nostalgia Critic 역시 죽여주는 클리셰 11이라는 이름으로 동영상으로 업로드한 적이 있는데, 위키에 쓰인 전개에 대한 클리셰보다는 동영상 전문 리뷰어답게 흔히 나오는 연출을 클리셰라고 표현하였다. 예를 들면 이 영상에서 클리셰 1위는 슬로우 모션이다.
일본어로는 お約束, お決まり, 決め台詞, 定番, ベタ, テンプレ[7] 등의 단어로써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전부 틀에 박힌 '전개'(내지는 묘사)만을 칭하는 단어가 아니라서 클리셰와 일대일 대응되지는 않으며, 상투적인 수단이나 행위, 또는 반복되는 일 등 넓은 의미로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ベタ와 テンプレ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
한국의 서브컬쳐에서 말하는 클리셰란 대개 진부하고 정형화된 전개를 말하지만 그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대개 좁은 의미의 클리셰로서 세세한 부분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공유되는 설정을 클리셰라 부르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만, 일부의 경우 엄청나게 넓은 범위로 클리셰를 정의하며 장르 자체를 클리셰라 보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배틀물에서 싸운다는 것이 클리셰, 러브코미디에서 연애하면 클리셰, 디스토피아물에서 디스토피아가 나오면 클리셰.(...)붕어빵은 클리셰 파괴
2.1. 클리셰 깨기[편집]
특정 연출이나 전개가 클리셰라고 불리게 되면 그만큼 많은 작품에서 많이 쓰였다는 것이기에 당연히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이 영화는 미국식 영웅주의군'이라고 비판하는 행위 그 자체. 할리우드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유럽 영화계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할리우드 클리셰를 깨려고 한다.
클리셰 깨기를 가장 빈번하게 시도하는 장르는 개그물로, 이는 '있어야 할 이치를 부정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골계미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다. 패러디가 대표적인 클리셰 깨기 개그의 예시. 원작에서 전개에 개연성과 안정감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클리셰를 깨며 생기는 불안정함도 개그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개그물 이외에서 클리셰 깨기를 시도하는 건 창작자에게 상당한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요구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크림이나 퍼니 게임 등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실력 있는 작가나 감독이 기존의 클리셰를 깨거나 뒤집을 경우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실력 없는 창작자가 무리해서 클리셰를 깨더라도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고 괴작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클리셰 파괴 창작물이라고 해서 모든 클리셰를 비껴가지는 않는다. 흔히 클리셰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정립된 다양한 문학 기법도 포함되며 이걸 전부 비껴간다면 당연히 전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클리셰 한두가지를 파괴하는데, 대표적으로 장르 전체에서 만연하는 인기작의 표절에서 벗어나거나, 편리한 전개를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제거하거나, 오로지 말초적인 자극을 위해 작품의 질을 계속 저하시키는 여타 풍조를 부정하는 식으로 구현된다.
사실 현대에는 전개나 연출 방식이 이미 확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의 클리셰에 대한 거부는 보통 과거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복고주의인 경우가 많다. 20년전에는 식상한 전개라도 20년간 사용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더없이 참신한 전개가 되는 셈이다.
클리셰 깨기를 잘 해낼 경우 기존 시장을 거부하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블루오션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그리고 블루오션이 다 그러듯이 후속 주자들이 이를 따르며 레드오션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클리셰를 비판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클리셰로 정착되는 경우.
클리셰가 점차 고착되면 '클리셰는 진부하고 클리셰 파괴는 창의적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클리셰 파괴를 일종인 훈장인 것처럼 평가기준으로 삼는 빠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엇이 클리셰이고 무엇이 클리셰 파괴인지에 대한 병림픽으로 이어진다. 해당 장르에 대해 알지 못해서 이미 이전에 클리셰로 고착된 설정이 참신하다고 착각하거나, 상업성을 위해 전개의 질을 저하시키고 개연성을 파괴하는 전개를 클리셰 파괴라고 칭찬하는 빠도 있다. 반면 가장 기본적인 서사구조나 장르 자체를 클리셰라며 왜 그건 따라가냐고 비아냥대거나, 클리셰 파괴는 클리셰와 접점이 있는 이상 클리셰의 기출변형일 뿐이라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까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클리셰를 뛰어넘은 신선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다루는 장르의 클리셰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 피카소의 말처럼, '규칙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을 완벽하게 익혀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는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기 이전 10대 시절에 이미 그전의 모든 예술사조를 완벽히 구사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실패하고 마는, 또한 상업예술을 만만하게 보고 뛰어드는 순수예술가들이 자존삼을 구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현실에서는 클리셰를 뛰어넘기는 커녕, 단지 클리셰를 잘 다루는 작품조차 제대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
엄밀하게 말해 클리셰와 트룹은 의미상 차이가 있다. 어떤 트룹이 지나치게 사용되어 예측 가능해지고 심지어 사람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성질의 트룹이 되었을 때, 이 트룹을 클리셰라 부른다. 간단하게 클리셰=부정적인 트룹. 클리셰면 트룹이지만 트룹이라고 클리셰인 것은 아니다. 클리셰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평가되고 형성되는 것이므로, 어떤 사건, 인물, 배경 등에 대한 공통적인 특징에 대하여 말을 할때는 클리셰라는 단어 보다 트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 만 이미 국내에서는 클리셰라는 단어가 트룹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안될꺼야 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