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 –코지마 카즈시(저서로 '오오야마 마스타츠의 정언'. '오오야마 마스타츠의 유언' 등이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79년 봄, 극진회관에 입문했다. 그 후에 소속 도장은 바뀌었지만 약 4년간 극진회관에 몸 담은 도장생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오오야마 마스터츠(최배달) 총재님이라는 존재는, 본디 위대한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도장에서 총재님의 지도를 직접 받은 적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약 반 년간의 모라토리엄 생활을 지내고 ‘월간공수도’의 발행처인 후쿠쇼도에 입사하였다. 당시 ‘월간공수도’는 극진회관과 대립하는 전일본공수도연맹(이하, 전공련)의 기관 신문과 같은 존대로 극진회관에 대한 중상적인 기사를 몇 번이고 게재하였다. 그 때문에 극진회관으로부터는 취재 거부를 통보 받은 상태였다.
1986년 가을이 되어 ‘월간공수도’의 편집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그 해 연말에 총재님께 편지를 썼다. 편집장에 취임하여 인사를 하려는 것이 의도였지만, ‘월간공수도’의 리더로서 오랫동안 단절되어 온 극진회관과의 관계를 돌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뜻을 담아 총재님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써 내려갔다.
생각해 보면 이 일련의 편지가 그 이후 나와 총재님과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편지를 주고 받았고 1987년 봄이 되어 총재님과 만나게 되었다. 추억이 깊은 ‘구’극진회관총본부 3층에 있던 총재실 안에 들어간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중압감이 느껴지는 커다란 책상에 턱을 괴고 서류를 읽고 계셨던 총재님은 천천히 고개를 드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웃음을 지으셨다. 총재님은 학생 시절에 도장에서 수련할 때, 심사회 때보다 몇 배는 크게, 그리고 부처님과 같은 포용력을 느끼게 했다.
총본부도장에서 이케부쿠로 동쪽입구에 있는 고깃집으로 장소를 옮기고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허기가 진 것이 아니라 그 때의 내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산처럼 쌓인 고기와 야채를 있는 대로 집어 먹었다. 이 날 총재님과의 대화를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 극진회관의 선배들로부터 중요한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총재님과 식사를 하게 된다면 무조건 ‘대식가처럼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선배들은 총재님의 좌우명에 ‘사람은 먹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든 좋으니 전부 먹어 치워라, 총재님의 마음에 들려면 죽을 각오로 먹으라고 했다. 나는 그 조언에 따라 실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날 그저 먹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월간공수도’의 편집장으로서 어떻게 해서든 극진회관과의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최대의 책무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는 말하고, 말하고는 먹고를 반복했다. 도장생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총재님의 저서에 대한 감상, 최근 공수도계의 동향, 그리고 극진회관에 대한 생각….
총재님은 시종일관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고 때때로 끄덕이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테이블 위에 놓였던 약 10인분에 가까운 고기를 먹어치웠을 때쯤 나의 이야기도 겨우 끝이 났다. 그렇다기보다 이상하리 만큼의 배부름과 긴장감, 탁주의 취기로 인해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헤어질 때 총재님은 나를 향해 ‘자네는 굉장히 기운이 넘치는구먼. 나도 이 세계에서 굉장한 남자들을 몇 명이고 보았지만, 기운이 넘친다는 의미로 봤을 때 자네 정도의 젊은이는 없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라고 말씀하시며 마치 글러브를 낀 듯한 커다란 손을 내미셨다. 나는 그 이후로 셀 수 없을 만큼 총재님과 악수를 하였지만 이 때 느꼈던 총재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의 감촉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총재님과의 만남이 있고 몇 일이 지나고 다시금 총재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덧붙여 말하지만 이 때도 ‘월간공수도’는 극진회관으로부터 정식 취재 허가를 얻지 못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직의 대표로서의 오오야마와 개인으로서의 오오야마는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개인의 힘으로 극진회관을 움직이겠다. 즉, 극진회관이 ‘월간공수도’에 취재 허가를 내리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개인 오오야마가 코지마군 개인에게 취재를 허락하고 싶다…(후략).’
이 편지를 받고 나는 서둘러 ‘월간공수도’ 지면상에 총재님을 대특집으로 실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의 계획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설령 ‘월간공수도’가 상업적인 목적이 있는 잡지이고, 극진회관을 취재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음에도 ‘월간공수도’가 지난날 극진회관과 적대하던 전통공수도계의 지지를 받던 기관 신문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무시하고 노선을 벗어나는 행위는 사내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내의 분위기는 다음과 같았다. 보도라는 범위에서 극진회관이 개최하는 대회를 취재하는 것은 승낙한다. 그리고 관전한 것을 기사화한 것에 선수들의 인터뷰를 덧붙이거나, 기술 분석을 하는 것도 문제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내용의 기사라고 해도 첫 부분에 특집으로 들어가거나 표지에 넣는 것은 피한다는 것이 사내의 불뮨율이었다.
<계속>
첫댓글 김사장님 번역 감사합니다.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오쓰.
오쓰! 이번주 분도 번역해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오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