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드디어 어제 해냈더구나.
한 시즌 아시아 최고 홈런기록을 깨고,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 졸이는 가운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을 쳐올려 더욱 극적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홈런왕이었던 왕정치(오사다하루.王貞治)의 기록을 깬터라 이승엽의 기록에 대한 일본 야구팬들이 관심도 상당히 높다.
이승엽이 신기록을 세운 어제밤 밤 뉴스 보도를 보면 이승엽의 기록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뉴스보도 프로그램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그리고 여론에 영향을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스 프로그램인 아사히 TV의 10시뉴스 '뉴스 스테이션'(1시간짜리 보도 프로그램)의 톱 뉴스가 이승엽 신기록 달성 뉴스 였다. 이승엽 보도 포맷이 아주 재미있다.
--------------------------
'뉴스 스테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 끝난 후 곧바로 화면에는 잠자리채를 들고 어디론가 몰려가는 사람들의 장면이 나온다. 정말 커다란 잠자리채를 든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모두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철 지난 때 도대체 잠자리채를 들고 어디로 가는걸까"(나레이션).
수백명의 사람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막 이리저리로 휘두르는 장면이 나온다.
"틀림없이 잡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잡을 겁니다" 등등의 잠자리채를 든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정말 잠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이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하려는 사람들인지 시청자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곧이어 카메라 앵글을 줌 아웃시켜서 장소가 야구장의 외야석, 그리고 야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보여준다. 이제 비로소 시청자들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왜 야구장에 대형 잠자리채를 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든 것일까"(나레이션) --- "이유는 이 사나이의 홈런볼을 받으려 하기 때문"(나레이션)
그리고 곧이어 이승엽 선수가 55호 홈런 기록까지 이르는 홈런 장면들이 나온다. 동시에 배경음악으로 '록키1' 영화의 주제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이승엽의 아시아 신기록 도전의 의지, 과정을 보여주는데 맞물리는 배경음악이다.
55호 홈런 기록달성후 며칠째 이어지는 홈런 방망이 침묵, 그리고 상대팀 투수의 고의사구 항의에 따른 경기장 소동, 56호 신기록을 달성할 경우 그 홈런볼 가격은 얼마나 될 것인가 등에 대한 인터뷰, 또는 화면들이 잇따라 나온다.
"이제 남은 경기는 마지막 한 경기"(나레이션)
그리고, 현지 대구구장 외야석에서 서서 리포트를 하는 기자가 화면에 나온다.
관중들의 함성들이 함께 들리면서, 약간 들뜬 모습이 엿보이는 기자의 코멘트가 이어진다 "과연 오늘 한국의 홈런타자 이승엽선수가 해낼 것인가. 일본 프로야구의 오사다하루 선수가 세운 홈런 기록이 과연 깨질 것인가. 한국 야구팬들의 커다란 기대를 안고 이승엽선수가 마지막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승엽이 운동장에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서 뉴스 스테이션 메인 여성앵커의 얼굴의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된다.
그녀의 코멘트, "그렇다면 과연 경기의 결과는.....(잠시 쉬었다가).....역시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곧바로 경기 화면으로 다시 바뀌면서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때리는 극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몇차례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승엽, 이승엽 부인, 홈런볼을 주은 사람 인터뷰 등이 차례대로 나온다.
홈런볼을 주운 사람이 엄청난 가격에 달하는 그 56홈런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일본 기자의 물음에 "사람이라 갖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냥 삼성 구단에 기증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이 답변을 듣고 흐뭇해하는 앵커의 얼굴이 나오면서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는 한 시즌 경기수가 일본 프로야구보다 ***게임(*내가 숫자를 정확히 못알아들었다)이 적습니다"라고 덧붙이고 이승엽 관련 뉴스는 마무리된다.
마침 이날 이 프로그램 말미에는 최근 일본 프로야구의 양대시리즈중 하나인 퍼시픽 리그에서 우승한 다이에팀의 감독으로 아시아 홈런기록 보유자였던 오사다하루감독이 스튜디오에 출연, 생방송 인터뷰를 했다.
물론 리그 우승 소감, 일본 시리즈 예상 등을 묻기 위한 인터뷰였지만, 때 마침 이날이 자신의 기록이 깨어지는 날이라 재미있기도 했다.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 달성에 대한 오사다하루의 코멘트 "온 나라가 떠들썩한터라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게임에서 홈런을 쳐내 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은 더욱 대단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어제 이 뉴스 스테이션의 이승엽 관련 보도는 5분 이상 상당히 길게 보도됐다. 그것도 톱 뉴스로 말이다. 일본에서 한국관련해서 기분좋은 뉴스를 톱뉴스로 들으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뉴스의 구성이 아주 재미있지 않냐. 이 방송국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데 스트레이트형으로 뉴스를 다루지 않는다.
일본의 방송 뉴스 프로그램중 가장 시청률이 높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로 꼽히는게 2개가 있는데 아사히TV의 이 '뉴스 스테이션'이라는 프로와 TBS의 '치쿠시 데츠야(筑紫哲也) 뉴스 23'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각각 10시, 11시에 시작하는 1시간짜리 심야 뉴스 프로그램인데도 시청률이 높다. 나의 경우 별일이 없으면 매일 '뉴스 스테이션'을 보고, 곧바로 '... 뉴스 23'을 보고 있단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9시 뉴스와 같은 포맷으로 스트레이트 뉴스 위주로 보도하는 곳은 NHK 방송뿐이다.
스트레이트 위주의 방송 뉴스 포맷을 제일 처음 깨고 나온 프로그램이 아사히 TV의 '뉴스 스테이션'인데 85년에 처음 출발할 때 기존의 뉴스 프로그램과 확연히 다른 시도로 일본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뉴스보도 프로그램이었다.
예를 들어 아까 말한 이승엽 보도와 같은 형식으로 뉴스를 구성해 우리나라 9시뉴스 톱뉴스로 보도하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냐. 그런 파격적 시도를 이 프로그램이 먼저 시작해 일본 뉴스의 판도를 바꿔놓았지. 뉴스 보도프로그램의 버라이어티화를 시도해 성공한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뉴스 스테이션'이후 다른 민방들도 보도 구성 형식을 바꿔 뒤따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85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줄곧 맡아 18년동안 진행해온 간판 앵커 구메 히로시(久米宏.59) 앵커가 내년 3월 자리에 물러난다. 최근에 은퇴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지. 일본 방송계는 구메 히로시 앵커의 은퇴이후에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 높은 시청률을 유지할지 주목하고 있다.
'뉴스 스테이션 = 구메 히로시"라는 등식이 성립해 있기 때문. 구메 히로시 때문에 같은 시간대의 NHK 간판뉴스프로그램인 'NHK 뉴스 10'은 시청률을 빼앗겨왔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이 프로그램은 정치 여론 형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구메 히로시 앵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직설적으로 자민당 파벌정치, 관료정치를 비판하는 코멘트를 서슴치 않아왔다고 한다. 이런 한마디 한마디가 시청자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구메 히로시 은퇴를 가장 반가와하는 게 누구일까. 나는 "같은 시간대 간판뉴스를 방송하는 NHK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느 정치인이 말하기를 "NHK가 아니라 자민당 권력자들이 제일 좋아할 것, 아마 앓던 입속의 가시가 없어지는 기분일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평가를 받는 저널리스트,..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