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서울을 출발, 5시간여 만에
대게의 본고장 영덕에 도착했다. 영덕 읍내를 지나 910번 지방도를 따라 달리니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가 신비스러운 색으로 펼쳐진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918번 지방도)를 달린다. 남색바닷가 덕장에는 오징어와 과메기가 꾸들꾸들 말려지고 있다. 5분 정도
달렸을까. 작고 아담한 포구가 나온다. 창포항이다. 마을 뒤편으로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보이고, 포구에는 남편이 걷어온 그물을 어머니와
아내가 정리하고 있다. 그물에서 떼어낸 아귀며 도다리가 수북하다. 건너편 방파제 안쪽에서는 대게잡이 준비로 분주하다. “요즘엔 아침
7시경에 배를 타고 20km 앞바다까지 나가요. 대게잡이 그물을 내리고 서너 시간 기다리죠. 오전 11시쯤에 돌아와요. 요즘 잡히는 대게의
크기는 큰데 잡히는 양은 적어요.” 30년 동안 고기잡이를 했다는 항도호 김용배 선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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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포항 바로 위 도로가에 창포말 등대가 있는 해맞이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해맞이 공원에 서니 짙은 남색바다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색 조형물과 이곳의 특산품
대게의 집게발을 조합해 만든 등대다. 이 등대는 영덕 부근 동해안을 항해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전망이 좋아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그 위는 영덕풍력발전단지다. 풍력발전단지까지는 차를 운전해 올라갈 수 있는데, 위로 오를수록 바다가 넓게 펼쳐진다.
이곳에는 높이가 80m나 되는 풍력발전기 24대가 서 있다. 푸른 하늘과 남색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발전기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이 발전기는
풍속이 초속 3m 이상이 되어야 움직이고, 초속 13m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돌며, 태풍이나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이 불면 자동으로 멈춘다고
한다. 겨울 강구항은 대게 천지다. 주말이면 대게를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대게는 수온
2~5℃ 이하의 차가운 동해 바다(영일만~울진) 중에서도 수심 120~300m쯤 되는 ‘무화짬’과 ‘왕달짬’이라는 해저산맥에서 잡히는데, 겨울이
시작되는 12월부터 살이 오르기 시작해 설 무렵에서 초봄까지가 가장 맛있다. 크기도 크거니와 껍질이 얇고 살도 꽉 차 있어 별미 중의 별미,
특히 다릿살은 담백하고 달짝지근한 맛과 독특한 향으로 인기가 높다. 길가엔 식당을 겸한 대게 판매점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항구에는
풍물어시장이 있어 배에서 내린 싱싱한 대게를 싼 값에 살 수 있다. 맛있는 대게와 활기가 넘치는 영덕의 매력에 한번 빠져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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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구룡포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포스코를 지나 도구리에서 925번 지방도를 이용하는 길과 직진하는 31번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925번 지방도를 추천한다. 이곳에서 호미곶으로 가는 길은 오르내림과 굽이침이 잦아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제주도의 어느 해안길을 달리는 듯 푸른 바다와 아기자기한 구릉이 펼쳐진다. 이 구릉의 끝이 호미곶이다. 호미곶은 오래 전부터
‘호랑이 꼬리’라는 뜻의 호미등(虎尾登)이라 불려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토끼로, 호미곶은 토끼의 꼬리로
격하시켰다. 민족정기와 우리의 자긍심을 폄하한 일이지만, 우리에겐 틀림없는 호랑이 꼬리다. 그래서 호미곶은 우리 땅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곳이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20여 킬로미터를 가자 드디어 호미곶이 등장했다. 이곳에는 등대박물관, 바다와 육지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상생의 손’ 조형물, 국내 최대의 가마솥,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을 간직한 조형물 등이 있고, ‘상생의 손’ 조형물 앞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세 개의 불꽃이 타오른다. 새천년을 기념해 1999년 12월 31일 변산반도의 일몰에서 채화한 불씨와 2000년 1월 1일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 섬 일출에서 채화한 불씨를 합한 일출 불씨, 그리고 이곳 영일만 호미곶 일출에서 채화한 불씨를 ‘영원의 불 보관함’에 안치해 성화
불씨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호미곶을 찾은 아침, 흐린 하늘 탓에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가슴은 고동쳤다. 손에 손을 잡은 가족들,
다정한 연인들, 오랜 친구들은 밝아오는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이곳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곳이요, 영원한 사랑을 다지는 공간이다.
..구룡포항에 들어서면 풍성한 해산물과 활기가 넘친다. 구룡포항에는 백고동과 나발고동,
대게가 지천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겨울 구룡포의 진미는 과메기. 쫄깃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이곳 과메기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제철이다. 이곳은 영일만 동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이라 연중 바람 잘 날이 없다. 차갑고 매운 바람에 과메기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더욱 맛있어진다. 찬바람에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 살이 부드러워지고 포슬포슬해지는 황태와 같은 방식. 꽁치를 꿰어 바닷가에서
열흘쯤 말리면 기름이 빠지면서 꾸덕꾸덕해진다. 이곳 구룡포의 과메기는 질 좋은 육포 같았다. 과메기의 비릿한 맛 때문에 물미역,
마른 김, 배추 속에 마늘, 고추, 쪽파, 고추장을 곁들여 먹지만, 구룡포 과메기는 그냥 초장에 찍어먹어도 맛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과메기
맛을 보려면 구룡포로 가야 한다. 구룡포항 한켠에 자리 잡은 과메기 거리 축제장을 찾았다. 12월 23일부터 1월 23일까지 매년 과메기
축제가 펼쳐진단다. 10년 전부터 과메기 장사를 했다는 어느 사장님은 구룡포 과메기 자랑에 열심이다. “11월에 잡은 꽁치를 바람이 잘
통하는 바닷가 소나무 숲 속에서 말립니다. 그래야 모래도 묻지 않고 깨끗해지거든요. 이곳의 바닷바람으로 말린 과메기라야 제대로 된 맛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같은 꽁치라도 어디에서 말리느냐에 따라 맛에 큰 차이가 나요. 이곳 구룡포산이 최고죠.” 서울에서도 영덕 대게와 구룡포 과메기를
맛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맛을 보기 위해서는 본고장에 가야 한다. 슬슬 찬바람이 불면 그리워지는 곳, 따뜻한 정이 있는 영덕의
포구들과 해맞이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푸른 바다, 새롭게 마음을 다지는 호미곶, 겨우내 움츠려든 어깨를 활짝 펼 수 있는 구룡포에 또 가고 싶다.
바다향을 가득 담은 대게와 시원한 비린 맛의 과메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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