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강’ 분수, 황홀한 테레사… 로마를 화려하게 조각하다
입력 2023.04.04. 03:00
베르니니가 만든 '4대강 분수' - 베르니니는 로마 도처에 멋있는 분수를 만들었다. 1651년 나보나 광장에 설치한 피우미 분수도 그중 하나다. 이 분수는 세계 4대 강(나일강, 갠지스강, 라플라타강, 다뉴브강)을 상징하는 신들과 동물들(유럽의 말, 아프리카의 사자, 남아메리카의 아르마딜로, 아시아의 용)로 장식돼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탁월한 예술가 한 명이 한 도시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오늘날 로마의 모습을 거의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처에 장대한 교회와 회화, 조각과 분수가 있는 로마는 도시 공간 전체가 극적이어서, 여행자 자신이 로마라는 거대한 연극에 동참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로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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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가는 길 있다”… 수도사의 지도가 콜럼버스 내비게이션 됐나
입력 2023.03.21. 03:00
뒤집어서 보면… 지금의 세계지도와 놀랍도록 닮은 프라 마우로의 지도 - 기독교 세계관과 결별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성과 정확성을 추구한 프라 마우로 지도의 가치는 180도 뒤집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지금의 세계지도와 거의 흡사한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들의 해안선이 비교적 상세하게 보인다. 지중해·흑해·카스피해 등 주요 바다들의 위치도 지금 세계지도와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은‘심팡구섬’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돼 있는데, 이는 유럽 지도에 일본이 등장한 첫 사례다. /위키피디아
중세 유럽의 세계지도(마파문디·Mappa Mundi)는 기독교적 시각에서 세계를 파악하여 그렸다. 단순히 객관적 지리 정보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자체가 하느님의 뜻이 구현되는 무대라는 의미다.(86화 참조)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런 꿈 같은 세계상을 고집할 수는 없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리던 15세기 중엽이 되면 새로운 세계 인식을 담아내는 혁신적인 지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수사 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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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이 그린 세계지도… 아시아 동쪽 끝엔 ‘에덴동산’
입력 2023.03.07. 03:00
13세기에 만든 유럽의 세계지도 - 13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마파문디인 에프스토르프 지도. 가로세로 각 3.6m의 사각형에 텍스트 1500개와 그림 845개가 들어가 있다. 지도의 구성과 배치 방식을 보면 ‘세상은 그리스도의 일부이며 그리스도가 세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기독교 중심 세계관이 투영돼 있다. 원본은 2차 대전 당시 소실됐다. 에프스토르프는 1830년경 이 지도가 발견된 니더작센주의 수도원 이름이다. /위키피디아
세계지도는 그것을 제작한 사회나 문명권이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중세 유럽에는 마파문디(Mappa Mundi)라고 부르는 독특한 유형의 세계지도가 있었다. 세계(mundi)를 그린 도표(mappa)라는 의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므로 중세 유럽인들이 생각한 인간 거주 지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이다. 지도상의 위에 아시아, 아래 왼쪽에 유럽, 아래 오른쪽에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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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출토된 인도 유리구슬… 해양 실크로드, 한반도로 이어졌다
입력 2023.02.21. 03:00
한국까지 그려진 17세기 인도양 지도 -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이 비교적 뚜렷하게 표시돼있는 인도양과 태평양 지도. 1660년대 서양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베트남 황사자료관이 소장하고 있다. 고대와 중세의 대표적 무역 항로였던 해상 실크로드가 실제로는 한반도까지 연결됐을 가능성이 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도에 나온 아라비아~인도~동남아~한반도를 직·간접으로 연결해주는 무역 루트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고대 한반도 주민들은 외부 세계와 어느 정도 소통하고 있었을까? 최근 진척된 고고학 연구는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 내부에서만 주로 활동했으리라는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각지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은 일찍이 활발한 해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경상남도 사천시에 있는 늑도(勒島) 유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번성했던 국제 교역항으로서 고대 동아시아 해양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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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해권 쥔 로마… 명장 한니발도 해상보급 끊기자 무릎 꿇었다
입력 2023.02.07. 03:00
카르타고의 코끼리 부대에 맞서는 로마군 -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이 자마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과 맞서 싸우는 전투 장면을 묘사한 16세기 그림. 이탈리아 화가 줄리오 로마노와 네덜란드 화가 코넬리스 코르트가 그린 그림으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로마군은 제해권 장악에 힘입어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2차 포에니 전쟁의 승기를 잡았고, 결국 카르타고를 완전히 궤멸시키며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고대 로마는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면서 제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첫 단계가 서부 지중해의 강국 카르타고와 포에니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둔 일이다. 1차 포에니전쟁 이후 로마와 카르타고는 교역 관계로 되돌아갔다. 그렇지만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두 강대국이 언제까지 모호한 평화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기원전 219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에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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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로마, 바다로 눈 돌리면서 세계사 주역이 되다
입력 2023.01.17. 03:00
포에니 전쟁에서 병사들을 이끈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카르타고군에 승리를 거두고 인질들을 나포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16세기 활동한 바티칸의 궁정화가 줄리오 로마노에 이어 18세기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세치가 완성했다. 해상 패권을 놓고 맞선 로마와 카르타고는 전략적 요충지 시칠리아 등을 놓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23년간 지속되었던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에 완승을 거둔 로마는 서부 지중해의 통제권을 장악하게 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고대 로마의 역사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기원전 6세기경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 지방에는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고만고만한 작은 부족들이 경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로마는 테베레 강과 바다에 가까우면서 이탈리아 반도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누리는 데다가 7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방어에 유리했다. 점차 이웃 부족들을 누르고 힘을 키워가기는 했으나, 이 시점에서 보면 장차 유럽 대륙 중남부와 아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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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꿈꾼 길가메시의 깨달음… 영원한 건 인간이 아닌 인간의 업적
입력 2023.01.03. 03:00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5.5m 높이의 ‘사자를 압도하는 영웅’(왼쪽) 조각상과 날개를 달고 인간의 머리를 한 황소의 조각상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기원전 8세기 작품이다. 사자를 압도하는 영웅의 주인공은 길가메시, 황소의 정체는 여신 이슈타르가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세계관이 응축된 길가메시 이야기는 계속 변화하면서 주변 지역으로 확산됐고 풍부한 내용과 뚜렷한 메시지를 담게 됐다. /플리커
약 4500년 전에 기록된 길가메시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다. 석판 12개 위에 기록한 시구 3000행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왕국 우룩(Uruk)의 왕 길가메시의 영웅적 모험을 그린다. 처음에 시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룩의 성곽으로 올라가서 찬란한 도시를 보라. 그리고 삼나무 궤 안에 보관된 청람석 석판 위에 새겨진 길가메시 이야기를 보라. 길가메시는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인 특별한 존재지만 폭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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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때 병사들이 많이 부른 캐럴… ‘고요한 밤’ 탄생의 비밀
입력 2022.12.20. 03:00
지난 2014년 영국의 조각가 앤디 에드워즈가 만든 ‘크리스마스 휴전 동상’이 리버풀 세인트 루크 교회 앞에 서 있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총을 내려놓고 함께 친선 축구 시합을 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동상 주변에 심은 것은 1차 대전 추모의 상징인 붉은 양귀비꽃 조형물이다. 양귀비꽃은 1차 대전 격전지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남부 들판에 흔하게 피어 있던 꽃으로 이 광경을 묘사한 존 매크래(캐나다군 참전 군의관)의 시 ‘플랑드르 들판에서’를 통해 1차 대전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위키피디아
1914년 12월 24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6개월이 지나 전선이 교착 상태에 들어간 플랑드르 지역. 이곳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미 전사자가 수십 만 명 발생했다. 매일 양이 엄청난 폭탄이 폭발하고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녔다. 병사들이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호각 소리와 함께 적 병사들이 돌격해 오고 아군은 기관총 대응 사격을 했다. 그런데 이날 밤은 웬일인지 달빛만 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