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들은 개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개나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개를 기르자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오 년 전의 일이다. 성당에서의 구역 반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그 집의 유스티나씨가 별안간 내게 자기네 강아지 한 마리를 가슴에 안겨 주었다. 장난감처럼 작고 털이 노란 강아지였다.
"뭐야?"
"실비아씨가 갖다 키워."
그 집의 개가 낳은 네 마리의 새끼 중 한 마리였다. 겨울의 찬바람 속 가슴에 안긴 강아지의 체온이 나에게 살며시 느껴졌다. 좋은 품종의 애완견은 아니었지만 눈이 까맣고 귀여웠다. 개를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에게 하룻밤만 사랑 땜을 하도록 하고 다음날 개를 잘 키우는 친구에게 갖다 주려니 하고 생각했다. 개집이 없었으므로 라면 상자에 헌 수건을 깔아 주고 강아지를 현관 안에 들여놓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웬 강아지냐며 좋아하였다. 부자간에 번갈아가며 주먹만큼 앙증스레 작은 강아지를 안아 보고 쓰다듬고 야단이었다. 노란 강아지는 그날 밤부터 우리 식구가 된 것이었다. 이튿날부터 남편의 귀가 시간조차 빨라졌다.
강아지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 수 없으리만큼 너무나 작았다. 수놈인 것 같다면서 남편은 쏠라(태양이란 뜻)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남편과, 고등학교 일학년이던 아들 녀석은 집에 들어서면 먼저 쏠라를 찾았다. 눈꼴이 실 정도였다. 나는 일부러 식구들 앞에서 개를 구박하였다. 하건만 밥을 주는 아줌마를 쏠라는 그냥 좋아라 했다. 쏠라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라면 상자가 개집으로선 너무나 비좁았다. 어느 날 시장에 가서 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개집을 사왔다. 파란 색 몸채 위에 빨간 지붕이 고왔다. 남편은 개집 추녀 밑에 검정 매직 잉크로 '쏠라 하우스'라고 영문 문패를 써 주었다.
식구들이 직장과 학교로 나간 뒤 오전이면 나는 수돗가에서 빨래를 했다. 그러면 쏠라는 내 옆으로 바짝 다가앉아 언제나 나를 지켜 주었다. 한밤중에 바깥 화장실에 가게 되면 쏠라는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 문 곁에 앉아서 하염없이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 혼자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이 쏠라로 인해서 심심찮을 때가 많았다.
공연히 짜증스럽고 왠지 화가 나는 그런 날이었다. 주방에서 청소를 하다가 돌아보니 쏠라가 현관에서 마루 위로 뛰어올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아니 저놈이 저러다 언젠가는 안방에까지 들어올 게 아니겠는가. "쏠라아!" 화가 난 바람에 빗자루 손잡이를 거꾸로 쥐고 대가리를 내리쳤다. 탁 소리와 함께 강아지는 깨갱거리며 마당으로 내려가 온갖 아픈 시늉으로 몸을 떨었다. 내가 지나쳤다 싶어서 금세 후회가 되고 쏠라가 안쓰러웠다. 마당으로 나가 "쏠라야" 하고 다정스레 불러 주었다. 그리고 안아서 쓰다듬었다. 아픔을 참는 듯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내려놓아도 또 나를 따라오며 꼬리를 친다. 혈육간의 자식도 한 마디 큰소리로 나무라면 삐쳐서 며칠 동안 뾰로통한 법인데, 그렇게 맞고서도 금방 돌아서 주인을 반기는 쏠라였다.
그 무렵 우리 집 이층엔 할머니 한 분이 대학생인 손자들 밥을 지어주며 지내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문을 통해 이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 할머니를 보기만 하면 쏠라는 사납게 짖어댔다. 이층 할머니는 화가 나서 대놓고 사람을 나무라듯 쏠라를 야단쳤다.
우리 집 큰딸 율리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새 식구가 된 강아지 쏠라 얘길 전화로 전해 듣고 반가워하던 참이었다. 학교의 축제 기간 동안을 틈타서 율리가 집에 왔다. 대문 밖에 낯선 사람의 인기척만 있어도 목청껏 짖어대는 쏠라였다. 그런데 율리를 보고는 꼬리치며 반기는 게 아닌가. 율리가 우리 가족이라는 것을 쏠라는 어떻게 알았을까. 참 신기한 일이었다. 쏠라에 대한 사랑이 나도 모르게 깊어가고 있었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추운 날, 현관 청소를 하려는데 쏠라가 앉았던 자리에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저녁에 남편에게 그 얘길 했다. 남편은 약장에서 머큐로크롬을 찾아 가지고 나왔다. 쏠라를 눕히고 상처가 난 듯 피가 나는 부분에 약을 발랐다.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전에 없던 일로 고만고만한 또래의 개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 와서 문짝 밑으로 쏠라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쏠라도 대문 밑의 좁은 틈새로 주둥이를 바짝 대고 뭔가 밀어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어떤 느낌이 왔다. 쏠라가 실은 암놈이었구나. 남편에게 새로운 사실을 전화로 알려주고 우린 웃었다.
새하얀 털에 검은 점박이 개가 쏠라의 애인이 되었다. 쏠라는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 날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 애인을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뉘네 집 애견인지 방금 목욕을 한 듯한 깨끗한 털을 흔들며 쏠라의 애인이 찾아와서 나는 대문을 열어 주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으며 나는 쏠라가 밖에 나갔다는 사실을 종일 잊고 있었다. 애인과 함께 집을 나간 쏠라는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한밤중까지 식구대로 쏠라를 부르며 동네를 샅샅이 찾아다녔으나 쏠라는 그림자도 없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날도 쏠라는 오지 않았다. 텅빈 개집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영락없이 식구 하나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집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때면 그 집이 행복해 보였다. 추위에 어디서 떨고 있을까. 누구에게 잡혀갔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손에 일이 잡히질 않았다. 쏠라가 집을 나간 지 닷새째 되던 낮이었다. 뭔가 대문을 긁적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쏠라였다. 대문을 여는 순간 쫓기듯이 쏠라가 황급히 달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오매 내 강아지!" 하고 소리를 쳤다. 끄긍, 끄긍, 끄긍. 쏠라가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보고 싶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아줌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라고 우는 듯하였다. 나도 반가워서 울었다. 갈비뼈가 드러난 정도의 야윈 몸으로 쏠라는 돌아온 것이었다. 여기저기 그을음이며 거미줄이 묻었고, 마른 나뭇잎도 노란 몸뚱이에 붙어 있었다.
쏠라를 다독거려 진정시키고 나는 냉장고에서 돼지고기 한 덩이를 꺼내 냄비에 삶았다. '돌아온 탕아'처럼 쏠라의 귀환이 그저 고맙고 기뻤다. 삶은 고기를 삽시간에 먹어 치운 쏠라는 온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기의 체취를 확인하고는 쏠라 하우스에서 잠이 들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한낱 개만도 못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헐뜯고, 배반하고, 심지어 끔찍한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저질러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죽어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개들이 오히려 측은하다. 주인을 불에서 구하고 죽은 오수의 충견이라든가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진도의 주인을 끝끝내 찾아온 백구의 이야기들은 미담 이상의 훈훈한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