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계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었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업의 핵심 역량을 이용해 기업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CSV(Creating Shared Value)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과 동아일보 DBR이 만든 비즈니스 리더의 연구모임 ‘CSV 미래경영 연구회’ 강연 내용을 지상 중계합니다. 이번 호에는 김영기 ㈜LG 부사장의 강연 내용을 요약합니다.
※이 강연의 정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은(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와 서진원(서울대 응용생명화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기업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는 재무적 관점에서만 봐왔다. 어떻게 하면 이윤을 창출할 것인지,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할 것인지 등 재무제표에 의한 경영이 주류를 이뤄왔다. 이제는 여기에 덧붙여서 비재무적인 관점 즉, ‘법적책임을 넘어서 이해관계자가 기업에 기대하는 윤리적, 공공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기업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책임’이기 때문에 늘 제약을 받고 부담이 된다. 그런데 이것을 마이클 포터 교수는 공유가치창출(CSV)로 바꾸었다. 기회로 본 것이다. 그게 바로 CSR과 CSV의 큰 차이다.
CSR에 대한 정의
많은 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CSR을 정의해왔다. 요약하면 사회적 책임, 환경적 책임, 경영적 책임의 세 가지가 가장 큰 이슈다. 국제기구들도 다양하게 CSR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CSR에 대한 정의가 다른 이유는 국가마다 처해진 환경, 사회적 관습, 경영의 방법 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ILO, IOE, WBCSE, OECD가 모두 CSR에 대해서 정리를 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은 CSR도 있고, CR(Corporate Responsibility)도 있고, SR(Social Responsibility)도 있다는 점이다. CR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이 꼭 기업에만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사람들이 합의한 점은 ISO라는 국제표준기구에서 만든 SR이다. 왜 C를 뺐을까. 사회적 책임이라는 건 모든 경제주체들이 다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면 GSR이 된다. 동숭동에 갔더니 ASR이라고 써놓았더라. Art Social Responsibility 즉, 예술인들이 하는 사회적 책임이다. 그래서 LG전자는 USR을 만들었다. Union Social Responsibility 즉,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만들어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의 시민정신은 가장 최근의 것으로 보면 된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기업도 제 역할을 다 해야 한다. 글로벌 시민이 되는 순간 기업이 지켜야 될 것이 상당히 많아진다.
CSR에 대한 정의, 다양한 정의를 5개 차원으로 재정리해 보겠다. 우선 환경적 차원의 책임을 들 수 있다. 깨끗한 환경, 환경보호 책무, 기업경영 내 환경적 고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사회적 차원의 책임이다.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기여, 기업경영을 위한 사회적 통합, 그들의 영향력을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 다음은 경제적 차원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기업이익을 창출하고 기업 경영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이해관계자 차원이라는 것이 있다.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자들, 주주는 물론이거니와 종업원, 고객, 투자자, 로컬 커뮤니티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서로를 잘되게 만드는 것들을 이해관계자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발적 책임이다. 이건 법률준수 행위이다.
CSR에 대한 정리는 이 밖에도 다양하다. Triple Bottom Line(TBL)은 엘킹톤(Elkington)이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심플하게 정리한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책임이다. 이 경제적 책임을 G, Governance로 표현하기도 한다. 조직의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민주화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바로 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다. 그래서 ESG-Environment, Society and Governance로 표현하기도 한다.
LG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능한 줄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최대한 높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경제활동을 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협력사도 육성하고 소비자도 만족시키고 있다. 또한 에너지 절감기술을 개발하고 친환경 제품/서비스를 만든다. 이를 통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기업은 필연적으로 환경오염 물질을 부산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기업이 환경문제를 제로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학회사가 물건을 만들 때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다 환경에 문제가 된다. 단지 법적으로 허용하는 범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지 환경이슈를 제로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능한 줄인다(Minimize)’고 표현했다. 온실가스 배출, 환경오염 등을 법적 기준보다 훨씬 더 낮추는 활동, 이게 바로 CSR이 아닌가. 인권/노동 문제가 없어야 하고 취약집단을 소외시키는 일도 없어야 하며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하지 않는 모든 것이 CSR이라고 봐야 한다. CSV라는 것도 결국은 이런 활동을 전제로 해서 공유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CSR과 CSV
기본적으로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법이 없으면 기업이 어떡하겠나. 오염물질을 줄이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자발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의 CSR 활동을 사회 압력이라고 본다. 법이나 규제, 제도가 없으면 기업 마음대로 한다. LG이노텍이 Nokia나 Verizon 같은 곳에 물건을 납품할 때 이 회사들이 꼭 하는 질문이 있다. ‘당신 회사는 노동법을 잘 지키고 있는가’ ‘당신 회사의 협력사의 협력사는 노동법을 잘 지키고 있는가’라고 물어본다. 그렇지 않으면 납품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CSR의 중요한 기본이다.
기업이라는 게 원래 한 손으로 좋은 일하면서 한 손으론 나쁜 일을 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탄받는 것이다. 좋은 일 하는 것으로 나쁜 일 하는 걸 덮으려니까 안 덮어진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린워싱- 워싱은 ‘세뇌한다’, 또는 ‘덧칠한다’란 뜻이다. 그린워싱은 ‘그린색으로 색깔을 칠해버린다’는 뜻인데 환경이슈에도 별로 하는 것 없으면서 환경 잘한다고 선전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염 물질을 흘려내면서 나무심기 하는 경우다.
핑크워싱- 여성들의 유방암이 문제가 되니까 유방암 때문에 핑크리본을 달지 않는가. 그 회사가 하고 있는 일이 유방암과 관계가 없는데 핑크리본 다는 기업들도 있다.
블루워싱- 최근엔 유니세프 등 UN 기구들과 관련된 기업 활동의 과장 홍보를 블루워싱라고 한다. 유엔의 색깔이 파랑색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필립 코틀러 교수의 <Marketing 3.0>이라는 책을 보면 책의 3분의 1이 CSR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제는 기업들이 CSR에서 이익을 찾아내고 사업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이다. 코틀러 교수의 주장은 “make the better world through marketing”이다. 마케팅을 통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자선활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공익마케팅으로 올라가고 공익마케팅을 지나서 사회문화적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CSV와 맞아 떨어지는 개념이다. 즉 일자리 창출 등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한 솔루션을 개발해서 제공하면서 그 과정에서 기업들은 돈을 버는 것이다. 다만 코틀러 교수는 철저하게 마케팅 관점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
사실 CSR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가 아니다. 반면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이익극대화가 기본이라고 보았다. 결국 기업은 돈을 벌면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CSR 활동은 예산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CSV는 예산을 얼마든지 바꿔가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CSV는 CSR의 발전된 형태로 봐야 한다. CSR인데 아주 발전된 형태의 모습이 CSV라는 ‘통합의 개념’으로 정의한다. CSR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비즈니스가 CSR이 되는 것이다. 내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회적 이슈도 해결하고 돈도 벌면 금상첨화다.
정리=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영기 LG전자 부사장 ykkim@lg.com
김영기 부사장은 1979년 LG(당시 럭키)에 입사해 LG그룹과 LG전자에서 인사와 노무 관련 일을 주로 해왔다. 지금은 LG에서 CSR을 총괄하고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리검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