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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11) 2026. 5. 27
반쪽 순종, 반쪽 승리
왕하3:21~27
<지난 시간 요약 - 여호와께는 작은 일>
반역한 모압을 정벌하기 위해 연합군(남유다의 여호사밧과 에돔 왕)을 형성한 여호람은 ‘에돔 광야’를 통해 진군합니다. 그러나 불과 7일 만에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유다 왕 여호사밧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물었고, 신하 중 한 사람이 진중에 엘리사가 있음을 알립니다. 연합군의 세 왕은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을 찾아온 여호람 왕에게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며 냉담하게 응대합니다.
그러나 함께 온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아’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거문고 연주하는 자를 청합니다. 거문고를 탈 때 하나님의 손이 엘리사 위에 머뭅니다(찬양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그가 전한 말씀은 언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16)는 것이었습니다(‘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 사실 이미 물을 구하기 위해 파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였습니다. 이 말은 상식을 초월한 말씀입니다. 바람과 비가 내리지 않고 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즉,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물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두 놀라는 가운데, 엘리사는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18)고 말씀합니다.
하룻밤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날 아무런 징조도 없었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비가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소재를 드릴 때”(예배할 때), ‘에돔 쪽에서부터 물이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20절).
그들이 순종하여 파놓은 웅덩이에 물이 고인 것입니다(하나님의 은혜는 순종을 통해 담음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 일하고 계셨다는 점을 강조할 뿐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곳,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딘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께는 ‘작은 일’(18) 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모압을 향해 진군할 수 있었습니다.
<모압의 반응>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공 소식을 들은 모압의 반응입니다.
21절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이스라엘 연합군의 진격 소식에 모압 사람들은 나름 철저하게 대비하였습니다.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 갑옷을 입을만한 최소한의 어린 병사들까지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남쪽과 에돔 북쪽 경계인 세렛강에서 연합군을 마주하고 방어 태세를 갖췄습니다. 그곳은 절대적으로 모압에게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60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국입니다.
일반적으로 밑에서 위로 공격을 하는 군대는 위에서 아래를 보고 방어하는 군대보다 3배의 숫자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압 입장에서는 위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성급한 판단>
그런데 모압의 결정적인 실수가 나옵니다.
22~23절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두 가지 실수를 합니다.
첫째는 이날 아침 동녘의 햇살이 세렛 강물을 비추자, 건너편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던 그들 눈에는 물이 피처럼 붉게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에돔과 모압 주변은 대부분 붉은 사암과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압의 군사들은 강물에 붉게 비친 빛을 피로 오인하였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전날에 아무 바람도 없었고 비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웅덩이에 고인 물을 얼마든지 ‘피’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성급하게 연합군이 서로 싸우다 자멸한 증거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이 확신에도 배경이 있었습니다. 즉, 유다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모압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도 틈만 있으면 반란을 꾀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압은 이스라엘 진중에 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식수 부족으로 서로 분쟁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적진의 상황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성급히 전리품을 챙기러 연합군 진영으로 진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착각하게 하여 함정에 빠지게도 하십니다(에 5:11~12).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그런 식으로 섣부르게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비에 집중했더라면, 아무리 세 나라의 연합군이라고 하더라도 모압을 쉽게 정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성취된 예언, 그러나...>
모압 군대가 내려오는 것을 본 연합군은 조용히 기다리다가 역습을 합니다.
24~25절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갑작스러운 역공에 당황한, 모압 군대는 도망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왕하3:18~19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모압 땅으로 들어간 연합군은 1) 성읍들을 헐고, 2) 좋은 밭들을 다 돌무더기 터로 만들고, 3) 샘을 다 메우며, 4) 좋은 나무를 다 베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파괴는 그 당시에 전쟁의 승자가 취하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초토화 전법'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단 하나의 성읍은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모압의 수도 길하레셋 성(‘길하레셋의 돌들’)입니다. 다른 곳은 모두 점령했는데 여기만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곳은 마치 여리고 성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다만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을 포위하고 ‘물매꾼’을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성안으로 돌을 던져 압박하여 메사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전술을 펼쳤던 것입니다.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연합군의 공세에 궁지에 몰린 모압 왕 메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탈출을 결심합니다.
26절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승산이 없음을 감지하고 칼을 찬 군사 700명을 데리고 포위망 중에서 가장 약한 에돔 쪽을 뚫고 성읍을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연합군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였습니다.
사실 에돔 왕은 이스라엘 및 유다와 마지못해 동맹을 맺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압 왕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대하 20:10, 22). 또, 남유다에 예속되어 있던 에돔은 모압의 형편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관계입니다. 그래서 에돔을 가장 약한 고리로 판단하여 그 진을 통해서 탈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인신 제사>
이제 모압 왕 메사에게 남은 일은 하나입니다. 바로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사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합니다.
27절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민수기에 따르면 모압은 그모스를 섬기는 족속이었습니다(민 21:29). 그모스 우상은 사람의 몸과 황소의 머리를 가진 형상입니다. 그런데 이 신에게 ‘인신 제사’를 드리는 것은 최고의 제사였습니다.
모압의 북쪽에 있는 암몬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밀곰(몰록, 몰렉, 말감) 신에게 인신 제사를 드렸습니다(왕상11:7, 렘32:35).
한편 사람을 희생 제물로 삼는 이방인의 이러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며 정죄 받을 행위였습니다(레18:21, 20:1-5).
위기를 맞이한 모압 왕 메사는 자신이 섬기는 신 '그모스'가 노했다고 생각하고, 가장 소중한 다음 왕위 계승자(맏아들)를 택해 ‘인신 제사(공양)’를 바칩니다. 말하자면, 후손을 끊어버리는 배수의 진을 친 것입니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는 최후의 위기 때 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거나 신의 도움을 끌어내기 위한 극단적인 제의로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메사는 인신 제사를 성벽 위에서 공개적으로 드립니다. 그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모두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일종의 심리전입니다. 적군에게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처절하고도 광기 어린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결단을 적들에게 보여주고, 인신 제사를 끔찍하게 여기는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충격을 주려는 것입니다.
그들의 극단적인 종교 행위는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이 구절은 성경에서 해석하기 까다로운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표준새번역 - 27절 “그래서 모압 왕은, 자기를 대신하여 왕이 될 장자를 죽여, 성벽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여, 그 곳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격노'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이스라엘 연합군이 느낀 심리적 충격과 두려움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종교는 짐승을 희생 제물로 삼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난생처음으로 자식을 산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인신 제사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인신 제사라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연합군은 “이 전쟁이 너무나 저주스럽고 끔찍하다”는 심리적 공포와 혐오감에 휩싸였고, 결국 사기가 꺾여 전쟁을 중단하고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배우는 교훈>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순종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엘리사가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16)고 명령하였을 때, 이스라엘 연합군은 언뜻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순종하기 어려운 주문이었습니다(이미 해봤던 것).
그때 엘리사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18)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연합군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 순종은 두 가지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1)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물을 주실 때, 그 물이 흘러가 없어지지 않고 고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골짜기에 파놓은 웅덩이는 단지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압의 선제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준비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이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음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약속의 성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급한 결정을 조심하십시오.
모압 왕의 치명적인 실수는 성급함입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이 ‘피’같이 보였더라도, 정탐꾼을 먼저 보내 자세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합니다.
한 번 더 생각했더라면... 하와가 뱀의 유혹에 한 번 더 생각했더라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조급함 때문에 큰 실수를 한 대표적인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대치 중이었는데,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자 하여 사무엘 선지자에게 연락했습니다. 사무엘은 ‘칠 일 동안 기다리라’(삼상10:8)고 응답을 해 왔습니다.
지금 사울은 매우 다급합니다. 블레셋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을 두려워하여 하나둘씩 이탈하여 도망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명의 군사라도 더 있을 때 제사를 지내고 출전을 해야 하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레를 기다리라고 했으니, 사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사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레의 정한 시간이란 불필요하고 원망스러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에게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상황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떤 조건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수행하는지를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때, 극단적인 시간까지 연장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병든 것을 아시고도 의도적으로 지체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사무엘도 전쟁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긴 시간의 기한을 정하고, 그것도 마지막 순간까지 지체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급한 마음이 든 사울은 스스로 제사를 드리고 맙니다(삼상13:9~12). 뒤늦게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에 불같은 책망을 하면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삼상13:14)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일이 먼저 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실수를 줄여갈 수 있습니다.
셋째, 우상 숭배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을 사람들의 삶에 초래합니다.
하나님이 우상 숭배를 금하신 이유가 분명합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욕망이 투영된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에는 최소한의 법도나 윤리도 없습니다. 오직 탐욕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인신 공양, 성전 창기 및 미동과의 음란한 성적 행위). 결국, 우상 숭배는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맙니다.
요일5:21(요한의 마지막 권면의 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넷째, 불완전한 순종은 완전한 승리를 놓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기를 잡았지만, 끔찍한 광경 하나 때문에 철수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물을 공급하시고 승리를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 연합군이 끝까지 인내하며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심리적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물러났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여호람은 전쟁을 일으켰음에도 마지막까지 순종하지 못함으로 절반의 승리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반쪽 순종, 반쪽 승리를 가져올 뿐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인내했다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전쟁 후에 모압으로부터 조공을 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대 예언서들에서는 모압이 계속해서 독립적인 민족으로 등장합니다(사15-16, 렘48).
고고학적으로 이 전쟁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자료가 전해집니다. 1868년 프레드릭 클라인이 발견한 모압 비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므리가 오랫동안 모압을 압제했지만, 그모스의 도움으로 내(메사)가 이스라엘을 이겼다.”
이후 모압 족속은 또다시 강성해져서 두고두고 이스라엘의 가시 노릇을 하고, 죄를 범하게 만드는 올무 노릇을 하였습니다(스9:1~2, 느13:23).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죄의 뿌리’ 곧,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완벽하게 뽑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여름의 잡초같이 커 버립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결국 후환을 일으킵니다. 너무 커져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이 호미가 되어 ‘죄의 뿌리’가 싹 뜨는 것을 막아줍니다.
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낫이 되어 내 마음 한 곳에서 커가는 ‘가라지’를 잘라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끝까지 순종하여 ‘죄의 뿌리’가 내 인생을 말아먹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반쪽 순종’으로 중간에 포기하는 자가 되지 말고, 끝까지 순종하여 ‘최후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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