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가출과 출가는 비슷한 말 같지만 뜻이 많이 다릅니다. 두 단어의 공통점은 현재의 거주지를 떠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가출은 지금 머무는 곳이 싫어서 떠나지만, 출가는 찾아갈 곳이 더 좋아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출한 사람과 출가한 사람 모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력과 절실함이 요구됩니다.
제가 사제가 되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은 저를 걱정하며 여러가지를 물었습니다.
질문의 대부분은 장차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혹은 제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결혼 안하고 평생 혼자 살 수 있는지, 혹은 앞으로 외로워서 어떡하느냐는 근심 어린 물음이었지요.
저는 분명 사제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신학교에 입학했고, 그래서 사제로 산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지난 삶의 궤적을 보면 제가 한 것이 가출인지, 출가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힘든 삶의 길을 가는 줄 알았는데,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어려움과 사회생활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가 하고 반성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사제의 삶, 사제의 길이란 무엇일까요? 사제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사제란 누구인가, 누구이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사실 한마디로 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사제는 하느님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때문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제란 하느님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란 하느님이 선택하시고, 하느님이 불러 세우신 사람이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사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제는 최고의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제란 하느님의 더 큰 영광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사제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앞장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자기 삶의 자리를 몽땅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만을 따른 사람들이 있었고,
동시에 자기 삶의 터전에 머물면서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제는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 삶의 자리를 온전히 떠나서,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독신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무소유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혼자 살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사제는 하느님 백성을 위해서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백성을 대표해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먼저 주님 사랑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누린 사람이기에, 하느님 백성에게 자신이 먼저 체험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제란 어딘가에 한 사람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그곳에 가고, 한 사람도 없다면 그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그곳에 가는 사람입니다.
결국 사제란 하느님의 더 큰 영광과 그분 백성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녀가신 후 생긴 교회를 이끌면서 하느님과 사람을 연결합니다.
교회란 하느님이 불러 모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구원 은총을 먼저 받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와 사명을 실천해야 할 사람들은 교회 구성원 모두이지만, 좀더 특별하게 이를 실천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에는 사제와 같은 성직자 이외에도 수도자와 평신도가 있습니다. 성직자는 주교, 신부, 부제로 구분합니다.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특별히 뽑아 세운 사람들입니다.
주교는 목자로서 교구를 책임지고 대표하며, 동시에 전체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갑니다.
현제 전 세계 주교의 숫자는 대략 5천 명이며, 우리나라에는 약 40명의 주교가 있습니다.
대교구의 교구장은 대주교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서울, 대구, 광주 세 개의 대교구가 있습니다.
보통 교황은 흰색 모자(주케토)와 수단, 추기경은 빨간색 옷, 주교는 자색 옷을 입기 때문에, 멀리서도 구분이 가능합니다.
주교들은 하느님을 대신해 양 떼를 다스리는 목자가 되고, 교리를 가르치며, 거룩한 예배와 성사를 담당합니다.
오직 주교만이 교회에 맡겨진 7개의 성사를 온전히 집행할 권한과 책무가 있기에, 주교는 교회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 주교단의 대표이자 수장을 교황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전체 주교들 중에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은 분들을 추기경이라고 부릅니다.
추기경은 교황에 곁에서 특별한 조언과 도움을 주고, 특히 콘클라베라고 부르는 교황 선출 회의에 참여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선출 회의에는 모든 추기경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현제 전 세계 추기경은 약 200명 정도이고, 교황 선출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추기경은 항상 120명 내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총 세분의 추기경이 선출되었고, 2020년 현재 한 분은 선종하셨고, 한 분은 은퇴하셨으며, 한 분은 서울 교구장이십니다.
신자들이 가장 자주 만나는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를 대신해서 각 본당의 목자 역활을 합니다.
현재 전 세계의 신부는 대략 46만 명이고, 한국에는 5,480명이 있습니다.
사제라는 표현도 자주 쓰는데, 사제는 영원하신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제사 드릴 수 있도록 뽑힌 사람, 즉 주교와 신부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소속에 따라서 교구 신부와 수도회 신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해외의 경우 다양하고 많은 수도회의 선교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어서, 수도회에 대한 인식도 높고, 매우 친근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독특하게도 수도회를 통해 그리스독가 전파되지 않고, 조선 후기에 자발적이고 자생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비해 수도회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본인이 교구 사제가 될지, 수도회 사제가 될지 결정한 수에, 사제가 되기 위한 교구 모임이나 수도회 모임을 다니며 준비한 후에,
절차를 거쳐서 교구 사제 혹은 수도회 사제로 양성되고 살아가게 됩니다.
수도회는 남자 수도회와 여자 수도회가 있습니다.
보통, 남자 수도자를 수사님이라 부르고, 여자 수도자를 수녀님이라 부릅니다.
남자 수도회 중에 성직 수도회라고 불리는 곳은 구성원 전체가 수도 서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직자로 서품됩니다.
성직 수도회가 아닌 남자 수도회에서는 일부 수도사 중에 성직 과정을 거쳐 신부가 되고, 이분들을 수도 사제라고 부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수도회는 대략 169개이고, 남자 수도회는 48개에 인원은 1,594명이고, 여자 수도회는 121개에 인원은 10,159명입니다.(한국 천주교 통계 2019,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란 성직자와 수도자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곧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에 속하여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며,
교회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톨릭 신자 수는 전국 16개 교구가 집계한 바로는 약 590만 명이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1%라고 하는데,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냉담자와 고령화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구분을 마치 교회 내의 계급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기준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계급의 구분이 아니라 역활의 구분으로 봅니다.
물론 교회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거나 활동을 하다 보면, 가톨릭교회가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을 접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 다양한 성사, 특히 성체성사이다보니, 성직자의 역활과 비중이 큰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마치 자기의 대단한 권한인 것처럼 착각하는 성직자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당연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부름받은 사람들, 선택된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데 이 부분은 성직자는 물론, 수도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수도자를 존경하는 이유, 수도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수도자는 세속 사람들처럼 자꾸 뭔가를 가지려 합니다. 평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만이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도, 선택된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화내고, 욕심 부리고, 이기적으로 산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기 머리와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