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익산의 젊은이를 보았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목사님이
갑자기, 보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기에
덜컥 걱정이 앞서며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사모님을 병으로 먼저 보내시고 상 치르던 날,
허연 머리에 거죽만 남은 몸으로 애써 헛웃음 짓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절절한데
혹, 마지막을 보자는 것일까?
몇 년 만인가?
굳이 헤아려 보자면 그리 오래된 시간도 아니건만
오랜만에 만난 완수 미자, 그들의 겉모습이 생각보다 저 만큼 앞서 가있다.
막내 대룡이도 늦춰질까 부지런히 따라온 얼굴이 이제 나이 먹은 티가 역력하다.
한 점 한 점, 제 부모를 닮아가는 외모들이 세월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이 오십 줄에 몇 가닥 안남은 머리칼을 가지고도
모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았다는
그래서 반갑다는 인사였을 것이다.
“어디쯤인가?”
“다 와가나?”
전화목소리를 뒤로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반대편 차량들에 비해
(교통체증으로)
애써 더디게만 굴러가는 개구쟁이(완수 상봉 미자 대룡)들의 차량이
평생을 기다림으로 산 그분의 심정을 어찌 알까!
“어디쯤인가?”
“다 와가나?”
시간시간, 전화로 확인하는 애타는 목소리가
구르다 말다 하는 차에 채찍을 가해보지만
답답한 마음도, 막힌 서해고속도로도 쉬 뚫리지 않는다.
예상했던 점심때가 훌쩍 지나, 오후 서너시나 되어 도착했으니
지금까지 누구를 기다리며 산 세월에
오늘 하루 애가 탄 시간까지 더하면
나이보다 훨씬 늙기도 했으련만
마중 나온 (흰 고무신에 허연 머리, 꾸부정한) 노인은 간데없고
우리는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는 익산의 젊은이를 보았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여전히 청년의 당당함으로 한 사람 한사람 씩, 꼭 안아 주시는 모습이
마치 돌아온 탕자를 반기는 아버지 같았다.
때늦은 오찬에서는
압력밥솥에 누워 이제나저제나 우리를 기다리던 오리찜이
그만, 긴 기다림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풀에 풀어진 채로 식탁에 올라와
주인과 손님의 마음을 눈물겹게 했고,
직접 재배하신 무공해 채소들이 (만나서 반갑다는 듯) 푸릇푸릇 하였으며,
주인을 닮은 만두와 송편 등 유기농 재료로 만든 각종 음식들이
한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어,
그 정성스런 밥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산해진미를 먹은 듯하였다
그렇게 다들 배불리 먹고 오리찜처럼 확 풀어진 마음에
은연중에 남아있던 노파심마저 사라지자
이제야 되었다는 감사의 포만감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중에 (깜빡) 잘못 들어선 길이 덕소에서 다시 익산을 향하고 있을 때
당황한 막내 얼굴이 해질녘 노을처럼 빨갛게 되었다.
저녁노을이야 부끄러우면 산 뒤로 숨을 수 있다지만
눈 부릅뜨고 밤을 노려보는 막내노을은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첫댓글 그날은 25년전의 시간으로 다시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먼훗날도 항상 같은마음으로 기뻐하고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는게. 행복이죠^^.
예전에... 우리 지긋한 나이가 되면 교회 옆(지금의 농구장) 부지를 매입해서
아파트 짓고 같이 모여 살자던 때도 있었는데........ㅎㅎ
땅은 이미 샀어요.. 초호화 아파트만 지으면 되요^^
시작이 반이라는데...설계부터 들어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