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경기도에 있는 A요양병원 강당. 입구와 단상에는 예쁜 꽃들이 새하얀 베일과 함께 장식되어 있었다. 이내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안내방송에 따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하객들이 아름답게 꾸며진 식장으로 들어섰다.
이날 이곳에서는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이 병원에 입원치료 중인 B씨와 C씨가 부부의 연을 맺은 것. 신부 B씨는 말기 위암환자다. 암세포가 이미 간을 비롯한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더 버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의료진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결혼예식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비록 남들처럼 '백년해로'를 약속할 순 없지만, 상대를 자신의 평생 반려자로 맞이하고 싶었다. 병마도, 주위의 걱정과 반대도, 그 무엇도 이들의 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다.
B씨가 자신의 발병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봄. 속이 메스꺼워 병원을 찾아 검사해 보니 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곧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되어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3년 전 만나 애틋한 사랑을 나누며 올가을 결혼까지 약속한 이들에게 예비신부의 위암 진단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가정형편 때문에 할머니 밑에서 자란 C씨는 비록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지만, 누구 못지않게 행복한 사랑을 키워갈 자신이 있었다. B씨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한푼 두푼 모은 종자돈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꿈에 부풀어 있던 터였다.
결혼식에는 가족과 친척, 친구 그리고 병원 임직원 등 200여 명이 자리를 같이 해 두 사람의 하나 됨을 축하해 주었다. 하객 중에는 유독 환자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 링거병을 들고 온 사람, 오랜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져 두건을 쓰고 온 사람 등 저마다 병마와 싸우느라 지치고 힘든 모습이었지만, 이들은 준비한 꽃다발을 선물하며 새 부부를 축복했다.
이윽고 예식이 시작됐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먼저 신랑이 입장했다. 여기저기서 축하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웨딩마치 속에 입장하는 B씨의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눈부신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주례를 맡은 D목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며,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라"며 "이 결혼을 통해 서로의 관계가 영원까지 이어지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그대를 아끼고 사랑할 것을 하나님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엄숙히 선언합니다."
이들은 평생 변치 않는 사랑으로, 서로 충실한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는 혼인서약을 직접 낭독했다. 곧 이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성혼선언문이 팡파르 속에 울려 퍼졌다. 여느 결혼식처럼 신랑은 신부의 이름을 부르며 만세삼창을 하기도 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모들은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에 축하의 인사도 변변히 전하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신랑과 신부의 손을 꼭 잡아줄 뿐이었다.
가족들도 예쁘고 살가웠던 동생의 결혼모습을 보며 "새로운 인생을 맞아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하루빨리 건강이 회복되길 기도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도 "비록 지금은 몸이 아프지만, 사랑이 큰 힘이 되어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며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느새 이들을 바라보는 하객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은은하게 퍼지는 축가와 함께 새 가정을 이루어 퇴장하는 이들에게 하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심 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사실 결혼식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B씨가 예식을 잘 치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녀는 이날 아침까지도 항암제를 투약하며 치료해야 했다. 그간 식사도 할 수 없어 영양제로 겨우 끼니를 해결해 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잘 견뎌냈다.
그런 B씨를 바라보는 병원 직원들의 눈가에도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간호사들은 "결혼식 날짜를 잡은 뒤 그녀가 몰라보게 밝아지고, 행복해 보였다"며 "예식 이틀 전부터는 식사도 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투병의지를 곧추세웠고, 남몰래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는 "행복하고, 기쁘다"는 짧은 말로 소감을 전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동안의 쉽지 않았던 결정과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B씨는 갈등이 더욱 심했다. 남들처럼 주변의 축복 속에 면사포를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얼마나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평생 자신을 가슴에 담고 살아갈 신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남모를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가장 크게 용기를 주었던 것이 신랑 C씨다. 그는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B씨가 해 달라는 대로 해주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성원도 큰 힘이 되었다. 주저하는 B씨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하며 지지해 주었다.
남들처럼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알콩달콩 사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이들. 내 사는 날이 얼마가 남았던, 함께 할 날이 얼마가 되었든 평생 서로 향한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간직하며 살겠다는 이들의 약속이 어느새 환한 미소가 되어 잔잔하게 번져갔다.
취재를 마치고 병원문을 나서는 길, 죽음도 가로막지 못할 무아적인 사랑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믿음과 서로에 대한 희생이 B씨의 건강회복으로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