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천의 활
김소내
예천을 충효의 고장이라고 이르기 전에는 활의 고장이라고 했음을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예천은 뭐니 뭐니 해도 활의 전승과 전통 면에서 다른 고장의 추종을 불허하는 으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활 만들기(전국 생산량의 80%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권영학), 화살 만들기(국가지정 무형문화재 김종국), 활쏘기(명장이면서 명궁인 무형문화재 권영학님, 김진호의 양궁 세계 제패) 등 세 박자를 고루 갖춘 전국의 유일한 곳이지요. 예천의 자랑거리는 이밖에도 많겠지만 민족의 기상과 예천의 정체성을 살려 나가는 측면에서 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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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궁이며 명장이며 무형문화재인 우리나라 활의 상징인 권영학님
더구나 활은 동양 삼국에서 다른 나라와 뚜렷이 구별되는 우리 동이족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조선은 활이요, 하화는 창이요, 일본은 칼로 대표되는 상징적 차이가 있는데, 역시 이 가운데 가장 첨단 무기는 활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저 고구려의 시조 주몽도 시대의 첨단 무기인 활로써 중원을 말달리지 않았던가요? 물론 그 이전의 고조선 때부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중의 하나가 활이었습니다. 우리는 활을 잘 쏘는 겨레라서 남들은 우리를 일찍부터 동이(東夷)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큰 활’이라는 뜻이죠. 궁술, 기마술, 연금술, 고대 천문학(첨성대) 들은 스키타이의 불멸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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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용총 사냥 그림
그런 빛나는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전통의 맥을 우리 예천이 유일하게 이어 온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다행한 일일까요? 예천의 활 문화를 부활시켜 그 진취성을 살려 예천을 중흥하는 데 기여케 해야겠어요. 활 박물관, 활 전수관, 말 타고 활 쏘는 동상 건립, 활 제작과 활쏘기, 활을 소재로 하는 문화 축제 개최 등을 그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웅혼한 민족의 기상을 예천에서 앞장서 부흥시켜 나아가기를 바라요.
명궁, 명장, 명인이면서 우리나라 국궁의 상징이신 무형문화재 권영학 선생님, 선생님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 동안 선생님의 우리나라 국궁계에서의 위상으로 보나 걸출한 능력과 인격으로 보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이 행정적 뒷받침이 부족되어 성취되지 못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에도 예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오늘에까지 이르렀기에 오히려 더욱 빛나는 성취를 이루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선생님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은 선생님의 개인적인 영광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장의 발전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라서 더욱 중요합니다. 국궁 예천의 기상을 높이고 활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각종 자원이 부족한 우리 고장으로서는 빼 놓을 수 없는 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세계 활 축제를 시작하여 국궁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행정당국은 혹시라도 선생님의 활에 대한 전문성을 살리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를 활 문화 육성에 선용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권영학 선생님의 사심 없는 높은 뜻일 것입니다.
나일성천문관과 한국과학문화진흥원
김소내
나일성 천문관은 천문학자인 전 연세대 교수 나일성 부부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뒤 퇴직금을 몽땅 쏟아 1996년 8월부터 계획하여 1999년 6월에 개관한 세계적인 천문관이다. 그는 교수직을 그만두면서 노후에도 힘닿는 데까지 천문학을 연구하며 우리나라 천문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아무런 개인적인 연고도 없는 우리 예천에 와서 이 천문관을 세웠다. 이것이 감천면 덕율리 산133번지에 세운 나일성천문관이다.
이 천문관에는 고구려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롯한 기원전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동서양을 아우르는 진귀한 천문 관련 귀중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별을 볼 수 있는 지름 40㎝의 특수 망원경이 있어 천문대 역할도 겸하고 있다. 흠경각(유물 전시관)의 1층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동서양의 천문도와 별자리지도 약 150점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동서양의 해시계 유물과 복원품이 7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에는 별자리와 관련된 고구려 고분 벽화(화가가 중국의 집안현에 있는 고분의 벽화를 직접 보고 그린)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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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문관을 세계적이라고 하는 것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4가지 면에서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천문관을 세운 나일성 교수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 천문학회(천문학사위원회위원장 역임)에서도 우뚝한 국내 최고 천문학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동서양을 아우르고, 중국은 물론 천문 관측의 선진국이었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의 천문도가 전시된 곳은 세계에서 여기뿐이기 때문이다.
셋째, 해시계 박물관은 미국에도 있기는 하지만 거기는 전부 아라비아와 유럽의 해시계뿐이다. 여기는 유럽과 아라비아는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을 아우르는 전 세계의 해시계를 두루 수집하여 전시한 곳으로서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넷째, 세계 천문학계 학자들이 수시로 집단적으로 찾아와 학술을 토론하고 연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행정당국에서도 이 시설을 중요하게 여겨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관광 자원화하여 왔고 예천의 큰 자랑거리로 여겨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예천군의 모든 지원이 끊기고, 관광 안내도에도 사라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게 되었다.
나일성천문관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물론 우리 예천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관광 자원 면에서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천문학자와 세계적인 천문관을 가지고 있는 문화 예천의 위상과 그렇지 못한 예천의 위상은 크게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확실치 않으나, 설립자인 나일성 박사가 예천군 지원금 유용 혐의로 구속되면서 예천군의 모든 지원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나일성 박사를 구속한 김 아무개 검사는 오히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악덕 부패 검사로 판명되어 당시 구속되었고, 오히려 나일성 박사는 무죄로 풀려났다.
제 퇴직금을 몽땅 바쳐 천문관을 세운 세계적인 천문학자에게 애초부터 지원금 유용을 문제 삼은 것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런데 대 학자를 구속시킨 의혹투성이인 이 사건은 누가 고발하고 누가 문제 삼았는지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필 악덕 부패 판사로 판명된 청주 지검 검사가 수사를 맡게 된 것이나, 예천의 일을 다른 데까지 가져간 것이나 여러 모로 의문투성이다. 조사는 거기서 했지만 결국은 우리 지역의 일을 우리 지역의 누군가가 제보하고 문제 삼지 않고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애초부터 이 사건은 어떤 정치적인 의도로 억지로 조작된 의혹이 짙다. 세상에 개인의 재산을 털어 세운 천문관에 군의 작은 액수의 지원금을 유용할 건덕지가 뭐 있겠는가? 예천에 와서 천문관을 세워 운영하는 것 자체가 개인 재산을 예천 사회에 환원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 운영에 쓰인 돈이 ‘개인 목적의 지원금 유용’이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지만 대 학자에게 사건을 만들어 오명을 씌운 결과에 대해 나는 아직도 지역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송구하며, 그분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행정당국은 지금이라도, 나일성천문관을 우리 지역의 중요한 문화 자원으로 인식하고 대접하고 활용해야 한다. 전직 군수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면 후임 군수는 바로잡아야 한다. 없는 것도 만들려고 하는 판국에 ‘있는’ 천문관을 ‘없는’ 것처럼 관광지도에서조차 뺀 것이 군수가 바뀐 지금에도 그대로다. ‘두 개의 천문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두 천문 시설이 함께 윈윈할 수 있다.’로 바뀌어야 한다.
나일성천문관이야 말로 문화 예천이 세계를 향해 숨쉴 수 있는 숨구멍과 같다. 세계의 학자들과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예천에서 유일한 곳이다. 이것은 나일성박사와 나일성천문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세계적인 천문관을 문닫아 놓고 우리가 예천에서 열 수 있는 문은 무엇일까? 나일성 박사에게는 어쩌면 미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나일성 브랜드’를 적극 살려야 예천이 살 수 있다.
이제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상의하여 사단법인 한국과학문화진흥원을 설립하고 지속적으로 연구 사업을 벌리면서 천문관을 활용하는 방안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나일성 박사께서는 노구를 무릅쓰고 한국천문학사대계를 완성시켜 연세대출판부에서 인쇄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천문관의 유물은 올해 10월 국학진흥원에도 임대 전시된 바 있고 12월인 지금은 소수서원 박물관에 초대 전시될 예정이다. 곧 지역민을 위한 천문 관련 강좌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뜻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