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장수리 의암송 (長水 長水里 義巖松)
주자료 : http://www.ohmynews.com/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 을 인용했습니다
무주 수락마을을 들렸다가 남원 지리산으로 가기 전에 잠시 장수에 들렸다가 우연히 본 의암송
너무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 있어 의연한 소나무의 자태를 담아 본다
의암송 전체 모습
이 소나무는 1500년대 후반 당시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가 의암 논개와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장수군청 현관 바로 앞에서 자라고 있는 장수 장수리의 의암송은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9m, 가슴높이의 둘레 3.22m의 크기로 줄기는 한 줄기이며, 땅으로부터 1m부분에서 줄기가 시계방향으로 뒤틀어져 나선형을 이루고 있어 용이 몸을 비틀고 있는 모양과 비슷하다.
나무 윗부분은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져 우산 모양을 하고 있어 매우 아름답다.
의암송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1592) 때 의암 논개가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며,
지역 주민들이 예전의 장수 관아 뜰에서 자라는 이 나무에 논개를 추모하는 뜻에서 붙여놓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근처에는 논개의 초상화가 있는 의암사와 그 아래로 의암호수가 있다.
의암송 안내판
義巖이란 의로운 바위로 진주 남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의암이라는 명칭은 논개가 왜장을 안고 죽은 곳에 있는 바위에 붙여졌으며, 그 의암이 이제는 논개의 별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소나무가 논개에 의해 심어졌고 논개의 별호인 의암을 따서 의암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암송 아래 부분
그런데 의암송 바로 뒤에 장수군청 건물이 있어 소나무의 멋이 반감되어 아쉽다.
소나무는 원래 홀로 있어야 고고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법인데 아쉽기 짝이 없다.
소나무를 본 모든 사람들이 군청을 지은 사람의 근시안을 탓한다.
언젠가는 군청이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갈 테고 그때나 되어야 제대로 된 의암송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의암송, 소나무 자체만 놓고 본다면 보고 또 보아도 멋진 소나무다
장수 장수리 의암송은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수는 산과 물의 고장이다. 군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산악 지형이고, 금강과 섬진강의 물줄기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장수, 이름도 긴 물이다.
장수의 한가운데를 길게 흐르는 금강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고장의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인물들을 만난다.
순의리 백씨, 향교지기 정경손, 그리고 의암 논개가 그들이다. 장수 사람들은 이들을 ‘3절(節)’이라 칭송한다
장수 사람들에게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논개는 1574년 9월3일 장수의 주촌마을에서 갑성년, 갑성월, 갑성일, 갑성시라는 특이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원래 양반가의 딸로 집안이 몰락하여 풍파를 겪다가 17세 때 담양부사인 최경회의 후처가 되었다는데, 그녀의 순절이 전사한 남편을 위한 복수였다는 말도 있다
장수에는 논개의 유적이 많다. 그녀가 태어났다는 마을은 수몰되어 사라졌지만 그 인근에 주촌민속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생가도 복원되어 있다.
의암사 북쪽에는 기념관이, 그 앞에는 ‘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가 서 있다.
장수군청 앞에는 400년 전 최경회와 논개가 함께 심었다는 의암송이 아직 자라고 있다. 그녀의 무덤은 함양에 있다는데 확증된 것은 아니다.
장수에 들를 일이 있다면 장수군청 앞 마당에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의암송을 한번 들려 보면 어떨련지?
초보산꾼 多 小
첫댓글 잘 봤삼.
고향 옆이라 남다른 생각이 날 듯
곧 수락마을도 올릴 테니까 즐감하삼 .... 고향생각도 해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