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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문학판 너머를 말하다
2016년 발생한 예술계의‘ 성폭력’ 논란은
사실로 밝혀졌고, 그에 수많은 시인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렸습니다. 암암리 시인이라는 이
름으로 묵인되었던 것들이 터진 것입니다.
한 매스컴에서는 그 실체를 이야기하면서
문단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였습니다. 부끄
러운 우리의 상처이지만 자정하는 마음에서
계간 『시산맥』에서는 기획특집 <문학판 너머
를 말하다>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의 소리를 들
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시인들 간에 생겨나는 질시나 흉
보다는 서로 칭찬하는 분위기를『시산맥』에서
앞장서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리며, 참여자
와 본문의 순서는 일치하지 않음을 알려드립
니다.
----------- 우리가 가진 고민들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내보인 것은
처음이다.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고 썩은 뿌리가 발붙이지 못하
도록 시단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자.
사랑이 아니었어? 성 모럴쯤은 초월한 줄 알았는데! 상대를 충분히 배려하
지 않은 게 문제였다. 사랑하면 더 아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건 사회문제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차단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문청 시절 “만나서 차나 한 잔 하자”는 낯선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때 “네가
그를 왜 만나”냐고 뒤통수를 치는 스승과는 그날로 헤어졌습니다. 내 생애
첫 詩 스승이 왜 그랬는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 것 같습니다. “만나자”던
시인이 그 추한 명단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미리 알려주는 것
도 예방법이라고 봅니다.
방조나 외면은 공범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듯 낯 뜨거운 동료에게
도 분노하라!
문단에 암암리에 일어난 듯한 폭력은 무수히 많았고, 시를 막 쓰기 시작한
나는 어리벙벙했다. 이곳 역시 이런 세계였단 말인가. 너무 많은 이들이 이
미 고통받았다.
시인의 정신세계와 그 바탕을 이루는 ‘인성’을 먼저 고려하고, 시인의 기초
적 자질인 ‘은유의 형식적 기교’를 살핀 후 시인으로서 활동하게 해야 할 것입
니다.
문학에서 사람이 잊힌다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사람은 먼 곳의 3인칭
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는 인연들이지요. 그들을 존재가 아닌 수단이나
도구로 인식하는 곳에 문학이 설 자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인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문단 권력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 되는 문인은 문단에서 영
원히 추방하고 관련조직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재발한다고 봅
니다. 문인으로서 통렬히 반성합니다.
정치인들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처럼, 문학인들의 자정 노
력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다. 그렇지 않다면, 문단의 미래는 나아지지 않
을 것이다.
우리는 몰랐었다. 다만 우리의 아내와 딸에게는 문단 복무를 못 하게 막은
적이 있을 뿐, 매일 밥을 먹고 자고 있었을 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그것이 그 시를 믿고 읽는 독자에 대한 당연한 약속이며 시인의 의무라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담패설 등의 성폭력이 문인들의 특권인 양 기행(奇行)으로 미화되던 시
대는 지났습니다. 문단에서 기득권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문인들이 우리 사
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문인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행동거지가 하늘
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윤동주) 누구보다 당당하고 떳떳해야 합니
다.
여자 시인들을 성추행한 남자 시인들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늦은 감이 있
지만 참 다행스런 일이다. 성추행한 시인들을 시단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
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금이 마침내 제 스스로 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소금을 짜게 할 것
인가.” 라는 말씀이 있었다. 문학은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빛이며, 우리 인체
를 통제하는 심장이다. 그 섬광의 빛과 심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장난치는 자
가 있다면 그는 당연히 우리 문단으로부터 퇴출되어야한다. 그의 문학은 사
기다.
오직, 시를 위하여 창작열을 불태웁시다. 창밖에 서성이는 저, 가난한 詩를
위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을 모두 그렇게 바라볼까봐 염려스럽기도 했다. 소위 말
하는 갑질이 시단에도 있었다. 글보다 도덕적인 인간이 먼저 됐으면 한다.
예술가의 상상에는 울타리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삶에서도 그런 게 허
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마주한 세상은, 진실과 도덕 정의가 우선이 아닌, 하나의
틀 속에 만연하는 독단의 거대한 누수, 지금 우리가 처한 처절한 정치의 현실
과도 같이 이제, 문단도 자성의 성숙한 시대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변함없이 약자다. 약자가 사이렌을 울릴 수 있어야
사회는 변한다.
시인이란, 돈도 권력도 없지만 명예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 아닌가? 돈도
권력도 명예마저도 없는 하등동물이 되진 말자.
문단의 성 추문도 글을 조금 더 잘 쓰는 것이 권력이라고 생각한 소인배들
의 “갑질”에 해당합니다. 글을 잘 쓰는 것만큼이나 인간성도 같이 연마했더
라면 좋았겠지요.
시인은 명예나 권력이 아니다. 부디 사람의 부조리를 벗고 한 마리 어여쁜
천사가 되자.
독자들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누구를 막론하고 성폭력 관계
확인을 거쳐 문제가 되는 문인을 모두 색출해서 자격정지 시키는 것이 마땅
하다고 본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면 뭐하는가? 인품이 건전하지 못하면 그
글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성폭력의 발생을 방조하고 묵인해왔던 사회 분위기 쇄신이 시급하다. 또
한 문단 권력을 쥐고 흔든 가해자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법적 처벌 등 공적 처리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시는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
인만이 참세상을 여는 진정한 촛불입니다.
시인이라는 호칭이 부끄럽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봉합하지 않기를, 제대로 털어내기를 소망합니
다.
적절한 처벌 시스템을 갖춰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없어야 할 것이며 자성
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꾸준하게 이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성찰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행위들을 묵인, 방조하는 태도에 대해 시인들은 책
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인 또한 특별한 행위가 없는 일반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성이 용서이다.
작금의 욕망하는 물신주의에 그 뿌리가 있다고 봅니다. 거스를 수 없는 물
신의 추세에 문학정신이 길을 잃은 것이지요. 부디 문단을 이끌어 갈 정신이
살아나기를 고대합니다!
“터질 것이 터졌다. 떨고 있는 자들이여 각성하시라!”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한 문학창작학교와 문예지의 강사들이 문단권력을
빙자한 성폭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페미라이터 모임과 아카이빙 작업이 더
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성은 문학의 한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다. 성추문은 상대적이지 일방적이
아니다. 남과 여가 아닌 문인과 문인으로서 문학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
다.
부끄럽다. 추하다. 더구나 미성년자나 습작생을 상대로 했다니 참담하다.
문학에 대한 모독이다. 자성을 통하여 스스로 맑아져야 한다.
문학예술계의 양심과 지성이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여성을 아직
도 창작 에너지, 또는 대상으로 삼는 구태의연한 태도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
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래된 남성중심주의적 병폐가 반드시 고쳐져
야 할 것입니다
육체는 사랑과 지혜의 집이다. 거기 폭력이 가해지는 순간, 두 채의 성전이
어둠의 집으로 바뀌고 만다.
작가들이여, 밝은 햇살 아래 산책을 추구하고 독서를 욕망하자. 그리고 더
많이 가진 작가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기를 바란다.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뭐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덮어 둔 것들이 곪을 대로 곪아 일부 새어나온 것들입니다. 우리의 잘못입니
다.
작가는 작가다워야 합니다. 타인에게 비틀린 우월의식을 가진 작가는 퇴
출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는 작가를 우대하는 문단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시는 예술이다. 그러나 시인의 행은 예술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모든 일탈과 욕망은 문학작품을 통하는 것이 문학의 본령이다. 문학이라
는 이름을 팔아 저지르는 온갖 것들은 문학이 아니라 추악한 범죄행위이다.
신뢰가 무너진 현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긴 힘듭니다. 부디 부끄러움을 알
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벌을 받는 모습이나마 가져야겠지요. 2차 3차 자신
의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파렴치한 행동은 부디 거두시길 바라며 또한 권력
이나 친분 때문에 덮어지면 결코 안 됩니다.
최근 문단의 불미스러운 일을 계기로 자성하여 2017년에는 문학이 예술의
최고 자리에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문단이란 이상한 바닥에서 다들 출구 없는 탈주선을 꿈
꾸며 가엾게 뻐끔거리는 건 알지만 같은 장애를 가진 환우끼리 예의라는 건
좀 지키고 삽시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력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시인을 또 다른 시인들이 나서서 처단하기를 바랍니다.
알려진 사람들의 성추문을 통해, 비난과 질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는 성추문 없는
아름다운 문단 만들기, 그것은 ‘나’부터이고, 그리하여 주변이, 전체가 훈훈해
질 테니까요.
문학판 너머를 말하다
여성이 가정과 사회에서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나라가 올바로 건강해집
니다. 성폭력은 중죄로 다스리길 희망합니다.
성추문에 거론된 시인들이여, 다시는 시를 빌미로 성추문하지 마세요. 그
런 나쁜 시인들은 거시기에 자물쇠를 채웁시다. 너무 심했나요? 성추문은 반
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문단 한구석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고명? 에 따른 그에 상응하는 내공이 텅
비어있음을 -열등의식- 스스로 드러내는 치기어린 자긍심 결핍환자. 당하는
본인부터 단호히 내치는 용기가 있었던가?? 글깨나 쓴다는 문단의 사람들이니
“軍令有所不受”의 고사를 알 것이다. 아는 만큼 행동했을까?? 자성할 점이다.
문학 권력에 편승해 등단과 데뷔를 미끼로 행해지는 여러 불편한 요구들,
문학이 수단이 아닌 사명과 공유의 매개체가 되도록 함께 배려하는 환경이
절실하다.
작가랍시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글만 사랑받으면 됐지, 자신의 글을 팔아
파렴치한이 되어간다면 최순실 일당과 다를 게 있습니까.
대상을 존재로 바라볼 때 소통은 접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대상을 소
유하려고 할 때 그 문장은 휘어지고 비루해진다.
재능이 덕을 이기면 각박한 경쟁 논리만 남습니다. ‘부재승덕(不才勝德)’이
란 말을 가슴에 품고 사는 시인은 무성한 말만 생산하는 시인보다 더 아름답
습니다.
예술가의 상상에는 울타리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삶에서도 그런 게 허
용되는 건 아니다.
문단은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성에 대해 관대하고 자유로운 편이다. 문제
는 이런 점을 이용하여 성을 희롱하거나 추행을 일삼는 문인들이 있다. 사실
문단 권력을 가진 남성 시인들에게 아부하는 여성 시인들이 있을 수도 있다.
문단은 이제 성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타인에 대해 가십거리와 희
롱의 상대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는 어떠한 성적 추행과 동조도 거부한다.
시는 마음속 빛이었고 시인을 만난 자체가 예술이었다고 말하는 입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정유년을 맞습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도 된다. 시로써만 말하면 된다. 시만 잘 쓰면 그만이
다’라는 엉뚱한 합리화로 이어져 문화 권력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성적으
로 혹은 위계에 의한 교묘함으로 폭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꽃과 나비는 절대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서로를 더 아름답게 할 뿐이
다.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기에도 벅찬 것이 작가의 인생이다. ‘작
가’라는 이름이 타인을 향한 힘이 되어서도 안 되고, 스스로의 욕망을 위한
도구여도 안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에도 벅찬 인생을 끝
까지 살아야 한다.
하루 종일 노추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문단의 성추행 사건은 문단 내에 오래전부터 뿌리내려 온 일그러진 관행
의 단면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여성작가 지망생들에 대한 성 도구화, 등단
명목의 금품 요구, 마음에 안 들 경우 작품의 평가절하 등을 비롯한 작품 내
필요 이상의 성 언급 등은 창작의 에너지를 꺾어 놓을 뿐 아니라 순수한 목적
으로 문단에 몸담고 있는 작가들의 이미지마저 흐려놓고 있다. 문단 내에 고
질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문인들의 가슴에도 촛불을 밝혀야 할 때
가 왔다.
유명세에 끌려 다니는 문단이 되지 맙시다.
시인들은 다 안다. 촛불이 간절히 필요한 곳은 문단이라고, 그러나 어쩌랴
저 높고 두터운 문단 권력의 목에 방울을 달 용기 있는 쥐새끼는 한 마리도
없으니!
바닷물이 짜기 때문에 썩지 않는 거 맞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염도가 3%
라네요. 아마 그 3이라는 숫자가 우리가 지향하는 진실의 지대가 아닐까 생
각합니다. 희망을 놓지 말고 꾸준히 가야지요. 문학의 힘으로.
성추행에 대한 문제가 거론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게 한다. 평등한 시
인들 사회에 약자와 승자가 있었다는 것이 슬프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맙시다.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살든 적어도 성의 노예, 권력의 노예가
되어 詩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성 폭력이나 문단 권력에 함몰된 이들로부터 시인이라는 이름을 박탈해야
한다.
우리들은 어떤 이름을 새긴 역 앞에 나와 서성인다는 것인가. 기다리는 오
후의 기차는 닿을까? 부쩍 바퀴소리가 찌걱거리는 이즈음, 문학이 그렇다는
것은 심하지. 병든 기차는 보내야지. 발등이 좀 시리겠으나, 그래도 새 기차
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의 예술적인 행위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미숙함과 죄
의식 부재가 여성들에게 여러 가지 부적절한 언행으로 이어지면서 착하게
오늘을 사는 많은 젊은이들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았
다. 만시지탄이란 후회는 이런 때에 쓰는 것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또 다른 클리셰가 있다. 이제는 앞을 보고 걷자.
그리고 꽃길만 걷자.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시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시의 마음이란 서
정이고 순수이고 자애라고 생각한다. 시의 마음을 잃지 말자!
절대 눈감아주지 맙시다. 용서라는 것도, 관용이라는 것도. 아름다움을 가
장한 위선입니다. 시인은 오로지 작품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시 하나 잘 쓰는 그것도 권력이라는 갑의 행패를 공개하면 갑은 없어질까?
피해자인 을의 입장에 서서 재발방지를 위한 상벌시행의 규칙이 있어야겠
다. 공분해야 할까? 부끄러워 입을 닫아야 할까?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할 때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품위나 교양
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터진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문인은 그래도 되는 것처럼
로맨스로 둔갑시킨 추문일 뿐입니다. 거기에 혹여 많은 우리가 동참하거나
눈감아 준 것은 아닐까요.
성추행은 한 인간을 심각하게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남긴 오물이
평생 자신의 이름에 얼룩으로 남는 일, 극히 삼가 할 일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시인만큼은 아니라도, 시인
이라면 당연히 ‘사소한 부끄러움’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또 깨닫습니
다.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순수한 시 정신을 망각
하고 지내온 시간들을 깊이 반성해야겠지요. 제가 먼저 고개를 숙입니다.
문단 성추행이나 그 어떤 성추행도 권력과 권위에 눌려 묵과해서는 안 된
다. 성추행을 당하면 반드시 조치를 취하고 용기를 내서 그 자리에서 목소리
를 내야한다. 성추행, 성폭행은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란 사회적 인식이 필요
하다. 피해자가 사회의 시선이 무서워서, 또는 부끄러워서 신고 못 하는 사
회적 시선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성을 존중한다면 상대가 싫어하는 언행을 지극히 자제해야 하겠지요.
잠깐의 실수로 인생을 망치지 말고~
문학은 픽션이나 문인은 실존이며, 문인의 비인격적 행동이 문학의 그 무
엇도 될 수 없다.
제발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마세요. 시와 시인들을 배반하는 행위입니
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저도 그렇
게 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문인들이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아야 하
겠습니다.
문단 성추문 문제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남성 권력, 출판사 권력,
교수 권력 등 깊은 반성과 재발 방지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의 향연은 순간이고 정신의 폐허는 영원하다. 언행의 고졸미는 영원
하고 언동의 쾌락미는 순간이다. 영원과 순간의 거리가 멀다. 그 거리 위에
서 구질구질하지 말기. 쩨쩨하게 놀지 말기. 칭얼칭얼대지 않기.
시를 모독하지 마라. 시가 언어도단의 진경을 넘나든다 하여, 시인들이 합
리적 질서를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면죄부는 없다!
성폭력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결국 꽃을 꺾은 자와
꺾인 자의 시간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바라본 시인들의 가슴은 답답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모든 작가들에게 소위 문단에서 공신력 있다는 문학상
을 수상해 주길 바랍니다.
나는 말이야! 하는 그릇된 속성을 버려야 한다. 지면을 채워갈 때, 우린 어
쩌면 자신이 갈겨놓은 지면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론 스스로에
게 호된 채찍을 해야 할 것이다. 더욱 겸손하고 거울 보듯 지면에 맞서있는
자신을 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고품격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언어로 타인의 정신세계에 영
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공인이다. 최근 시단 전체의 위상을 실추시킨 성추문
관련 사태는 참으로 유감이다. 언론에 거론된 사람이나 거론되지 아니한 사
람들도 진정한 참회로 거듭나 재발을 막고 활기찬 내일을 맞이하기 바란다.
치욕이라 생각 들면 더 이상 구걸하지 마라, 시 한 줄이라도. 인연과보.
문학은 인간의 권력이 아닙니다. 인간다움의 요청이며 신뢰입니다.
문단은 숨어들기 좋은 장막이 아닙니다. 문인의 자존심과 상처받은 문학을
복원하는 길은 결국, 문인과 문학의 자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시인을 부패한 냄새와 상처로 만나는 아픈 시절이여.
시에게 묻노니 그대를 낳은 자 무슨 죄목을 품었는가.
갑의 위치에 있는 문인들께 마음을 부려 놓으면 性은 시도 때도 없이 더러
운 쪽으로 넝쿨을 뻗어요.
“시인은 예로부터 학식과 인품을 겸비했다 해서 선비라 했습니다. 몸과 마
음이 건강한 시인다운 시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너져야 할 것은 반드시 무너진다. 더 쑥대밭이 되어야 한다. 더 드러나
야 하고… 그런 다음에 마침내 깨끗해질 것이다.”
문학의 깨끗한 얼굴이 그립다. 원고가 선택되고 출간되는 시스템의 공명
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꾸준히 정진하는 좋은 작가(시인)의 발견, 발굴도
시스템이 공정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게 전제되지 않는 무수한 담론은 헛개
나무소리. (헛개나무여 미안!)
한국 문단의 박근혜, 최순실을 추방하자.
잘못에 대하여 반성, 반성, 반성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문단은 문사들의 심신 거주처이자 독자와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적 성소이
다. 일부 문인들의 성폭력과 위계폭력으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며 격하된
공간이 엄정한 자성과 진실한 문학 추구로 다시금 존경받는 상징적 공간으
로 공고해지기를 바란다.
짐승들의 지상 과제는 섹스에 의한 종족보존에 있지만 작가에 있어 지상
과제는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대, 타인의 아픔과 슬픔 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하늘을 향해 짖어보라. 긴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릴지도 모르니
돈과 권력과 상투적인 일상의 삶에 길들여지지 않는 말의 예리한, 때로 거친
힘을 다시 믿어보자.
문학을 미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자. 문학은 문학이고 그거는 그거고.
권력남용이 성추행을 낳는다고 봅니다. 제발 등단이나 재등단을 빌미로
검은 손 내밀지 마세요.
낮에는 21세기 낭만시인, 밤에는 여자를 제 갈비뼈로 여기는 마초시인, 조
선시대로 보내라.
시는 시답잖은 세상에 시답잖게 시시껄렁 그냥 굴러다니다가 어느 한순간
골 때리는 정신에 꽃 한 송이 피워내는 것뿐이라고, 시답게 발악 한 번 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시는 언어와 세계를 배반하며 배신한다. 그러나 시인은 언어와 세계를 배
반하거나 배신해서는 안 된다. 문학적 명성이라는 권력에 얼마나 해바라기
하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본다. 그들을 양산해낸 게 내가, 우리가 아니었는지 .
지성들의 집단이고 이 나라 지성을 이끌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할 문
단이 성추행이라니! 한마디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번 일을 문단 자정의 기
회로 삼아 한국문단의 풍토를 새롭게 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감투가 아니다. 함부로 쓰지 말자.
예술은 매혹이다. 더구나 문학은 아름다운 삶의 예술이다. 창작에 임하는
모든 작가들의 각성과 함께 삶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정신적 자세가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자기의 삶과 작품에서 아름다운 품격과 향기가 풍겨 나
오는 그런 참된 예술가의 모습이 그립다 .
성(性), 사랑을 나누는 가장 아름답고 선한 방식.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추
행, 폭행 폭력 따위 반언어들과의 조합을 절대 거부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시와 소설을 쓰는 일은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하여 이
웃들과 함께 살아가며 노력하는 일이다. 자기 스스로를 다잡지 못하는 자가
어찌 이웃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끝없이 자기를 다잡아 가는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성은 아름답다. 하나 성악은 저지른 자 스스로에게도 치욕이다.
“지지 않을 것이고 지지할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문학이 가진 힘을 끝까
지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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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무순 · 호칭생략)
구회남 김광기 김려원 김해원 변의수 이진수 이 명 김윤이 최호일
허 민 김완수 정대구 문정영 김명서 정태화 최해돈 강옥매 정 원
지 연 고경숙 하보경 이향란 이강하 김은우 석연경 이선균 권순해
박복영 장유정 권행은 손수진 오현정 이아영 안명옥 권이화 정숙자
사윤수 최연수 오광석 손한옥 한석호 강 주 박용진 안차애 정병숙
진혜진 마선숙 김분홍 박수현 태동철 김겨리 김 곳 권기만 강 순
정채원 김신영 이지호 최세라 백우선 강인석 김정수 최지원 문성해
이화은 박경순 김선호 임재춘 정진아 정윤천 김인숙 김태인 장요원
정안나 문효치 허영둘 김일곤 박완호 양현주 정용국 박희정 서정화
임태진 김남규 임채성 김삼환 정재분 권혁재 이승남 김혜천 이승은
홍경나 송종규 변영희 송문문 정 겸 김인희 전비담 권현형 김영찬
유정이 윤향기 이동재 황정산 임동확 박수빈 강영은 김금래 김명원
박설희 정상미 최병숙 오세경 김종원 김소현 조윤희 김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