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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스페인 세비야 주, 세비야에 있는 성당으로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번째로 큰 세비야 성당입니다.
첫 번째 큰 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고,
두 번째 성당은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이라고 합니다.
들어가자마자 와~ ~ 탄성이 절로납니다.
이 대성당이 있었던 자리에 12세기 후반에는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는데,
산 페르난도 왕이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아, 카톨릭 성당으로 재건축했다고 하네요.
이 왕을 비롯하여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이 성당에 안치되어 있답니다.
이 성당은 1402년부터 100년 넘게 건축되었으며, 고딕, 신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섞여 있는 복합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와우 ~ 대단한 작품이로군요!!!!!
예수님의 일대기를 사과나무에 조각하고 금칠을 한 황금 대제대로, 이 제대는 성당의 예수님 머리 쪽에 놓여 있습니다.
이 제대는 마리아가 대 천사 가브리엘에게 수태 고지를 받는 장면부터 예수님이 부활하는 장면까지,
성경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일생을 쉽게 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네요.
성당마다 걸려있는 이 형상을 저는 늘 짠한 마음으로 봅니다.
이와같은 아름다운 세비야 성당 모습이 사방에 펼쳐 있어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이곳 제한된 지면에 다 싣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15세기 합창대랍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가 굉장하군요.
아름답지요?
파이프 아래부분에 합창 단원이 앉는 의자의 옆면, 뒷면, 팔걸이까지 전부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이 붙어 있습니다.
그 의자에 앉는 것이 너무 황송해서 성가부르다 가사를 잊어버릴 것 같습니다 헥!
소성당에 있는 조각인데 저기 누워 있는 모자 쓴 분의 베개를 자세히 세어보세요. 3단으로 되어 있네요.
저기 저 베개의 높이가 저 분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일반 평 신부는 베개가 한개이고, 베개가 3단으로 되어 있으면 이 성당의 주교님 정도 될 거라고 합니다.
성당 내부 남쪽 문 근처에는, 아주 유명한 신대륙 발견자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저것은 아주 기이한 모습인데요 ~ ~
1492년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고 세비야와 스페인의 부흥을 이룩했던 그에게, 오랫동안 후원자가 되었던 스페인 왕실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에 배신감을 느낀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저주하며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 고 한 유언에 따라 그의 관을 땅에 놓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채로 들고 있답니다.
지금은 영웅이 된, 콜럼버스의 장례식 때 왕실은 커녕 단 한 명의 귀족도 조문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있는 네 사람은 옛날 스페인을 다스리던 왕들로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왕이랍니다.
네 왕 중 앞의 머리를 뻣뻣이 든 두 왕은 콜럼버스의 의견을 지지했던 왕들이고, 뒤의 머리를 숙인 두 왕은 반대했던 왕들이라는 가이드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ㅋㅋ
좀 해학적인 모습으로 해석하면,
그 시대의 위인인 콜럼버스를 알아보지 못한 죄로 저렇게 왕들이 관을 들고 벌을 받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닌지요.
이 모습을 보려고 정말 많은 관광객이 북적대는군요.
저기 바닥에 있는 기념물은,
콜럼버스의 아들 디에고 콜럼버스가 이 세비야 성당의 신부였는데 자기 아버지 콜럼버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아버지의 전기를 쓴 기념물이며,
후에 아들은 이 성당의 주교가 되었다고합니다.
기념물 지하 밑에는 컬럼버스 아들의 유해가 있다고~
아버지 유해는 저쪽에 벌렁 들려 관속에 계시고...
사진 관객 중 오른쪽 끝 두번째에 춘희 얼굴이 빠꼼히 보이네요 ㅎ.
대성당 옆쪽으로는 왕실예배당, 소성당 및 많은 성화 장면이 걸려 있는 방들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인데,
이런 진귀한 물건은 각국에서 받은 선물들이랍니다.
진짜 금, 은, 보석으로 되어 있는 귀한 물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이드 이영주씨가 이곳에서 깜짝 놀랄 것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저기 은 장식품 안쪽 윗단에,
예수님 처형될 당시 머리에 쓰시던 가시 면류관에서 떨어진 '가시' 가 한 조각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살짝 놀랬습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기도하는 성인 이라는 유명한 이 그림은,
예전에 기도하는 성인의 모습만 오려서 도난을 당했었는데,
그것을 나중에 이 나라의 우리나라 인사동 같은 데에서 찾아와서 저기다가 붙였다고 이영주씨가 재미있게 얘기하네요.
이 그림은 스페인을 고트족이 장악했을 때, 저 두 분이 기독교도 자매인데 개종을 하지 않는다고 이교도들이 사자굴에 넣어서 죽이려고 했더니,
하늘에서 갑자기 빛이 내려와 사자들이 개처럼 순해지면서 두 여인의 발을 핥았다는 내용입니다.
후에 이베리아반도에서 최초의 성녀가 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습니다.
저 왼쪽 탑이 세비야에서 가장 높다는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탑입니다.
높이 98m 로 계단이 아닌 원형 경사로로 올라갈 수 있는데 이슬람교 사원이었을 당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올라갔었다네요.
이슬람사원을 성당으로 재건축 할 때 다른 내부는 다 부수고 저 종탑은 아름다워서 그대로 보존했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제한된 시간때문에 올라가지는 못했지요.
다음기회에 다시 온다면 꼭 종탑까지 올라가서 아래 펼쳐지는 세비야 광경도 보고 종을 가까이 봐야겠습니다.
때마침 저 종이 울려서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종소리를 들으니 어렸을 때 동네 교회서 새벽에 울리던 그 소리가 생각납니다.
요즘은 종소리도 없어져서 그 낭만을 느끼기가 어렵네요.
성당에서 다음 코스인 스페인 광장까지 관광마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조금 낭만적이라 생각하며 즐거웠지만 더운 날에 침 흘리며 같은 장소를 똑같이 반복해서 달리는 저 말들은 즐겁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말들한테 미안했습니다.
스페인 광장입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계단 많았던 스페인 광장을 연상했는데 전혀 다르네요.
이곳은 1992년 세계 엑스포 박람회 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세비아와 스페인의 부흥을 상징하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초대형 건축물입니다.
세비야 여행의 첫 번째 코스가 대성당이라면,
마지막 코스는 반원형 건축물인 스페인 광장이라고 하네요.
예전에 지방 성주들이 광고할 사항이 생기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이곳으로 다 불러서 전달했답니다.
그 당시 주민들의 문맹률이 높았다네요.
이곳서 연예인 김태희가 광고용으로 빨간 드레스를 입고 플라밍고 춤을 추었다지요?
그 춤은 웃으면서 추면 안되는데 ~ ㅋ
스페인 광장 양측에 있는 저 탑은 세비야 성당의 히랄다탑을 본 떠서 만든 탑이며,
스페인 광장은 예전에 시계가 없는 시절에, 광장에서 시계를 보거나, 종교재판, 투우 그외에 지방 성주가 광고할 일이 있을 때를 위하여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광장에 시계가 없는 것으로 봐서 그 시절 최고의 major 광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은 스페인 전역에서 최고의 광장 명소라고 합니다.
난간마다 정성을 쏟고 벽 그림 하나마다 다 스토리가 있는 듯 다르네요.
이번 여행은 공부를 안 하고 그냥 맞닥뜨려 갔는데 후회가 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시장에서 생선 고르듯이 휘이 둘러보는 저 자신이 한심해 보입니다.
오늘 저녁은 식사도 특식으로 고급식당에서 멋지게 먹고, 밤에는 훌라멩고를 보는 땡 잡은 날이에요 ㅎ.
오늘은 주말이라 젊은이들이 길목마다 모여 마시며 웃고 떠들어서 길가는 관광객에게 많은 구경거리를 선사하는군요.
극장에 왔는데 간판도 요란합니다.
everyday 한다는거겠지요? ㅎㅎ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극장 내부에는 앞쪽은 관람만 하는 좌석으로,
뒷쪽은 식사하면서 구경하도록 촛대 놓인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서,
점잖은 노신사 부부들이 앉아서 관람 시간 전에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좌석은 이층 난간쪽으로, 바로 밑층에 식사하는 관객이 보입니다.
그런데 발이 부어서 신발을 잠깐 벗었는데 에구머니나 !! 내 덧버선이 어디로 사라졌네요.
저 아래 층 식사하는 테이블에 떨어진 것 같아서 깜짝 놀라서 열심히 내려다 봤지요.
만일 아래 식탁에 내 덧버선이 떨어졌다면 ?
오 마이 갓!!
숨을 고르고 가만히 보니 둥근 fence 안에 투명한 아크릴로 커버가 되어 있어서 아래로 떨어지진 않았더군요.
그렇게 안 해놓으면 아래 층 식탁에 신발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이고 아이고 상상하지 맙시다 그런건 ~ ~
지나고 나니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키득 키득 쉿!
우리는 우아한 한국인 임을 잊지 않도록 ~ ~
플라멩고 댄스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그냥 댄스라고 해서 젊은 여자들의 경쾌한 춤이려니 생각하고 관람하는데,
어떤 무희는 60세도 넘은 것 같은 여자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춤추러 나오기 전에 매니져한테 혼나고 나온 것 같이 울먹이듯 추더군요.
또한, 조각같은 쭉 빠진 젊은 남자들이 나와 추는 탭 댄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춤을 잘추어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로 답했습니다.
플라멩고는 노래, 춤, 기타연주, 할레오로 구성되는데, 할레오는 손벽치기, 발구르기, 흥을 돋우기 위한 소리 지르기를 말한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플라맹고 춤이 집시들의 애환을 표현하는 춤이라네요.
집시들이 직면했던 박해와 슬픔을 그려낸 춤으로 한 이 서려있는 춤과 노래라는군요.
이제 그 여인의 어두운 표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 심정을 우리에게 몸으로 표현한 것이었으니 정말 그 무희는 프로였습니다.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피로를 풀고 다음 일정을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에너지를 충전시켰습니다.
오늘은 포르투갈 방향으로 다시 떠납니다.
가는 도중 저기 얕은 산 중턱에 군데 군데 동굴이 보입니다.
저기는 집시들이 지내는 곳이라네요.
저런 곳에서 무리지어 조금 살다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 ~
어제 본 집시들의 애환이 느껴집니다.
다음 일정이 포르투갈의 피티마 성당이어서인지 가는 도중 버스 내에서 파티마 성당의 유래가 연관된 영화를 보여줍니다.
나중 성당 설립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지요.
이제는 포르투갈 공화국으로 들어갑니다.
포르투갈의 면적은 9만2090 평방km, 인구는 2015년 통계로 1082만 명 정도라고합니다.
수도는 리스본이고,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의 입장이고 종교는 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이라네요.
고속도로로 가는 도중 내내 도로변에 피어 있는 노란꽃이 무얼까 서로 궁금해 하다가 휴게소에서 내려 냄새를 맡고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후리지아꽃 향기가 나는 이꽃은 '애니시다'래요.
유도화가 우리나라에는 분홍색이 대세인데, 이곳에는 빨강, 흰색, 분홍색, 진분홍색, 아주 별별 색이 다 있군요.
참 이곳 고속도로 주변에 유도화가 많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동물들의 로드 킬을 방지하려고, 동물들이 싫어하는 냄새가 나는 유도화를, 고속도로 주변에 심어놓는다네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 같았어요.
우리나라도 고속도로 주변에, 짐승들이 싫어하는 냄새가 나는 이런 유도화를 심어 놓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 나무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면~
45년전에도 꽃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꽃을 좋아하는 박순자 선배의 달라진 모습을 비교해봅니다.
미소가 달라졌나요?
별로 안 변했네요 ㅎㅎ
이제 포르투갈로 들어섰습니다.
한국과의 관계는 1961년 정식수교한 후 1975년 대사관을 개설하고 현재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다네요.
시내로 들어서서 포루투갈의 상젤리제라고 부르는 리베르다데 거리로 갔지요.
에두아드로 7세 공원이 있고 그 주변 벨렘 지구에,
서울에서도 만들어 파는 에그 타르트를 리스본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며
이영주씨가 사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아이고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유명하다고 하면 열심히 사먹으려고 줄서는 건 똑 같네요ㅎㅎ.
바로 이거에요.
음 ~ 맛있긴한데 그 땡볕에 이거 먹자고 줄서서 기다리긴 쫌 ~ ~
극성들 임에 틀림없습니다~
저기 늘어서 피어 있는 보라색 꽃은 '자카란다'라는 나무인데 스페인 곳곳 어디서나 볼수 있군요.
마침 그 광장 주변에 열린 노점시장이 재미있습니다.
이것 저것 골라봅니다.
이제 포르투갈 땅끝 마을로 갔습니다.
가이드는 까보다 로까 (호까 곶)라고도 하는데(Cabo da Roca) 로까는 호까로 발음하기도 하더군요.
까보다는 곶이란 뜻이고 ~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인 이곳을 선원들은 리스본의 바위라고 부른답니다.
십자가 탑에는 유럽의 땅 끝임을 알리는 시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여기 ....육지가 끝나는 곳이고, 그리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카몽이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그 부근의 풀이나 꽃들은 땅에 착 달라 붙어서 난쟁이 같이 자라고,
사람들은 모자 날라갈까봐 전부 붙들고 있습니다 ㅎㅎ
제 모자는 찍찍이로 붙이는 거뜬한 모자라서
앗싸 !!
마지막 땅 냄새를 맡고 바다로 배타러 나가는 선원의 심정으로 주저앉아 흙 냄새를 맡아봤습니다.
춘희도 모자 날라간다고 모자를 붙들고 ㅎㅎ~
45 년전의 대학생 때의 춘희 모습과 비교해보니~
옛날 발랄하던 그 모습 아직도 있네요
우리가 이 나이에 유럽 포르투갈 땅끝 마을까지
올 줄 누가 알았을까요? ㅋㅋ
누군가 '호까 곶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은 뭉클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라는 말을 했는데,
저도 그 그리움을 느껴보려고 바람부는 절벽에 서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저 아름다운 대 자연의 모습 속에 잠겨봅니다.
다음은 성모의 기적이 일어난 파티마 성당으로 떠납니다.
2017년 5월 31일 ...金 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