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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시
꽃대가 흔들린다 외 4편
김희영
꽃대가 흔들린다. 바람에 온몸 맡기고 흔들린다. 꽃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꽃대가 흔들린다는 것을 오늘에야 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흔들리면서 꽃망울 터트리는 꽃대. 꽃이 향기롭게 필 수 있는 까닭은 아프게 흔들리는 꽃대 때문임을 꽃들은 알까. 환하게 미소 짓는 꽃들의 세상을 위하여 신명 바쳐 흔들리는 꽃대. 힘에 겨워 등이 굽을지라도 기쁘게 바람을 안으며 꽃 피우는 꽃대의 깊고 넓은 사랑. 아흔의 어머니가 흔들린다. 평생을 자식 위해 거친 생활의 파도를 잠재우며 흔들리는 어머니! 이 봄, 꽃보다 꽃대로 흔들리는 어머니가 아름답다. 반듯한 꽃들의 삶을 위하여 어머니로 흔들리는 꽃대가 아름답다.
------------------------------------------------- 돌 틈에 핀 복수초꽃
무거운 돌덩이 비집고 핀 노란 꽃 한 송이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견뎌왔을까
엄동설한 이겨낸 앙증스런 춤사위 힘든 시간 홀로 내색 한번 없이 육 남매 반듯하게 키운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자식 마음 아플세라 힘든 기색 감추시는 어머니 얼굴같이 가녀린 꽃 한 송이 무거운 돌 틈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 얼레지꽃을 보라
두려울 것 없다 보여주지 못할 것도 없다
어린 봄볕에 꽃잎을 치마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인다
아쉬울 것 없다 남겨둘 것도 없다
꽃잎을 한껏 뒤로 젖혀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아낌없이 보여준다
얼레지꽃을 보며 당당함을 배운다 진정성을 닮는다
--------------------------------------------------- 달개비꽃
사람이 그리운 달개비꽃은 길섶을 향해 뻗어가고 그대가 그리운 나는 그대 사는 서쪽으로 창문을 내었어라
세상 얘기 듣고 싶은 달개비꽃은 땅바닥 기며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고 그대 소식 사무치는 나는 그대 얼굴 어리는 별만 무더기로 헤아린다
----------------------------------------------- 원추리꽃
기다리다가 사랑하다가 그만 목이 빠졌나 보다
사랑하다가 기다리다가 그만 목을 꺾었나 보다
송이마다 한 뼘씩 웃자란 아픔의 세월
기다리다가 사랑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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