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의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가 벌써 한미동맹이 체결된 지 53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이 건국한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의 대외관계에서 절반은 북한 문제였고 나머지 절반은 한미관계가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미관계는 한구의 대외환경에 중요 부문을 차지해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이 이룩한 성과는 냉전 이후 국가간에 맺은 가장 성공적인 동맹관계라고 평가된다. 한미동맹의 체결을 통해서 주한미군의 주둔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법적 구속력을 나타내는 내용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세기 동안 주한미군의 실질적인 가장 큰 기여는 안보와 경제, 사회의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첫째로, 주한미군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의 남침 억제는 물론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둘째로, 주한미군은 평시 한국의 안보비용을 절감하게 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도모하도록 했다. 세 번째로, 주한미군은 동북아의 안정을 보장함은 물론 나아가 한국의 국가전략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넷째로, 한국은 미국과의 문화교류를 통해서 최첨단의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드리는데 성공했다.
요약한다면, 한미동맹은 중국, 일본, 러시아, 주변 강대국들과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보장장치이며, 한반도 통일에 이른 과정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통일 이후에도 한국의 국가적 생존과 번영에 큰 연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즉 한반도 통일의 과정과 결과가 한국 주도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는 주도적 국가가 될 것이며, 주한미군은 동북아 지역에서 주변국간의 군비경쟁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안보 부담을 경감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국제정세의 변화와 한미 양국의 국내사정의 변화로 한미동맹관계 역시 변화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아니 한미동맹에 균열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2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이후 남한사회에 갑자기 불어닥친 ‘평양러시’ 및 ‘평양바람과 이로 인한 남남갈등,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한미간의 인식의 차이에 따른 한미 공조체제의 불협화음,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신세대의 등장과 한국의 국력신장에 따른 민족주의의 열풍, 9.11 테러이후 미군의 이라크침공과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한 한국인의 반발, 미군장갑차치사사건으로 번진 반미감정을 등에 업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주국방을 공공연하게 거론한 점, 등으로 한미관계는 거센 풍랑을 예고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한국사회의 내부에서 일기 시작한 북한에 대한 위협의 인식이 크게 완화되었다는 점이 한미관계 변화의 중요 동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대중정부이후 추진한 햇볕정책과 남북교류의 영향은 심각하다. 특히 대학생들의 북한에 대한 가치관에 혼란이 오고,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남북한 축구경기에서 경기를 보면서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중들의 에너지를 3S(Screen, Sex, Sport) 등을 통해 분출시킴으로써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마비시킬려는 집권층의 정략적 노력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금강산 관광에 100만명이 동원되었으며, 정부의 국제협력기금에서 입산료의 명분으로 북한측을 현금지원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방송사들의 무분별한 친북 프로그램과 북한 선전 영상은 여과없이 안방에 전달되고 있다. 북파공작원의 애환을 그린 실미도, 한국전쟁 당시 전투경험이 부족했던 미군들이 저질은 양민학살사건인 노근리사건들이 단골메뉴로 방송되었다. KBS는 6.25특집으로 보도연맹으로 희생된 가족의 아픔을 실은 “옴니버스 다큐 어머니의 전쟁”을 기획했었다.
전쟁의 원인제공자인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철저히 파헤치는 분석이나 장차 그런 체제에 대한 응징을 결의하는 정의감의 발현보다는 양비론적 차원에서 “제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평화에 대한 넋두리만 앵무새처럼 되풀이되었다. 또 KBS는 내년에 북한 배우들이 북한에서 촬영한 역사극 <사육신>을 수입하여 방영한다고 결정했다. 이런 좌익, 친북의 방송 흐름은 자연히 주한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분위기를 고조시킴은 물론, 통일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 없다. 환경오염 물질을 잔뜩 배출하고, 잔혹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주한미군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II. 21세기에도 한미동맹이 존속할 필요성이 있는가? 이 의문점은 한미 양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국가이익이 존재하는가에 달려있다. 미국은 21세기에도 동북아에서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강대국의 출현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련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탈냉전시대에 들어오면서 중국의 국력신장이 욱일승천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미국은 탈냉전시대에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제1차적 목표가 되었다.
특히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침공 가능성이 상존해 있으므로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비상사태시에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의 군사력을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해외미군의 재배치계획은 냉전시대의 소련에서 탈냉전시대에 중국이라는 주적의 변경에 따른 미 군사력의 구조조정 및 재배치로 보면 된다. 여기에 다가 냉전의 종식이후 위협이 다양화되고 9.11테러이후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새로운 적으로 추가됨으로써 미국의 국방계획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었으며 급기야 선제공격론까지 거론되게 되었다.
소형 핵무기, 화생방무기, 기타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중장거리미사일 등의 개발의 박차로 인해 인명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육군에 대한 의존도가 감소되고, 해군과 공군력에 의한 전투력의 비중이 더욱 증대되었던 것도 주요 요인이다. 여기에 북한의 핵개발 요인은 자칫하면 테러리스트들에게 수출될 수 있는 위험한 불장난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좌익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이 자칫하면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을 초래하여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의 발생을 우려하여 대북강경책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고 냉전체제를 해체하기 위해서 김대중은 미국과 일본 등 동맹국과 긴밀히 상의하지도 않고 햇볕정책을 통해 금강산관광을 통한 달러현금 지원, 식량, 차량 등 기타 대북사업에서 각종 지원을 계속해왔다.
그 덕분에 김대중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의 수상을 누리는 개인적 영광을 얻었기는 했지만, 국가적 차원의 문제는 이런 지원방식의 성격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美名하에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도 않고 국민여론의 수렴을 무시한 채 정권차원에서 진행되어왔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유화정책이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북한의 반민주적 체제의 문제나 처참한 북한 인권 이슈는 정계와 언론에서 소홀히 다루게 되었고, 한국정부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불신감은 날로 깊어만 갔다. 여기에 간헐적으로 터지는 반미감정에 대해서 한국정부가 신속하게, 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마치 반미감정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듯한 오해를 산 적도 있었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강화를 통해서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됨으로써, 자칫하면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하부동맹으로 전락되거나 아니면, 장기적으로는 해체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일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① 한미동맹을 청산하고 ②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 ③ 대북 군사적 옵션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미 기업연구소(AEI)의 에버슈타트 선임연구원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은 용서할 수 없는 反美라는 것이 입증되었고, 한국인 이제 도망간 동맹국“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이런 워싱턴의 분위기를 간파한 미국내의 친일세력들은 이에 뒤질세라 이미 2년전부터 미국내에서 일본에 우호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었다. 2003년 일본측의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고 일본인들의 전폭적인 촬영협조가 이루어진 워너부라더스사의 작품, <라스트사무라이>가 미국청중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탈냉전시대에 주한미군은 전세계에서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막을 내리면서,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의 일각을 담당해 온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는 불기피하게 보인다. 이제 주한미군의 위상변화는 “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어떻게 구조조정하느냐?”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향후 주한미군의 위상변화에 대한 논의나 SOFA 재개정의 대전제는 친미냐 반미냐 하는 단순이분법을 떠나 용미(用美)의 입장에서 실리는 무엇이고 명분은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노출되고, 일본의 개정교과서 채택 파동과 함께 독도 영유권 야심이 증폭되면서 한국인들은 새삼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미국인들이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가장 작구먼!” 현재 많은 한국인들은 미군의 철수보다는 불공정한 SOFA의 개정에 있다는 점에 한국정부와 미국은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한미 양국은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위해서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전략적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만 하더라도 그렇다. 일본은 자위대를 300여명 정도 밖에 파병하지 않았으나 고이즈미 총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부시의 이라크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아시아에서 “부시의 푸들”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일본의 군수무기산업체들은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사용하는 무기의 부품에서 많은 제품을 수주 받아서 경제적 실속을 단단히 챙겼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시민단체, 반전단체의 항의집회가 이어졌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던 노무현 정부는 결국 가장 안전한 지역에 3천명 이상을 파병했으나 가장 늦게 파병함으로써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제대도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말았다.
III. 한미동맹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미동맹관계는 기본적으로 비대칭 동맹관계(asymmetric alliance)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출발해야한다. 동맹관계는 필연적으로 국가정책 결정상에서 자율성의 제한을 가져온다.
이른 바 안보와 자율성의 상호교환성(trade-off)은 특히 한국과 미국처럼 국력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비대칭 동맹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비대칭 동맹관계란 약소국이 동맹국으로부터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받지만 자국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자율성을 충분히 주장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이제 한미동맹은 한국인의 자의식 성숙과 북한에 대한 객관적 우위의 확보를 통해서 보다 대칭적 동맹관계를 원하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주 외교, 자주 국방 등을 강조한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미외교는 비현실적인 완전한 자주와 평등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비대칭 상황하에서 자율성의 추구라는 현실적 목표로 요구의 수준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한다. 둘째로, 동맹 재정립의 목표는 주한미군의 철수가 아니라 SOFA 개정을 포함하여 보다 호혜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야 국내의 반미감정을 잠재울 수가 있다. 반미감정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부메랑이 되어서 미국내의 반한감정으로 되돌아오고, 이는 곧 미국내에서 미군철수 여론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셋째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고 동시에 주한미군사령부의 반발이 클 전시작전통제권의 완전한 회수보다는 한미연합사의 운영 개선을 통해서 우리의 자주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단계적으로 전시통제권을 환수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측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정보능력과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한국에게 북한은 현실적으로 위협의 대상이요 통일의 동반자이다. 한미동맹은 그 현실적 위협에 대처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한국에게 미국은 현재 가장 소중하고 북한은 미래에 귀중한 자산이 될 대상이다.
이제 정녕 한국인들에게 묻고 싶다. 북한의 김정일 공산독재체제와 협력을 표방하는 소위 민족공조냐? 아니면 한미동맹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한다면, 어떤 노선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05년 8월 13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