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2014년 동기회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30년이 되던 1997년 그해, 여러 친구들이 뜻을 모아 동기회를
발족시켰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결과 동창회 어느 기수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친목과 화합으로 가득한 24회 동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동기회를 성심껏 이끌어 가는 임원진들과 서로 믿고 따라주는 동기생 여러분들이 다함께
노력한 결과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동기회 이야기고 그 옛날에도 성동 24회 동기회는 엄연히 존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물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기록들을 한 점도 가감없이 원본 그대로 공개하고자 합니다만 혹여 거기에 등장하는 일부
동기생 여러분께서는 기분이 언잖다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성인으로의 관문을 통과하는 철부지 시절의
치기(稚氣)라 흘려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45 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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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월 26일(목)
오늘 우리 동기생들(남자만)이 놀자해서 돈 50원을 내고 시훈이 할머니댁에서 놀았다.
시훈이 할머니는 서울가고 안계셨기 때문이다.
술마에 있는 기철이 일제, 동우, 도환이도 왔다. 탁주와 소주를 섞어가지고 마셨는데 시간이 지나자
순엉망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은 거기서 잠을 잤으나 대현이와 나는 그곳이 불편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 1968년 12.30(월) 맑음
오늘 우리 동기생들이 놀자해서 여학생들이 쌀을 거두러 왔다.
나는 안간다고 했는데 누나가 그만 쌀을 주어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저녁에 50원을 들고 갔다.
술같은 것은 입에도 못대었으나 억지로 먹이니 할 수 없었다. 나와 대현이는 수은이가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을 겨우 달랜 후 집으로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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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 8.25(화)
대현이와 나, 둘이서 주최하기로 한 동기회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침 성내 장말조(23회) 선배한테가서 얼마 전에 했던 23회 동기회 안내장을 한 장 얻어 왔다.
23회 동기회 안내장은 '벗들이여~~'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거기에 말을 조금 바꿔 24회 동기회 안내장을 완성했다.
마카오지 한 묶음을 사가지고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에게 가서 인쇄를 부탁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안된다고 한다.
- 1970. 8.26(수)
세진이와 함께 방주사 한테 가서 인쇄를 부탁하니 쉽게 승락해 주었다.
대현이와 집에서 봉투에 친구들 이름을 적고 준비를 완료했으나 제일 중요한 장소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장소는 세진이가 맡고 있었는데 저녁에 세진이가 와서 방도 없고 진하 친구들 전부 다 동기회 안하겠다고
하더라 한다.
이것저것 알아볼 겸 대현이와 진하에 가니 친구들은 보이지 않아 다시 성내로 가서 용옥이에게 방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뒤 집으로 왔다.
- 1970. 8.27(목)
진하 연화할머니댁에 장소가 정해져서 동기회 안내장을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서생은 여학생들이, 화정 술마는 용옥이가, 솔개는 익곤이 가는 편에 부쳤다.
진하는 철수가 맡기로 하였는데 어제 저녁에 영복이가 벌써 다 나눠줬다고 한다.
- 1970. 8.28(금)
오후에 대현이 과수원 원두막에 가서 오늘 있을 동기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50여장을 부쳤으니까 최소 30명은 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어 동기회 약속시간인 8시 30분이 되어도 나오는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한 두명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술마친구들이 제일 먼저 왔다.
대현, 순하와 함께 종포 형님집에 가서 소주 탁주, 사이다를 사가지고 와서 한데 섞었다.
조금 지나 과자가 다 떨어져 대현이와 함께 흥태집에 가서 과자와 안주감들을 사오는 길에 길가에서
평동애들과 시비가 붙었으나 대자가 와서 말리는 바람에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잠깐 사이에 마루와 마루밑에는 친구들이 토악질 한 오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 1970. 8.29(토)
새벽 2시경 술에 취한 수은이가 주먹으로 등불을 깨어버린 것을 계기로 동기회는 거의 끝이 났다.
새벽 4시경에 주인이 와서 몹시 꾸중을 했다.
기철이가 태워버린 성냥 한 곽, 실광이와 수은이가 깨버린 등 2개, 수은이가 뒹굴은 배추밭 등..
실광이는 술에 취해서 신발을 전부 다 담 밖으로 던져 버렸다. 다행이 내 신발은 담벼락에 부딪혀
담 안쪽에 떨어져 있었다.
신발들은 거의 다 담 너머 콩밭에 떨어져 신발을 못찿은 친구도 많이 있었다.
새벽이 훤히 밝아 올 때 대현이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방학 마지막 날이므로 집에 와서 두어시간 눈을 붙인 뒤 울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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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일기장은 68년도와 70년도 동기회 모습입니다.
말이 동기회지 그냥 놀자판이에요..ㅎ
68년도라면 우리가 중학교 2학년 때이고, 70년도는 고교 1학년 때가 되네요.
그리고 아래는 그 뒤에 있었던 74년도와 76년 동기회 원본 찌라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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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동기생 여러분들께.
따스한 봄이 찿아와 어릴 적 때의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학교를 떠나 서로를 잊인지가 벌써 8년 째로 접어 들군요.
모두들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을 잊고 어제로 돌아가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자 여기 자리를 하나 마련해
봤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지도와 협력을 바랍니다.
때 : 1974년 3.17 (일) 오전 10시
장소 : 성동국민학교 내
회비 : 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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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쓴 본인의 일기장.
친구들의 적라라한 모습들이 숨김없이(?) 적혀 있습니다.. ㅎㅎ
첫댓글 와우!대단합니다.글귀의 여기 저기에서 그 당시의 모습들이 그려집니다.서툴지만 그 때의 그 노력이 지금 이 만큼의 성과에 밑거름이 되었겠지요. 수고했습니다.
친구야, 미안하지만 이제와서 고백하건데 시훈할머니 안계실때 그곳에 한 번 더 놀러간 적이 있었다네. 캄캄한 방안에 들어가서 가지고 온 다라이에 막걸리와 환타를 타고 휘휘 젓고있는데 한쪽에서 누군가가 "이거 무슨 냄새고? 머가 쿰쿰하네.." 또 누군가는 "빨리빨리 불 켜봐라.." 이런 가운데 영복이가 가지고 온 초에 불을 켜서 보니 방 한가운데 누군가가 굵다란 똥 한무더기를 실례해 놨더구나. 아직 덜 마른 상태의 그걸 보고 우리들은 혼비백산하여 튀어나가 학교로 가서 놀다 간 기억이 있다네. 지금 생각하니 암만캐도 그때 그 귀신이 친구에게 옴붙었는갑다. 좌우지간 친구는 똥하고 인연이 깊네그려.. ㅎㅎ
그런가, 영 찜찜하네.푸닥거리 한번 주선 해주소.신식으로 초혼(招魂)을 배경 음악으로 @혼(便魂)불러서 허심탄회하게 얘기 좀 해 보세나.니 어찌 불상한 외간이한테 와서 행패냐? 뭘 어찌해야 되겠냐? 등등...결국은 한잔해야 되겠네.
예전부터 끄적거려놓은 일기장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어서 풀어놓으면 많은 추억거리들이 될텐데 뭐가 그리 바빳던지 그러질 못했네요. 앞으로 틈나는대로 차츰차츰 한 거풀씩 열어 공개 할 예정입니다. 친구들에게서 받은 수많은 편지도 함께요.. 그런데 여학생들한테서는 왜 편지 한 통 받아보지 못했던지, 참.. ㄴㄲㅁ.. !!
여러번 놀라고 있다
60년대 재료 수집 보관은 그 누구도 할수 없다
어제것도 못하는 우리 친구들의 실정인데.....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