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평가 성공의 조건
경영상의 의사소통이 상명하달식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면, 직원들은 관리자의 명령이 얼마나 타당한지, 또는 논리적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이를 수용함으로써 무능한 조직을 양산하게 됩니다. 비즈니스 세계와 군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도 바로 상사에 대한 견제 및 균형이 가능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상사의 지시사항이 실패로 귀결될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반대의견을 내기를 주저했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고를 당할 위험이나 반항적인 부하로 낙인찍히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반대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고객만족도가 경영의 주요 화두였던 1980년대에 ‘고객은 왕이다’라는 표현이 유행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를 회사의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직원에게 현실적으로 왕은 고객이 아니고 상사였습니다. 이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한국 속담과 일맥상통합니다.
선진기업들은 세심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인사고과체계를 통해 상사에 대한 견제 및 균형을 추구합니다. 실례로 ‘상향평가’라는 익명의 설문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베인앤컴퍼니는 상향평가가 하향평가보다 더 솔직하고 정확한 피드백이 나타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상향평가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핵심성공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향평가는 하나의 평가항목일 뿐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인기투표로 전락해서 평가의 의미가 퇴색되기 쉽고, 이는 하위평가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평가결과를 토대로 상사를 ‘해당상사와 기꺼이 일할 용의 있음’, ‘기꺼이 일하고 싶지는 않지만, 같이 일하는데 문제 없음’, ‘다시는 같이 일하지 않겠음’의 세 그룹으로 분류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대부분의 상사가 두 번째 그룹에 분류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첫 번째 그룹만큼이나 많은 수의 상사가 세 번째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둘째, 효과적인 상향평가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부하직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아 트렌드를 분석해야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6개월을 주기로 익명의 설문조사를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설문을 다년간에 걸쳐 진행하게 되면, 결과를 조작하려는 노력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고 정확한 평가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세 번째는 평가결과를 보상체제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채찍보다 당근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은데, 평가결과가 우수한 상사에게는 당근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리더를 승진시키면 동료들도 이들을 역할모델로 삼아 비슷하게 행동하도록 독려하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상향평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진정한 리더십을 평가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평가주체가 상사인 경우, 다각도의 정확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리더십을 평가하는 데에는 누가 더 직임자일까. 부하직원일까, 아니면 상사일까. 답은 명확함에도 아직도 많은 한국기업들이 하향평가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Case Study]
상향평가는 한국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 정부기관에 다면평가체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결과는 항상 성공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장 선도적인 기업에서조차 임원들은 부하직원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상향평가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왔습니다. 상향평가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그래서 많은 잡음을 일으켰고, 결과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GE는 지금까지 보아온 리더십 평가체계 중 가장 포괄적인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똑똑해야 하는 것은 물론, 부하직원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잭 웰치의 리더십 철학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GE는 상사를 평가하는 행위 자체가 부하직원의 성과향상으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합니다. 이는 막강한 툴인 동시에 경쟁력 있는 내부문화의 원천입니다. 부하직원의 평가 때문에 상사는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며 이는 동시에 부하직원의 신경도 민감하게 만듭니다.
전세계 프로페셔널 기업의 대부분은 상향평가 시스템을 어떠한 형태로든 갖추고 있습니다. 이 중 베인앤컴퍼니의 평가체계는 컨설팅업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체계입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젝트 팀원들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프로젝트 매니저와 파트너도 팀원들로부터 개인 및 팀 차원에서 익명의 평가를 받습니다.
평가결과는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에 바로 축적되고, 해당 매니저 또는 파트너가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관리됩니다. 매년 보너스 금액은 수행한 프로젝트 성과 뿐만 아니라 평가결과에 의해 결정됩니다. 평가가 너무 가혹하다거나 허점이나 조작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는 모든 사람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솔직한 평가를 하게 하는 강력한 툴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기업 중 가장 우수한 인사평가 시스템을 구축한 기업 중 하나는 신한은행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인사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놨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허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한은행은 업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자랑합니다. 신한은행의 성과지향문화는 높은 생산력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의 평가체계는 목표치 대비 실제성과를 평가할 뿐 아니라, 앞서 설명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리더십 잠재력도 평가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많은 금융기관들이 ‘우리도 유사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신한은행의 경우에는 높은 점수를 받는 임원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훨씬 체계적입니다. 평가결과가 부풀려져 있어 모든 상사가 최고점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술자리에서의 활발한 상사 ‘씹기”와 너무나 대조적인 광경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용장보다는 지장을 선호합니다. 덕을 중시하고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지장보다 덕장에 더 후한 점수를 줍니다. 실제로 자신을 덕장이라고 평가하는 임원들은 많은 반면, 상향평가에서도 덕장으로 평가 받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일부 임원들은 자신에 대한 자기평가와 부하의 평가가 너무 다르다는 점에 놀라기도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상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부하직원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리더십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답은 세밀하게 설계된 체계적인 상향평가체계에 있습니다.