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는 모방에서 시작한다. '엄마'하고 아이에게 말하면 아이는 '엄마'를 따라하며 엄마라는 단어를 머리에 새긴다. 이렇게 단어를 배우다 보면 자연 대화는 "이게 뭐지?"하는 질문으로 넘어간다. 아이는 엄마를 따라서 "이게 모야?"하고 묻기 시작한다. 이러한 질문은 "왜?"라는 새로운 형태로 넘어간다. 흔히 말하는 육하원칙이 질문의 주된 형태로 발전한다.
배움이 커질 수록 질문은 좀 더 많은 컨텍스트를 담게 된다. 이제는 상황에 적합한 판단에 기인하는 유도하는 질문으로 발전한다. 앞서 언급된 대화내용의 특정 정보에 집중하여 가치관이나 목적에 따라 새로운 질문이 만들어진다.
질문은 사고와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혹은 유사한 질문이 반복되면 학습의 효과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일찍 감지한 어느 임원의 사례를 소개한다.
10년 전 쯤 일본 Delegation 출장길에 우연히 다른 사업부 개발실의 전무님을 알게 되었다. 귀국하면 찾아오라고 하셔서 비서를 통해 연락을 하였고 바로 찾아뵈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그 사업부의 기술기획부서의 주간 보고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기술기획의 각 파트의 보고를 받을 때마다 업무별로 고정적인 질문을 반복적으로 주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품업체를 소싱하는 담당자의 보고를 받을 경우 부품 개발 및 양산 일정, 부품의 최종 납품가능 단가 및 개발 중 시료공급가, 품질 수준 등이 공통된 질문의 내용이었다. 개발 완료된 부품의 경우는 단가 및 품질이 주가 되겠고, 개발 중인 부품의 경우는 엔지니어링 샘플과 완성부품의 일정 및 단가 그리고 품질 수준이 되겠다. 때로는 그 부품이 완제품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는 것인지와 같은 깜짝 질문을 하시기도 했지만 그 업부의 담당자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질문과 체크리스트가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적인 질문을 해 줌으로써 판단 기준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었다.
국가별 기술 표준화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기술 표준화 참여업체 리스트, 표준화 추진 일정, 구표준의 신표준으로의 Transition Period 및 지원 정책, 해당표준의 타국가 표준 혹은 경쟁표준과의 차이점 등을 주로 물었다. 때때로 처음 접하는 류의 신부품인 경우에는 그 미팅이 담당자들만 만나도 되는 미팅인지 임원이 참석하여 좀 더 확실한 파악 및 조기 협업타진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기술을 담고 있는 경우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이 추가로 주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술이해도가 낮은 담당자를 위해 10분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세미나처럼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곤 했다.
회의는 비록 주간 보고라고 하지만 보고하는 과정에 주어지는 질문들은 모두 해당담당자의 기술 및 판단 능력을 레벨업시켜주는 멘토링의 과정이었다. 옵저버였던 나도 그 시간 동안 귀한 배움을 얻었었다.
사실 내게도 이러한 학습의 경험이 있다. 처음 입사하자마자 파트장은 Q/C/D를 입에 달고 질문을 해 왔다. Q는 품질을 말하고 C는 비용 내지는 단가를 의미하며, D는 납기를 뜻한다. 그의 과제관리는 이 3가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PC 운영체계를 담당하는 내게도, 번들앱을 담당하는 팀원에게도 그는 항상 이 3가지로 과제진행 현황을 파악했다. 제조업체인 우리 회사가 6시그마를 한창 도입하고 있을 때의 이 3가지는 여러 대안을 평가할 때도 평가기준들의 일부로 활용되었다.
오늘 회의 중에 어느 담당자가 해당건은 리소스의 부족으로 당장 구현하기 어렵고 또한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가능해야하기 때문에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아야 하며 따라서 지금 구현하지 않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나중에 구현해도 된다고 보고하였다. 그는 보고로만 그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임원이라면 이처럼 최초 계획과 다른 결과를 보고받게 될 때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를 챙길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첫째, 최초 예상과 다른 계획을 보고받게 되면 그 검토가 타당한 객관적 사실과 상태에 따라 내려진 것인지를 확인하려할 것이라는 점과, 둘째, 단순히 미루기보다는 대안에 해당하는 또 다른 계획을 듣고자 할 것이라는 점이다. 뒤로 미룬다면 현재 판단으로는 언제쯤 구현시작하여 언제까지 끝낼 것으로 예상하는지 대안이 될 계획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예상처럼 임원은 이 2가지의 간단하면서 예상 가능한 질문을 하였으나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던 관련담당자들은 핵심을 겉도는 답변으로 10분이상 시단을 끌다가 결국 차주로 보고를 미뤘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질문을 예상했다면 한 주의 지연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질문을 잘하고 잘 예측하는 능력은 업무능력으로도 이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관련된 용어를 배우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용어의 의미를 묻고 그 용어가 내 업부에 관여되는 배경과 기술, 연관성, 의미에 해당하는 질문이 그 다음 단계를 이어갈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시시각각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이러한 용어와 컨텍스트가 결합하여 어떤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변천할 것이다. 질문을 잘 할수록 남들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고 또는 그 본질과 객관적인 의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흐억. 요즘 엄청 정성들여 글쓰시는 것 같습니다. 양이 후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