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배경
지난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주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 곧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히 예수님께 나아오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그 아름다운 소식,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너무 너무 복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우리들은 그저 “예수 믿으세요”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내용과 같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는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소망을 주고 가슴을 뛰게 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표적도 필요합니다. 표적으로 그 말씀이 확실히 증언되어야 합니다 (막 16:20)
2. 그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
1) 마음이 상한 자(히, 샤바르)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원어적으로 “샤바르”는 마음이 깨어진 자를 붕대로 감아 주는 것처럼 감싸주는 것입니다 (하바쉬 샤바르). 마음이 상한 자가 너무 많습니다. 육체가 상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이 상할 일들이 너무 많고, 억울해서 마음이 상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이 상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로도 마음이 상하고, 약자인 이유로 마음이 상하고, 상대적 빈곤으로 마음이 상하고 있습니다.
▶ 의인의 상한 마음도 있습니다.
마치 롯이 소돔성의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보고 마음이 상한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2: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의인이 이 땅에서 자행되는 불법을 보고 그 의로운 미음이 상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죄악의 도성이 되는 것을 보고 우는 자가 마음이 상한 자입니다.
이 땅에 구석 구석 불법이 성행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죄들과 과거에는 입에 담지도 못할 죄들이 이제 공연하게 드러내놓고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놓고 통곡하는 자가 마음이 상한 자인 것입니다.
▶ 또한 자신의 연약함으로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우는 자입니다.
시편기자는 34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이 아파 울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나타난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들의 상한 마음을 모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우리들의 상한 마음이 먼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마음이 상한 사람이 많은데 누구도 진정으로 그를 붕대로 감싸주듯이 감싸주질 못합니다. 욥의 친구들도 욥을 위로해주지 못했습니다. 슥 11:16절을 보면, 사악한 목자도 상한 양들을 고치지 아니했습니다.
[스가랴 11: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겔 34:4절에서도 이스라엘 목자들이 상한 자를 쌔매 주지 아니한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겔 34: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참 목자가 없어 상한 자가 고침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참 목자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목자가 바로 메시야인 것입니다. 예수님인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상한 자들에게도 고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으로 마음이 상해있습니까? 마음을 고치시는 예수님이 답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시면 만져 주실 것입니다. 고쳐 주실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것입니다.
2) 포로된 자 (히,샤바)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적군에게 잡혀 포로가 된 것입니다. 포로가 되어 자유가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들의 적은 누구입니까? 이 땅의 어떤 나라가 아니라 사탄, 마귀의 세력들입니다. 어둠의 권세들이 그들을 포로로 잡은 것입니다. 그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신분, 정체성을 잃게 되고 사탄이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끌고 가는대로 끌려가게 됩니다.
▶ 사탄이 우리를 포로 잡는 무기가 많습니다. 죽음입니다. 질병입니다. 가난입니다. 중독입니다. 모두가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사탄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들입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사탄의 포로가 되는 주요 통로는 죄입니다. 죄가 근거가 되어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죄는 마치 적군이 들어오도록 성문을 열거나 성벽을 허는 역할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 그 사이로 적군 마귀가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로 인하여 사탄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들을 예수님 오셔서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분은 유일하게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전쟁에서 져서 포로가 된 것이므로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통해서는 해결이 안됩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권세로 사탄의 권세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해야 참 자유를 얻습니다
[요한복음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또 성령님도 자유의 영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자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그러면 죄와 사망에서, 어둠의 권세에 짓눌린 자가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 12:22-29, 눅 4:18-19, 8:26-39)
3) 갇힌 자(히,아사르)에게 놓임을 선포하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포로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이것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와 같이 매여있는 자입니다. 결박된 자입니다. 사탄의 역사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인 제공이 사탄 마귀에 의한 것도 있지만 환경과 사람에 의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에 갇혀 있습니다. 저주에 갇혀 있습니다, 가난한 삶에 갇혀 있고, 자아에 갇혀 있고, 중독에 갇혀 있고, 일에 갇혀 있고, 쾌락에 갇혀 있고 , 병으로 갇혀 있고, 사망에 갇혀 있습니다, 두려움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그 안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도 죽은 자 같이 무기력하고, 실제로도 무기력한 자들입니다. 나귀가 말뚝에 매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죽지는 않지만 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두어 놓고자 함과 같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하란에 가두어 놓고자 함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벗어나야 합니다. 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자들도 예수님 오시면 놓아주시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실제로 무덤에 갇혀 있는 나사로도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도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행 5:19, 16:27)
각종 질병에 묶여 있는 자들을 풀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묶여 있는 결박과 멍에를 풀어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갇혀 있습니까? 그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감옥의 옥문을 열 것입니다. 그 발에 묶인 체인을 끊어 낼 것입니다. 지키고 있는 악한 영적 간수들의 눈을 어둡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하여 인도해 낼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4)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을 선포합니다.
은혜의 해는 매 50년 마다 다가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이 되면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를 해방시켜 주고, 가난 때문에 팔려진 자식이 돌아오고 땅이 다시 돌아오는 해입니다 (레 25:10) 메시야가 오시면 이런 모든 얽매임에서 가난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잃었습니다. 건강도 재물도 관계도 정서적인 기쁨도 잃었습니다. 얽매임을 당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 안에 오면, 메시야가 다시 회복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보복의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자기 백성을 억압한 자들, 포로로 삼은 자들을 심판하는 날인 것입니다. 사탄을 포함하여 악인들이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그동안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묶고 상하게 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그들이 무저갱 속으로 불못으로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메시야를 만나는 때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종말에도 그러하시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주님을 만나면 그 때가 우리를 묶고 있던 것들이 풀어져 떠나감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며 재판장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발동하는 그날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선인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구원자이시지만 동시에 악인들에게는 심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10-11절을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 옷을 입혀 주시고 그들이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서 솟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5)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십니다.
우리들은 많은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마 5:4). 슬픈 자와 애통하는 자가 “판데오”로 단어가 같습니다. 위로도 “파라칼레오”로 같습니다.
재를 뒤집어 쓰고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의 기름으로 슬픔을 대신하게 합니다. 찬송의 옷을 입혀 찬송을 부르게 하여 근심을 대신하게 합니다.
재를 뒤집어 쓰는 것은 의로운 자가 비통한 심정을 표현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
다윗의 딸 다말이 이복 오라버니 암논에게 강간을 당하고 쫓겨 났을 때 재를 뒤집어 쓰고 통곡했습니다 (삼하 13:19), 이스라엘 민족이 하만에게 전멸을 당할 위기에 놓였을 때 모르드개가 재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에 4:1).
모두가 비통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런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슬퍼하고, 온 세상이 죄의 도성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고, 사람들이 사탄의 포로가 된 것을 보고 슬퍼하는 그런 슬픔입니다. 물론 포로되어 갇혀있어 슬픈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슬픈 모든 자에게 기쁨을 상징하는 화관을 씌워주고, 기쁨의 기름과 찬송의 옷을 입혀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이 줄 수 있는 완전한 기쁨, 큰 기쁨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궁극적으로 천국에서 누릴 기쁨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이 예수님이 기름 부으심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전한 복음의 주요 내용입니다. 다음주에는 메시야를 통하여 회복된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모두 상한 마음이 고쳐지고, 사탄의 포로에서 놓임을 받으며, 갇혀 있는 모든 삶에서 자유함을 얻어 그동안 슬픔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는 기쁨과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